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치밀러 합창단이 부르는 미국민요 <언덕위의 집>, 맨밑에는 톰 라우쉬가 <언덕위의 집>을 부릅니다.
미치밀러 음악이 짧으니까 맨밑의 음악을 계속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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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중반 미국 대평원을 휩쓴 모래 폭풍,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이 폭풍은 당시 워싱톤까지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합니다. 소설 <분노의 포도>의 시
발점이 바로 이 모래폭풍이었습니다.
[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의 고향을 찾아 ]
넓은 미국 땅의 한복판인 오클라호마 시티에는 서부극의 냄새가 물씬 납니다. 번화가를 조금만 나서면 평원 속에 2~3층짜리 집들이 띄엄띄엄하며 신개척지 같습니다. 더구나 거리에는 카우보이 차림의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미국 서부의 17개 주(州)가 협력하여 서부 개척사의 박물관을 만든 것이 이 도시에 있습니다. 매년 전국 카우보이들의 말타기 대회가 여기서 열립니다. 길에 인디언들이 활보하고 다니는 것이 또 색다른 구경거리입니다.
* 오클라호마 시티
오클라호마주는 미국에서도 가장 인디언들이 많이 남은 곳으로 67개 종족이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정착촌이 있기는 하나 이 주에서는 백인과 함께 사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많은 인디언들이 도시에 들어와 있습니다. 일부 오클라호마 사람들의 혈관에는 인디언들의 피가 섞여 있고 이들은 이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오클라호마에서 조드 일가(一家)가 66번 국도를 따라 길을 떠나는 데서 시작됩니다.
* 국도 66번을 대체한 고속도로
실제로 1933년 미국 중앙의 대평원에 대사풍(大砂風)이 일어 농지가 사막이 된 오클라호마의 농민들은꿈의 땅 캘리포니아를 찾아 포장마차를 몰고 서부로 향했습니다. 1937년 스타인벡은 이 이민 노동자의 행렬을 따라 오클라호마를 떠나 서쪽으로 향했고 그들의 생활 상태를 세밀히 기록했습니다.
1948년 <분노의 포도>를 쓰기 시작하면서도 그의 이민 캠프 탐사는 계속되었습니다.
30만 오키(오클라호마 농민을 지칭)들이 굶주리며 이동하던 66번 국도는 선량한 농민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진 작가 스타인벡에게는 분노의 길이었습니다.
66번 국도는 스타인벡의 소설 뿐 아니라 노래로 불리고 쇼의 제목이 되기도 하여 미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국도입니다. 동쪽으로 시카고의 미시간 호반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로스엔젤레스의 태평양 연안까지 장장 2천 마일 이상을 뻗으며 미국 땅을 횡단하는 이 66번 국도는 미국의 척추로 일컬어져 왔고 스타인벡도 <길의 어머니>로 불렀습니다.
* 66번 도로 표지판
시카고에서 세인트루이스를 지나면서 미시시피 강을 건너고 오클라호마 대평원과 애리조나의 가파른 산지를 넘어 캘리포니아의 바닷가에 이르는 동안 7개 주를 통과합니다.
1926년 미국 국도법이 생기면서66번 국도롤 등장한 이래 1970년대의 중반까지 자동차 시대의 반세기 동안 미국의 동서를 연결하는 대동맥이 되어 왔습니다. 이 길이 지금은 고속도로에 밀려 이름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구도(舊道)는 곳에 따라서는 끊기고 하여 거의 대부분이 고속도로로 합쳐지면서 지도상에는 새 고속도로의 이름과 병칭(竝稱)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66번 국도는 시카고에서 I(주간고속도로)55번, I 44번이 되어 오클라호마 시티까지 와서 여기서 다시 I 40, I 15, I 10번으로 로스엔젤레스까지 연결됩니다.
