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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이미 메시앙만의 독특한 화성과 리듬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전쟁 전 메시앙의 음악은 표현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음악들이었고, 다소 낭만적인 음악이었다. 메시앙이 만들어 내는 화음은 마치 자연계에 존재하는 '평형의 법칙'을 나타내는 듯 계속적으로 안정적인 화음을 지향하여 움직이지만 평형상태는 곡의 마지막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메시앙은 이러한 작곡양식을 평생을 통해 고집했다. 이러한 개성이 잘 나타난 곡으로 1933년에 작곡된 '그리스도의 승천'이 메시앙의 초기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제 2기: 1936-1948, 새로운 리듬법의 개척
이 시기는 전쟁으로 인하여 자유로운 작곡활동을 할 수 없었던 시기였지만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곡과 투랑갈릴라 교향곡 등 메시앙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이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대부분의 작곡동기를 성경에 두고 있던 메시앙으로서는 여러 장애요소가 많기는 하지만 금방이라도 세상의 종말이 다가올 것 처럼 혼란했던 이 시기에 결정적인 음악적 영감을 받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은 특히 요한 묵시록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혼란스러운 전쟁상황과 포로신분이 작곡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제 3기: 1948-1992, 리듬과 그 밖의 요소와의 결합
전쟁이 끝난 후 메시앙은 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며 칼 슈톡하우젠이나 피에르 불레즈같은 훌륭한 음악가를 지도하였다. 또힌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쇤베르크와는 달리 메시앙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실험적인 음악에 관심을 기울였다. 메시앙은 새 소리를 채보하는데에 굉장한 열정을 보였었는데 그 활동이 본격적인 음악적 업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의 일이다. 그는 "나는 새 소리를 두 가지의 다른 방법으로 음악에 사용하였다. 하나는 가능한 한 가장 절대적인 음악적 양식의 윤곽을 그리려 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새 소리를 부드럽고 신축성 있는 물질로서 다룬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의 음악 연구가들이 탐닉하는 전자적인 음악의 합성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 자신의 새 소리 채보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위의 목록은 메시앙의 주된 작품을 망라한 것이며 오르간곡은 모두 빠져 있으므로 메시앙이 작곡을 계속한 시기는 고전음악역사상 모든 작곡가를 통틀어서 가장 긴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곡 |
"Quatuor pour ls fin du Temps" 즉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곡"은 실내악곡을 거의 작 곡하지 않았던 메시앙에게 있어서는 매우 이례적인 작품이었는데, 원래는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 (Quartet for the end of time)'이라고 읽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마도 이 곡의 일본어 제목인 '世の終わりのための四重奏曲'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다소의 오역일 가능성이 크다.
메시앙이 평생동안 거의 작곡한 일이 없는 실내악곡 - 그것도 피아노, 클라리넷, 첼로, 바이올린이라는 극히 이례적인 구성의 - 을 작곡하게 된 데에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이 곡이 작곡된 1940년 여름, 메시앙은 프랑스군의 일원으로서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있었다. 그는 폴란드의 질레지아에 있는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수용소의 동료들 중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다른 세 명과 함께 연주하기 위해 4중주곡을 작곡하였고 메시앙 스스로가 피아노를, 장 르 불라르가 첼로, 앙리 아오카가 클라리넷, 에띠느 파스퀴에가 바이올린을 다룰 줄 알았기에 유례없는 구성의 4중주곡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전곡은 8악장으로 구성되며 초연은 1945년 1월 포로수용소 내에서 5000여명의 동료 포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메시앙을 포함한 위의 4명에 의해 이루어졌다. 