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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선민은 영훈이가 없으니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게 아려왔다.
잘 먹고 잘 지내고나 있는지 작년에는 들락날락 거리며 먹어대고 말썽도 피웠는데, 금선과 연희는 밤늦도록 만두를 빚고 잠깐 눈을 붙였나 싶었는데, 먼동이 터올 무렵 금선이 일어났는지 솥뚜껑 여닫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연희도 나서 부엌에 가니
“조금 더 자지 그래”
“아니에요 형님”
떡국을 앉히고 불을 때고 있는데 선민이 부엌에 나왔다.
“어머니 더 주무셔요.”
“올해는 동서도 있으니 좀 더 주무셔도 되요.”
하면서 부엌 밖으로 내보냈다.
부지런히 준비를 해서 차례를 지내고, 먹고 치우고 나니 바로 세배를 하겠다고. 영훈이 또래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떡과 다과상을 내가고 조금 지나니 세배를 하러오는 사람이 하나 또는 둘이 찾아 왔다.
그때마다 화로 다리쇠위에 석쇠를 올려놓고, 떡을 굽고 전을 데우고, 술을 덥히고 해서 주안상을 보아 내가야 했다.
선민은 사랑에 누가 오나 내다보다가.
“이번에는 한사람 어이구, 또 한 사람 왔다. 두상으로 차려라.”
그러면 둘이서 음식을 더 덥혀야 해서 더 분주했다.
그렇게 초하루가 지나고 초이튿날도 다섯 명 정도가 다녀갔다.
그런데 오늘 온 사람들은 엉덩이에 엿을 붙여 놨는지 시간을 오래 끌고 술도 더 마셔서 술을 더 데워서 내가야 했다.
초사흗날은 서넛이 다녀갔다.
나흗날부터는 한가했다.
그리고 열 사흗날 시래기를 삶고 취를 삶고 고사리를 삶아서 물에 담가 놓았다.
그리고 열 나흗날 오곡밥을 지어서 먹었다.
그리고 김치를 먹으면 쐐기를 쏘인다고 내놓지를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첫닭이 울고 나서 연희가 나가 보니. 금선이 벌써 물 한 동이를 길어 왔다.
“형님 물 길어 올까요.”
“내가 먼저 한 동이 길어 왔으니 자내가 두어 번 더 길어오게.”
첫 닭이 울고서 맨 처음으로 우물에서 용의 알을 건져 오면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어 부지런한 금선이 제일 먼저 일어나 물 한 동이부터 길어온 모양이다.
우물가에 도착해 보니 동내 아낙이 물을 깃고 있었다.
“새댁 조금 늦었네.”
하면서 만족해하는 것을 보니 딴에는 제일 먼저 물을 길어 가는 줄 아는 모양이다.
물을 길어다 부으면서 우물가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둘이는 기분 좋게 웃었다.
마침 부엌으로 들어오던 선민이 뭐가 그리 재밌어 웃고들 있느냐 했고. 금선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선민도 웃으며 그래 올해는 우리 살림이 나아지겠다고 덕담을 했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먼동이 터올 무렵 아이들의 새 쫓는 소리가 들렸다.
새를 쫓아야 가을에 새들이 곡식을 먹지 않는다는 풍속이 있다.
작년에는 일어나기 싫다는 영훈이를 새벽에 깨워서 새를 쫓게 하느냐고 선민이 애를 먹었는데. 금선이와 연희도 귀가 밝아지라고 귀밝이술을 한 모금씩 마셨다.
한나절이 되었을 무렵 연희에게 이웃집에서 널뛰는 소리가 들렸다.
작년에는 친정에서 널뛰고 재미있게 보냈는데, 더욱 친정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선민은 아들 영훈이 보고 싶었다.
작년에는 연을 날리겠다고 만들어 달래서 영린이 가오리연을 만들어 주어서 연을 날렸는데, 올해는 못 오나보다.
저녁에 떡국을 끓여먹고 달맞이를 하는데, 올해는 영훈이가 없어서 치영이 망우리만 만들어서 달이 떠오르자 불을 붙여서 영준이 달을 향해 아래위로 휘두르다 치영이를 안고 있는 금선이를 서너 번 휘두르니 치영이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금선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달을 향해 아래위로 휘둘러서 한해가 잘 지나가기를 빌고 조그만 부스러기 하나도 남김없이 태우고 집으로 들어 왔다.