* 아리조나주의 66번 도로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66번 국도를 밟으며 교외로 나갑니다. 시내를 벗어나면서 구도(舊道)는 밀밭, 옥수수밭, 땅콩밭 사이를 달립니다. 길가에는 성시(盛時)에 줄섰던 모텔들, 식당들, 주유소들이 하나씩 문을 닫아 대부분 폐가(廢家)가 되어 있습니다.
130년 전에는 서부극에 나오는 서부극에 나오는 포니 익스프레스(속달우편 마차)가 달리던 길, 70여 년 전에는 오키 이농민들의 행렬이 지나가던 길, 이어 스타인벡이 직접 차를 몰고 오키들을 뒤쫓던 길이 지금은 차들의 왕래가 드문 채 잡초에 묻혀 있습니다.
* 아리조나주 시골길 66번 도로
가난한 농민들이 못살아서 버리고 떠난 땅에 석유가 나기 시작하여 연도에는 유정(油井)들이 송전탑처럼 줄서 있습니다. 66번 국도는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서쪽으로 30마일쯤 나가자 길이 끊기면서 I 40번 고속도로에 합쳐져 버립니다.
* 66번 도로에서 I 40 고속도로로...
존 스타인벡은 캘리포니아 주의 샐리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샐리너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110마일, 그레이하운드 버스로 2시간 반 걸립니다. 인구 10만의 상업 및 농업의 중심지입니다.
샐리너스의 센트럴 애비뉴 132번지에 있는 그의 생가는 15개의 방이 있는 회색 빅토리아 조(朝) 건물입니다. 스타인벡의 다른 작품 <에덴의 동쪽)에 "하얀 울타리 속에 잔디밭으로 둘러싸여 크기는 하지만 허세가 없는 집"이라고 이 생가의 묘사가 나옵니다.
* 스타인벡의 생가
1897년 지은 집을 1900년 스타인벡의 아버지가 사서 이사를 온 집인데 스타인벡이 태어난 방은 아래층 입구의 왼쪽 첫방입니다. 이 방도 <에덴의 동쪽>에 "사진과 화장수병과 솔과 빗과 도자기들로 가득찬 침실"이라고 그려져 있습니다. 2층의 레드 룸은 그의 초기 소설 <빨간 망아지> 등을 쓴 곳입니다.
이 집은 밸리 길드라는 200명의 회원을 가진 자선 단체가 1973년에 사들여 관리하면서 낮에 점심만 파는 식당으로 문을 열어 그 수익으로 집을 유지합니다. 10달러를 내면 스타인벡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초년 시절을 지낸 방에서 한끼의 식사를 하고 나올 수 있습니다. 현관 지하실은 스타인벡의 저서 등 기념품을 팔고 있습니다.
샐리너스 시립도서관은 1969년 스타인벡 도서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3만점의 스타인벡 관계 자료를 모았으며 스타인벡실(室)을 따로 마련하여 사진, 편지 등을 전시하는 한편 바깥에는 실물대(實物大)의 스타인벡 동상을 세웠습니다.
* 스타인벡 도서관
샐리너스를 중심으로 한 샐리너스 골짜기와 서쪽의 몬테레이 반도 일대는 스타인벡의 작품들 대부분의 무대로 스타인벡 컨트리로 불리웁니다.
스타인벡 가(家)가 처음 이곳에 자리잡은 것은 그의 외조부가 킹시티 남쪽에 있는 1,700에이커의 목장에 정착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이 목장이 <에덴의 동쪽>에 나오는 트래스크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샐리너스 강을 따라 85마일에 걸쳐 길게 뻗은 샐리너스 골짜기는 <미국의 샐러드 접시>라 일컬어질 만큼 신선한 야채의 생산지로 첫 손 꼽히는 곳이고 고교와 대학 시절 여름 방학 때 이곳의 농장을 찾아다니며 일을 한 스타인벡은 뒷날 일대를 모조리 그의 작품 속에 담았습니다.
