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휴먼터치(human touch)의 축복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나눈 25초동안의 악수를 ‘마라톤 악수’ 라며 언론이 큰 관심을 보였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 부인 얼굴에 키스까지 했다고 한다. 과거 북·중 정상회담 때에 서로 껴안는 ‘허깅’으로 두나라 정상이 인사를 나눈 적도 있었다.
악수와 키스, 허깅, 손과 입술과 양팔을 각각 사용한다. 인간 신체의 한 부분으로 소통의 도구이다. 뭐니뭐니해도 이 세가지의 공통점은 돈이 안든다. 특별한 훈련기술도 필요 없다. 누군가 이것을 하자고 접촉하면 상대방도 응하게 되니까 물리학적으로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된다. 의학적으로 뇌를 즐겁게 해서 면역기능에 도움을 주는 호르몬도 분비하게 만든다. 악수는 친근감을, 키스는 짜릿함을, 허깅은 평안함을 느끼게 한다.
〈악수〉
네이버를 보면 악수의 유래는 기원전 5세기경 바빌론시대로 거슬로 올라간다. 통치자의 신성한 힘이 악수하는 손으로 전해진다는 것을 상징했다고 한다. 성경에도 예수의 제자들이 ‘친교의 악수’를 했다는 귀절이 있다. 손을 맞잡고 팔을 흔드는 행위이다 보니 소매부분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악수하면서 서로 인사말과 눈빛을 나누고 얼굴표정까지 나누게 되니까, 마음을 통하고 전하게 된다.
오해하고 불편했던 사람, 원수나 적이 됐던 사람과 악수를 나눈다면, 부정적 감정을 풀게 되고 오히려 삶에서 힐링이 되고 축복으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3년전 퇴직 때까지 직업상 언론사 기자들을 무수히 만났는데 지금 핸드폰 속의 그 전화번호가 3400개가 넘으니 아마도 그 숫자만큼 다양하게 악수를 나누었다고 해야겠다. 만날 때 마다 불교신자인듯, 반듯하게 두 손을 모은 다음 악수를 청하곤 하던 기자도 있었다,
대체로 너무 세게 잡으면 결례다. 건방진 인식을 준다.
한데 서양에선 여성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면 결례인데 우리나라에선 잘 무시된다.
아내는 “성당에서 남자들이 먼저 악수하자고 하면 기분이 별로 안좋아”라고 불만을 털어 놓은 적이 있다. 대체로 남자들의 손은 더럽고 비위생적이라는 것이다. 여성과 악수를 할 때 “ 저는 바로 방금 전에 손 씻었어요”라는 증표가 뭐 없을까? 흰 손수건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여성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인류문화적 관습으로 실용화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누가 내면 좋겠다.
이런 걸 주장하면 남성인권에 대한 역차별 소리를 들을까?
입사 동기들의 모임에 가서 악수하는 걸 좋아한다. 고교동기들 모임자리에 가서는 야! 반갑다! 라며 악수하면 신이난다. 활짝 웃는 얼굴을 악수에 곁들이는 건 의무이고 예의이다. 주일 미사 후, 웃지 않는 성당 주임 신부와, 활짝 웃음을 띤 나의 악수에서는 불공정함이 느껴지지만, 힐링감을 받게 되어 불만은 없다. 재작년 성체분배자 교육 후 염수정 추기경님과 악수를 했을 때는 축복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겨울 사이판에서 옛 회사 부회장과 우연히 만나 나눈 악수의 순간엔 기쁜 감정은 잠시였고, 측은한 기분이 들었다. 허리가 무척 굽고 야윈 체격에 힘줄이 드러난 깡마른 손의 주름살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감촉했기 때문이었다.
〈입맞춤〉
소크라테스는 키스를 “마음을 빼앗는 가장 힘쎄고 위대한 도둑”이라고 했고, 플라톤은 “영혼이 육체를 떠나 가는 순간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한 시인은 “우주에서 가장 찬란한 진실, 가장 순결한 신뢰는 소녀의 키스 속에 들어 있다” 고 했다.
키스에 대한 나의 정의는? ‘두 입술이 겹쳐지는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 홀로 있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최면제’ 라고 말하겠다.