그리고 선민은 안방에 들어와 껍질을 깐 잣을 바늘에 꽂아서 불을 붙이고 축원을 시작했다.
“올해 쉰한 살 무자 생 김 씨 대주 일 년 신수가 어떻겠습니까?”
하면서 잣불이 다 탈 때 까지
“올 한해 아무 탈 없이 일 년 신수가 훨훨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했다.
그리고 잣 한 알을 바늘에 꽂는 데 금선이
“어머니 잣불이 잘 타는 걸 보니 아버님 올해 신수가 좋으시겠네요.”
“그래”
하면서 등잔에 잣을 대서 불을 붙이고
“올해 스물세 살 병진 생 김 씨 대주 일 년 신수가 어떻겠습니까?”
“올 한해 아무 탈 없이 잘 지나게 해주십시오.”
하면서 빌었다. 잣을 갈아 꽂는 동안에 연희가 한마디 했다
“아주버니도 올해 신수가 좋으시겠네요.”
했다.
이어서 영린 영훈도 했다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하묵까지 하고 본인인 선민의 잣을 바늘에 꽂아서 등잔에서 불을 붙이고
“올해 마흔둘 병신 생 김 씨 계주 일 년 신수가 어떻겠습니까?”
“올 한해 아무 탈 없이 잘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하며 빌었다.
그 때마다 한 마디씩 덕담을 했다.
그리고 연희의 잣에 불이 켜지면서 “올해 열일곱 살 계해 생 김 씨 계주 일 년 신수가 어떻겠습니까?”
“올해 아들하나 점지해 주시고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지나게 해 주십시오.”
하며 비는 것을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날 귀신 날이라고 해서 가능하면 외출을 삼가고 저녁에 대청을 오르는 기둥에 체(얼레미)를 걸어 놓고 신을 모두 방에 들여다 놓고 잤다.
그리고 몇 칠 후 간장을 담가야 한다면 메주 씻어서 한 장을 넷으로 쪼개어 광주리와 채반에 놓고 사나흘 말렸다.
그리고 일진이 말날인 날을 잡아서 소금을 대바구니에 쏟아 넣고 자배기 위에 쳇다리를 놓고 물을 부어 녹이는데 몇 번을 통과 시켜서 소금물의 농도를 맞추는데. 달걀을 씻어서 띠우면서 선민이
“정월에 담그는 간장은 이렇게 달걀이 떠서 윗부분이 물위로 올라오기 직전까지 소금을 풀어야 하고 이월에 담글 때는 달걀이 떠서 보이게 해야 한다.”
하고 연희에게 가르쳐 주었다.
메주를 장독에 넣고 소금물을 부어넣고 참숯 몇 덩이 띄우고 작년 가을에 매달아 두었던 씨 고추 몇 개를 씻어서 띄우고 영준이 왼 새끼줄을 꼬아 숯과 작을 솔가지를 꽂아서 간장독 윗부분에 묶어 주었다.
그렇게 두 독을 담갔다.
어느덧 날이 따스해 지자 이번에는 베틀에 지난여름에 삼아 놓았다는 삼을 다섯 새(400가닥)를 올려서 짜는데 사흘에 한 필씩 짤 수 있는데 다른 일을 하다 보니 어떤 때에는 열흘에 한필을 짤 때도 있었다.
이월이 되었고, 영준은 매일 지개에 소쿠리를 달아서 두엄발치 에 나가 쇠스랑으로 두엄을 찍고 걸이대로 소쿠리에 옮겨 실어서 한 지개가 되면 논에 저 날랐다.
금선이 볼 때에는 혼자서 일만 하는 것 같았다.
영린은 바쁠 때에만 농사일을 도왔다.
서당에서 같이 공부하던 계멱은 작년 초시에 떨어졌다고 했다.
실력이 영린이 보다 조금 나았는데, 영린은 작년에 결혼 때문에 공부를 조금 소홀이 한 면도 있었지만, 결혼을 코앞에 두어서 초시에 나갈 수 없었다.
내 후년 가을에 있을 초시를 준비 중 이었다.
그리고 고추장을 한 항아리 담그게 되었다.
