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배경이 궁금하신분은 수원에 있는 성대 이공대학을 찾아가 견학하고 오시면 글 이해에 많은 도움이 있을거라 생각되는군여...
철수는 바로 집으로 가려다 당구장을 들렸다. 두 시간 정도 은정이 누나 곁에 있다가 왔는데도 당구장에서 친구인 동엽이를 볼 수 있었다.
"아직도 치고 있냐? 불쌍한 놈, 축제 기간 내내 당구장에서 살아라."
"오늘 얘랑 편 먹고 편게임 해서 게임비 안 물었어."
철수는 동엽이와 같이 있는 자기과 동기인 승헌이를 꼬아 보았다. 키도 크고 참 잘 생긴 놈 치고는 불쌍한 놈이다.
"축제 기간인데 당구치러 예까지 나왔냐?"
"오늘 집에 안들어 갈거다."
"왜? 그럼 너 어디서 잘건데?"
"동엽이 방에서 자고 갈거야."
"넌 축제 기간인데 만날 사람 없어? 생긴 걸 보면 여자 친구가 있을 법도 한데."
"없어. 너도 한 판 할래."
"불쌍한 놈. 집에 가 새끼야. 그리고 내일은 학교 나오지 마. 당구장 아저씨가
우리 과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저기 보니까 선배들도 잔뜩 있는데..."
"나도 축제 기간에는 집에 안 들어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오늘 집에 안 갈거다. 축제 기간인데 집에 있어 봐. 그러지 않아도 우리 누나들이 휴일에는 집에만 박혀 있는 나를 보고 혀를 차는데..."
"계속 당구 칠거냐?"
"응."
철수는 널대를 하나 들고 와 당구장내를 훑어 보았다. 당구 치는 사람들 모두
가 공대 내에서 봤던 사람들 같다.
"너도 뭐 별수 없네. 쯧쯧!"
철수가 당구 큐대 잡는 모습을 보자 승헌이란 녀석이 혀를 찼다.
"나는 그래도 임마. 동아리 내에 아는 누나들 있어. 나는 최소한 내일 맛있는
거 얻어 먹는 약속도 잡아 논 사람이야."
"너, 나이 많은 여자들 하고 놀지 마라. 내가 누나들이 많아서 아는데, 빨리 늙어. 기를 빼앗기거든."
"기를 빼앗긴 놈이 하루 종일 당구 칠 체력은 있냐?"
"정신력으로 치는 거야. 나는 최소한 당구장에서는 서럽지 않거든. 내 또래에 200 치는 사람 봤냐?"
"나도 금방이야 새꺄. 공 좋게 함 놔나 봐. 동엽아 저기 셈 판, 다섯 개만 떼주라."
"아직도 오십이냐? 너 이제 80 놔도 돼."
"그래. 80 놓고 치지 뭐."
철수는 당구를 쳤다.
''나쁜 놈들, 150, 200이나 되는 것들이 겨우 50 치는 놈 다마수를 올리게 해놓고 이겨?
담에 은정이 누나랑 편 먹고 함 이겨 줄테다. 이 녀석들은 여자라면 무조건 얕보는
경향이 있는 전 근대적 사고방식의 놈들이니까. 하하.''
철수는 당구에서는 무참히 패했지만 최소한 이 녀석들 보다는 자기 처지가 낫다
는 생각을 했다. 축제 기간, 당구장 밖에는 갈 데가 없는 놈들. 철수의 머리 속
에는 정희 누나가 떠 올려 졌고, 은정이 누나의 모습이 지나갔다.
''아, 내 나이가 두 살만 많았어도...''
철수는 깨끗이 세수를 한 다음 별 생각 없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철수는 세면대로 갔다가 씩, 웃었다.
''진짜 없어졌네. 가만 근데 거울 속 댁은 누구쇼? 내 주위에는 이렇게 잘 생긴
사람이 없는데... 댁의 부모님은 참 좋겠수, 이렇게 잘난 아들을 두어서. 근데
다른 부모님들은 한 달 용돈을 주는데 왜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잘난 아들에게
일주일 용돈을 주는거야. 그것도 쥐꼬리 만하게...''
