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6장 1~25절]
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 3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4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5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6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7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8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9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10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11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12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13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14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15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16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17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그대에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잡았나니 18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 19 그대의 부르짖음이나 그대의 능력이 어찌 능히 그대가 곤고한 가운데에서 그대를 유익하게 하겠느냐 20 그대는 밤을 사모하지 말라 인생들이 밤에 그들이 있는 곳에서 끌려 가리라 21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그대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22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23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24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25 그의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
[설교]
어제 말씀에서 엘리후는 욥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고통 받는 이유는 다 당신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엘리후는 계속해서 욥을 질책합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욥기 36장에서 엘리후는 이제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조금 더 상세히 변증합니다. 2절입니다.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 여기서 엘리후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할 말이 있다고 말합니다. 말인즉슨 엘리후는 마치 자신이 하나님을 대변하는 대변인인 것처럼 행세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욕하지만,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대변할 것이요!’ 이런 식으로 욥에 맞서 하나님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욥은 결코 하나님을 욕한 적이 없습니다. 욥기 2장을 떠올려보십시오. 욥의 아내는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지만(2:9), 욥은 결코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이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했습니다(1:21). 엘리후의 말마따나 욥은 결코 하나님께 맞서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엘리후는 욥의 사정을 들어보지 않고 그저 무턱대고 욥을 책망합니다. 욥을 계속해서 잠정적인 ‘악인’으로 치부하며 그를 심문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 엘리후는 자신이 스스로 ‘온전한 지식을 가진 자’라고 소개합니다. 본문 1~4절까지의 내용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이 말씀과 같이 엘리후는 스스로 굉장히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지혜자입니다. 나는 온전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당신을 교훈하겠습니다. 당신은 내 말을 꼭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엘리후는 자신이 가진 어떠한 지식을 앞세워 욥을 교훈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렇듯 지식만 앞세워 욥을 교훈하는 것은 결국 고통 받는 욥에게 있어서는 전연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합니다.
둘째, 엘리후는 자신이 ‘온전한 지식’을 가졌다고 소개한 뒤, 계속해서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기 시작합니다. 본문 5~1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엘리후는 하나님을 일컬어 ‘능하시고’,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다’고 말합니다(36:5~6). 누구나 하나님에 관하여 하는 말들이지요. 그러면서 엘리후는 자기가 믿는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보호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욥의 상황만 딱 떼어놓고 보면 굉장히 그럴 듯 해 보이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5~7절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높여주신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8~10절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이 때로는 사람에게 환난을 주심으로, 그 환난을 통해 저들의 숨은 죄와 교만을 밝히신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11~12절에서 엘리후는 구약성경에서 줄곧 가르쳐온 순종과 불순종에 관하여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끝으로 13~15절에서 엘리후는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가 당하는 고난은 큰 심판을 자초한다고 말합니다. 역시 맞는 말입니다. 네 가지 모두 다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엘리후의 말에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다 맞는 말이라도, 결국 이 말들이 모두 욥의 상황에 접목시키면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온전한 지식, 좋은 교훈이라 하더라도, 막상 그것을 듣는 욥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전혀 맞질 않는 것입니다.
셋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16~21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여기서도 엘리후는 욥을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경고합니다. 18절,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 여기서 엘리후는 욥에게 분노하지 말고, 뇌물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실상을 보십시오. 욥이 언제 분노하였나요? 욥이 언제 뇌물을 탐하였나요? 물론 욥은 때때로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분노의 대상이 누구였나요? 하나님이 아니라 욥을 비난하는 세 친구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한 게 아니라, 자신에게 괴로움을 덧입히는 세 친구들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니 어떻습니까? 욥을 향한 엘리후의 경고는 사실상 매우 어설픕니다. 욥의 상황을 정확히 진단한다고 하는데, 정작 초점이 전혀 맞질 않습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엘리후의 모습 역시 결국 어떻습니까? 까닭모를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욥에게 있어서 엘리후가 전한 말들은 사실상 죄다 독약과 같습니다. 물론 간간이 옳은 소리도 있습니다. 스스로 자처하기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엘리후가 전한 말들 속에는 분명히 일부분 좋은 교훈, 좋은 지식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말들이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전해졌을 때는 어떨까요? 저들에게 오히려 꿀이 아니라 독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무엇보다 이러한 엘리후의 모습을 경계하며,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나의 가진 지식, 자랑, 의를 앞세우는 태도는 결코 다른 이에게 덕이 되질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낮추며, 또한 다른 이의 마음을 공감하며, 다른 이와의 삶을 공유할 줄 아는 마음씨를 얻기 위해 온전히 하나님을 의뢰해야 합니다. 이러한 은혜가 오늘 하루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가득하여, 삶의 모든 자리에서 언제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