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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한참을 울다가 옆을 보니 그제 신방에서 썼던 놋요강이 놓여 있었고 예외 없이 속에는 솜이 깔려져 있었다.
연희는 새댁이 오줌을 누는 게 그렇고 해서 보지 않고 참았으나 귀를 기울여 밖에 동정을 보니 모든 사람들이 가마를 내려놓고 쉬는 동안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이었다.
그런 배려에 오다가 중간에 쉬는 사이에 요강에 소변을 보았고. 처음엔 짐을 거의지지 않았던 신랑 측 사람들이 번가라 짐을 지고 오후 세 시경에 도착을 했다.
동내 입구에는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신랑신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일행이 산모롱이를 돌아오는 것이 보이자 새색시 가마가 온다 하고 소리를 지르고 부산해 졌다.
가마는 우선 건넌방 툇마루에 거쳐지고, 영린이 나귀에서 내려서 가마 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어 주며 고개를 숙였다.
연희가 가마에서 내려서 첫걸음을 옮기려고 하니 앞에는 바가지가 엎어져 있었다.
그걸 오른발에 약간의 힘을 주어 밟아서 깨트리고 나니 이번에는 방문 바로 앞에 솥뚜껑이 엎어져 있었다.
난감 했다.
정옥 으로부터 설명들을 대로 하려고 보니 솥뚜껑은 약간 작았으나 문지방이 너무 높았다.
그렇다고 문지방은 밟으면 벼가 거꾸로 팬다고 귀가 달도록 들으며 자랐는데, 한 걸음조금 다가가 눈을 질끈 감고 건너뛰어 넘었다.
종아리가 문지방에 약간 닫으나 조금 휘청했을 뿐 무사히 넘어서 방석이 깔린 자리에 앉았다.
그러는 사이에 영린은 무사히 다녀왔다고 방에 들어가 근호 내외에게 절을 올렸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폐백 받을 준비가 되었는지 연희를 수모가 부축하여 대청으로 데리고 나갔다.
길연이 (笏記)홀기를 읽으며 진행을 해 나갔다.
〔男女家衆侍立 男東西向 女西東向〕폐백을 받을 사람들이 남자들은 동쪽에 서고 여자들은 서쪽에 섰다
〔壻就婦之俟處前 壻揖婦 婦屈身答禮〕영린이 연희에게 다가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연희는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했다.
〔壻導婦 就席 壻東婦西 北向立〕영린을 따라와 상이 놓여있는 대청 바깥쪽에 섰다.
〔舅姑就席 舅東姑西 相向坐〕근호와 선민이 병풍이 처진 앞자리에 않았다
〔婦 舅位前四拜〕연희가 수모의 도움을 받아가며 근호에게 네 번 절을 하였다.
〔婦自西階昇 舅位東向立 從者奉幣從之 右後東向立〕연희가 상 앞으로 한 걸음 다가 섰고, 그리고 수모가 대추와 밤이 담긴 폐백을 들고 오른쪽 뒤에 섰다.
〔從者 授幣于婦 婦受幣〕집사가 폐백을 연희에게 넘겨주었다
〔婦坐 獻幣于卓上〕연희가 폐백을 상위에 올리고
〔婦興屈身禮 自西階降 就東席 北向立〕연희는 일어나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서〔婦 舅位前又四拜〕수모의 도움을 받아가며 네 번 절을 하였다.
〔舅撫幣〕근호는 폐백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婦 姑位前四拜〕연희가 선민에게 수모의 도움을 받아가며 네 번 절을 하였다.
〔婦自西階昇 姑位前西向立 從者奉幣從之 左後西向立〕연희가 선민의 앞으로 한걸음 다가섰고 수모가 시어머니께 올릴 폐백을 들고 왼쪽 뒤에 섰다.
〔從者 授幣于婦 婦受幣〕 연희는 수모가 주는 닭이 담긴 폐백을 받았다.
〔婦坐 獻幣于卓上〕연희가 꿇어 앉아 시어머니의 상위에 폐백을 올렸다.
〔婦興屈身體 自西階降 就西席 北向立〕연희가 일어나 허리를 굽혀서 예를 표하고 한 걸음 물러나서 〔婦 姑位前又四拜〕수모의 도움을 받아가며 네 번 절을 하였다.
〔婦移于古處〕연희가 집사가 인도하는 대로 영린의 왼쪽에 섰다.
