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로왕과 석탈해
석탈해와 김수로왕의 술법 대결에서 보면 모두가 ‘새’로 변신하고 있다.
다른 용맹스런 동물이나 아름다운 물고기 등도 많을 텐데 왜 굳이 ‘새’로만 국한 局限시켜 변신할까?
이는,
천손사상 天孫思想과 난생설화 卵生說話를 의미하고 있다.
유목민족 페르시아인의 뿌리인 스키타이족이나 흉노족은 자신의 시조가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손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동이족의 천손 사상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 하늘과 지상의 인간을 이어줄 수 있는 가교 架橋 구실을,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새에게 부여하고 있다.
또한, 넓디넓은 초원의 일상 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싱싱한 목초지나 마실 물을 빨리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높은 곳에 올라야 멀리 볼 수 있다.
그런데 초원에서 멀리 보려면 말 등의 안장이 제일 높다.
그러니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새들이 가장 부러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목초지의 정보와 이웃의 위치와 적들의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드높은 창공.
그 푸른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는 새들은 유목민들에겐 선망 羨望의 대상이다.
신 神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모두가 새가 되고 싶어 한다.
모든 유목민의 염원이다.
그 유목민 후손들의 대결에서 새들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수로왕과 석탈해의 술법 대결을 다시 되새겨 보면 조금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분명 처음에 석탈해는 매로 먼저 변신하고, 수로왕이 독수리로 변신하니, 석탈해는 다음에는 참새로 변신하고 있다.
순서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참새나 오목눈이 같은 작은 새부터 시작하여 어치나 까치, 매 이러한 차례가 보편성을 가진 다툼의 전개 순서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무예든 기술이든 도박이든 간에 상대방과 대결할 때는 먼저 작은 기술부터 시도하게 마련이다.
상대가 이 기술을 알고 있나 모르나, 상대방의 수준을 측정해 본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상대와 대결을 할 때, 처음부터 곧바로 자신의 특기나 비술 祕術을 드러내놓고 바로 끝장내어버리는 어리석은 자는 드물다.
닭 잡는데 소 잡는 큰 칼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견문발검 見蚊拔劍의 우스꽝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위맹스러운 매를 먼저 등장시키고 상대가 안되니, 조그마한 참새로 변신을 한다?. 뜬금없는 순서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참새와 비교해 덩치도 크고, 하늘의 제왕이라는 용맹스러운 매로 변신하였음에도 거대한 독수리에게 이기지 못하고 도망을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는 오히려 더 힘이 없고 나약한 조그만 참새로 변신하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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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제철 주조 기술의 발전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모양이 크고 투박스러운 큰 매 같은 경우는 사철 沙鐵이나 선철 銑鐵로 단순 주조하면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니 형틀만 갖추고 있다면 이른 시간 안에 주조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지혜로운 석탈해는 번거로운 사형 沙型 틀을 현장에서 제작 사용하기보다는, 소지하기 간편한 석형 石型 틀을 미리 준비해 간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시각 視覺으로 보면, 석형은 금형 金型 틀이다.
형틀로 만드는 단순 주조보다 어려운 것은 연철로 참새처럼 부드러운 솜털까지도 세밀하게 표현해야 하는 고난도 高難度의 가공기술 加工技術이다.
당시 기술로 보자면 매우 까다롭고도 어려운 최첨단 기술인 연철 鉛鐵의 합금기술이 도입되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수로왕은 석탈해보다 오히려 한 수 위의 뛰어난 야금술을 보여준 것으로 여겨진다.
청동기 말기에서 초기철기 시대로 접어들 당시, 일반 대장간에서는 사철 沙鐵이나 선철 銑鐵을 용해 鎔解시켜 단순 주조하는 기법으로 단단하고 강하나, 내구성이나 인장력이 약한 제철 제조기술이 주류를 이루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청동기를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몇 배 이상 강도가 높아, 군부 軍部나 대중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석탈해와 수로왕은 이미 선철의 주조 형틀을 벗어나 연철을 이용 가공하여, 내구성이나 인장력이 뛰어난 탄력성을 갖춘, 고난도 철기 제조기술의 우월성을 서로가 겨루어 본 것이다.
즉, 당시로서는 다른 부족들이 잘 모르는 첨예 尖銳한 최첨단 기술력을 양측에서 유감없이 발휘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매나 독수리 다음에 참새나 참매가 등장했다는 것은 기술의 고난도를 표현한 것이다.
한반도의 초기 야금술 冶金術의 발전 단계를 은유적으로 서술한 귀중한 사료 史料이다.
* 불교전래 시기
1. 신라 초기에 석탈해 ‘昔脫解’란 불교적인 용어와
2. 허황옥의 오라버니 허보옥을 ‘장유화상 長遊和尙’으로 표기한 호칭과 더불어
3. 김수로왕의 명으로 장유화상이 신어산 神魚山에 ‘은하사 銀河寺’.란 절을 짓기도 하였다.
4.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들이 하동 河東의 칠불암 七佛庵에서 도를 닦아 득도 得道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타난다.
이는 당시의 사람들은 불교를 몰랐다지만, 천축국에서 도래한 허황옥 측이 가야국에 불교를 전파하였거나, 아니면 그 이전부터 불교는 이미 민간신앙과 어울려 서민층에 어느 정도 펴져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5, 그렇다면 민간신앙으로써의 불교는 역사서에 기재된,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묵호자가 처음 전래하였는 시기보다 무려 500여 년을 앞서 한반도에 전파되었다라고 볼 수도 있다.
* 기독교 전래
이와 유사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신라 중기에 건립한 불국사 佛國寺에서 불교와는 전혀 관계없는 커다랗고도 정교한 돌 십자가가 발견되었다.
* 위의 돌 십자가는 현재 단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
불교를 국교 國敎로 정한 그 중심지인 불국사에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 十字架라니.
그것도 음각화로 대충 새긴 것도 아니고, 별개의 돌을 깎고 다듬어 공들여 만든 완벽한 독립된 형태의 십자가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
이유를 모르니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다.
이는,
기원 5~6세기경,
유럽과 로마를 휩쓸었던 훈족의 세력이 한반도로 들어올 때, 알게 모르게 유럽의 기독교 基督敎가 다양한 로마 ROMA의 문물과 함께 신라로 유입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와 더불어 남북국 시대의 발해, 통일신라 시대에 이미 기독교가 신라의 귀족층에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시사 示唆하고 있다.
물론, 명확한 기독교의 교리 敎理까지는 아니겠지만, 민간신앙과 부합한 내세사상 來世思想이 통일신라의 시중 市中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 이는 2부에서 거론하기로 한다.
아직 이러한 사실들에 대하여 학계에서는 지금까지 논문 하나 없이 두리뭉실 넘어가고 있다.
위의 몇 가지 조그마한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의 역사학계는 너무나 획일화 劃一化, 교조화 敎條化 되어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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