곡의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메시앙은 당시의 연주에 대해 "결코, 나는 그 만큼 주의깊게, 그리고 이해하면서 음악을 들은 적이 없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 곡은 표제가 붙어있는 8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8악장으로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6일간의 천지창조 다음에 신의 안식일인 7은 완전한 숫자이기는 하나 영원 속으로 뻗어나가 마침내는 불멸의 광명, 영원한 평화를 뜻하는 '8'이 되기 때문이라는 작곡가의 설명이 전한다. 곡은 다양한 인간의 정서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많은 음악적 절차를 실험한 큰 규모의 곡이다. 사용된 음악적 절차 중 몇 개는 메시앙 스스로에 의해 발전된 것이며 몇 개는 지난 시대의 작곡법에서 이어져 온 것으로 20세기 초기에 발전되기 시작한 것들이다. 이 곡의 양식적 특징은 메시앙 작곡기법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선율면에 있어서는 성가곡에 기반을 둔 선법적인 것이며 또한 합성음계에 기초하고 있다. 새의 소리를 도처에서 모방하고 있으며 음과 리듬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리듬적인 면에서는 동기적으로 특정한 목적 (종지)을 위해 사용된 일정하고 작은 리듬단위를 가지고 있다. 아이소리듬 (isorhythm: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성부들이 반복적인 선율패턴과 리듬패턴 - 콜로르와 탈레아라고 부른다 - 을 사용하는 구성원리로서 이 패턴들은 서로 일치할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선율패턴이 리듬패턴보다 길기 때문에 엇갈리는 경우도 있으며 본래 14-15세기에 사용되던 작곡양식이다), 비역행형 리듬 (non-retrogradeable rhythm: 대칭적인 리듬, 하나의 리듬패턴이 앞에서 진행할 때와 뒤에서 진행할 때 모두 일치, 후반부가 전반부의 정확한 역행), 층을 이루는 리듬 등이 등장하며 새소리와 인도음악의 영향이 엿보인다. 그러면 각 악장의 제목과 구성, 작곡자 자신의 멘트와 함께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1악장 'Liturgie de cristal (수정체의 예배)'
8악장 'Louange a I'mmortalite de Jesus (예수의 영원성에의 송가)'
Extrement lent et tendre, extatique 연주시간: 약 8분 30초
"바이올린의 장대한 독주, 왜 두 번째의 송가인가. 이 송가는 특히 예수의 제 2의 모습, 즉 인간 예수로서 육체화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소행한 '말씀'으로 향하고 있다. 고음역의 정점에 이르는 온화한 고양은 인간이 '신'에게, 신의 아들이 '성부'에게 피창조물이 '천국'을 향하는 상승이다."
- 5악장에 대응하는악장이다. 5악장과 마찬가지로 E장조이며 이번에는 '극도로 느리고 편안하게, 기쁨에 넘쳐'라는 악상기호를 붙이고 있다. 피아노의 반주를 받는 바이올린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신 예수를 찬양하고 있다.
현대음악을 들으면서 원시적인 충동 이외의 감동을 느낀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메시앙의 '세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곡'은 그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몇 번 반복해서 듣는 사이에, 혹은 단 한번만을 듣고도 쉽게 매료될 수 있는 곡이다. 이 음악에 숨겨진 중세풍의 작곡양식이라든가 종교적인 배경을 굳이 알 필요는 없다. 결코 쉽게 다가올 수 없는 음악이지만 막상 받아들이는데에 이렇다할 거부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직면한 세기말적 상황과 음악의 사상이 교묘한 공명을 이루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메시앙은 우리시대의 음악에 대해 '우리시대의 음악은 과거의 음악으로부터 대단히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것이다. 여기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마찬가지로 어떠한 단절도 없었던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작곡에 있어 구조주의도 인상주의도, 음렬주의의 작곡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색채적인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음악을 시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큰 흐름으로 보는 그의 시각을 엿볼 수 있으며 메시앙이 만들어 온 음악이 진보적인 것도, 또 복고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 그리고 여러 양식의 작곡기법이 망라되어 있는 그의 음악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 베토벨라
https://youtu.be/EXRij8mjzpk?si=51DD8WHQQP3VaCjy
(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곡 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