몇 칠 전 메주를 쪼개어 말려서 절구에 넣어서 빻아서 체로 처서 가루를 내어 놓고, 길금가루를 따끈한 물에 풀어서 서너 시간 삭혀서 끓이고, 찹쌀을 빻아서 가루를 내어 풀을 쑤고, 고추를 빻아서 가루를 체로 치는데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콧구멍을 솜으로 막고 일을 해도 눈물이 나고 제체기가 나서 몇 번을 솜을 갈아서 코에 끼우며 고춧가루를 만들어서 찹쌀 풀에 길금 물을 붓고 나무주걱으로 저어서 섞어서 고춧가루를 넣고 젓고 다시 메주가루를 넣고 젓고 마지막에는 소금을 넣고 저으면서 선민이 간을 보아서 되었다 하면 장독에 있는 항아리에 부어서 위에 소금을 뿌려 놓았다.
그리고 독 하나를 비워서 막장을 담그는데 남겨두어서 말린 누룽지 그리고 보리 가루로 풀을 쑤어서 고추장을 담그는 방법과 같은 절차에 따라서 하는데, 재료가 조금 거칠었다.
농사일은 언제나 바쁘다.
못자리를 하고 가래질을 하고 쟁기로 논을 갈고 하는 틈에 영준도 작년에 화전을 해서 콩을 심었던 산비탈 한쪽에 소를 몰아 따비로 밭을 갈고, 근호가 삼씨를 뿌리고 갈퀴로 긁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영준은 애벌 써레질을 하고 갈을 꺾어 넣고 다시 쟁기로 갈아서 써레질하고 모를 심는 날을 받자 우선 술을 담그고 하루 전날은 두부를 만들고 각종 반찬을 만드느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정도로 바빴다.
드디어 모내는 날 일꾼이 열 명도 넘었다.
모를 찌는 동안에 금선은 두부찌개를 끌이고 반찬을 몇 가지 더 담아 이고 연희는 똬리를 머리에 얹고 술동이를 이고 따라 나섰다.
그렇게 해장이 끝나고 바로 들어와 새참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소가 먹어야 할 소죽을 쑤어야 하는데 콩을 반 되 가까이 넣고 쑤어서 어제 두부하고 남은 비지에 막걸리를 걸러 내고 남은 술지개미 까지 넣어서 쑨 소죽을 영린이 함지에 퍼서 지고 나갔다.
이렇게 잘 먹이는 것이 써레질을 힘들게 하는 소에 대한 보답인 것이다.
품앗이 풍속은 소가 하루를 일을 해주면, 사람은 이틀을 일해서 갚아야 한다.
새참을 내가는데, 금선은 반찬이 담긴 광주리를 이고, 연희는 밥 광주리를 이고 이웃에서 도우러 온 차 포수 부인은 국 동이를 이고 선민이 술을 담을 방구리를 이고 논으로 나갔다.
그때마다, 일하는 일꾼도 일꾼이지만 객꾼 또한 많았다.
그리고 영린이 하는 일은 소쿠리를 얹은 지개로 모를 져다가 적당한 위치에 모춤을 던져 넣는 일을 했다.
새 참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술안주용 찌개를 끓이고 설거지를 하고 술을 거르며 점심 준비를 하면서 술과 안주를 내갔다와서 바로 점심을 준비에 소죽까지 쑤어서 점심을 내 갔다 오고 이웃에서 와서 식사준비를 도와주던 차 포수 의 삼남매를 비롯한 이웃집 사람들 점심을 챙겨 먹이고 나면 바로 술을 내가야 했다.
그렇게 모내기가 끝나고, 얼마쯤 지났는데 비가 오지 않아서 논이 마르는 곳이 있었다.
근호와 영린이 교대로 용두레로 물을 몇 칠을 펴 올렸는데 가뭄은 오래가지 않고 비가 와서 다행스럽게 해갈이 되었고, 영린은 매일 저녁 무렵이면 소꼴을 베어 와야 하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그 무렵에 밭에는 닭똥을 섞은 목화씨를 심고 군데군데 배추 씨를 섞어서 뿌렸다. 목화 사이에 심은 배추는 고소해서 쌈을 싸 먹으면 고소하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에 작년 가을에 받아 두었던, 누에가 알에서 깨어나 까만 게 목판에서 고무락고무락 거려서 뽕잎 중 새로 나온 야들야들한 것을 짤게 썰어서 주었다.