그리고〔壻再拜 婦四拜〕영린은 두 번 연희는 네 번 절을 하였다.
여기까지 현구고례(見舅姑禮)
바로 상면으로 들어갔다.
큰아버지 선호 내외가 앉았다.
그리고 절을 두 번 하였다.
다음 건호내외. 기호 내외 인호 내외 차례차례 지나가고 영준 내외가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서고 연희가 큰절이 아닌 평 절을 하는데 먼저 시작하고 영준내외가 나중 시작하여 먼저 일어나고 나서 연희가 일어났다.
그 다음 영수 부부와 똑같이 했다.
그리고 시동생 영훈이 서쪽에 서고 연희가 동쪽에 서서 영훈이 먼저 절을 시작 하고 연희가 나중에 시작 했는데 아홉 살 영훈이 보고 형수가 일어나면 네가 일어나는 거라고 선민이 그렇게 가르쳐 주었건만 영훈이 먼저 일어났다.
그런 다음 사촌시동생들이 한꺼번에 서서 절을 시작 했다.
이번에는 나이가 있는 사람은 늦게 일어나고 눈치가 빠른 사람은 형들이 하는 대로 늦게 일어나고 아주 어린 시동생 들은 먼저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족하 치영이는 아직 어려서 절을 받지 못하고 끝났다.
여기까지 현우존장(見于尊長) 및 제친(諸親)
그리고 상이 차려졌다.
정옥이 싸서 보낸 음식에 모자라는 것을 가미해서 차려지고 연희가 손을 씻고 상 앞으로 다가가 꿇어앉아 잔을 씻어서 친정에서 가져온 술을 집사의 도움을 받아서 따라서 올렸다.
근호가 잔을 비우자.
음식에 덥혀있던 뚜껑을 열어 놓고 뒤로 물러나서 네 번을 절을 하였다.
그리고 시어머니인 선민에게도 똑같이 하고 선민의 오른쪽 뒤에서 다 드실 때까지 두 손을 모아서 쥐고 다 잡수시기를 기다렸다.
여기까지 궤우구고례(饋于舅姑禮)
집사가 이어서 구고예지(舅姑禮之) 가 있겠다며 준비를 하라고 했다.
〔壻揖婦 婦屈身答禮]영린이 고개를 숙여 읍을 하자 연희는 허리를 굽혀 답례를 했다.
〔壻先昇自西階〕연희가 영린을 따라서 근호의 오른쪽 앞에 섰다
〔壻導婦 就舅姑禮之席 又就 父之左後 西向立 婦 席西下 南向立〕영린이 연희를 남쪽으로 향하게 세워두고, 근호의 뒤로 돌아서 왼쪽 뒤에서 서쪽을 향해 섰다
〔從者斟酒 奉盞盤 婦之左前北向立〕집사는 잔에 술을 부어 받들고, 신부의 왼쪽 앞에 북향해 서세요.
〔婦 南向四拜〕연희가 수모의 도움을 받아가며 남쪽을 향해 네 번 절을 했다.
〔婦昇坐席 受盞盤 祭酒誓地〕연희는 꿇어앉아서 집사가 넘겨준 술잔을 받아서 옆에 있는 대접에 조금만 남기고 부었다
〔婦興席西末 西向坐 飮酒〕연희가 서쪽 끝으로 옮겨 서향해 꿇어앉아서 술을 마셨다.
〔婦昇席 授盞盤于從者 從者受之 置于姑處〕연희가 일어나서 잔반을 집사에게 주고, 수모는 잔반을 받아 원 자리에 놓았다.
〔婦降席西下 南向四拜〕연희가 수모의 부축을 받아가며 남쪽으로 네 번 절을 하였다.
〔婦移席南 南向坐〕연희는 한걸음 더 남쪽으로 가서 남쪽을 향해 꿇어앉았다.
〔舅敎之〕근호가 말했다.
“훌륭한 규수를 며느리로 맞이하니 우리 집안의 경사구나. 네가 본댁 어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을 테니 내가 달리 이를 말이 없다. 스스로 알아 도리를 다하라.”
〔姑敎之〕선민이 한마디 했다.
“너의 아리따운 모습을 보니 마음이 기쁘구나. 아낙의 도리는 집안을 편안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 딸 낳아 우리 가문을 더욱 번창케 해 다오.”
하면서 선민이 시집올 때 가져온 노리개를 주면서
“이걸 네게 줄 터이니 잘 간직하도록 해라.”
했다.
