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용산 기슭에 있는 불회사(佛會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사찰 안내서에 의하면 불회사는 384년(침류왕 1)에 인도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창건하였으며,
일주문의 <初傳聖地德龍山 佛會寺>라는 편액의 내용과 같이
백제불교 전래와 동시에 건립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
불회사라는 사찰명은「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지리서를 보면
과거에는 불호사(佛護寺)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처음 창건 때는 불호사(佛護寺)로 불리다가
1808년(순조 8) 무렵부터 지금과 같은 불회사(佛會寺)로 절 이름이 바뀐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창건 내력에 대한 불회사의 홈피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몇 가지 짚어본다.
<불회사 홈피>에 따르면 『불회사는 동진 태화(太和) 원년(서기 366년)
인도의 마라난타 스님께서 창건하였고,
당나라 현경초에(서기 656년)신라의 희연조사(熙演祖師)가 재창하였으며,
원말 지원(至元)초(서기 1264년경)원진국사(圓眞國師)께서 삼창(三創)하였습니다.
조선 정조 22년(서기 1798년) 2월 덕룡산에 큰불이나 사찰의 전각이 완전히 소실된 것을
당시의 주지 지명(知明) 스님이 기미년(서기 1799년) 5월 15일 상량하였고,
1808년에 전각을 모두 복원하였습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인해 몇 개의 전각만을 남겨두고 모두 모두 소실된 것을
불회사 회주 정연스님이 1991년에 주지로 부임하여 25년간의 불사를 통해
6·25 때 소실된 것을 모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첫째, 불회사의 홈피에서는 창건연대가 동진 태화(太和) 원년(서기 366년)으로 되어 있지만
「불호사중창급단청문(佛護寺重刱及丹靑文)」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또한 <조선사찰사료>에 의한 기록과도 일치한다.
태화(太和)는 366년에서 371년 11월까지5년 11개월 동안 사용하였던
중국 동진(東晉) 시대 폐제(廢帝)의 연호이다.
둘째, <원말 지원(至元)초(서기 1264년경)원진국사(圓眞國師)께서
삼창(三創)하였다>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원진국사(圓眞國師:1171~1221) 고려 중기의 고승으로
일몰 연대를 고려하면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다.
포항 내연산 보경사에 조성된 스님의 승탑(보물 제430호)은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세워졌지만.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는)의 기록을 보면「원진국사 승형(承逈)이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국사로 추증하고 ‘원진(圓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는 입적 3년 뒤인 1224년(고종 11)에 세워졌는데,
비문은 당대의 문신 이공로(李公老)가 지었고 김효인(金孝印)이 썼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셋째, 신라불교의 최초 가람이 아도화상이 지은 구미 도리사(桃李寺)라고 하면
백제불교의 최초 가람은 일반적으로 영광 법성포의 불갑사(佛甲寺)를 일컫는다.
불갑사는 불회사와 같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 소속으로 되어 있으며,
1909년에 쓴 〈불갑사창설유서 佛甲寺創設由緖〉에 의하면
384년(침류왕 1)에 마라난타가 창건했고,805년(애장왕 5)에 중창했으며
그 뒤에도 여러 차례의 중창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384년(침류왕 1)에행사존자(行士尊者)가 창건하였다고 하였는데,
행사존자는 마라난타(摩羅難陀)의 다른 이름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마라난타라는 이름을 번역하면 ‘동학(童學)’이 된다고 하였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불갑사는 문주왕(475~477) 때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불갑사의 창건주와 창건연대가 불회사와 동일하다.
그러므로 백제불교의 최초 가람을<불갑사창설유서>에 따르면 불갑사가 되고
<불호사중창급단청문>과<조선사찰사료>에 따르면 불회사가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마라난타가 침류왕 원년(384)에 백제 도읍지로 바로 들어온 것이 아니고
지금의 법성포에 도착해서 불갑사를 창건한 다음
불회사를 세우고 도성으로 돌아갔다는 일설도 있다.
마라난타와 연관된 사찰은 불회사와 불갑사 외에 군산 불주사(불지사)가 있다.
@백제불교 전래를 살펴보면 마라난타(摩羅難陀)는 384년(침류왕 원년)에
중국 남조의 동진을 거쳐 백제로 건너왔다.
