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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츠(Graz)
그라츠는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슈타이어마르크(Steiermark)주의 주도이고
면적 2,100 Km ² 에 인구 26만 5천여명(2012년)이다. 한 때 슬로베니아 영토였던
그라츠는 9세기 경 건설되었고 슬라브어로 '작은 요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접경도시로 주변국과 잦은 전쟁을 치루며 요새의 역할을 하며 오스트리아를
지켜 왔다. 그라츠의 구 시가지는 중부 유럽안에서 가장 잘 보존된 도시
중의 하나이다. 1999년 그라츠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03년에는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 되었다.
-오페라 하우스-
**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오페라하우스이다. 이 오페라 하우스는 1899년 9월 16일 개관하였다.
점잖은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신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scene # 2-
** 일반적인 분수와 다르게 4각형 기단 양 옆에서 물이 아래로 분출된다.
동상에는 경찰을 욕하는 낙서도 보인다.
-거미줄 같은 전차용 전력선이 구시가지 공중 공간을 수 놓고 있다.-
** 중부 유럽과 이탈리아, 발칸 제국과의 경계에 인접하여 다양한 영향을 받아 지금의 특별한
도시 풍경이 탄생하게 되었다. 현재 구 시가지에는 고딕 양식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1,000여개가 넘는 건물들이 도시의 장관을 이루고 있다.
-나비 애벌레 같이 생긴 전차-
** 그라츠의 전차는 노선마다 운영하는 회사와 전차의 모양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 scene # 5 -
** 골목 안으로 자동차들이 들어오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 scene # 6 -
**골목길에는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경계석이 없다.
- scene # 7 -
** 골목마다 자동차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쇠 말뚝을 촘촘히 박아 놓은 유럽의 다른 도시와 다르게
널찍한 인도는 이 도시의 특징인 것 같다.
- 모양이 다른 전차들-
- scene # 10 -
** 열차의 각 차량마다 하체가 심하게 손상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의도된 무늬이다.
-벽화로 외벽을 장식한 할후버(Hallhuber) 매장-
** 우중충한 칼라의 벽화는 산뜻한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벽화는 용솟음치는 말을 탄 기사들의 모습이
주류를 이룬다. 유리창 너머로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의류들이 보인다. 이 건물이 독일의 패션 브랜드
할후버(Hallhuber) 매장이다. 1977년 독일 뮌헨에 처음 설립된 패션 브랜드로 독일을 비롯해서
오스트리아, 벨기에, 노르웨이, 영국, 스위스 네델란드 등 300개가 넘는 지점을 가지고있다고한다.
깔끔 하면서도 트랜디한 디자인으로 여성들에게 사랑 받는 브랜드이며 가방, 악세서리, 신발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 해있다. 헤렌 3 번가街(Herren Gasse 3)라는 거리 이름이 벽에 붙어있다.
- 시청 청사 (Rathaus)-
** 당시의 비좁은 시 청사를 대체하여 1893년 구독일 양식으로 현 시청을 건립하였다.
- 시청 앞 광장(Haupt Platz)-
** 광장에는 시장이 선다
- scene # 14 -
- 슐로스베르크(Schlossberg) 언덕(자료사진) -
**작은 요새가 표고 125 m 의 슐로스베르크(Schlossberg=山城)언덕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으로
건설된 것은 1125년이었고 후에 고딕 스타일로 바뀌었다가. 1544년에 르네상스식의
견고한 요새가 되었다. 이곳에 사람이 정착한 시기는 BC 8세기 경 부터이다.
-산성(Schlossberg)으로 가는 길-
** 사진의 왼편, 붉은 벽채의 건물은 평범한 외관의 성당이지만 1704년에 건설된 바로크 양식의
3위1체 성당이다. 이름은 발음하기도 힘겨운 "드라이팔티히카이츠키르헤(Dreifaltigkeitskirche=
3위1체 성당)인데 골목 앞은 산성광장(Schlossberg Platz)으로 명명되어 있다.
산성 위에 시계탑이 보인다.
