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는 24년 전 영화의 전당이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예술의 전당이 문을 연지 12년 만이다. 그 해는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이듬해였다. 2011년 영화의 전당 개관에 즈음하여 프랑스 르몽드 紙의 자크 만델봄 기자는 ‘헐리우드에 대항하는 부산에서의 움직임’이라는 기사를 썼다. 우리나라 100년 영화사상 아카데미를 휩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예견한 것일까? 영화의 전당에서는 해마다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으로 깊은 울림을 준다. 그만큼 영화의 전당이 기획하는 ‘오래된 극장’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덕분에 1968년 캐롤 리드(Carol Reed) 감독이 연출한 뮤지컬영화 <올리버(Oliver)>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뮤지컬 영화는 노래와 춤을 중심으로 구성한 음악 장르 영화다. 뮤지컬은 유럽의 오페레타(operetta)와 미국의 보드빌(vaudeville)에서 출발한 장르로 음악이 중요한 표현수단이다. 토키의 출발이자 뮤지컬 영화의 효시인〈재즈 싱어(1927년)〉가 탄생한 이래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이 이어졌다. 뮤지컬 영화는 장르 간 경계를 허무는 하이브리드 아트(hybrid art)적 특성과 소통의 장점이 강하다. 또한 하나의 콘텐츠가 다양한 윈도를 만나게 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소설이 영화로, 영화가 뮤지컬로, 뮤지컬이 뮤지컬 영화가 되는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use)’의 사업적 환경을 자연스럽게 촉진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뮤지컬 영화는〈사랑은 비를 타고〉,〈남태평양〉,〈사운드 오브 뮤직〉,〈올리버〉,〈오페라의 유령〉,〈지붕 위의 바이올린〉,〈레미제라블〉,〈시카고〉에 이르기까지 당대를 아우르며 관객을 감동시켰다. 그 중에서도 영화〈올리버〉는 영국 문호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의 장편소설「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를 각색한 작품이다. 1837년부터 1년 동안 런던의 월간 문예지 벤틀리 미셀러니(Bently Miscellany)에 연재된 찰스 디킨스의 장편소설「올리버 트위스트」는 ‘고아원 아이의 여행’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는 1834년 시행된 가혹한 '신빈민구제법(新貧民救濟法)'에 대한 항의와 런던 뒷골목의 소매치기와 노동자들의 비참한 실상을 고발하고 사회적 모순을 통렬히 비판했다.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 영화〈올리버〉는 무대의 음악과 춤, 그리고 스펙터클한 감동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다놓았다. 서곡과 오프닝 코러스, 제시부에 이어 첫 장면에 어린 고아들이 맨발로 물레방아에 올라서서 곡물을 빻는 영국 산업혁명기의 자본주의 초입을 담아냈다. 작품을 통해 생생한 인물 묘사와 희극적 요소를 살리는 그를 두고 영국인들은 흔히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가져서 행운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찰스 디킨스를 가져서 더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올리버 트위스트」는 19세기 영국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고아 소년의 인생 역정을 통해 고아원인 구빈원(救民院)의 실상과 사회의 범죄, 그리고 사회적, 도덕적 악을 깊이 파고들면서 당시 영국 사회의 계층 간 불평등과 산업화의 폐해를 예리하게 비판하여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템즈강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와 아동 학대, 공해 문제 등 갖가지 사회 문제를 제기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이어 카메라는 고아들이 ‘God is Love'라고 쓴 성경구절 아래 줄을 서서 한 그릇의 죽을 끼니로 받는 구민원의 배식 장면을 풍자와 조롱으로 쫓는다. 그 옆방에는 구빈원의 운영진들이 거나하게 차린 테이블에 둘러앉아 고기와 야채로 성찬을 즐기는 장면을 창문 너머 아이들의 눈으로 확인한다. 빈익빈 부익부의 사실적 표현이 가슴 저린다. 올리버는 큰 아이들의 등쌀에 못 이겨 ‘죽을 더 달라’고 말할 사람을 뽑는데 끼인다. 올리버가 제비뽑기에서 제일 긴 심지를 뽑는 바람에 관리인에게 ‘죽을 더 달라.’고 외치게 된다. 아이들의 항변에 식당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때 옆방의 영주가 ‘많이 먹는 아이는 필요 없다.’는 말로 고아들을 내친다. 그길로 쫓겨난 올리버는 푼돈에 장의사 집으로 팔려간다. 검은 턱시도에 높은 모자를 쓴 모습으로 만장을 들고 장례행렬을 이끄는 올리버. 구민원의 창을 통해 아이들은 올리버를 보고 소리 지르며 놀려댄다.
