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법(8)-맥주 세 병 안주 하나
- 한자는 거만하다 -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작가들은 때로 짧고 간단한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 거만하고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단어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이것은 실수다. 화려한 단어는 글을 읽는 사람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평범하게 쓰면 독자들은 그것을 이유로 당신을 좋아할 것이다. 한자는 거만한 단어다. 억지 한자말을 함부로 쓰지 말라.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어휘력이 빈곤한 작가는 비문을 낳기 마련이다. 그런데 반대로 어휘력이 너무 풍부해서 읽는 이의 눈을 거슬리게 한 경우도 있다. 사전에도 없는 말을 억지로 만들어 쓰거나, 생소한 한자말, 또는 외국어를 마구 쓴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적당한 일상어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전문 용어를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수필 문장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일상어를 쓰는 것이 좋다.
다음은 사전에도 없는 억지 한자말을 쓴 문장들을 예로 든 것이다. (1) 유명 화가들의 작품은 대부자가 아니면 살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금액에 거래된다. (2) 현실을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선입관과 속단을 버리는 것이 최선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예술 사진은 감상자를 감흥시킬 수 있어야 한다. (4) 그 완취됨을 맛본 후 얼마 지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현실 생활의 각박함 속에서 더욱 소외됨을 느낄 수도 있다.
(1)의대부자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음은 물론이고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대부호(大富豪),큰 부자따위의 말로 쓰면 될 것이다. 예문 (2)에 쓰인최선무라는 말 역시 사전에도 없는 억지 한자말이다. 아마도급선무라는 말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3)에서감상자는 어색한 한자말로, 감상하는 사람또는보는 이’ 등으로 쓰는 것이 좋다.감흥이라는 말은 감동과 흥분을 줄인 것인데, 원말을 살려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4)의완취라는 말 역시 어색한 한자말이다. 도취로 바꾸어 쓰는 게 자연스럽다.
한편, 억지 한자말은 아니더라도 나이 많은 한자 세대나 쓸 만한 어려운 한자말을 공연히 흉내 내어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5) 월반제(越班制)는 말 그대로 발군의 성적으로 다음 교과 과정을 생략한 채 상급 교과 과정에 편입해도 수업이 가능하다고 인정되는 학생에 한해 진급을 허용하는 제도이다. (6) 소위 불후의 명작이라 불리는 이런 것들은 그렇게 해서 부자들의 응접실이나 거실 등에 걸려 우아한 분위기를 내거나 한 개인에게 희락을 줄 뿐이다. (5)에서 ‘발군(拔群)의 성적대신뛰어난 성적이라고 쓰면 문장의 뜻이 훨씬 쉽게 전달된다. 또, (6)의소위(所謂)는 고유어인이른바로,희락은기쁨과 즐거움으로 바꾸어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비슷한 어휘를 혼동하여 쓰지 말라. 우리말에는 소리와 뜻이 비슷하여 쉽게 구분해서 쓰기 어려운 단어들이 많다. 글쓰기에 웬만큼 능한 사람들도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 하면 그런 단어들을 잘못 쓰기 쉽다.
다음 예문에 잘못 쓴 어휘들은 학생들이 자주 혼동하여 쓰는 것들이다. (1) 예술 사진은 단순히 기록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예술로써 하나의 또 다른 창조 활동에 속한다. (2) 또한 하나의 역사적 사료가 파문이 되어 일어난 여러 사건들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하게 된다.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것을 ‘창작한다고 하지,창조라고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인용문 (1)의 창조는창작이라는 말로 바꿔 쓰는 것이 적절하다. (2)는 전후 문맥상 사료(史料)에 대한 진술인지 사건(事件)에 대한 진술인지 모호한 비문이다. 앞뒤 내용을 고려하여 뜻이 분명하도록 문장 전체를 다듬어야 한다.
(3) 이런 서술 방식은 한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알 수 있게 해 주며, 집필자에 의해 해석된 의미를 우리는 현재의 삶에 대치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4) 현대 사회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아주 크다. (5)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집단 이기주의이고, 어디까지가 정당한 권력 행사인가? (3)에서대치는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것을 뜻한다.대입이라고 써야 옳다. (4)에서 비율은비중으로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 또한 (5)의권력은 국가에 있는 것이지, 한 집단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나 한 집단이 사회에 대해 의무를 갖는 동시에 무엇을 가지는가? 그것은 바로권리이다. 따라서권력이 아니라권리라고 써야 한다.
(6) 교통, 통신 수단의 발전으로 인하여 이제 세계는 하나의 조직망이 되었다. (7) 우리 농업의 생산성이 낮다는 것은 그 동안 우리 사회가 농업 부분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에서발전은발달로 고쳐 써야 어울린다. 두 말의 뜻을 정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형태가 있는 것이나 한 분야를 이를 때는 발달이라고 하고,인류,문명따위와 같이 광범위한 것의 단계가 높아지는 것은 발전이라고 한다. (7)에서 여러 분야 중의 하나를 가리킬 때는부분이 아니라 ‘부문이라고 써야 한다.
수필가는 우리말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우리말을 잘 지키는 일은 수필가들이 책임져야 할 중요한 소명이다. 수필은 진솔한 문학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수필가들은 꾸준히 우리말을 갈고 닦는데 한시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명을 띈 수필가들조차 우리말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