-그라츠, 3위 1체 성당-
** 유럽의 가톨릭 국가마다 "3위1체 성당"이 있기 때문에 그 도시 이름 '그라츠' 를 붙여 부른다.
-3위1체 성당 앞 산성 광장(Schlossberg Platz)-
** 광장 중앙에는 특이한 모양의 분수가 있다.
-산성 올라가는 길-
** 왼편으로 뱀이 나무를 기어오르듯 절벽을 깎아 만든 260개의 계단을 오르면 산성에 이를 수 있다.
이 계단은 1914~1918년에 오스트리아 기술자와 러시아 포로에 의해 건설되었고 계단의 이름을
"러시안 계단(Russensteig)"으로 부르거나 1차 대전 중에 건설되어 "전쟁계단(Kriegssteig)"
으로도 불린다. 절벽 계단으로 연결되는 왼편 계단은 그라츠 80주년을 기념하여 1924~1928년에
추가로 건설되었다. 절벽 아래 오른편의 작은 4각형문은 초기에 물건을 운반하던 레일이 깔려있는
출입구이고 옆에 있는 아취 형 입구는 인원이 출입하는 입구로 산성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연결되어 있다.
-산성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 물건을 운반하던 레일로는 관광용 꼬마 열차가 운행된다.
-슐로스베르크의 시계탑(Schlossberg Uhr)-
** 1712년부터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던 높이 28 m 의 이 시계탑은 18C~19C초 그라츠가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하여 1809년 산성의 요새는 해체되었으나 그라츠 시민들의 노력으로 시계탑과 종탑은 살아남았다.
- 종 탑(The Bell Tower)-
** 8각주의 종탑은 높이가 34 m 로 1588년 건설되었고 1587년 그라츠에서 주조된 종은
무게 4,632 kg, 직경 약 2 m 로 스티리아(Styria)주州에서 세 번째로 큰 종이다.
리슬(Liesl=Elisabeth의 약칭)이란 이름의 이 종은 하루 07:00, 12:00, 19:00시에 101번 울린다.
-리슬(Liesl)-
-요 새(Stallbastei)-
**1544년 건설된 요새는 높이 20m, 두께 6 m 의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현재 요새는 공원화 되어 있다.
1809년 프랑스군은 이 요새를 점령하지 못했지만 평화 협정으로 항복을 강요하고 요새를 완전히 해체하였다.
-산성 무대(The Schlossberg Stage)-
** 1578 년 경 해자垓子 내에 성주城主의 거처를 건설하였다. 보급품 저장을 위해 여러 개의
아취 형 벽감을 만들었는데 후에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809년 파괴된 이 건물은
노천극장으로 개조되어 1937년 완공 기념으로 베토벤의 '피델리오(Fidelio)' 를
공연하였다. 접이식 지붕은 1987년 완성되었다.
-오스트로미르(Austromir)프로젝트 기념 조형물-
** 러시아의 우주선 미르(Mir)호에 오스트리아 최초의 우주인이 탑승하여 오스트리아 상공을 비행한
1991년 10월 6일을 기념하여 제작한 조형물로 우주인이 보낸 왈츠 "푸른 다뉴브"를 코드화한 멧세지가
커다란 디스크에 양각되어 있다.
-고딕 양식의 문(The Gothic Gate)-
**중세 성채의 내부와 연결되던 후방 요새에서 1982년 재 발굴된 후문(Rear Gate)으로
이곳에는 총안이 설치된 성문 탑이 세워져 있었다. 1820년에는 성문 탑의 기초위에
화재 감시탑이 세워져 있었으나 1894년에 파노라마 전망대 테라스로 바뀌었다.
-하커 사자(The Hackher Lion)-
** 1809 년 5월, 프란츠 하커(Franz Hackher zu Hart) 시장은 나폴레옹 군의 침공으로부터
산성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17명의 장교와 896명의 병사와 함께 그는 막강한 적에
맞서서 요새를 지킨다. 3,000명의 프랑스 군은 8차에 걸친 위력적인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휴전협정이 맺어진 후에야 전투는 끝나고 하커(Hackher)시장은 병사와 함께 철수한다.
이러한 영웅들을 기념하여 1909년 "하커 사자(Hackher Lion)"상이 세워지게 되었다.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빈사의 사자상"과 모티브가 비슷하다. 1792. 8.10일 프랑스 민중 봉기 시
'근위병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왕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루이 16세를 지키다가 전멸한
스위스의 용병 근위대를 상징하는 사자는 창으로 심장을 찔려 죽어가는 모습이고
요새를 지켜낸 영웅들을 상징하는 하커 사자는 옆구리와 뒷다리를 물어
뜯겨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혀까지 빼물고 헐떡이는 모습이다.
