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2기 362. 쿠킹 바나나
골프를 나가지 않는 날은 무료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림에 매달려 하나씩 완성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허리를 다친 후 모든 게 달라졌다.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들다보니 그림 그리기도 자연히 집어치우고 책을 읽는 것도 시들해졌다.
사실 여기선 읽을만한 책을 구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영어책을 사서 읽을 수준도 아니니.
그저 뒷짐지고 뜰을 거닐어 보거나 TV에 매달려 여기저기 채녈을 돌려가며 보는 것 밖에 할 만한 일이 없다.
몇 년 전만해도 죠셉과 차를 몰고 경치 좋은 따알 비스타 호텔 커피숍을 찾아가거나 별로 비싸지도 않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자주 갔었다.
그런데 지금은 죠셉이 차를 몰고 나가는 것조차 내가 자주 말린다.
한 번 시고가 난 후 생긴 트라우마인 것 같다.
외국에서 사고가 나면 얼마나 골치가 아프고 힘이 드는지 생각하기도 싫다.
벌써 70대 후반인 죠셉은 본인은 괜찮다고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도 한 해가 다르게 걱정스럽다.
이젠 어느 정도 허리도 나아지고 몸이 회복 되어 우리는 하루 건너마다 골프를 나간다. 그럼 당연히 하루 건너마다 우리는 집에서 쉬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집에 있는 날은 열 시가 되면 Milla가 쟁반에 간식을 챙겨온다.
아마데오 커피를 내리고 과일 한가지나 쿠킹 두 조각씩을 함께 내 온다.
구야바노, 쳇사, 파파야, 파인애플, 잭프릇, 등등 게절마다 과일은 달라지지만 그 중에서도 계절 없이 내가 제일 반가워 하는 건 쿠킹바나나이다.
쿠킹바나나... 때론 래퍼를 씌워 기름에 튀어 오기도 하지만 그냥 후라이나 구워 와도 너무 맛있다.
무료한 날에 오전과 오후의 간식 쟁반은 우리에게 너무나 행복한 티 타임을 선물한다.
오전엔 언제나 커피, 오후엔 말룽가이 티나 생강차가 주로 나온다.
골프를 나가는 날은 지인들과 클럽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운동에 빠져 정신없이 하루가 흘러가니 그 또한 너무 좋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우리 늙은이들에겐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만이 최고의 보약인 것 같다.
이곳을 떠나면 한국에서 바나나는 흔히 보지만 여기서처럼 더 맛있는 쿠킹바나나를 먹을 수 없는 게 못내 서운하다.
첫댓글 나이들어 무료한 시간은
노화 촉진제라도 되는 것 같아요.
정신 적으로나 육체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