하루가 지나니 조금 커서 회색빛이 나고, 또 이틀이 지나니 고개를 쳐들고 하루를 자서 뽕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허물을 벗어서 조금 더 커서 반 채반 정도가 되었다.
뽕잎도 잘게 썰어서 주지 않고 조금 굴게 썰어서 사흘을 더 먹였더니 이번에는 한 채반으로 늘어났고, 누에가 두잠을 자는 날, 보리이랑 사이에 대우를 치고(콩 심는 일) 화전 밭에 대우를 치고, 두잠을 자고 허물을 벗고 난 누에는 한 잠박으로 늘어났고 뽕잎도 서너 번 썰어서 하루에 한 다래끼 정도에 뽕을 먹었다.
그리고 석 잠을 자고나니 두 잠박으로 늘어났고, 이제는 뽕을 썰지 않고 입만 훑어서 주는 데 두 다래끼 의 뽕을 먹더니 사흘째 되는 날은 세 다래끼의 봉을 먹고 누에도 새끼손가락 두 마디만 하게 자라 있었다.
그 때 까지는 연희 혼자서 뽕을 따러가서 오디도 따먹고 그런대로 편했다. 그리고 이틀을 더 먹고, 넉 잠을 자고나니, 네 잠박으로 늘어났고 이레 동안 먹는데 온 식구가 매달려 뽕을 따다 주는데, 이번에는 뽕잎이 달린 가지째 주었고 사흘이 지나자 잠박의 수는 8개로 늘어났고 영준은 솔가지를 서너 지개 해다가 마당에 말려서 누에섶을 준비했다.
그리고 누에가 밤 낮 없이 먹는데 소리가 비가 내리는 소리와 홉사 했다.
그렇게 여세 동안 밤낮 없이 먹어 대는 동안에 선민은 누에가 보이는 곳에서는 담배도 못 피우게 하고 뱀을 보면 세수를 하라고 하면서 뱀을 보고 그냥 누에를 보면 여러 마리가 뱀처럼 길게 고치를 짓는다고 했다.
이레째 되니 잠박 옆으로 나와서 고치를 지을 자리를 찾는 누에도 있어서 골라다 문살에 올려놓으니 고치를 짓기 시작하는 누에도 있었다.
아침에 뽕을 주고, 누에를 열심히 살펴보던 선민이 이제 늙었다고 하면서 잠박을 들어내어 밝은 대청으로 나와서 다리를 살펴보아 늙은 누에를 골라내기 시작하자 길연의 부인 그리고 차 포수 의 부인 금선이 늙은 누에를 골라서, 목판과 쟁반에 담아서 내어주면, 영준이 건넌방에 초배지를 깔고 솔가지를 세워서 섶을 만들어서 초배지 위에 누에를 삼사십 마리씩 놓았다.
그러면 누에들은 소나무 가지를 올라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으면 똥과 오줌을 싸서 속을 깨끗이 비우고 입으로 실을 토해내며 고치를 짓기 시작하는데, 늦게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자리를 잡으며 오줌이나 똥을 싸는 놈이 있는데 이게 우연히 아래에서 짓고 있는 고치에 떨어지면 얼룩진 고치가 되기도 한다.
한방 가득히 섶을 세우고, 누에를 올렸다.
그리고 한 잠박 가까이 아직 늙지 않은 누에가 남았다.
그 누에는 뽕을 더 먹고 수시로 늙는 대로 골라서 문살에 올렸다.
일찍 늙어도 문살에서 집을 지어야 하고 늦게 늙어도 문살에 집을 지어야 하고, 그렇게 삼사일 만에 다 늙어서 올리고 나서 누에가 일주일이면 고치를 다 짓고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된다.
여드레 째 되는 날, 고치를 따는 데 조금 크고 겉이 꺼칠해 보이는 고치가 있는데, 쌍견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보아서는 암수 구분이 되지 않는데 저희끼리 눈이 맞았는지 한 쌍이 되어 고치를 지었는지, 쌍견은 실뽑기가 곤란해서 하다고 따로 두었다가 씨를 받아야 한다고 선민이 깨끗한 한지를 깔고 바구니에 따로 보관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밤늦게 까지 끓는 물에 고치를 담가서 물레를 돌려가면서 실을 뽑아야 했는데 조자리고치는 실이 잘 안 풀려서 애를 먹어서 떼어내고 잘라서 번데기는 먹고 따로 모아두었다가 쌍견꼬치 와 함께 푸솜을 만들기 위해서 따로 모아 두었다,
그리고 열이틀 째 되는 날 씨고치로 두었던 쌍견에서 구멍을 뚫고 나방 한 쌍이 나와서 교미를 하고 알을 한지에 낳았다.
