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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된 줄 알면 치료되듯 중생 자각하면 행복 열려” | ||
정신과 전문의 국제포교사 박성봉 씨 | ||
[법보신문] 7 |
“알고 보니 저도 중독된 존재였어요.” 정신과 전문의이며 국제포교사 자격을 가진 박성봉(43·선각) 씨. 그가 말하는 ‘중독’이란 바로 탐, 진, 치 삼독이다. 인간은 사회에서 끊임없이 부와 명예, 권력을 갈망하기에 중독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독자’의 불교적 표현이 ‘중생’이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중독된 줄 알면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중생임을 자각하는 그 순간이 ‘완전한 행복’의 출발”이라고.
부산진역 부근 ‘한 정신과 의원’에 재직 중인 그는 ‘현대사회와 정신건강’을 불교적 관점에서 다루는 시민강좌를 개최했고 불교학의 다양한 분야 가운데서도 어렵기로 손꼽히는‘유식’을 강의하는 국제 포교사다. 이 독특한 불교 이력 이전에 그는 알코올 중독 환자 전문 의사다. 인제의대를 졸업하고 1998년에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그는 2003년부터 약 4년간 부산시립정신병원의 알코올중독 전문병동을 맡아 근무하면서 불교를 임상에 도입해 왔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을 따라 부산 덕포동 옥천암을 가끔 가는 정도였죠. ‘행복’에 대한 자문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됐어요. 막연히 그 답은 불교에 있을 것 같았고 마침 집 근처의 용화사에 불교학생회가 있어서 가입했습니다. 반야심경, 천수경을 외우고 1080배도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정작 그 뜻을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은사의 권유에 따라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인문학을 좋아했던 그는 문과에 가장 가까운 정신의학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불교와는 멀어졌다. 11년 동안 불교 책은 거의 보지 않았다. 대신 의학도로서의 노력은 전국 최고 논문상을 받을 정도로 우수했다. 1998년 전문의가 됐고 결혼 후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향해 질주하듯 달려 나갔다.
108배· 명상으로 알코올 중독자 치유 그러던 그가 불교를 다시 만난 것은 부산시립정신병원에서 알코올 중독 환자들과 마주할 때였다. 그는 “‘인생’이라는 물고 물리는 싸움의 연속에 고단함을 느끼고 있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자주 초조하고 짜증이 났고 자신보다 앞서가는 이들에 대한 질투심에 분통이 터졌다. 이유 없는 미움도 늘어만 갔다. 그는 자문했다. 지금 행복한가, 행복해 지고 있는가.
“그 때 ‘중독과 은혜’라는 책을 보면서 중독이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나 집착을 의미하고 저 역시 예외가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이 책은 치료법을 기독교 신앙으로 제시했고 그 설명에도 깊이 공감했어요. 이 시기 ‘A.A.’라는 모임을 만나면서 개종을 고민할 정도였고요.”
‘A.A.’는 알코올 중독자들의 자가 치유 그룹이다. 지난 날을 뉘우치고 금주를 하면서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실제 성품이 바뀌었고 그 비결은 단순했다.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철저한 시인과 회복에 대한 확고한 믿음, 모든 잘못에 대한 진정한 반성 그리고 바른 생활의 적극적인 실천이다. 그런데 그 방법의 뿌리 역시 기독교에 있었던 것이다.
그의 혼란은 우연히 집어든 불서 한 권으로 종결됐다. 10여 년 전에 읽었던 낡은 책에서 다시 만난 붓다의 가르침에는 타 종교 신앙에서 경험한 감동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불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유식의 경우에는 거의 독학을 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와 불교에서 말하는 삼독 그리고 중독이 사실은 같은 개념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A.A.’의 치유 원리도 사성제 속에, 그 방법은 팔정도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그리고 이것은 저를 비롯해서 탐, 진, 치에 물든 모든 중생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믿음도 갖게 됐습니다.”