철수는 어제 당구비로 남은 용돈을 날린 관계로 아침을 굶었다. 그래도 철수는
점심 이후는 배불리 먹을 것이라 기대를 했다.
"여보세요. 거기 핸드폰 맞아요?"
"네? 누구?"
"으이쒸 돈이 왜 이리 빨리 떨어지는 거야."
"철수니?"
"예, 우쒸."
"뭐야 너?"
"뚜뚜뚜..."
"여보세요?"
"왠일이니? 오랜만에 전화 하구선 우쒸,만 남발하더니."
"동전 바꾸러 갔다 왔어요."
"밖인가 보네?"
"예. 어? 또 떨어졌다 씨."
"어디야?"
"여기 약대 현관 앞 공중전화요."
"거기 내 차 보이니?"
"예."
"그럼 내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곧 나갈게."
"뚜뚜뚜..."
은정이가 자기 차 앞으로 왔을 때, 철수는 거기 없었다. 학생 회관 쪽에서 열심히 뛰어
오는 철수는 은정이를 보지 못하고 다시 약대 건물 현관 안으로 사라졌다. 은정이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리고는 철수를 따라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삐리리리."
은정이는 전화가 울리자 어이가 없는 웃음을 지었다.
"여보세요?"
"또 동전 바꾸러 갔다 왔었니?"
"네. 빨리 말해요. 차 보이는 데 뭐요?"
"아까 내 말 못들었어?"
"네."
"이 번엔 동전 많이 바꿔 왔니?"
"이 백원 밖에 없어요 빨리 말해요."
"잠시만."
"우쒸 또 떨어졌어."
"박철수!"
"목소리가 참 생생하게 들리네요."
"나 너 뒤에 있어. 넌 아직도 바보 같구나."
철수는 은정이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은정이의 말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다.
"야, 신기하다. 헨드폰 잠깐 줘 봐요."
"왜?"
"빨리 줘 봐요. 돈 떨어진다 말이에요."
은정이의 웃음은 약간 거만하게 바뀔 정도였다. 철수는 한심한 모습이지만 귀여
워 보이긴 했다. 한손에는 공중전화 수화기를 잡고, 다른 한 손엔 헨드폰을 쥐
고 번갈아 귀에 댔다 때었다 한다.
"여보세요? 어 들리네. 그러는 댁은 누구세요? 여기도 들리네. 나 박철수요. 나
도 박철순데... 그참! 신기하네."
"동전 바꾸러 학생회관 까지 갔다 온거야?"
"예."
"그럼 거기서 전화하지."
"거긴 누나 차가 안 보이잖아요."
"너는 계속 바보 같겠다."
철수는 아쉬운 듯, 헨드폰을 은정이에게 넘겼다. 은정이는 철수를 데리고 어디
먼 곳으로 갈 모양이다. 바로 자기 차로 철수를 안내했다.
"너 계속 거기 앉을거니?"
"여기가 편하다 했잖아요. 근데 어디 멀리 갈거에요?"
"너, 오늘 서울 올라 갈 거 아니니?"
"맞아요."
"그럼 서울 가서 사줄게."
"나, 집에 갈 준비 안했는데."
"가다가 너네 자취방 들리지 뭐 그럼."
"내 자취방 알아요?"
"저번에 가 봤잖아."
"아, 맞다. 근데 좀 지저분할텐데."
"누가 니네 방 들어 간대니? 밖에서 기다릴테니 준비하고 나와."
"알았어요."
"저번에 보니까 별로 지저분 하지 않던데?"
"내 방이요?"
"응."
"내 방이야 깨끗한 편이지요. 근데 주위가 지저분해요."
"혼자 사니까 좋아?"
"자유로운 건 좋은데, 심심해요. 홍기사? 출발합시다."
"헛! 그래 알았어."
"나도 운전 면허증을 따야 할텐데."
"니가 운전 면허증 따면 내가 도로 주행 시켜 줄 수 있어."
"이 차로요."
"응."
"이런 비싼 차, 잘못해서 긁어 버리면 나 물어 줄 돈 없어요."
"흠."
철수는 자기 방에 들어 갔다가, 생각 보다 자기 방이 깨끗하고, 가져갈 물건이
없자 들어 갔던 그대로 다시 나왔다. 내가 철수를 너무 바보처럼 꾸미고 있다.