〔婦 屈身答禮誓之 興四拜〕연희가 돌아서서 허리를 굽혀 서약하는 예를 표하고 네 번 절을 하였다.
〔舅姑 出就他室〕근호와 선민이 나갔다.
그리고 모두 앉아서 물려진 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壻就婦前 揖婦 婦屈身答禮〕영린이 다가와 고개를 숙여 수고했다는 읍을 했고 연희는 허리를 굽혀서 답례를 했다,
여기까지 구고예지(舅姑禮之)
그리고 연희 앞에는 잘 차려진 교자상이 들어 왔다.
그리고 연희가 상을 물리고 나자 선민은 남은 음식을 정옥이 싸 보낸 그릇에 다시 잘 싸서 다음날 떠나는 연희의 친정 사람들 편에 들려 보냈다.
여기까지 구고향지(舅姑饗之) 며느리에게 이렇게 대접을 했다는 표식
그러기 전 영린과 연희의 새살림 방은 건넌방에서 대각선으로 보이는 행랑에 정해 졌다.
얼마 전 까지 차포수가 살았는데, 영린이 결혼을 하는 바람에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연희가 신혼 방으로 가면서 보니 집은 ㄱ자 인 안채와 ㄴ자인 사랑체로 되어 있었다.
그날 연희는 피곤이 쌓여서 잠자리가 바뀌었는데도 곧 잠이 들었고 이튿날 세수를 하고 머리 손질을 하고 근호 내외에게 문안 인사를 했다.
이번엔 수모가 없이 하려니 힘이 들었다.
부엌에 나가서 금선을 도우려 하자 금선이 극구 만류하며 돌려보냈다.
그날은 떠나는 손님이 있을 때마다 나가서 배웅을 해야 했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사당에는 술과 과일 포를 준비하고, 연희는 미나리가 담긴 접시를 들고 제상 앞에 섰다.
근호가 분향과 좨주를 하고 참여자 모두 두 번 절을 하고 축문을 읽었다.
“根浩之次子 榮麟之婦의 慶州李氏氏 敢見”
근호의 둘째 아들 영린의 아내 경주이씨 감히 뵙나이다.
연희가 미나리 접시를 집사에게 주고 네 번 절을 한 다음. 미나리 접시를 받아 제상에 올리고 네 번을 절을 했다.
그리고 모두 재배를 했다.
이로서 모든 절차가 끝났다.
그리고 이튿날 저녁 선민은 영훈을 팔베개를 해서 재우면서 얼굴을 어루만지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선호 내외 건호 내외 인호내외 그리고 기호 내외가 영훈이를 데리고 떠났다.
떠나는 이들의 손에는 정옥이 보낸 버선 두 켤래. 콩가루를 묻힌 엿 한 덩이 인절미를 비롯한 이바지 하나에 선민이 별도로 마련한 봉선을 싸서 보냈다.
특히 선호내외 에게는 시어머니 몫을 챙기느냐 하나를 더 싸서 보냈다.
그리고 연희는 매일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아침에 네 번 절을 올리고 저녁에 주무시기 전에 자리끼를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가 네 번씩 절을 올렸다.
사흘이 지났는데, 이제 그만 해라 하는 하명이 없었다.
이레가 지나고 나서도 근호 내외는 아무런 하명이 없었다.
오늘이 지나면 삼칠일이라고 21일 동안 해야 하나 하면서 문은 나서는 데,
“새아가 내일 부터는 절은 그만두어라.”
“예”
앞으로 보름 가까이 하여야 할 것을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몇 칠 후 부터는 곱게 차려 입었던 한복 대신 무명치마 저고리를 입고 윗동서 금선을 도와가며 부엌일이며, 조카 치영이도 가끔씩 업어주고. 물을 길어 와야 하는데 동이는 커서 머리에 이다가 힘이 들어서 동이보다 작을 방구리를 가지고 우물가에 갔는데 똬리를 얹고 방구리의 조자리를 잡고 들어서 머리에 이고 오는데 물이 졸랑 거려서 작은 박을 엎어놓고 이고 오는데 그래도 물이 넘쳐서 이마를 적셨다.
그래서 물을 적게 담더라도 동이로 이어 나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초겨울이 다가올 무렵 선민이 콩을 다섯 말이나 내놓고, 메주를 쑤어야 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깨끗이 씻으려면 우물로 가져가야 할 것 같아서 금선이가 세말 정도를 자배기에 넣어서 이고, 연희도 두말 정도를 대바구니에 이고 조리를 들고 우물가로 갔다.
