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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6장 13-18절.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간증
13절.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t midday, O King, I saw on the way a light from heaven, brighter than the sun, shining all around me and those who were journeying with me.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ἡμέρας μέσης κατὰ τὴν ὁδὸν εἶδον, βασιλεῦ,
day mid on the road I saw, O king
직역하면 ‘왕이시여, 정오에 길에서 내가 보았나이다’란 뜻입니다.
‘보니’(εἶδον)는 부정과거로서(I saw) 확실히 본 사실을 가리킵니다.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둘러 비추는지라.
οὐρανόθεν ὑπὲρ, τὴν λαμπρότητα τοῦ ἡλίου, περιλάμψαν με φῶς
from heaven above, the brightness of the sun, having shone around me light
‘둘러 비추는지라’(περιλάμψα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hone around) 확실히 환하게 둘러 비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내 동행들을
καὶ τοὺς σὺν ἐμοὶ πορευομένους·
and those with me journeying
직역하면 ‘나와 함께 가고 있는 자들을’이란 뜻입니다.
동사(πορευομένους)는 현재 분사로서(journeying) 함께 가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왕이여
이제 바울은 중요한 다메섹 사건을 간증하면서 아그립바 왕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 말에 주목해달라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참 훌륭한 설교자요 전도자의 모습입니다.
2. 정오가 되어
팔레스틴에서 정오는 해가 너무 뜨거워서 사람들이 밖에 나가서 일을 하지 않고, 나무 그늘에서 다 쉽니다.
지금도 팔레스틴에서 한낮에 계란을 깨서 돌 위에 부으면 후라이가 될 정도로 매우 뜨겁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 6절에서 예수님께서도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한낮에 우물에 가셨는데, 얼마나 뜨겁든지 몸이 피곤하셨다고 했습니다.
3.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팔레스틴에서 정오에는 햇빛이 매우 강렬한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바울과 동행한 군사들을 둘러 비쳤습니다.
이 빛은 자연적인 빛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온 거룩한 빛이었습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이 임재하심으로 비추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볼 때는 초자연적인 빛이 가시떨기 나무에 임재 했는데, 불꽃이 가시떨기에 붙었으나 가시나무가 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셨을 때, 시내 산에 불이 붙었다고 했습니다(출 19:18).
또한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봉헌했을 때(왕상 8:10-11),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성전에 가득해서 제사장들이 성전에 들어가서 섬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임재하심으로 나타난 빛은 자연적인 빛이 아니고, 초자연적인 영광의 광채 즉 ‘쉐키나’(שכינה)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은 초자연적인 영광의 광채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14절.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hen we had all fallen to the ground, I heard a voice saying to me in the Hebrew dialect, 'Saul, Saul, why are you persecuting Me? It is hard for you to kick against the goads.‘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πάντων τε καταπεσόντων ἡμῶν εἰς τὴν γῆν
all and having fallen down of us to the ground
‘엎드러지매’(καταπεσόντω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fallen down) 완전히 팍 엎드려진 것을 가리킵니다.
히브리 말로 이르되
ἤκουσα φωνὴν λέγουσαν πρός με τῇ Ἑβραΐδι διαλέκτῳ
I heard voice saying to me in Hebrew language
직역하면 ’히브리 말로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내가 들었다‘는 뜻입니다.
’말씀하시는‘(λέγουσαν)은 현재분사이고(saying), ’내가 들었다‘(saying)는 부정과거로서(I heard) 확실하게 들은 것을 가리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Σαοὺλ Σαούλ, τί με διώκεις;
Saul Saul, why me persecute you?
‘네가 박해하느냐’(διώκεις)는 현재형으로서(persecute you) 박해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σκληρόν σοι πρὸς κέντρα λακτίζειν.
(it is) hard for you against goads to kick
‘뒷발질 하는 것이’(λακτίζει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입니다(to kick).
1.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보통 사람들은 다 땅에 엎드려집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땅에 엎드렸고, 모세도 엎드렸고, 엘리야 같은 선지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군병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내가 그로라>고 말씀하시자, 군병들이 다 엎드러졌습니다 (요4:26-27).
