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들녘 풍경
말복을 하루 앞둔 팔월 중순 화요일이다. 새날이 밝아와 자연학교 등굣길 차림으로 현관을 나섰다. 간밤 새벽도 열대야에 해당할 기온이었으나 아침 공기는 선선해진 느낌이다. 우리나라와 무관한 일본 열도 바깥 동쪽 해상에는 태풍이 비구름을 몰아닥치게 했다. 최근 일본은 지진으로 땅을 흔들어 놓았는데 태풍까지 영향권에 들어 자연재해에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임을 실감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주간 일기 예보는 강수 기미가 전혀 없었다. 태풍이 우리나라로 방향을 틀어 비라도 내려주어 달구어진 대지를 식혔으면 하는 기대가 앞선다. 연일 따가운 햇볕에 시달리니 시원하게 쏟아질 한줄기 소나기가 그리워지는 때다. 그나마 간밤 새벽은 복사열이 식고 바람이 살랑거려 한증막 분위기는 아니나 한낮은 여전히 폭염경보가 내려지는 날씨를 감내해야 한다.
댓거리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도중 소답동에서 내렸다. 월영동을 출발해 주남저수지를 둘러 본포로 가는 41번 버스로 갈아탔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버스는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주남삼거리를 지나 화목과 동전을 지났다. 차창 밖으로는 주남저수지 갯버들과 연근 재배지가 무성했다. 논으로 보내는 농업용수로 수위가 낮아진 저수지는 수면에 엉겨 자란 수초가 드러났다.
41번 버스는 봉강에서 용연을 거쳐 산남과 죽동에서 윗대방과 대방을 거쳐 들녘을 빙글 두르는 노선이었다. 대산 산업단지에서 가술을 거쳐 모산을 지난 수산교에 이르러 마지막 남은 손님으로 내렸다. 나를 내려준 기사는 강변을 따라 본포로 향해 나아갔고 나는 강둑으로 나가 건너편 밀양 수산 시가지를 바라봤다. 강심으로는 수산대교가 가로지르고 강변은 높은 아파트가 보였다.
강둑에서 김해 한림으로 뚫리는 60번 지방도 횡단보도를 건너 요양원 곁으로 난 들녘 들길을 걸었다. 초여름까지 토마토를 수확했던 비닐하우스는 작물이 바뀌어 가지인지 파프리카인지 모를 어린 모종이 심어져 자랐다. 일부 비닐하우스에는 멜론이 영글고 있었는데 추석에 맞추어 출하시키려 준비하는 듯했다. 과피가 그물 무늬인 머스크 멜론은 세워둔 지주에 매달려 영글어갔다.
모산마을과 구산마을 사이 넓은 농경지는 출수를 앞둔 벼가 무럭무럭 자랐다. 제초제와 농약은 드론으로 뿌려짐을 지난번 본 바 있다. 동남아 청년 네 명이 논 가운데서 아침 이른 시간부터 허리를 굽혀 일했다. 주인으로 부여받은 임무는 피를 비롯한 잡초를 뽑는 일이었는데 씨앗이 여물기 전 마쳐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자 역시 피를 뽑는 일꾼 둘을 만났는데 베트남 청년이었다.
벼가 자라는 논은 추수 후 뒷그루가 더 소득원이 되는 당근 농사가 기다린다. 예전에는 수박을 많이 가꿨으나 홍수 출하로 가격이 출렁거려 근년에 와 당근으로 바꾸었다. 비닐하우스에서 겨울을 넘겨 이듬해 늦은 봄과 초여름에 캐내고 그 자리 다시 벼를 심었다. 땅을 갈거나 무거운 짐을 운반함은 농기계로 이루어지나 손길이 가는 인력은 동남아에서 온 청년들이 맡아 해결했다.
벼농사 단지와 이어진 대형 비닐하우스에는 한두 달 뒤 따낼 오이가 자랐다. 죽동천을 건너 빗돌배기 감빛 체험 마을을 지나니 햇당근을 캐고 있었다. 굴삭기가 땅을 뒤집어 놓으면 동남아 청년들이 쇠스랑으로 연근을 찾아내 상자에 담았다. 풋고추나 토마토같이 열매를 따는 일은 부녀들이 하고 힘을 써야 하는 일은 청년들에게 맡겼다. 그들은 마을 현지 마련된 숙소에서 지냈다.
가술까지 걸어 아침나절 수행할 봉사활동을 마치고 마을 도서관에서 지내다 시내로 복귀했다. 해거름에 집 근처를 지나오다 ‘반송 저자’를 남겼다. “재건축 단장으로 달라진 상권인데 / 장마 후 연일 폭염 오가는 행인 겨냥 / 푸성귀 펼치는 골목 추억 서린 장터다 // 풋호박 나물박을 곁에다 앉혀 놓고 / 즉석에 껍질 까는 호박잎 고구마잎 / 어디서 땀 흘려 가꿔 시시때때 잇는다” 24.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