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호박과 상사화
광복절을 하루 앞둔 팔월 중순 수요일은 말복이었다. 스무날 전 칠월 하순 지난 중복에 이어 올여름 세 번째 복날이다. 초복 중복 말복은 절기에 포함되지 않지만 여름을 보내는 지표로 곧잘 쓰인다. 열흘씩 끊어 한 달에 걸쳐 지나는데 올해는 중복과 말복 사이 스무날 걸쳐 말복이 도래했다. 이런 경우는 월복이라는데 만세력 책력에서 입추 후 첫 경(庚)일을 복날로 정해 놓아서다.
수요일 이른 아침 자연학교 등굣길이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팔룡동을 거쳐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소답동에서 내렸다. 창원역을 출발해 주남저수지를 비켜 가는 1번 마을버스 첫차를 탔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지날 때 탄 중년 부부 중 남편은 자리가 없어 사서 가야 했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용잠삼거리에서 승객을 더 태우고 내리기도 하면서 주남삼거리를 지났다.
나는 버스가 판신마을을 지날 때 내렸다. 농가와 상당한 거리를 둔 버스 정류소에서 아득하게 보이는 주남저수지 둑을 바라보니 벼들이 자라는 들판이 펼쳐졌다. 가까이 동판저수지로는 무성한 갯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주남저수지 배수문으로부터 흘러온 주천강 둑을 따라 걸었다. 구름 속에 아침 해가 솟아 진영 신도시 아파트단지는 역광으로 건물 윤곽만 실루엣이 되어 비쳤다.
신등에서 남포리 사이 넓은 들판은 일모작 벼농사 지역으로 비닐하우스단지는 없었다. 올해 들어 그곳 들녘을 산책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보급용 벼 종자를 생산하는 채종 단지였다. 논 어귀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볍씨 종자와 생산자 성함을 이름표처럼 만들어 푯말로 세워두었더랬다. 아침 햇살이 아직은 뜨거운 편이 아니라 둑길을 걸을 만도 했으나 소금은 얼음 생수와 살짝 삼켰다.
둑길 길섶을 텃밭으로 일구어 농사를 짓는 남포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온 아낙은 붉게 익은 고추를 따 모았다. 그 곁에 농사를 잘 지었던 참깨는 수확을 마쳤고 땅콩은 꽃이 저물어 뿌리가 잘 들고 있었다. 농수로 언저리는 등기부 지번에 등재되지 않은 하천부지처럼 부지런한 이들이 텃밭으로 가꾸는 자투리땅이었다. 대산 일대 넓은 들녘은 밭이 없어도 잡곡을 생산하는 터전이었다.
둑길에서 배수장으로 내려 들녘을 꿰뚫는 농로를 따라 신등마을로 가 찻길 건너 신동마을을 지났다. 텃밭에 자라는 부추는 하얀 꽃을 피워 절기가 입추가 지났음을 알렸다. 녹두도 꼬투리가 여물어 수확 중이고 농수로 언덕에는 넝쿨로 뻗어 나간 호박은 누렁 호박을 여럿 맺어 눈길을 끌었다. 가던 길을 멈춰 사진으로 담아두고 장등 들머리 산업단지 입구에서 가술 거리로 향했다.
2시간 아침 산책을 마치고 문이 열린 카페에 들어 얼음 커피로 땀을 식히면서 아까 남긴 호박 사진을 시조로 다듬었다. “주남지 물길 닿는 벼농사 신동 들녘 / 농수로 가장자리 비탈진 한 뼘 땅도 / 허투루 놀리지 않고 텃밭으로 가꿨다 // 뙤약볕 폭염에도 넌출이 뻗어 나가 / 꽃 피워 열매 맺은 덩그런 누렁덩이 / 의 좋은 형제를 보듯 서열 지켜 달렸다” ‘신동 호박 형제’ 전문이다.
아침나절 주어진 봉사활동을 마치고 평소 들리던 마을 도서관은 가지 않고 한식 뷔페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창원중앙역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한낮 볕살이 뜨거워도 용추계곡으로 들어 한여름에 피는 야생화 탐방에 나섰다. 장마 이후 비가 없어 계곡은 말라 바위와 자갈돌이 드러났다. 계곡 들머리 늦여름과 초가을 지표로 삼는 선홍색 물봉선은 꽃을 피워 제 임무를 다했다.
우곡사 갈림길 근처를 지나면서 맥문동은 보라색 꽃을 피워 여름이 가고 있음을 알렸다. 야윈 잎줄기에 핀 꿩의다리꽃도 봤다. 드디어 용추10교를 지난 바위 더미 아래에서 주황색으로 피어난 상사화를 만났다. 그곳에 한두 송이가 아닌 군락을 이루었는데 장성 백양사 근처에서 먼저 발견되어 ‘백양 상사화’로 불리는 종이었다. 포곡정에서 진례산성 동문 터로 올랐다가 되돌아왔다. 24.08.14
첫댓글 주 시인 님께서 땀 흘려 탐사하시며 찍어주신 상사화 꽃을 보니 문득 고향집이 그리워집니다.
지금 쯤 부모님께서 심어두고 가신 상사화가 울타리 밑에 촉을 올리고 노랑과 분홍, 흰꽃을 피우고 주인을 기다릴 건데
한가위 명절 때나 찾아가면 이미 상사화는 지고 꽃무릇(9.20전후)은 꽃대를 올려 잔치를 준비 할거다.
상사화와 꽃무릇(석산)은 한 달 남짓 시차를 두고 피어나 동시에 보기는 어렵다.
더러 상사회와 꽃무릇을 혼동하여 꽃무릇을 상사화라 하는데 꽃무릇은 늦게 피고 꽃 모양이 확연하게 다름을 알고 부르면 됩니다.
주시인님 고맙습니다.
호명 선생님! 회신 반갑고 고향집 꽃무릇 얘기에 진한 그리움이 묻어 납니다. 늘 건안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