조금 후 선민이 작은 자배기와 대바구니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금선이 씻은 콩을 조리질을 해서 바구니에 건져놓고 물이 원만큼 빠지자 작은 자배기에 담아서 주면서 내가 닦아놓은 가마솥에 안쳐놓으라고 했다.
이고 들어가니 사랑에서 글공부를 하던 영린이 어른이 안 계신 틈을 타 대문 안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자배기를 받아서 들고 들어가서 가마솥에 부어주고 물동이를 들어다 부어주었다.
다시 빈 자배기를 이고 우물가에 갔더니 바구니 두 개에 콩이 건져져 있고 다시 한 자배기를 담아서 이고 오는데 아가 이번에는 자배기를 두고 오너라.
이번에도 영린이 나와서 받아 주었다.
그런데 선민이 물이 빠진 콩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뒤따라 들어 올 줄은 몰랐다.
연희는 순간 당황해서 종종 걸음으로 우물가에 와서 바구니를 이고, 금선은 나머지를 자배기에 얹어서 이고 들어왔다.
그리고 선민이 불을 때라고 해서 불쏘시게 꾸러미를 만들어 들고 화로에서 부젓가락으로 불씨가 남아있는 숯덩이 몇 개를 꺼내가지고 아궁이 앞에서 후후 불어서 불이 붙여서 조금씩 가지를 더 넣다가 차츰 굵은 나무를 넣었다.
한참 후 끓기 시작하자 불을 조금 빼고 약하게 불을 땠다.
그리고 금선은 불이 타고 있는 나뭇가지를 밥을 안친 아궁이에 옮겨서 불을 때서 밥을 짓기 시작했고, 연희는 화로에 재를 변소에 버리고, 부삽에 고무래로 불을 담아가지고 대청에 갖다 놓았다.
금선이 쟁개비에 무를 나박하게 썰고 고추장과 된장을 풀어 가지고 와서 다리쇠와 부젓가락으로 적당히 내려서 균형을 잡히게 해서 올려놓았다.
그러는 사이에 선민은 연희의 방 아궁이에 걸려 있는 가마솥에 콩을 안치고, 그리고 들어와서 메주콩이 익었나, 먹어 보더니 이젠 불을 그만 때고 뜸만 들이면 되겠다고 하면서 아궁이에 있는 타는 나무는 부삽으로 떠다가 행랑방 아궁이로 옮겨서 불을 때기 시작했고, 금선은 점심상을 차리고 점심을 마치고 잘 삶아져서 색이 누르스름한 메주콩을 안마당가에 있는 절구에 옮겨 붓고 금선과 연희는 절구질을 시작했다.
번갈아 가면서 절구꽁이로 내리 찍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연희가 서툴러서 애를 먹었다.
선민은 행랑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부엌으로 와서 삶아진 메주콩을 퍼서 바구니에 담아서 절구 옆에 갖다놓고. 사랑방 아궁이에 쇠죽을 쑤는 가마솥을 깨끗이 씻어내고 콩을 안치고 있었다.
그리고 금선이 절구질을 하면서
“어머니 다 찧어졌나, 봐 주세요.”
선민이 와서 보고 조금 더 찧어야겠다고 하니 혼자 절구질을 하면서
“동서 저기 가서 함지를 내다 씻어서 가져 와.”
라고 해서 함지를 씻어서 가져오니 선민이 와 보더니 잘 찧어졌다고 하니 함지에 꺼내 놓고 나머지를 절구 확에 붓고 둘이서 절구질을 시작했다.
선민이 행랑 아궁이 불을 부지깽이로 밀어 넣으며 불을 때고, 그러는 사이에 콩이 다 삶아졌는지 부삽으로 불을 떠서 사랑방 아궁이로 옮기고 있었다.
그러고 선민은 부엌 가마솥을 물로 가셔내고 콩을 안치고 하는 사이에 행랑 가마솥에서 삶아진 메주콩이 뜸이 다 들어서 절구통 옆으로 옮겨져 있었다.
사랑 가마솥에 콩이 삶아지자 이번에는 다시 부엌 가마솥에 다시 불을 때기 시작했고, 행랑 가마솥도 물로 씻어서 가셔내고 콩을 안치고, 둘이서는 행랑 가마솥에서 꺼내온 메주를 다 찧고, 사랑방 가마솥에 메주콩이 절구 옆에 담겨져 있었다.