침류왕은 교외까지 나아가 그를 맞아 궁궐 안에 머무르게 하였다.
마라난타는 궁중에 머물며 국왕 등에게 설법하였으며
백성들도 점차 교화되어 불교를 신봉하게 되었는데,이것이 백제불교의 시작이다.
마라난타는 침류왕을 설득해 불사를 봉행하게 하였다.
385년(침류왕 2)에 새로운 도읍지 한산주(漢山州)에 백제 최초로 절을 창건하고
10인의 백제인을 출가시켜 득도시켰다.한산주는 지금의 광주지역에 해당한다.
마라난타는 인도 북부의 간다라 지역에서 중국으로 들어왔는데,
처음부터 불교를 전파하는 데에 뜻을 두고 있었다.
그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수행 정도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마라난타는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사방을 유력하며 불교를 전파하였다.
마라난타의 교화에 힘입어 백제는392년(아신왕 원년) 2월에
‘불법을 숭상하고 복을 구하라’라고 하는 교서를 반포하게 된다.~출처: 위키백과~
절 입구에 2기의 부도가 조성되어 있다.
좌측의 석종형 탑신 위에 보주를 안치한 이 부도는 당호가 도암당으로 부조되어 있다.
이런 형태의 부도는 조선 후기에 조성하던 방식이다.
(도암당 부도)
(청암당 부도)우측의 부도와 함계 탑기가 조성되어 있다.
이 부도는 백양사 주지로 주석하셨던 청암당 학능스님의 부도로
조성 형태로 보아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도가 있는 위쪽 산 능선에 원진국사승탑이 있다.고려 중기의 고승 원진국사(1171~1221)의 사리탑 1기로,탑신 하측에 “延祐四年丁巳五月 日立(연우4년정사5월 일입)”이라는글이 새겨져 있어 1317년(충숙왕 4)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2000년 6월 20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5호로 지정되었다.원진국사 승탑과 승탑비는 포항 내연산 보경사에도 조성되어 있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가기 전 깊옆에국가민속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된 불회사 석장승이 있다.우측 석장승은 수염을 댕기처럼 꼬아놓은 형상을 하고 있는데이는 남자 장승이고좌측의 석장승은 부드러운 형상을 한 여자 장승이다.
(상원당장군으로 남자 장승이다. 그런데 上자 위에 <一>가 첨가되어 있다.)
(마모가 심하지만 주장군 글씨는 남아 있다. 여자 장승이다)그런데 민초들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장승의 이름이 뒤바뀐 것 같다.장승은 그 형태나 크기에도 다양하거니와,몸체에 새기거나 쓰인 이름도 다양하다.일반적으로는 천하대장군,지하대장군(혹은 지하여장군)류가 주종이지만도교적으로는 남자 장승을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여자장승을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으로 부른다.그런데 불회사의 이 석장승은 도교적인 형태를 취하면서도남녀의 이름이 뒤바뀐 것 같다.덕룡산 불회사의 바로 옆 운흥사에도 같은 석장승이 있는데남자 장승은 상원주장군, 여자장승은 하원 당장군으로 되어 있다.조성 시기는 숙종 45년(1719)에 조성된운흥사의 석장승과 같은 시기로 추측된다.
상원주장군은 "당산하나씨" 또는"문지기장군'으로 불리는 할아버지 장승을 가리키며,"하원당장군"이 "당산할머니"로 불리는 할머니 장승을 일컫는다.중국에서는 대보름을 상원(上元) 이라 부른다.도교에서는 천관(天官)이 복을 내리는 날을 의미한다.중원(中元)은 7월15일,하원(下元)은 10월 15일 이를 삼원(三元)이라 부른다.장승 유적지 1999년 국립민속박물관 집계에 의하면540여 기가 있다.
마을 장승은 동제(洞祭)의 신으로 마을 수호와벽사(辟邪), 축귀(逐鬼), 방재(防災),진경(進慶)의 기능을 지니지만,사찰 장승은 호법금제(護法禁制)와 절의 경계 표시,사방산천, 비보, 잡귀의 침입을 막는 사찰 수호의 기능을 지닌다.
석장승에서 조금 오르면 덕용산 불회사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첫댓글 성불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