우리는 왜, 키스하는 가? 입술에 하는 키스는 사랑을, 발에다 하는 키스는 헌신을, 가족들간에 볼에 하는 키스는 애정을, 목에다 하는 키스는 욕망을, 남성이 부인이나 숙녀의 손등에 하는 키스는 존경을 나타낸다고 한다.
성경에는 배신자 유다 제자가 예수에게 입맞춤(the kiss of Judas)을 하는 것을 신호로 대사제와 원로들이 보낸 무리들이 예수를 잡아가는 광경이 나온다. ‘사랑’의 상징인 키스가 끔찍한 ‘배신’의 징표로도 사용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어릴적 공포영화에서 보았던 드라큐라나 악마가 여자주인공의 목에 퍼붓는 무서운 키스는 본 적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3월 말 이태리 성지를 방문했을 때다. 신자들이 다가가 ‘신성함과 권위의 상징’인 오른손 반지에 키스하려 할 때마다 재빨리 뒤로 뺀 것에 찬반논란이 있었다.
“존경의 의미로 해 온 반지키스라는 과거의 전통에 교황께서 불편해 했는데, 그 이유는 신자들에게 세균이 옮겨지는 비위생적 행위라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교황청의 설명이다. 전에는 봉사 수녀들과 인사를 할 때 반지에 키스를 하면 교황은 수녀의 양 볼에 키스를 해 주곤 했었다니 일부 일반 신자들이 화를 낸 건 아닌가?
우리말로 입맞춤, 키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그릇이 없는 아주 오랜 옛날에 어머니가 어린아이에게 입으로 물을 먹여 준데서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훈민정음 첫 부분을 “나랏말씀이 중국에 달라~ 선포하노라”로 시작할 것이 아니라 “키스, 허깅 같은 것에 우리말이 없어서~ 선포하노라”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키스는 대략 한번에 12 킬로칼로리를 소모시키고, 뇌에 엔돌핀 호르몬을 생성시키며, 빰과 턱근육을 단련시켜 피부가 쳐지는 걸 방지해 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미국 치과협회 매슈 매시너 박사는 “키스를 하면, 충치유발 박테리아를 없애주고, 항균,항체 기능을 하는 감마글로블린, 라이소짐등이 나오는 침을 활발히 생성시킨다” 고 한다. 네이버에 나오는 설명이다. 키스하는 사진만 봐도 나는 침이 저절로 나오는 걸 보면 사실인거 같다.
아내와 나는, 아들 딸의 초등학교,유치원 시절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잘 자라!” 라며 키스를 해주곤 했다. 부모로서 ‘너희들을 사랑한다’는 표시이고, ‘애들 입장에서는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구나’라는 자존감을 키워 주려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 빼고 누구와 키스를 했는가? 사춘기 중학교 시절 영화를 본 다음 날, 꿈속에서 팬으로 짝사랑하는 배우와 키스한 적이 있다.
어머니가 갓난아기 시절 내 기저귀를 가시고 엉덩이에 키스를 하시지 않았을까? 꽃가마 타고 내려서야 연지곤지 찍은 어머니 얼굴을 처음 보았다는 ‘권위주의 시대’의 아버지는 ‘키스를 혹성탈출에 나오는 유인원들이나 하는 괴이한 것’으로 여긴 분이었다. 키스를 “에이 흉칙해라!”한 적이 있으셨으니 말이다.
처갓댁에 가서 장인, 장모님에게 키스를 한 적은 아직 없다.
악수를 하거나 때로는 허깅으로 인사를 드리곤 했다.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다른 인사를 드린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활짝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올해 나이 85세인 장인의 9월 생신 때에 가면 꼭 키스를 해드리고 기념사진으로도 남겨야 겠다.
“악수에 비하면 키스를 주고 받는 건 엄청 희귀한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아름답고 특별하고 기억될 만한 키스의 기회를 만들어 가야겠다. 중동국가에서는 아무데서나 키스하면 범죄행위가 되니 주의해야겠다.
