삵 이야기
밤새 귀신도 모르게 닭장에 침입하여 닭을 물고 가는 짐승은 분명 족제비가 아니면 살쾡이(삵)이란 놈이다. 鷄舍를 그렇게 단속하고 틀어막았건만 고얀 놈들이 작은 틈만 있어도 비집고 들어가 야단법석을 피운다. 사실 내가 어릴 때만도 몰래 숨어 도망치던, 노란 털 족제비를 잡아 보겠다고 덫(trap)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삯은 일평생 꼬락서니를 한 번 보지 못하고 말았다.
삵(Prionailurus bengalensis)은 식육목, 고양잇과에 속하는 꼬마 맹수로 한자로는 石虎, 우리말로는 ‘삵’, ‘살쾡이’라 하는데 둘 다 표준어로 삼는다고 한다. 삵은 작은 야생고양이(野猫,wild cat)로 동남아나 동아시아가 원산지이다. 예부터 우리나라도 삵을 고양이와 함께 집안에서 가축으로 키워왔다 하고, 옛날 중국에서는 중동이 원산지인 집고양이 대신에 삵의 새끼를 길들여 애완용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삵과 고양이 사이에서 생긴 種間雜種도 귀여워했다 한다. 호랑이나 표범들은 어느새 모두 절멸하고, 삵은 현재까지 한국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양잇과 야생동물이다.
삵은 고양이처럼 생겼고, 몸집이 큰 고양이와 비슷하며, 불분명한 얼룩점(斑點)이 온몸에 많다. 몸무게 8~13kg, 몸길이 55~90cm, 꼬리 길이 25~32.5cm, 뒷다리 12.2cm 정도이다.
다시 말해서 집고양이와 형태나 크기가 비슷하나 색깔과 무늬에서 차이가 난다. 꼬리가 긴 고양이와 달리 꼬리가 뭉툭하고, 양미간과 귀 뒤에 흰 줄무늬가 있다. 또한, 삵은 고양이와 달리 배설물을 땅에 묻지 않고 그냥 그대로 던져두어 영역을 표시한다.
또한, 삵은 입을 크게 벌릴 수 있고, 머리는 작은 것이 둥그스름하며, 턱 근육이 발달하여 먹이나 다른 물건을 물어뜯는 힘이 매우 세다. 꼬리에는 고리 모양의 가로띠가 있고, 눈 위 코로부터 이마 양쪽에 흰 무늬가 뚜렷하다.
삵(leopard cat)은 울창한 산림지대의 계곡이나 바위굴에서, 관목(키 작은 나무)으로 덮인 산골짜기 개울가에서 주로 살고,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삶터를 잡기도 한다. 야행성이지만 골짜기의 외진 곳에서는 대낮에도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는다. 먹이는 주로 쥐 따위의 설치류, 꿩, 산토끼, 청설모, 다람쥐, 닭, 오리 등이다.
나무를 매우 잘 타고, 그래서 나무 위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발가락 사이에는 물갈퀴(webs)가 발달하였고, 따라서 수영할 수는 있으나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얕은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다.
고양잇과에 속하는 동물답게 아주 몸놀림이 재빠르다. 네 다리(四肢)는 짧으며, 발톱은 작고 날카롭다. 또한, 꼬리가 고양이에 비해 두텁고, 머리에 일자 형태의 줄무늬가 나며, 집고양이보다 귓바퀴가 작다. 세계적으로 20여 亞種(subspecies)이 있고, 주로 한국, 러시아 서남부, 중국 동북부, 타이완, 동남아, 인도차이나반도 등지에 분포한다.
사는 장소에 따라 몸집의 크기가 다를뿐더러 털의 색이나 몸에 퍼져있는 반점의 크기나 분포, 모양들이 다 다르다. 더운 지방의 삵은 체중 0.55~3.8kg, 몸통 길이 38.6~66cm이다. 반면에 추운 중국 북부나 시베리아에 사는 살쾡이는 체중 7.1kg, 몸통 길이는 75cm가 넘는다. 포유류는 북극으로 갈수록 체격이 둥글둥글해지고, 덩치도 커진다는 베르크만 법칙(Bergmann's rule)에 딱 들어맞는다.
번식 시기를 빼고는 단독생활을 한다. 새끼는 5월경에 보통 2~3마리를 낳고, 갓 태어난 새끼 몸무게는 75~130g이며, 출생 후 15일 만에 눈을 뜬다. 드문 일이지만 말똥가리나 검독수리 같은 맹금류가 유일한 포식자로 포유류인 삵을 잡아먹는다.
옛날엔 우리나라에서 무척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맹수였으나 마릿수가 줄고 줄어버려 2002년에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 보호종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털가죽을 쓰기 위해 마구잡이 하여서 그 수가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우리나라 주요서식지로는 강원도 산간지방, 비무장지대 등지에 여러 마리가 생존해 있다고 한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시간이 가면서 개체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삵의 상’이란 말은 독살스럽고 얄미운 사람의 얼굴(相)을, ‘삵의 웃음’이란 몹시 사납고 교활한 웃음을 이르는 말이다. 또 “삵이 호랑이를 낳는다.”라는 속담은 평범한 집안의 변변치 못한 부모에게서 뛰어난 인물이 태어남을 빗댄 말이다.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권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