빈사의 사자가 부르봉왕가의 문장이 새겨진 방패를 잡고있듯이
하커 사자도 국기를 움켜쥐고 있다. 이 동상은
요새의 북쪽 끝에 세워져 있다.
-요새에서 내려다 본 동쪽 시가지-
-요새에서 내려다 본 서쪽 시가지-
** 사진 아랫부분에 보이는 해삼모양의 건물이 현대 미술관(Kunsthaus)이다.
-무어인젤(Murinsel)-
** 무어(Mur)강 가운데 만들어진 인공 섬이다. 과거 교류가 단절되었던 양쪽을 이어준다는 의미로
만든 다리라고 한다. 2003 년 그라츠 시가 유럽문화도시로 선정되면서 함께 지은 건축물이다.
-무어인젤(Murinsel , 자료사진)-
** 위쪽에서 보았을 때 입을 반쯤 벌린 조개나 강물의 소용돌이를 형상화한 모양이다.
강물의 유량에 따라 높이가 조절되도록 설계되었다. 무어인젤(Murinsel = Island in the Mur)의
크기는 길이 50 m , 폭 20 m 이다. 인공 섬 외부는 약 230 m² 규모의 야외무대로 꾸며져있고
최대 350명까지 수용 가능하여 소규모 콘서트와 다양한 문화 행사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현대 미술관(Kunsthaus)-
**쿤스트하우스는 그라츠시가 2003년 유럽의 문화도시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건립한 건물이다.
영국 건축가인 피터 쿡과 콜린 푸르니어(peter Cook & Colin Fournier)가 설계한 건축물로서
연면적 13,100 m ² , 순면적 11,100 m ² 전시면적 2,500 m ²의 규모이다.
-쿤스트 하우스 건물 앞에 설치된 대형 캔버스-
**하얀 캔버스에 여러 사람들이 각기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무어(Mur)강 강변 동쪽 구시가지-
-빵집(Hofbȁckerei)-
** 구도시 가운데 호프거리(Hofgasse)에 별나게 목제 외장의 건물이 보인다.
호프베커라이 에드거-탁스 (Hofbäckerei Edegger-Tax )라는 이름의 빵가게이다.
그라츠는 물론 오스트리아에서도 오래된 빵가게 중의 하나이다. 원래 왕실에서
지정한 이 가게의 역사는 14세기로 거슬러 올라 간다. 상점 문은 닫혀있다.
-돔 성당과 영묘(Dom & Mausoleum)-
**그라츠 역사 지구 안에 위치하고 있는 그라츠 대성당은 1438~1462년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웅장하면서도 수수한 외관을 가진 성당이다. 프리드릭 3세 치하의(Keiser Friedrich III)황실
성당으로 건축되었고 1786년 이후 주교 좌 대성당(Kathedral Kirche)으로 승격되었다.
대성당 남쪽에 위치한 영묘에는 페르디난드 2세 황제와 황후 및 왕족들이 안장되어 있다.
고사우(Gosau)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하이킹 하거나 동계스포츠를 즐기기에 좋은 고사우는 할슈타트(Hallstatt)로 부터
불과 22 km (25분)거리이다. "황제의 소금창고"라는 의미를 가진 잘츠캄머구트(Salzkammergut)는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76개의 호수가 산재한 오스트리아 중북부의
오버외스터라이히(Oberősttereich)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할슈타트 등 주요 관광지가 있다.
-고사우와 인근 지역 조감도-
** 고사우 호수(Gosausee) 오른편의 험준한 절벽 지대가 고사우캄(Gosaukamm)이고
호수 남쪽 끝에는 고사우캄반(Gosaukammbahn)으로 불리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슐라드밍(SChladming)으로부터 고사우 호수(Gosausee)로 가는 길-
** 그라츠로부터 171 km 서북쪽에 겨울 스포츠의 리조트로 유명한 슐라드밍(Schladming)마을이 있다.
여행팀은 슐라드밍에 숙소를 정하고 이곳을 기점으로 주변 지역 탐방에 들어갔다.