"어디 가는 거에요?"
"뭐 맛있는 거 사줄까?"
"사주는 사람 맘이지요."
"양식으로 할까? 한식으로 할까? 아니면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
"탕수육은 어떨까요?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 큰 중국집이 있거든요. 울 아버지
따라가서 얻어 먹어 본 적이 있는데 맛있대요. 내가 요즘 약 먹기 때문에 돼지고
기는 못 먹어요. 쇠고기 탕수육 사주세요."
"사주는 사람 맘이라면서 니 주장은 다 밝히네? 어디 말하는 거야? 만리장성?"
"아니요. 중국성이요."
"근데 무슨 약 먹어?"
"보약이요. 저 일 년에 사개월 정도 약을 달고 다녀요."
은정이는 제법 차분한 어투다. 걱정하는 투로 물었다. 은정이 표정이 잠시 어두
워 졌다. 철수는 뒤에 앉았기 때문에 그걸 알리가 없다.
"너 몸이 약하니? 어디 안 좋은 데 있어?"
"제가 말입니다. 고 삼때 체력장에서 1000미터 오래 달리기 일등한 사람이에요.
삼일을 굶어 봐요. 내가 얼굴이 누렇게 뜨나."
"몸이 튼튼하다는 말이야?"
"네."
"근데 왜 약을 달고 다니는데?"
"그럴 일이 있어요. 저 약먹기 진짜 싫거든요. 제 자취방 냉장고에 먹지 않고
쌓아 둔 약봉지가 제법 있지요. 누나 피곤하면 말해요. 몇 개 줄테니까."
"그래. 그럼 중국성으로 간다?"
"어딘 줄 알아요?"
"너네 동네랑 우리 동네 별로 멀지 않아."
"맛있니?"
"그럼요."
"너 몸무게 얼마야?"
"그걸 왜 물어요? 나한테 관심 있어요?"
"키는 175쯤 되겠다?"
"176이에요. 어떻게 해서 키운 일센티인데 깎아 내리면 섭하죠."
"몸무게는?"
"65키로 정도 나가요. 왜요?"
"그럼 보통 체격인데, 그 많던 걸 어떻게 다 먹을 수 있니?"
"누나도 자취해봐요."
"예쁜 누나 잘 먹었습니다."
"그래."
"그럼 전 이만 집에 가 보겠습니다. 여기서 걸어가도 되니까 태워 줄 필요 없어
요. 잘 가세요."
"어머 얘 좀 봐. 너 여자 친구 만나서도 이러니?"
"여자 친구가 없어서 이런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어떻게 볼 일 끝났다고 그냥 가니?"
"그래서 인사하고 가잖아요."
"너 여자친구 사귀기 진짜 힘들겠다."
"누나가 그런 말 안해도 충분히 힘들어 하고 있어요."
"밥을 얻어 먹었으면 차 한잔 대접해야지."
"어제 당구비로 날려서 돈이 없는데요."
"우리 동네 가서 차 한잔 하고 가라."
"돈 없는데요."
"빌려줄게."
"좀 치사하네요."
"그럼 내가 사줄게."
"진짜에요? 근데 왜 하필은 누나 동네에요?"
"남자가 여자를 만났으면 집에 데려줘야지. 안그래?"
"누나 아무나 보고 그런 말 해요?"
"왜?"
"그런 말 하면 남자들이 착각해요."
"뭘?"
"저 년이 내게 맘이 있구나."
"너 또 년이라고 했어."
"아, 실수. 저 여자분이 나에게 마음이 있으시구나."
"칫! 그래서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모든 여자들이 내게 맘이 있다고 생각을 하죠. 왜? 나는 잘났으니까. 그러나 버트.
난 연상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이렇게 착각하고 사는 녀석한테 어떻게 정희가 좋은 점수를 주었을까?"
"아, 잠시 정정을 하겠습니다."
"뭘?"
"정희 누나는 내 연상이라도 좀 생각해 볼 마음이 있어요."
"치. 갈거야 말거야?"
"갑시다. 뭐 사준다는데."
"후후."
"왜 웃어요?"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