〈포옹〉
창세기에는 ‘야곱’과 그의 형 ‘에서’가 서로 울면서 화해와 용서의 허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1600년대 화가 렘브란트는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 온 아들을 포옹하는 장면을 ‘돌아 온 탕자’로 그렸다. 성경에는 “아버지로서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 온 아들을 포옹하면서, 아들을 다시 찾았다” 라고 말한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용서와 사랑을 나타내는데 허깅만큼 강력한 도구는 없을 것이다.
허깅은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사랑을 더욱 돈독하게 하는 매우 특별한 인사법이기도 하다. 아내와 나는, 사위와 딸을 만나면 허깅을 해 준다. 사돈과 사부인과 만나서 “허깅으로 인사해 보자”고 제안해 보겠다. 내가 생애 처음으로 허깅을 하게 된 것은 10년 전 첫 직장 퇴직 후 강화도에서 실시한 ≪한국웃음연구소≫의 2박 3일 합숙교육에서다. 함께 온 교육생끼리 웃으며 허깅하는 훈련을 시켰다, 어색하고 몹시 불편했는데 자꾸 반복하니까 재밌고 거리낌이 없어졌다. 중독증상도 일어났다. 교육받고 집에 와서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와 포옹을 자주 하곤 했다. 요즘은 고교친구, 동서,처제 같은 절친한 사람에게도 허깅을 한다.
아내정도로 아주 친한 사람 몰래 뒤로 다가가 백허깅(back hugging)을 한 적도 많다. 어느 누군가 그대에게 ‘뒤포옹’을 해 준다면 어마어마하게 가까운 사이인 것이 분명하지 않을까?
처가댁에 가서 처제와 동서, 장인 장모님과 가끔 허깅으로 인사를 나눈 적도 많다.
내가 진행을 맡은 성당 엠이부부 송연회에서는 빼놓지 않고 게임에 부부허깅을 집어 넣는다. 요즘 허깅(hugging)은 초등학교 어린이회장 선거운동부터 정치 사회,지도층까지 한다고 한다. 악수하고 끌어안고 “하나되서 우리 잘해보자‘는 뜻으로 허깅을 하는 때가 종종있다는 것이다.
뇌신경학적으로 포옹은 긴장을 완화시켜주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어머니가 갓난 아이를 가슴쪽으로 업고 다니는 포옹은 심장 뛰는 소리가 아이에게 전달되어 안락감을 주게 되는 거 같다. 허깅은 심장병 예방에 특효가 있고, 또한 정신적으로 아파하는 분들에게 마음의 병을 치유해 주는 효과도 있다.
생활하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힘들 때 그냥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따뜻하게 안아주는 포옹이야말로 치유의 효과가 있다. 당신의 상처와 아픔을 내가 대신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조금은 나누어 짊어 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따뜻한 제스처가 허깅이다. 우리말로 포옹이다. 앞으로 가족간에 인사는 포옹으로 하면 어떨까? 살면서 허깅 할 찬스가 그리 많지 않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서비스 로봇이 나오면서 그나마 인간끼리 접촉 할 수 있는 기회마저 점점 없어진다. 공항에 가든 은행에 가든 무인기가 서비스를 대신해 주고 있다. 비록 접촉은 안하더라도 1;1 사람끼리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의 즐거움과 세가지 휴먼터치의 기쁨과 비교해 보는 것도 특별할 것 같다.
악수,키스,포옹- 이 세가지 휴먼터치는 인간만이 누리는 특별한 축복이다. 사람끼리 이것으로 접촉하는 순간, 토실토실한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해준다. 악수는 아주 짦은 순간의 사랑을, 키스는 비교적 오랜 여운의 사랑을, 허깅은 꽤나 긴 사랑의 추억을 남겨준다.
악수는 몰라도, 키스나 포옹을 안한 날은 낭비한 하루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생활속에서 이 기쁨의 축복을 발로 걷어차 버리고 살아가는 듯하다.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의 영향인가? 키스와 포옹도 관습과 문화로 발전시키는 시민단체라도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불가능할까? 세가지 휴먼터치- 악수하고 볼에 키스하고 이어서 허깅을 동시에 시도하는 ‘아름다운 도전’을 해 보겠다. 공항같은 특별한 장소에서 허물없는 친구나, 친척이나 가족을 오랜만에 만나게 된다면.(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