2. 내가 소리를 들으니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타난 두 번째 현상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을 때,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갔으나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세미한 음성중에 하나님이 임재하셨습니다( 왕상 19:11).
3. 히브리 말로 이르되
<히브리 말로>란 하나님의 임재의 음성이 분명히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말입니다.
즉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아니라, 히브리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일반적으로 쓰는 말은 코이네 헬라어이고, 히브리말은 유대의 고대어를 아는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4.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예수 믿는 성도들을 핍박한 것은 바로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고, 성도들은 예수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엡 1:22. 5:23).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울에게 <네가 어찌 나를 핍박하느냐>고 책망하시면서 물으셨습니다.
지금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기독교인들을 때리고 가두고 죽이는 일에 열심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핍박하는 기독교인들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 앞에 영광의 광채와 더불어 나타나시고, 말씀하시는 분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바울의 생각에는 그 여호와 하나님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바울에게 참 잘한다고 칭찬해주셨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핍박하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자 도무지 바울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 나타나서 네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인 나를 핍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신적인 존재로 나타나서 말씀하시는 분이 도대체 누구시냐고 물었습니다.
혹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우상신은 아닌지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4.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가시채란 주인이 소나 말을 부려먹을 때, 소나 말이 말을 듣지 않으면 가시채로 소나 말의 엉덩이를 찔러서 주인의 말을 듣게 하는 제어 도구입니다.
그런데 못된 소나 말은 주인이 가시채로 엉덩이를 찌르면 도리어 자기 발로 가시채를 뒷발질해서 가시채를 떨어뜨릴려고 합니다.
그러나 가시채를 뒷발질할수록 더욱 자기만 아픕니다.
이처럼 바울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여 예수님에게 대항하는 것은 오히려 바울 자기를 아프게 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15절.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I said, 'Who are You, Lord?' And the Lord said, 'I am Jesus whom you are persecuting.
내가 대답하되
ἐγὼ δὲ εἶπα
I then I said
‘내가’(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대답하되’(εἶπα)는 부정과거로서(said) 확실하게 말한 것을 가리킵니다.
주님 누구시니이까.
Τίς εἶ, Κύριε;
who are you, Lord?
직역하면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란 뜻입니다.
동사(εἶ)는 현재형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ὁ δὲ Κύριος εἶπεν
the and Lord said
‘이르시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said) 주님이 확실히 말씀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Ἐγώ εἰμι Ἰησοῦς ὃν σὺ διώκεις.
I I am Jesus whom you are persecuting
여기 ‘나는 예수이다’(Ἐγώ εἰμι Ἰησοῦς)는 유명한 표현입니다.
즉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증언(自證言, I am saying)으로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빛이다, 나는 양의 우리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포도나무다’는 등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이 표현은 예수님 자신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표현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나는 --이다’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표현하신 표현인데, 그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예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 동사(εἰμι)는 현재형이고, ‘네가 박해하는’(σὺ διώκεις)에서도 ‘네가’(σὺ, you)가 강조되어 있고, 동사는 현재형으로서(are persecuting) ‘현재 네가 박해하고 있는’이란 뜻입니다.
1.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이 바울의 말에는 지금 나타나신 신적 존재의 정체가 도대체 누구시냐고 물은 것입니다.
즉 신적 존재가 여호와 하나님이신지, 애굽인의 신인지 바벨론인의 신인지, 헬라인의 신인지 밝혀주시라는 말입니다.
모세도 시내산에 임재하신 하나님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אֶֽהְיֶ֖ה אֲשֶׁ֣ר אֶֽהְיֶ֑ה:Ἐγώ εἰμι ὁ ὤν)곧 ‘여호와’(yeh-ho-vaw: Yahweh)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 3:14).
신도 여러 신이 있기 때문에, 지금 바울에게 나타난 신이 도대체 누구시냐고 물은 것입니다.
2.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바울이 자기에게 나타난 신적 존재에게 도대체 어떤 신이냐고 묻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죄수 인간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구약성경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선지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들을 잘 알고 있는데, 지금 바울에게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나사렛 예수는 바로 하나님이시고, 구약에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란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에게 청천벽력 같은 사실이요, 기절초풍할 사실이었습니다.