* 샐리너스 골짜기 채소밭
<에덴의 동쪽>을 비롯하여 <승산을 알 수 없는 싸움>, <즐거운 목요일>, <긴 골짜기>, <생쥐와 인간>, <캐너리 로>, <토르티아 대지(臺地)>, <긴 골짜기>, <생쥐와 인간>, <미지(未知)의 신에게>, 등니 모두 이 고장의 산물입니다. <에덴의 동쪽>은 원래 예정했던 제목이 <샐러니스 골짜기>였습니다.
* 미국의 샐러드 접시 샐리너스
1952년에 나온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 <에덴의 동쪽>은 대부분 이 샐러니스 골짜기에서 현지 로케된 것입니다. 세월 따라 농작의 기술은 달라졌으나 아직도 <빨간 망아지>는 <긴 골짜기> 사이를 헤매고 <하늘의 목장>에는 칠엽수(七葉樹)가 봄이 되면 꽃을 피웁니다.
<캐너리 로>에 나오는 몬테레이의 식료품 가게는 아직 남아 주인은 매년 작가의 기일(忌日)인 12월 20일이 되면 가게문을 닫고 크리스마스 장식불을 끈 뒤 창 앞에 4개의 촛불을 불 밝힙니다.
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를 완성한 것은 샐리너스 북쪽, 샌터크루즈 산 속의 로스 가토스에서였습니다.
스타인벡이 1938년 숲 속에 새로 집을 짓는 동안 농가를 하나 빌어 있었고 여기서 작품을 끝냈습니다. 집이 완성되었을 때 작품도 끝맺어져 있었습니다. 책이 나오자 전보와 전화가 새 집으로 쇄도했습니다. 1940년 퓰리처상을 탄 것도 이 집에 살 때였습니다. 그는 여기서 1941년까지 거주했습니다.
* 샐리너스 강과 골짜기 지도
스타인벡은 뉴욕에 나가 살 때인 1960년 미국을 일주하면서 고향을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이때의 여행기인 <찰리와의 여행>에는 샐리너스 골짜기가 눈 아래 내려다 보이는 프리먼트 피크 마루턱에 올라 "나는 젊었을 때부터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이 훤한 이 마루턱에 죽어 묻히기를 원했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봄이 되면 말이야, 찰리야, 이 골짜기에는 꽃바다 같은 푸른 루핀이 깔려 그때는 하늘의 향내가 난단다. 하늘의 향내가."하면서 감상에 젖습니다.
* 스타인벡 묘지
스타인벡은 뉴욕에서 죽어 유골이 샐리너스 시내의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의 동부에서 지내고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뿌리는 항상 그가 태어난 샐리너스에 남아 있었고 결국은 죽어 돌아왔습니다.
그의 무덤은 숙부인 해밀턴 가(家)의 묘역에 양친 및 누이동생과 함께 있습니다. 해밀턴 가는 <에덴의 동쪽>에 나오는 집안인데 소설 속의 이야기는 모두 실화입니다.
* 생전에 백악관에서 존슨 대통령과...
[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
존 스타인벡(1902~1968)은 대학을 중퇴한 후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다 작가로 전향, 소설 <분노의 포도>로 1940년에 퓰리처 상, 1962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미국 현대문학의 대가입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본노의 포도>외에도 <에덴의 동쪽>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분노의 포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1930년대 중반 텍사스로부터 캐나다 국경에 이르는 대평원에 엄청난 모래폭풍과 대자본에 의한 농업 기계화로 오클라호마의 많은 농민들이 농지를 잃게 됩니다.
* 1935년 오클라호마를 덮친 모래폭풍
이들 농민들 중 조드 일가는 낡은 자동차에 가재도구를 싣고 캘리포니아의 비옥한 토지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착취와 기아와 질병 뿐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 미국사회의 전반적인 움직임을 간결하게 묘사하고 하층 농민들의 생활을 극명하게 그린 작품으로 스타인벡의 작품 중 사회주의적 경향이 가장 짙은 걸작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