당시 열 살의 금발머리 미소년 마크 레스터가 주인공으로 열연한다. 올리버를 시샘한 장의사의 청년 일꾼 노아가 올리버를 괴롭힌다. 올리버가 마침내 장의사를 탈출한 뒤 야채를 싣고 달리는 마차에 올라 양배추 바구니 속에 숨어든 뒤 런던의 한 시장 어귀에 도착한다. 올리버는 런던 거리에서 만난 도저(잭 와일드)가 운반 중인 상자 속의 빵을 잽싸게 집어서 배고픈 올리버와 나누어 먹는다. 올리버는 소매치기꾼 도저에게 이끌려 소매치기 소굴로 간다. 그곳에서 엄마를 욕하는 소리에 이성을 잃고 덤비다 두들겨 맞고 지하실에 갇힌다. 올리버는 다시 도망친다. 첫 장면에서 고아들이 물레방아를 돌리는 장면을 비추던 카메라가 올리버와 도저가 배회하는 주변 도살장과 생선가게가 늘어선 시장의 원경을 롱샷으로 잡는다. 런던 시가지 뒤로는 증기기관차가 기적을 울리며 무심한 이방인처럼 지나간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여 흥겹게 노래 부르고 춤춘다. 소매치기 우두머리 페긴(론 무디)으로부터 소매치기 수법을 배운 올리버는 도저와 한 조가 되어 거리로 나선다. 올리버는 노신사 브라운로우의 지갑을 훔치던 도저 곁에 있다 붙잡히고 만다. 그렇게 올리버는 브라운로우를 만났다. 반려견 볼스아이를 기르는 도둑 빌의 애인 낸시(샤니 월러스)가 장물 판돈을 받으러 소매치기 소굴을 찾아온다.
도저가 낸시에게 올리버를 소개하자 착하고 예쁜 모습이 첫눈에 들고 아이들처럼 낸시를 공주님이라고 부른다. 거리에서 우산 네 개로 마차 바퀴처럼 돌리면서 낸시를 귀부인으로 마차에 태운 채 거리를 누비는 장면이 흥겹다. 소매치기를 하다 들켜 도망치던 올리버가 사다리를 타고 철로 위로 올라서자 마침 기차가 지나 올리버는 경찰에 붙들리고 만다. 러닝타임 153분의 영화 <올리버>는 1,2부로 나누어진다. 춤과 노래, 그리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관객의 눈을 붙잡는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행진 대열에서 여자 아이들을 분수대에 빠뜨리는 장면은 우리들의 지난날 개구쟁이시절이 새삼스러웠다. 소매치기 현장에서 다른 아이의 범행으로 붙잡힌 올리버가 법정에 넘겨졌으나 목격자의 증언으로 운 좋게 풀려난다. 올리버를 가엾게 여긴 브라운로우는 집으로 데려간다. 그때 올리버는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은 한 때를 보낸다. 이때 소매치기 소굴의 늙은 왕초 패긴과 거친 도둑 빌은 올리버가 자신들의 범행이 탄로날까봐 걱정한다. 빌은 올리버와 친한 낸시로 하여금 올리버를 빼내려고 한다. 그렇게 돌아온 올리버는 빌의 음모로 어느 날밤 브라운로우 씨 집을 턴다. 그러나 올리버의 실수로 양철 쟁반이 대리석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는 바람에 밤잠을 깨운 소동이 벌어져 실패하고 만다.
낸시는 올리버를 브라운로우 씨에게 돌려보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고 올리버와 함께 다리 밑으로 달아난다. 이를 알아차리고 낸시를 뒤쫓던 빌이 런던 브릿지 아래서 낸시를 죽이고 만다. 올리버는 빌이 낸시를 죽이는 현장을 보고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끌려 다닌다. 빌은 자신이 기르는 개마저 죽이려고 한다. 사람들은 그 개를 알아보고 빌의 행적을 뒤쫓는다. 추격전 끝에 빌은 경찰의 총격에 숨진 채 공중의 밧줄에 매달리는 신세가 된다. 빌 때문에 자신의 거처가 알려질까 두려운 패긴은 아이들과 헤어져 도망친다. 그때 패긴은 자신이 숨겨둔 보물 상자를 들고 나오다 하천 진흙탕에 빠뜨린다. 올리버는 다시 브라운로우 씨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막은 내린다. 영화의 원작「올리버 트위스트」가 출판된 지 10년 뒤에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나왔다. 이 작품이 나올 무렵 영국의 빈민가와 빈부격차 극심했다. 이처럼 원작이 고발하려 했던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면서도 극적인 재미 또한 놓치지 않았다. 뮤지컬 영화〈올리버〉가 프랑스에서〈레미제라블〉을 제작하게 계기가 되었다. 뮤지컬 영화〈올리버〉는 1969년 제41회 아카데미상의 감독상을 비롯한 5개 부문을 휩쓸었다. 영화는 19세기 전반 자본주의시대로 진입하는 때 영국이 안은 사회적 환경 문제 등을 아름다운 노래와 춤으로 보여주는 영상이 다양한 메시지를 크나큰 울림과 감동으로 전했다.
첫댓글 한 편의 뮤지컬을 글로써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마크 레스터는 제가 좋아했던 추억의 아역 배우네요... 올리버, 목격자등이 기억이 납니다...^^*
금발 머리에 선한 눈빛의 Mark Lester이 지금은 60대 노인이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