바울 자신은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했는데, 그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란 말입니다.
이 얼마나 기절초풍할 일입니까?
예컨대, 어떤 여자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서 평생 노력하면서 살고 있는데, 지금 자기와 함께 애를 낳고 살고 있는 남편이 바로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절초풍할 것입니까?
어떤 남자는 어렸을 때 헤어진 여동생을 찾기 위해서 평생 메스컴을 통해서 여동생을 찾아 헤맸는데, 막상 그 여동생을 찾고 보니 지금 자기와 함께 살고 있는 아내가 여동생인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기절초풍할 일입니까?
이처럼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했는데, 바로 기독교인들의 주님인 예수가 바로 바울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았습니다.
이 얼마나 기절초풍할 일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 충격적인 사실을 정리하기 위해서 아라비아에 가서 3년간 신학과 신앙을 정립했습니다( 갈 1:17).
16절.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get up and stand on your feet; for this purpose I have appeared to you, to appoint you a minister and a witness not only to the things which you have seen, but also to the things in which I will appear to you;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ἀλλὰ ἀνάστηθι καὶ στῆθι ἐπὶ τοὺς πόδας σου·
but rise up and stand on the feet of you
직역하면 ‘그러나 일어나라. 그리고 네 발로 서라’는 뜻입니다.
‘일어나’(ἀνάστηθι)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rise up) 당장 벌떡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서라’(στῆθι)도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stand) 똑바로 서라는 뜻입니다.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εἰς τοῦτο γὰρ ὤφθην σοι,
for this purpose for I appeared to you
직역하면 ‘왜냐하면 이 목적으로 내가 네게 나타났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나타났다’(ὤφθην)는 부정과거로서(I appeared) 확실히 나타난 것을 가리킵니다.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προχειρίσασθαί σε ὑπηρέτην καὶ μάρτυρα
to appoint you servant and witness
직역하면 ‘너를 종과 증인 삼으려고 (내게 너에게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삼으려고’(προχειρίσασθαί)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appoint) 너를 종과 증인으로 확실하게 삼으려는 것을 가리킵니다.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ὧν τε εἶδές με ὧν τε ὀφθήσομαί σοι,
of that which both you saw Me, of the things in which then I will appear to you
‘본’(εἶδές)은 부정과거로서(you saw)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확실히 본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장차 나타날’(ὀφθήσομαί)이란 미래형으로서(I will appear) 앞으로 또 주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실 것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주님은 사도행전 23장 11절에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바울이 로마에서도 예수님을 증언하리라는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7장 23-24절에서도 주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바울이 황제 앞에 서야 할 것과 배에 동승한 사람들을 다 바울에게 주신다는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특히 여기서 장차 나타날 일이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장차 재림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확실한 계시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즉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 이하에서 바울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이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1. 예수님을 박해한 바울은 엎드려졌으나 이제 예수님은 바울을 전도자 바울로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그 동안 바울은 예수님을 박해하는 일에 선봉장이 되었으나, 그 핍박자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 앞에 꺼꾸러졌고, 이제 바울은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증언하는 예수의 증인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즉 유대교의 선봉장 사울은 죽었고, 기독교의 선봉장 바울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제 고등학교 스승 중에 한 분은 원래 공산당원이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고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바울만 아니라 우리들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 출세를 위한 인생이 예수님을 위한 인생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 1965년)도 박사학위를 4개나 가진 의사였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난 후로 본국에서 출세를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2.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신 이유를 설명해주신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신 이유는 두 가지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여호와이신 예수님을 본 일에 대해서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여호와이신 예수님을 보았다면, 안 믿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아무에게라도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볼 때,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을 본 사람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변화산에서 변형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으로서 여러 가지 기적 행하신 것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500여 명의 예루살렘 교인들이 부활 승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최후로 바울이 여호와 하나님,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도마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발을 만져보고 부활의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도마만이 아니라 우리들도 심히 우둔하여 육신의 눈으로 직접 하나님을 보지 않고는 잘 믿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20:29).