그런 식으로 행랑 가마솥 메주콩이 익어서 뜸을 드리게 되자.
이번엔 선민이 함지에 담긴 메주를 대청으로 옮겨 놓으라고 하고, 모말과 삼베 보자기를 가지고 와서 모말 안에 삼베 보자기를 깔고 위에 찧은 메주를 넣고 삼베 보자기 위에 광목 보자기를 덥고 올라서서 한 10 분 정도 밟아서 삼베보자기 네 귀를 잡고 발로 모말 전을 버티면서 보자기를 잡아 당겨서 꺼내어 손으로 마지막 손질을 해서 옆에 깔려있는 보자기 위에 늘여놓기 시작할 무렵 사랑 가마솥에 메주도 다 찧어가고 있었다.
반을 넘겨 찧었을 무렵 시간은 벌써 네 시가 넘어가고 있었지만 아직도 두 솥이나 남아 있었다.
그런데 선민이 자배기에다 행랑에 있는 메주콩을 반이 넘게 퍼가지고. 청국장을 띠운다며 안 방 으로 가지고 가서 아랫목에 헌 이불로 덮었다.
이제는 한 가마 솥 반만 찧으면 끝이다.
그렇게 다 찧어가고 절구에 한 번 정도 찧을 것이 남았을 무렵 금선을 저녁을 지으러 가고 연희 혼자서 절구질을 하자니 힘이 더 들고 시간을 세배나 들었다.
그날 저녁 영린는 선민으로부터 사내가 부엌에 기웃거린다고 핀잔을 받았다.
다음날 아침 근호가 볏짚을 추려서 메주를 하나씩 역어서 윗방에 잠가를 세우고 이십여 개 가까이 되는 메주를 매달았다.
그리고 몇 칠 후 조반을 먹으며 선민이 벼 한 한 섬을 찧어야 한다며 영준이와 영린에게 디딜방앗간에 저다 주라고 했다.
밥을 먹기가 무섭게 방앗간으로 가서 선민이 확에 벼를 밀어 넣는 일을 하고 금선과 연희는 발로 발판을 밟았다 놓기를 계속했다.
벼 한 섬을 그렇게 점심이 넘도록 찧었는데, 겨우 겉껍질을 벗겨서 키로 까불어서 왕겨와 현미를 분리했다.
다른 곳에 물방아가 있었는데 몇 년 전에 낮에 일하고 저녁 늦게 보리방아를 찧으며 졸다가 공이에 머리를 맞아서 사람이 죽었는데, 이튿날 아침에 발견이 되어 방아채를 달아매고, 보니 확에 피에 곡식에 범벅이 되어 있어서 그 뒤로 물방아를 뜯어 버려서 지금은 디딜방아를 쓰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년에나 물레방아로 바꾸어 설치하려고 의견이 모아져서 확과 공이를 주문해 놓았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계속 발로 디디고 나서 쉬는 틈에는 체로 처서 겨와 쌀을 분리하고 얼개미로 싸라기를 골라내고 하면서 하루 종일 방아를 찧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힘이 들어서 기진맥진이 되었다.
그래도 일이 끝나고 영준과 영린이 지개로 저다 주었다.
또 몇 칠이 지나니 안방에서는 청국장 뜨는 냄새가 많이 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청국장이 다 뜬 모양이라며 선민이 청국장이 든 자배기를 내왔다.
그걸 절구에다 넣고, 지난 가을에 말려 두었던 풋고추를 넣고 같이 찧는데, 발효가 되어서 끈적이는 게 보통 찧기가 힘든 것이 아니었다.
얼마쯤 절구질을 하다가 금선이
“어머니 이제 되었나 보세요.”
선민이 들여다보고
“그만하면 되었다”
고 하자 금선은 장독대 된장독 옆에 작은 항아리에다 청국장을 가져다 넣고, 크게 한 숟가락을 퍼가지고 쟁개비에 안쳐서 청국장을 바따라지게 끓여 점심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에 남자들은 닥 부집을 만들기 위해 모여서 지난 칠월에 썼던 삼 부집에 흙과 돌을 걷어내고, 나무를 가져다 쌓아놓고 칸막이를 만들고, 위에는 주먹보다 약간 큰 돌을 달구기 위해 넣었다.