-고사우 호수(Gosausee)-
** 오스트리아의 호반 마을 할슈타트(Hallstatt) 서쪽으로 약 15 km 에 아름다운 고사우 계곡이 있고
계곡 끝에"꼭 보아야 할 곳(must sees)"고사우 호수가 있다."꼭 보아야 할 곳"이라지만 알프스에서는
거기가 거기인듯 하다. 날씨가 허락해 주었다면 아래와 같은 엽서 사진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료 사진(구글)-
-호반 도로 트래킹-
-케이블카의 케이블만이 보이는 호수 남쪽 풍경-
-호반 풍경-
-호수 밑바닥을 유영하는 괴물 발견 -
-계속 추적하다가 실망 ! ! !-
** 취미 다이버에게 속았다.
할슈타트(Hallstatt)
영화 "사운드 어브 뮤직"의 배경으로도 잘 알려진 잘츠캄머구트(Salzkammergut)에서도 중요한 관광지인
할슈타트는 할슈타트 호(Hallstatt See)의 남서쪽 호반에 위치한 동화의 풍경 같은 아름다운 마을이다.
실제보다 사진으로 더 많이 소개된 관광지인 것으로 생각된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잔잔한 호수,
산과 마을이 원근으로 배치되어 사진이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할슈타트(Hallstatt)-
** BC 2000년부터 형성되었던 전 세계 최초의 이곳 소금광산으로 유명하며 소금을 통해 얻은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BC1000~BC 500년에 철기 문화가 나타났고 할슈타트의 철기 문화는
초기 유럽의 철기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아름다운 경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서
1997년 "할슈타트 다흐슈타인 잘츠캄머구트 문화경관"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
- scene # 47 -
** 현재는 소금 산업이 에벤 호(Eben See)지역으로 옮겨감에 따라 관광 산업이 주류를 이룬다.
- scene # 48 -
** 사람들이 물가로 가면 고니, 오리 등 야생 동물들이 친근하게 다가와 먹이를 얻어 먹는다.
- scene # 49 -
** 주민 758명(2016년)의 작은 마을 할슈타트는 걸어도 마을 끝에서 끝까지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절벽을 깎아 지은 가옥들-
-호반 도로-
-한판의 피자와 탄산 음료수로 점심을 해결한 구멍가게-
** 깎아지른 절벽과 좁다란 호반 도로가에 번듯한 식당이 있을리가 없다.
- scene # 50 -
- scene # 51 -
-교회 앞 마르크트 광장(자료) -
** 유럽에는 손바닥만한 마을에도 광장이 있다. 광장 중앙에 서 있는 기념비는 성 3위1체 상이다.
- 그리스도 교회(Christuskirche) -
** 이 교회는 할슈타트와 오베르트라운 교구 루터교회(Hallststt-Obertraun Lutheran)이다.
-교회 내부-
** 개신교 교회 일지라도 역사가 있는 유럽의 교회는 내부 구조가 가톨릭 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교회는주민들의 힘으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마틴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은 16세기에
잘츠캄머구트 지역에 극렬한 반발에 부딪쳤으며 특히 광부들 사이에 극심했다. 1601년 지역 내의
모든 다리는 철거되었으며 목재 수송용 바지선 운행도 중단되고 식탁 위의 소금 접시도 비워졌다.
잘츠부르크 주교의 군대가 진주하여 봉기를 진압한 후 개신교 반대파 지도자들을 처형하였으며
그들의 집은 불 탔다. 1734년에는 할슈타트와 인근 마을의 아이들과 부녀자들을 제외한 300명의
프로테스탄트가 야밤에 지벤부르겐(Siebenburgen)으로 소금 바지선에 실려 강제 이주당하였다.
제한적이긴 하였지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 것은 요셉 2세(Joseph II)황제였고 할슈타트에는
500 명이 개신교 신자임을 고백하였다. 3년 후 그들은 예배당을 짓고 사립 학교를 설립하였다.
요셉 1세(Joseph 1)황제가 가톨릭과 동등하게 개신교를 인정한 후 1861년부터 신고딕 양식의
개신교 "그리스도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교회소개 안내판에서 발췌).
-카이저 프란츠 요셉 1세(Keiser Franz Josef I)의 방문(1879.4.24) 기념비-
** 조그만 기념비는 선착장 부근에 세워져 있고 기단에 붙어 있는 동판에는 카이저 프란츠 요셉 1세가
25년 전(1854년 4월 24) 바이에른의 공주 엘리자베트(Elisabeth)와 함께 방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밤늦게 도착한 슐라드밍의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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