어쨌든 바울은 부활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큰 특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바울에게 여호와 하나님 예수님을 본 일에 대해서 증인의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후로 목숨 걸고 부활의 예수님을 증언하는 증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장차 다시 나타나실 일에 대해서 바울을 종과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여기서 장차 나타날 일이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장차 재림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확실한 계시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즉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 이하에서 바울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이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 39-44절에서 바울은 육체도 물고기 육체와 짐승의 육체가 다르듯이 부활 때에는 육의 몸이 부활하여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된다고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다른 사도들보다도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에 대해서 확실한 증언을 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부활과 재림에 대해서 확실한 증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실히 만났기 때문입니다.
17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New American Standard Bible: rescuing you from the Jewish people and from the Gentiles, to whom I am sending you,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ἐξαιρούμενός σε ἐκ τοῦ λαοῦ καὶ ἐκ τῶν ἐθνῶν,
delivering you from the people and from the gentiles
직역하면 ‘내가 너를 그 백성과 이방인들에게서 구원하여’란 뜻인데, ‘그 백성’을 한글성경에는 ‘이스라엘’이라고 해석해서 번역했습니다.
‘구원하여’(ἐξαιρούμενός)는 현재분사로서(delivering) 주님이 늘 구원하신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보내어
εἰς οὓς ἐγὼ ἀποστέλλω σε,
to whom I I send you
직역하면 ‘그들에게 내가 너를 보낸다’는 뜻입니다.
‘내가’(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보내어’(ἀποστέλλω)는 현재형으로서(I send) 예수님이 바울을 지금 보내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예수님은 바울을 이스라엘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보내서 앞 절에서 말씀한 대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님의 종과 증인이 되어서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에 대해서 이스라엘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전도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인들과 이방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지만, 예수님이 이스라엘인들과 이방인들의 손에서 바울을 구출해주실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예수님이 직접 전도자로 파송한 하늘나라 대사였습니다.
그런데 12 사도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전도하라고 파송한 사역자들인데, 바울은 이스라엘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전도하는 사역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방인 전도를 하다가 유대교인들의 미움을 받고, 지금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18절.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o open their eyes so that they may turn from darkness to light and from the dominion of Satan to God, that they may receive forgiveness of sins and an inheritance among those who have been sanctified by faith in Me.‘
그 눈을 뜨게 하여
ἀνοῖξαι ὀφθαλμοὺς αὐτῶν,
to open eyes of them
직역하면 ’그들의 눈들을 뜨게 하기 위해서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낸다)‘는 뜻입니다.
’뜨게 하기 위하여‘(ἀνοῖξ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open) 그들의 눈을 확실히 뜨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오게 하고
τοῦ ἐπιστρέψαι ἀπὸ σκότους εἰς φῶς
to return from darkness to light
직역하면 ’그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오도록 (그들의 눈을 뜨게 하려고 내가 너를 보낸다)‘란 뜻입니다.
’돌아오도록‘(ἐπιστρέψαι)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 to return) 어둠에서 빛으로 확실히 돌아오도록 하신다는 뜻입니다.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καὶ τῆς ἐξουσίας τοῦ Σατανᾶ ἐπὶ τὸν Θεόν,
and from the power of the Satan to the God
죄 사함과--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τοῦ λαβεῖν αὐτοὺς ἄφεσιν ἁμαρτιῶν
to receive they forgiveness of sins
직역하면 ’그들이 죄들 용서함을 받게 하려고‘란 뜻입니다.
’받게 하려고‘(λαβ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receive) 앞의 ’돌아오도록‘(ἐπιστρέψαι, to return)과 같이 그들이 죄 용서를 단호하게 받게 하시려고 내가(주님이) 너를 그들에게 보내신다는 뜻입니다.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καὶ κλῆρον ἐν τοῖς ἡγιασμένοις πίστει τῇ εἰς ἐμέ.
and inheritance among those having been sanctified by faith that (is) in Me
직역하면 ‘내 안에 있는 믿음으로써 (죄 용서함을 받고) 그리고 거룩하게 된 그들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시려고)’란 뜻입니다.