그리고 이튿날 닥 부집에 불을 붙이고 돌이 달구어지는 동안에 닥나무를 베어서 가지을 잘 다듬어서 다른 집 닥과 섞이지 않게 칡으로 세 겹으로 해서 두 번을 묶은 것이 여덟 단이나 되었다.
그리고 가지를 처 낸 잔가지와 덜 자란 잔가지를 가지런히 모은 병아리가 두 단이나 되었다.
오후 무렵에 닥 부집을 하는 개울가에는 온 동내 사람들이 닥을 베어가지고 닥 부집을 하러 모였다.
밑에는 커다란 돌을 군데군데 놓고 그 위에 나무를 서너 개 걸쳐 놓고 옆으로도 나무를 비스듬히 대여섯 개를 세우고 그 위에 한집에 한 단씩 닥을 쌓아 갔다.
왜 한단씩 넣느냐 하면 맨 아래에 있는 닥이 불이 쌔면 타서 닥을 버리기 때문에 공평의 원칙상 한 단씩 차래로 넣는 것이다.
그래야 타도 한집에 한 단씩 밖에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위에는 병아리을 넣고서 위에 헌 멍석을 깔고 그 위를 흙으로 덮고 화실위에도 김이 빠져 나가지 않게 흙으로 덮고 화실 위에 구멍을 괭이로 내고 물을 붓고 구멍을 메우고 또 다른 곳을 괭이고 구멍을 내고 붓고 그렇게 십여 곳을 하는데 뜨겁게 달구어진 돌에 물을 부으니 돌 식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지난 다음에 흙을 걷어내고 제각기 닥들을 찾아가는데,
“여기 억새 꽂아 넣은 닥”
그러면
“우리 꺼.”
하고 찾아서 옆에 쌓아놓고,
“여기 칡 세 줄 두 번,”
“우리 닥,”
하고 영준이 찾아다 쌓아 놓았다.
그렇게 모든 닥을 꺼냈다.
다행으로 타거나 설은 닥은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 닥 숫자가 모자란다고 하니 각기 자기 닥 단의 숫자를 세어보다가 여기 있어 하고 찾아 주었다.
그날 밤은 온 동내가 마당에 광솔 불을 밝히고 닥 껍질을 벗겨서 한줌씩 묶어서 줄에 걸어서 말렸다.
그리고 남정네들은 집집마다 사랑방이나 행랑에서는 새끼줄을 꼬아서 초가지붕을 이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보름 가까이 낮에는 마당에서 짚으로 이엉을 엮어서 돌아가면서 지붕을 해 잇는데 올해는 행랑채를 이을 차례로 우선 재작년에 서까래에 묶어 두었던 겉고삿을 끊어내고 낡은 이엉을 걷어내고 속고삿을 끊어내고 다시 속고삿을 서까래에 묶어서 지붕위에 적당한 나비가 되게 서까래 하나 걸러서 하나씩 묶어서 지붕을 가로 세로로 얽어맨 다음 이엉을 아래의 한 바퀴는 이엉을 거꾸로 돌리고 얽어맨 속고삿에 붙잡아 매고 아래 이엉은 조금 길게 내보내면서 아래부터 둘러치면서 얽어매 놓은 속고삿에 이엉을 잡아매면서 위에 까지 촘촘히 이어나가서 위에는 용마루이엉을 얹기 전에 이엉이 바람에 벗겨지지 않게 또 한 번 겉고삿을 엮어서 서까래에 묶었다.
그리고 용마루이엉은 양쪽 끝에 있는 쌔기 줄을 당겨서 서까래에 묶고 중간 중간에 바람이 많이 불어오는 쪽에는 기다란 나무를 겉고삿 사이에 눌러 놓아 바람에 들뜨지 않게 하고, 처마 밑을 돌아가면서 예쁘게 낫으로 잘라 내었다.
그리고 이내 입동이 다가 오자 김장을 담가야 했다.
200포기가 넘게 절이고 담그는데 이틀이나 걸렸고, 금선이 품앗이 삼아 이웃집 김장을 담그러 가서, 연희는 밥 짓고 상을 차려서 올리는 일 치영이 돌보는 까지 하느냐고 정신없이 몇 칠을 보냈다.
그러고 보면 바깥일을 대부분 시아버지 근호와 시아주버니 영준이 하고 영린은 공부를 하느냐고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근호의 집념의 산실인지도 몰랐다.
