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존경하는 선교사님의 묘비를 보면서(마 28:19-20)
- 선교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덕목 : 사랑과 충성 -
2024.1.21 해외선교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오늘은 해외선교주일이다. 선교가 무엇이고, 선교는 누가하는 것이며, 선교지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명확하고 분명한 말씀은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8장 19-20절 말씀에서 깨달을 수 있다. 다 같이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8장 19-2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자.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선교란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Cross Culture) 다른 나라나 다른 종족에게 가는 것이다. 가서 그들을 제자삼고, 세례를 베풀며, 주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외국에 가지 않고도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것을 “1.5선교”라고 한다.
그러면 선교는 누가하는 것일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라고 하셨다. 그러면 여기서 주님이 지칭하신 “너희”란 누구일까? 단지 예수님의 12제자들만을 가리키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원하는 모든 성도들을 의미한다.
잠시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손뼉을 한 번 쳐보자. 손뼉은 오른손과 왼손 두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선교는 손뼉 소리처럼 해외에 나가신 선교사들과 국내에서 후원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함께 힘을 합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선교는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고, 우리 모두에게 주신 명령이다. 다만 해외 선교현장에 직접 가느냐, 아니면 모국에서 파송하고 후원(물질, 중보기도, 기타 등)하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가는 선교사’와 ‘보내는 선교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교회에서도 이러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미 선교사님들을 파송했고, 해외에 여러 교회들을 건축했고, 또한 장학사역을 비롯한 각종 후원하는 사역들도 병행하여 하고 있다. 앞으로 더 확대해 갈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선교하고, 전도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선한 사역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은혜와 부흥을 주신다. 이것은 성경이나 기독교 역사에서 볼 때, 명확하고 분명하다. 이 일에 눈이 뜨여 올 2월에는 캄보디아에 단기선교도 다녀올 예정이다. 단기선교는 짧은 기간이지만, 실제로 현지의 선교사님을 도와서 선교활동을 하고 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종의 단기선교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가든지 보내든지를 막론하고 우리는 어떤 마음과 자세로 주님의 선교명령을 이루어 가야할까? 사실은 이 부분이 바로 오늘 이 설교를 통해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다 지난 주중에 해외선교주일을 앞두고, 우리들이 선교와 전도사역들을 하면서 어떤 마음과 자세를 품어야 할지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던 중에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동기 홈페이지에서 고(故) 박승일 선교사님의 묘소 사진을 보았다. 박승일 선교사님은 우리교회에서 파송한 이성희 선교사님과 더불어 인도 뿌네(Pune)에서 오랫동안 선교사역을 하다가 작년 가을(2023.10.22)에 갑작스럽게 심정지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지금은 창원에 경남선교120주년 기념관 옆에 있는 선교사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박선교사님의 묘비사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주를 사모하는 예배자, 주를 찬양하는 행복한 이가 여기 잠들다”
처음에 묘비에 새겨진 이 문장을 본 순간 약간 의아했다. 서울 양화진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님들의 묘비에서처럼 선교에 대한 매우 특별한 문장이 새겨져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기 때문이다. 아마 박선교사님의 사모님이 그 문장을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모님은 남편의 묘비에 왜 예배와 찬양에 관련 된 문장을 새겨 넣었을까가 궁금해졌다. 물론 평소에 박선교사님은 찬송을 아주 좋아했고, 악기도 잘 다루고, 신학교에 다닐 때부터 음악에 대한 달란트가 있어서 남성합창단 단원으로도 활동을 했었다.
그러면서 묘비 사진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문득 마음에 쿵하면서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아……. 묘비에 새겨진 저 말이 바로 박선교사님이 평소 선교현장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구나!”
그렇다! 박선교사님의 마음에는 늘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예배자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 문장을 묘비의 문구로 선택한 사모님이 산 증인이다. 오래전 신학교 시절에 서울신학대학교 기숙사 방에서 소년 목동 다윗처럼 혼자 찬송하며 행복해 했던 그 모습을 사모님과 가족들은 오랫동안 보았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신실한 예배자의 모습에서 그의 사역의 모든 힘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고 박승일 선교사님의 묘비에 새겨진 문장을 보면서, 주님의 선교명령 앞에서 우리들(나)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졌다. 그것은 사랑과 충성이다. 사랑은 복음을 전해야할 이유이고, 충성은 복음을 전하는 자세와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목사님, 우리가 선교하고 전도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사랑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이 나에게 붙여주신 사람들의 영혼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복음전도의 목적은 나중에 상급을 많이 받기 위함도 아니고, 전도하는 일을 통해서 구원을 얻기 위함은 더욱더 아니다. 기독교는 결코 공로주의가 아니다. 오직 사랑 때문이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복음을 전하고, 이웃의 영혼들을 사랑하기에 그 좋은 천국에 나만 혼자갈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주님께 십자가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선교사님들이나 뒤에서 후원하는 우리들 모두는 공히 무엇보다 우리 안에 주님을 사랑을 마음이 넘치기를 간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충성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칠 때, 우리는 찬송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성령충만한 사람의 특징이다.
충성이란 무엇일까? 충성(피스토스, πιστος)은 신실함을 뜻한다. 무엇에 대해서 신실해야 하는가 하면,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대해서 신실해야 한다. 우리는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충성이라는 글자를 한문으로 풀이하면 흥미롭다. 한자로 충(忠)은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이 합해진 말이고, 성(誠)은 말씀 언(言)과 이룰 성(成)이 합해진 말이다.
충성(忠誠)
충(忠) = 가운데 중(中) + 마음 심(心)
성(誠) = 말씀 언(言) + 이룰 성(成)
* 충성이란 마음을 다하여,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이 네 글자를 풀어보면, “충성이란 마음을 다하여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기서의 말씀(言)은 왕, 국가, 헌법의 가치, 내가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그 어떤 것들 또는 주인이나 상관의 명령과 같은 것들이 해당될 수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성경, 명령, 음성, 뜻)에 적용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성경적인 충성이란, 마음을 다하여(충), 주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성)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내 뜻이나 내 생각, 내 고집, 내 신념을 관철 시키려 하는 것은 충성이 아니다. 주님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불법(不法)이라고 하셨다(마7:21-27). 그렇기에 해외 선교사님들이나 후원하는 우리들 모두는 공히 온 마음을 다하여, 신실하게, 주님의 말씀만을 이루어 가야 한다. 이것이 충성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 모두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셨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에서 열외인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수많은 성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또한 사도 바울이 그랬고, 고 박승일 선교사님과 우리 보다 먼저 천국에 가신 그리운 성도님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여 주님의 명령을 이루자(충성). 우리들도 “주를 사모하는 예배자, 주를 찬양하는 행복한 이”들이 되자. 이것이 오늘 해외선교주일에 우리들을 향해 진짜 바라는 주님의 마음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