‘거룩하게 된’(ἡγιασμένοις)은 완료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sanctified) 이미 거룩하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1.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바울이 복음 전도자로서 해야 할 사역의 목표에 대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첫째로 이스라엘인과 이방인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바울의 사역의 목표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은 물론 육신적인 눈도 뜨게 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으나, 그 보다는 영적인 눈을 뜨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물고기의 눈이나 잠자리의 눈이 사람의 눈에 비하면 장님과 같은 수준인 것처럼, 사람의 육신의 눈은 영적인 일들에 대해서 장님과 같습니다.
즉 인간의 눈으로는 피조 세계만을 볼 수 있을 뿐이고, 영적인 세계인 하늘나라와 부활하신 예수님과 천사와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서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령한 영안이 열리면, 천사나 천국이나 부활하신 예수님이나 성령님의 일들에 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천군 천사와 불말들과 불병거들을 보았지만, 게하시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기도함으로 게하시의 눈이 떠져서 천군 천사와 불말과 불병거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왕하 16:17).
요한복음 9장 39절에서 예수님은 육신의 눈을 가졌으나 예수님을 몰라본 유대인들을 영적 소경이라고 하셨고, 장님으로 있다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은 소경은 영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고 칭찬하셨습니다.
2.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인간은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이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탄의 말에 순종함으로써 사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사탄에게 종노릇하여 우상신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도 점쟁이 말을 듣고, 길거리에 밥을 차려놓고 귀신을 섬기며, 사주쟁이에게 가서 이름을 짓고, 하루에도 어디를 가야 하는지를 사주쟁이에게 물어서 가고, 온 집안에 장독대 귀신, 아궁이 귀신, 샘물 귀신, 당산나무 귀신, 서낭당 귀신 등 오만 잡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병이 나도 무당을 불러서 푸닥거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이 들어온 후에 이런 잡신 숭배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처럼 사탄의 권세 아래서 꼼짝 못 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바울의 복음 전도를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종노릇 하는 것은 자유가 없고 지옥에 이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자유가 있고 영생에 이릅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겼습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또한 예수 믿는 성도들은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골로새서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3. 죄 사함과
인간 생활에서 최대의 특혜가 있다면 죄를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댓가는 여러 가지 형벌이지만 궁극적으로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법정 재판에서 죄가 있다고 판결이 나면, 재산을 빼앗기고, 명예를 빼앗기고, 감옥에 가고, 목숨까지 빼앗기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재판정에서 죄가 있다고 정죄 되면, 영원한 형벌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누가 나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면, 한 가지 죄목으로 이중 처벌을 못 하기 때문에, 죄를 범한 사람이 형벌을 면제받습니다.
이처럼 누가 대신 처벌을 당하고 죄에 대한 형벌을 면제받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모든 형벌을 당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를 사함받았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절대적인 행복이요 영원한 기쁨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다윗은 죄 사함 받은 자와 불법을 용서받은 자는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4:6-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조금만 실수를 해도, 그것은 용납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큰 죄를 범했다고 사방에 불고 다닙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예수 믿는 성도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우리 성도들이 범죄를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고 용서를 구할 때 사함을 받습니다.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4.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여기서 기업이란 세상의 부동산이 아니라 천국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을 믿어서 모든 죄를 용서받고 거룩하게 된 성도들은 천국에서 기업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각 지파별로 각 가족별로 각 가정별로 토지를 기업으로 분배해 주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 믿은 성도들은 부활의 몸으로 천국에 들어갈 때, 천국에서 기업을 얻게 됩니다.
이 얼마나 분명한 복음의 메시지입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천국 기업에 들어가도록 성령님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에베소서 1장 13-14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천국 기업을 받기 위해서 우리들은 세상에서 고난도 당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어떤 성도들은 천국 영생을 얻기 위해서 구차히 세상 형벌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그러므로 우리들은 영생 천국의 믿음을 굳게 가져서 세상에서 거룩하게 믿음 생활을 잘해야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이 예수님은 바울에게 4가지 복음을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 사항들입니다.
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 진리를 바울은 아그립바 왕과 모든 재판관들 앞에서 분명히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예수님 믿으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전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지독한 핍박자 사울을 용서하시고, 위대한 전도자로 삼으신 것을 보고, 우리들도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증언하고 간증하는 전도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평생토록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날마다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천국 기업에 들어가도록 주님이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가정과 자손들이 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