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dHDXdbSWu0E?si=ZaQOOt4lqSiaM-eQ
( Beethoven: Symphony no. 9 "Choral" Furtwangler, Bayreuth 1951)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그의 지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위와 같을 것이다.
그는 리허설에서도 그저 ‘여기는 잘해야 돼. 반드시. 잘. 알겠지?’하는 식이었다 한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을까. 아니, 어떻게 그 수준을 뛰어넘어 흔히 말하는 ‘가장 위대한 연주’가 솟아나온 것일까? 그의 지휘는 기본적으로 박자를 센다기보다는 멜로디의 선을 그려나가는 구성이었으나, 생명을 어루만지는 듯한 초월적인 유기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긴장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다시 이완과 긴장을 반복해 살아 있는 유기체의 박동, 나아가 자연의 움직임과 같은 생생한 연주를 이끌어냈다. 중세 독일의 영감적 신비주의, 템포 변환의 신비, 작품의 영적인 본체를 찾아내는 힘 등, 그는 ‘영감과 마법’으로 지휘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가 카리스마의 극단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가 지휘대에 서면 단원들은 물론이고 청중들까지그의 존재에 빨려들었다.
그가 다듬어낸 음악은 ‘작곡가를 죽인’ 푸르트벵글러 자신의 것이었다. 19세기 낭만주의의 맥을 이어 낭만의 진폭을 극대화시키고 주정주의와 직관을 투영한 그의 연주가 정신성에 충만해 있었다는 사실은 당연한 결과였다. 히틀러가 나치즘과 전쟁과 학살로 ‘위대한 독일 정신’을 벼랑으로 몰고 갔다면 푸르트벵글러는 그러한 고난 속에서도 추락하는 독일 정신에 날개를 달았던 것이다.
고고학자인 아돌프 푸르트벵글러의 아들로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전통 게르만 혈통을 물려받았다. 처음에는 작곡을 공부했지만 1905년부터 브레슬라우·뮌헨 등지에서 연습지휘자로서 경험을 쌓았고, 1906년에 데뷔, 11년에 뤼베크 오페라극장의 지휘자가 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15년 만하임 오페라극장 지휘자로 인정받고 20년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의 지휘자가 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한 결과, 36세이던 1922년 니키쉬에게 베를린 필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를 물려받았다.
1925년부터 27년까지 뉴욕 필에 초빙되었고 27년부터 30년까지 빈 필 겸 빈 국립오페라극장 상임, 게다가 바이로이트 음악제의 총감독까지 석권해 명실 상부한 음악계의 ‘황제’가 되었다. 33년부터의 나치스 통치 하에 힌데미트 및 유태계 음악가들의 도피를 돕기도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범으로 몰려 활동정지 처분을 받았다가 1947년 무죄판결로 복권되어 다시 베를린 필의 무대로 돌아왔다. 52년의 바이로이트 부활 연주회를 지휘했고, 같은 해 베를린 필의 종신지휘자가 되었다. 그리고 1954년 죽음과 함께 ‘음악계의 제왕’의 권좌를 내놓게 된다.
그의 음반으로는 베토벤의 교향곡들이 우선 거론된다. 3번 ‘영웅’ (52년), 5번 ‘운명’(54년), 6번 ‘전원’(52년), 7번(50년) 등의 EMI 스튜디오 레코딩도 있으나 역시 푸르트벵글러의 진정한 모습은 라이브 레코딩에서 찾을 수 있다.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의 3번(44년)과 5번 (47년), 그리고 EMI 레이블의 유명한 바이로이트 실황 9번 ‘합창’ (52년) 등이 그것이다. 한편 슈만의 교향곡 4번(DG, 51년), 브람스의 교향곡 1번(DG, 52년), 3번(EMI, 49년), 4번(EMI, 48년) 등도 그의 음악을 알려면 꼭 들어봐야 하는 음반들이다.
출 처 : [인터넷] http://www.kamc.or.kr/m_academy/player/conductors8.htm
https://youtu.be/mahO6zOQpss?si=mbPI2b_eYFrzHtWn
(Wilhelm Furtwängler Antonín Dvořák «From the New World» symphony № 9 on November 30, 1941 (Phili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