조상대대로 살던 탑거리를 떠나 젊어서 이곳 단월에 자리를 잡아 열심히 살아서 겨우 밥술이나 먹고 지내지만 그에게는 몇 대를 벼슬 한자리 못하고 지내다 근호 할아버지가 효성이 지극하여 순조 임금 때 효자정문을 하사받아 가문의 채면은 겨우 세우고 나니 우리 집안에도 급제를 해서 가문의 영광을 재연 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는데, 반쪽 양반을 살아온 집안을 일으켜 보려는 야심에 불을 지른 것은 넷째 동생 기호가 과거에 급제하여 당상관에 올라서 그의 부인 길민까지 정부인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 부럽기까지 해서였다.
하긴 그래서 막내를 양자로 주었는지 몰라도 근호에 생각은 둘째 영유가 명석하니 부디 급제를 하여 집안을 빛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둘째 영유를 다섯 살 때 친구 길연의 사랑방에 있는 글방에 보냈는데 책을 잘 읽어서 친구 길연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길연의 아들 계멱과 쌍벽을 이룰 만큼 열심히 해서 근호가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곳에 정착할 때 길연의 춘부장께서 정문 댁 둘째라고 꼬박 정문 댁이라는 가호를 불러주며 대우를 해 주었다.
그렇게 두 집안이 각별히 가까이 지내고 있다 보니 이번엔 영린의 중매 까지 나서서 해준 것이었다.
그렇게 겨울에 접어들자, 연희는 목화를 씨아에 돌려서 목화씨를 빼내고, 선민이 활로 타 솜을 부풀게 하여 고치를 만들고, 금선은 물레를 돌려서 실을 자아서 무명실 꾸리를 만들어 마당 양쪽에 말뚝을 박고 아홉 세를 만들기 위해 360 바퀴를 돌아서 720개의 날실을 만들어서 뱁댕이를 끼우고 말뚝을 하나씩 더 박아서 옆으로 걸고, 실을 고르게 차래대로 펴고, 풀을 쑤어서 풀 솔로 풀을 먹이고 말리는데 약해서 처지고 끊어 질까봐 겨 불을 놓아 말려서 윗실과 아래 실이 서로 엉켜 붙지 않도록 뱁댕이를 끼워가며 도투마리에 감아서 베틀에 올려놓고 위실과 아래 실을 구분하여 시침 대 와 비경이를 끼우고, 바디에 실을 한 올 한 올 꿰어서 최활과 말코에 걸고 실을 바디 한 구멍에 끼워진 두 가닥의 실중 윗실을 일일이 잉아에 걸어서 잉앗대를 눈썹끈에 매달고, 속대를 끼우고 비경이를 지난 곳에 눌림대를 눌림끈에 끼우고서야 준비가 끝났다.
처음 시작은 금선이 최활로 폭을 맞추면서 시작을 하더니 연희를 불러서
“자내 이리 와서 앉을깨에 앉아 보게.”
연희가 베틀에 앉자 이번에는 부티를 허리 뒤로 해서 부티끈을 말코에 걸어 주고 한 쪽 발에 신을 신겨주면서
“다리를 펴고 북을 오른쪽 손으로 이렇게 집어넣으면서 왼손으로 받아들고 오른손은 바디를 앞으로 이렇게 치듯이 당기고 다리를 오므리면서 왼손에 있던 북을 오른쪽으로 보내면서 오른손으로 잡고 이번엔 왼손으로 바디를 잡고 이렇게 치듯이 앞으로 당기고”
하기야 시집오기 전에 정옥이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조금은 서툴렀다.
천천히 자세히 일러주는 대로 했다.
그리고 북 실을 적당하게 당겨서 바디를 쳐야 양옆이 매끈하고 너무 당기면 나비가 좁아진다고 일러 주었다.
몇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손에 익어서 잘 했다.
금선이 도투마리에 실을 반 바퀴 풀어주며
“동서 잘 하내.”
했다.
칭찬을 들어서 그런지 손도 조금 빨라지고 잘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자 손과 발이 익숙해 저서 그런지 금선보다 빨리 짰다.
“자내가 나보나 빨리 짜내”
했고 옆에 있던 선민도
“큰애 보다 새아가가 바디질이 빠르구나.”
하면서 흐뭇해했다.
그렇게 나흘 만에 무명한필(40자)을 짰다.
그리고 금선이 물레를 돌려서 실을 곱게 자아내면서 베틀은 연희의 차지가 되었다.
그렇게 긴 겨울은 깊어갔고 어느덧 섣달이 되자 옷을 짓기 위해 바느질하는 일이 많아졌다.
