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s-burg선언(Blacks-burg Manifesto, 행정의 정당성과 권력분립을 위한 행정가의 역할-경북대학교 김동원 교수)
1. 서론 : 최근 신공공관리론(NPM)은 정부가 기업이나 민간부문보다 열등하다는 근거 없는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정부, 규제완화 등의 개혁조치들을 강조하였다. 반면 행정과 관료에 대한 위상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 그리고 다원주의 민주체제를 확대하면서도 관료제의 긍정적 의미에서의 권위를 어떻게 회복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비교적 소홀했다. 이에 관한 논의가 새로운 행정부의 개혁논의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고 이러한 개혁의 방향이 Blacks-burg선언이라는 학문적 개혁운동에서 나타난다.
2. Blacks-burg 선언의 의의
⑴ 선언의 의의 : Blacks-burg선언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에 걸쳐 행정과 행정가에 대한 필요 이상의 과도한 공격을 초래한 당시 미국의 사회적․정치적 상황을 비판하고 행정이 스스로 정당성 및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 규범적․윤리적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주요 학자로는 웜슬리(Wamsley), 굿셀(Goodsell), 울프(Wolf), 로어(Rohr), 그리고 화이트(White)가 공동 선언하였다.
⑵ 역사적 등장배경 : 분점정부(여소야대)는 관료들에게는 두 명의 주인을 섬기는 정치지형을 만들기 때문에 관료들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무사안일, 복지부동 등의 행태를 보이게 된다. 이로 인해 빈번한 정책실패가 발생하게 되었고 대통령은 관료를 혹독하게 비판함으로써 사회전반에 걸친 필요 이상의 관료비판을 정당화하였다. ‘관료 후려치기’(bureaucrat bashing)란 정당한 이유 없이 공무원에 대해 가해지는 강한 비판과 공격을 일컫는 속어로서 월남전 실패, 워커게이트 사건 등 정책의 실패를 연방관료들에게 전가하면서 정치가(닉슨, 레이건 등)들이 이용하였다.
3. Blacks-burg선언의 내용
⑴ 행정의 정당성이 추락한 이유 : 행정이 정당성이 추락하는 이유를 저자들은 1980년대 관료들의 위상이 비하된 이유는 그들의 조직관리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부의 역할에 대한 공공의 의식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Goodsell의 ‘관료제 옹호이론’에서 보는 바와 같이 관료제가 민간기업보다 비효율적이라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
⑵ 행정의 정당성을 향상시키는 방법 : 저자들은 경영과 행정은 중요하지 않은 면에서만 닮았다는 Wallace S. Sayre의 견해를 받아들이면서 행정의 특수성을 인식하고 유지하는 것이 행정의 정당성을 향상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⑶ 행정의 정당성을 위한 헌법적 근거
① 행정의 정당성을 헌법에서 찾기 위해서는 미국 건국 헌법에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은 행정에 대한 규정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Rohr는 미국 헌법을 분석하면서 행정부가 행정 본연의 권한에만 국한되는 것이 결코 헌법에서 요구되는 바가 아니라고 하면서 행정의 헌법적 정당성을 찾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행정도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행정이 의회나 대통령을 비롯하여 선거로 선출된 고위공직자들 앞이라고 해서 위축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한다.
② 또한 행정을 정치적인 도구로서 인식하고 경영의 관리기법을 모방하려 했다고 역설한다. 행정의 수반인 대통령, 의회, 법원 사이의 끝없는 투쟁 속에서 행정은 항상 안전지대로 남아있거나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도구로서 활약하였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⑷ 전문직업주의의 의미
① Blacks-burg선언의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행정가의 규범적 역할, 특히 전문직업주의(Professionalism)를 강조한다. 행정에서 필요한 전문직업주의를 정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전문가적인 자질을 입증할 경험, 훈련, 자격증 등만이 아니라 윤리와 규범에 있다는 것이다.
② 저자들은 삼권분립의 체제에서 행정가의 역할을 시계의 ‘평형바퀴’(balance wheel)에 비유한다. 즉 행정가는 공공선의 수탁자로서, 또한 대리인의 관점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공익을 추구하며 헌법의 의도를 준수할 것 같은 정치체제의 참여자를 찾아 선택적으로 대응성을 높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때로는 대통령을, 때로는 의회를, 때로는 법원을, 때로는 이익집단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전문직업주의를 위해서 과학적 관리기법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지만, 이러한 국정운영의 수단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한 결과 국민들의 삶의 질이나 자유와 존엄과 같은 정신적인 목적과 윤리를 도외시하게 된다면 행정가들은 기능인(technician)으로 전락하고 행정의 정당성은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4. 비평과 한국 상황에 대한 시사점
⑴ 대리인의 관점과 이상으로서의 공익
① 부정적 당위성 : 한국의 경우는 권위주의적․가부장주의적 강력한 국가가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하여 왔으며 그 중심에는 항상 관료가 핵심적인 원동력이었기 때문에 관료후려치기는 한국의 현실에서 볼 때 그 설득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② 긍정적 시사점 : 미국과 달리 엘리트들의 충원이 활발한 한국 관료제의 경우 관료후려치기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을 것이다. 그러나 Blacks-burg선언은 관료들 스스로가 고취해야 할 규범과 윤리에 관한 지침을 제시한다. 따라서 관료 옹호론의 한 단계 진보한 수준이다.
⑵ 관료제의 대통령 및 의회와의 관계 : Blacks-burg선언에서는 관료제가 대통령과 의회와 법원에 선택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균형바퀴’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제안한다. 대통령제에서는 의회와 정치행정부가 각각 대립되는 명령을 시달할 때에 관료제는 혼란을 겪는 일이 빈번하였다. 그러나 행정이 둘 사이를 오가며 ‘균형바퀴’와 같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Blacks-burg선언이 핵심적 내용이다. 한국에서 ‘균형바퀴’의 역할은 헌법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이 다수의 헌법학자들의 견해이다.
5. 결론 : Blacks-burg 학파는 H. Simon계의 행태론과 논리실증주의에 반하여 D. Waldo계의 규범이론을 계승한다. 또한 사회 속에서 행정의 규범적 역할을 강조하고 그 학파의 구성원들 중 일부는 실제로 미노부룩회의의 참여자였다는 점에서 신행정학의 정신을 일부 계승하고도 있다. 그러나 규범이론은 물론이고 행태이론까지 가세하여 방향성을 잃고 퇴로에 놓이게 되었던 신행정학보다는 훨씬 집중력과 방향성이 있는 논리를 전개하였고 공무원의 행동규범을 위해 제시된 대안들도 매우 구체적이었다. 행정의 정당성과 행정학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절박감도 훨씬 고조되었던 상황에서 등장하였다.
※관료 후려치기의 배경과 극복 방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