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나는 이것만은 알았다.
이 노래의 끝을 맛봇 이들은
자기만 알고,
다음 노래의 맛을 알려주지 아니하였다)
하늘 복판에 아로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냐.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음의 승리자 위인들!
나는 오늘 삶과 죽음을 넘나든다. 오늘도 글을 안쓰면 죽음이다.
서곡은 오페라나 연극이 공연되기 전에 막이 내려진 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곡이다. 삶에 죽음의 서곡이 있다. 죽음이 오기 전에 막이 내려진 것처럼 무엇이 있는지 보이진 않지만 우리는 이 곡이 끝나면 죽음 뒤의 시간이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듣는다.
서곡을 그냥 노래라고 해석하면서 읽다가 글 쓸려고 서곡이 뭐였지 하면서 찾아봤는데 서곡이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곡이란걸 알고 나니까 훨씬 의미가 좋은 것 같다.
삶과 죽음은 윤동주의 죽음에 대한 묵상이다. 나는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렇게 할 필요가 크게 없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한번쯤은 죽음을 묵상해봐야할 이유는 내가 내 삶의 서곡의 끝만 두고 슬퍼할 예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죽음이 있기전에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의 끝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삶의 끝은 곧 죽음의 시작이다. 이 둘은 같은 지점에 있는데도 나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든 삶의 끝에 있다는 것은 실감이 나도 죽음의 시작 그리고 그 뒤에 있는 것들로 간다는 것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