근호의 옷은 거의 금선이 지었다.
연희는 금선이 꿰매라고 하는 부분을 꿰매는 일을 하고 한 벌 더 마련하려면 선민이 헌 옷을 대고 가위로 재단을 해주고 자투리 현겁은 모아서 버선을 깊거나 할 때 쓰기 위해 모아 두었고, 연희에게도 꼼꼼히 가르치고 있었다.
그리고 치영이의 옷을 재단해 주며 만들어 보라고 해서 색동저고리 바지 그리고 조끼 도 만들었다.
보더니 솜씨가 있다며 잘했다고 하면서
“우리 치영이 설빔은 작은 엄마가 만들어서 호사 했네.”
했다.
그리고 영준은 매일 산으로 가서 땔나무를 해오고, 근호는 짚신을 삼거나 돗자리를 짜고, 영린은 서당에 나가서 공부에 매달렸다.
그러는 사이에 섣달 스무날이 다가오자 술을 빚어서 담그고, 엿을 고고 설날이 다가오기 사흘 전에는 콩을 물에 불려 암 맷돌을 함지박에 앉히고 숫 맷돌을 얹어놓고 어처구니를 씌워서 한 말이 넘는 콩을 가는 데 저녁 무렵 시작해서 자정이 가까워서 끝나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들기름 병에 남아 있던 들기름 찌꺼기를 두 종지 정도 붓고 휘저은 다음 광목 주머니에 넣어서 주물러 가며 콩 국물을 짜내어 가마솥에 넣고 끓기 시작하자 조금 뒤 자배기에 퍼내어 여름내 소금가마니 밑에서 받아낸 간수를 쳐서 콩 물이 엉키어 순두부가 되자 우선 커다란 양푼에 하나를 퍼내고 면 보자기를 함지에 펴놓고 부어서 보자기로 잘 싸서 커다란 도마를 올려놓고 위에는 자배기를 올려놓고 보자기 사이로 나온 물을 자배기로 옮겨 넣어서 눌러놓고 밥을 짓는 사이에 두부가 다되어 자배기를 들어내고 두부를 잘라서 자배기에 넣고 물을 채워 넣었다.
금선은 쟁개비에 두부전골을 만들어 조반상에 아까 양푼에 떠 두었던 순두부를 따끈하게 덥혀서 조반상에 국 대신 한 사발과 함께 올렸다.
그리고 콩 국물을 짜낸 비지를 한 양푼정도 가마솥에 깔고 불을 조금 때서
조금 익혀서 불을 빼고 30분 지나서 양푼에 담아 아랫목에 헌 이불을 덮어서 이틀정도 띄워서 김치 광에 두었다가 비지찌개를 해먹는 데, 대부분의 비지는 소죽 쑤는데 넣어서 소가 먹고 두부를 하면서 나온 물까지도 모두 소죽 쑤는데 들어가서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쌀을 담가 떡을 만들 준비를 하는데 이번에는 차좁쌀로 수리취 인절미를 만든다고 수리취를 잿물에 삶아서 물에 담그고 차조를 깨끗이 씻어 더운물을 붓고 일어서, 시루에 수리취와 섞어서 넣고 쪄낸 다음 마당에 암반을 놓고 영준과 영린이 떡메로 치고 선민이 손에 물을 묻혀가며 뒤집어 주었다.
그리고 금선과 연희는 맵쌀 담근 것을 건져서 절구에 넣고 찧고 있었다.
홉사 무슨 떡 만드는 공장 같았다.
금선과 연희가 찧은 떡가루를 시루에 넣고 찌는 동안에 수리취 인절미를 셋이서 만들어서 콩가루를 묻히고 나니, 시루에 안쳐서 찐 쌀가루가 다 익자 이번에도 암반에 쏟아놓고 선민이 뒤집어 주며 영준과 영린이 떡메로 떡을 치는 사이에 또 한 시루가 안쳐져서 쪄지고 있었다.
인절미가 다 만들어 지자 이번에는 물에 들기름을 조금 부은 대접을 놓고, 손에 묻혀가며 길게 늘여서 가래떡을 만들고 떡쌀로 눌러서 절편도 만들었다.
음식을 만들고, 섣달 그믐날 밤 근호 내외가 묵은세배를 받는 것으로 한해가 갔다.
첫댓글 16살의 연희 시집살이 그 어린나이에 시집살이가 평탄할런지 걱정이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