확신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매주 한 ‘A.A.’ 모임의 무료봉사를 담당하면서 그들의 치유를 돕기 시작했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108배와 명상, 염불 등의 수행을 권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고 그 모임과의 인연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의 원칙은 직접 실천해 본 수행을 권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매일 108배와 명상을 했다. 이후 반야심경, 천수경 등 경전 독경을 더했고 이어 이산 혜연 선사 발원문, 금강경, 광명진언, 염불까지 20~30여 분으로 시작한 일과 수행이 어느덧 1시간을 넘어섰다. 그렇게 1년을 넘게 지속한 뒤 지금도 천수경과 명상, 광명진언 21독은 매일 빠지지 않는다.
2008년 ‘한 정신과 의원’으로 근무처를 옮긴 후 그의 삶에는 다시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채식의 시작과 포교사 인생의 출발이다. 이 병원은 한국불교연구원 이사장인 부산 구도회 한동대 회장이 원장인 곳으로, 법당이 근무처와 바로 붙어있고 병원 내에서 식사를 만들어 먹는다. 병원에서는 그의 채식에 맞는 식단을 갖추어 주었다. 집에서도 가족들이 식단의 변화를 동의했다. 그 기념으로 2008년 초 부산 서면 한 채식식당에서 가족 외식을 했고 인근 영광도서에서 자녀들과 책을 고르다 그는 안내문 하나를 발견했다. ‘불교 영어 강좌’였다.
“그곳에서 1년을 공부한 후 국제포교사 자격을 취득하자마자 불교 영어 강좌를 이끌던 이두석 포교사가 강의를 제안했어요. 고민 끝에 그나마 자신 있던 ‘유식’을 맡았고 반응도 좋았습니다. 용기를 내서 한 가지 원을 더 세웠어요. 일반 시민들을 위한 강좌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연기법 도입한 시민강좌 인기 한 달 여 동안의 준비로 시민강좌 ‘현대사회와 정신건강’이 탄생했다. 이 강의는 과학이나 문명의 발달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고민거리와 스트레스에 대한 해결방법을 불교의 연기법과 삼법인, 사성제 등을 통해 모색해 보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강의실에 한동대 원장이 그의 부인과 함께 참여했다.
까마득한 후배 강의를 경청한 한 원장은 오히려 구도회 강의를 제안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에게 경책 받는 심정으로 강단에 섰고 그 격려에 힘을 얻어 시민 강좌도 부산불교교육원과 홍법사에서 두 차례 더 열었다. 강의비는 전액 생명나눔실천 부산지역본부를 비롯한 불교 단체에 회향했다. 그의 강의는 부부 관계 개선에도 적용됐다. 지난 8월 홍법사 주지 심산 스님의 제안으로 제1회 부부 명상 템플스테이 진행을 맡으면서 참가자의 80%가 다시 참여할 뜻을 전해 왔다.
“부부템플스테이를 준비하면서 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나는 잘 살고 있냐는 것입니다. 저 역시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다툼이 있어요. 이 템플스테이 진행을 제안 받았을 때 솔직히 부담이 됐거든요. 그래서 아내와의 관계부터 개선해보자는 생각을 가졌죠. 그런데 그런 제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내도 긍정적으로 변화해 줘서 우리 부부 역시 이전보다 훨씬 이해의 폭이 넓어졌어요.”
그는 요즘 게임 중독 환자를 대하는 상담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준비 중이다. 시민 강좌에서 가장 인기 있던 주제가 ‘인터넷 게임에 빠진 아이, 어떻게 치료할까?’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다시 삶의 행복은 무엇인지 물었다.
“윤회를 벗어나는 겁니다. 아직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정토’를 발원합니다. 중생이 열반의 세계로 가는 최선의 선택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염불하고 바라밀을 실천해야죠.”그의 책상 한 쪽에 놓인 달라이 라마의 메시지가 그의 발원을 대신하고 있었다.
“완전한 행복에 이르기를! 또한 모든 사람들이 이 길을 함께 가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