이렇게 한 달이 넘는 동안 바쁘게 누에 농사가 끝났을 무렵 보리가 익어서 보리를 베어내고 보리타작에 밀 타작까지 하고나니 벌써 논매기 철이 다가오고 덩달아 바빠지는 곳이 있었으니 대장간 이었다.
달아서 작아진 호미에 날을 덧대어 벼리는 일로 풀무질을 하고 달구어진 호미를 모루에 올려놓고 망치로 두드려서 얇게 한 다음 날을 덧대어 다시 두드려 본래의 모양으로 만들어 내는데 쇠를 덧대고 달구어서 황토 흙물에 담가다가 다시 달구어서 두드렸다.
무슨 접착 작용을 하는지, 이 밖에도 낫, 괭이, 쇠스랑, 쟁기에 쓰는 보습, 볏, 모든 연장을 만드는 기술도 좋았지만 힘도 좋았다.
그렇게 논매기를 애벌 두벌 매고 나면 근호는 논두렁에 풀을 깎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영린은 그날 깎아놓은 풀 중에서 소가 먹기 좋은 것만 골라서 소쿠리를 얹은 지개에 지고 오면 되었다.
콩 밭도 두 벌을 매고 나면 벌써 여름의 다가고 벼 이삭이 패기시작 했다.
그러는 틈에 하루는 선민이 밀을 빻아서 체로 치고 남은 밀기울을 가지고 반죽을 지어 밑 빠진 쳇바퀴에다 삼배 보자기를 깔고 그 위에 뒷간 옆에 있는 삼씨를 밭으려고 심어놓아 잎이 큰 삼 잎을 깔고 밀기울 반죽을 넣고 보자기를 감싸 덥고 발로 꼭꼭 밟아서 누룩을 만들어서 약간 서늘한 윗방 한쪽에 쑥을 베어다 깔고 열 개가 넘게 만들어서 놓고 그 위에 쑥을 또 덮어놓고 기다리면 마르면서 뽀얀 곰팡이가 피어나는데, 건조하고 곳에 보관하여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가루를 내어 술을 담갔다.
그 무렵에 누에씨가 깨어나고 또 한바탕 누에를 치느냐 한 달이 넘게 고생을 하고 나니, 이번에는 동내 사람들이 모여서 작년 초겨울에 썼던 닥 부집에 모여서 돌을 걷어내고 삼 부집을 했다.
닥 부집과 다를 것은 여름에 해야 해서 무척 덥고 삼을 베어서 나무로 깎아서 만든 삼칼로 삼 잎을 쳐내는 과정이 달랐다.
삼은 일곱 단이나 되었다.
그날 밤은 온 동내가 마당에 광솔 불을 밝히고 삼을 벗겨서 빨랫줄에 걸어서 말렸다.
그리고 몇 칠이 지나서 시간이 나는 데로 얼레빗으로 째서 말려서 삼는데, 칼로 다듬고 손톱으로 끝을 쪼개고 바가지나 무릎에 올려놓고 비벼가면서 실을 이어 가면서 삼아서 물레에 자아서 실톳을 만들어 돌꼇에 올려 콩짚을 때서 만든 잿물에 삶고, 맑은 물에 계속해서 삼 때가 빠질 때까지 씻어서 이것을 다시 돌꼇에서 내려 실을 사렸다가 꾸리를 지어서 두었고, 삼을 벗겨낸 조략은 묵어 두었다가 정월 대보름 달맞이 때 쓰려고 뒷간 시렁에 올려놓았다.
연희가 베 네 필을 짜서 삼아 놓은 실을 추석 닷새 전에 모두 다 짜자. 선민이
“올해는 새 애기가 베를 잘 짜서 내년 봄까지 가지 않고 다 짜 치워서 내 속이 다 시원하구나.”
했다.
그리고 들판에서 아이들의 새 쫓는 소리가 들리는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추석이 다가오고, 연희는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달거리 때가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그동안 몇 칠씩 늦어지는 때도 있어서 몇 칠 안에 있겠지 하면서 추석을 지낼 음식을 만드느냐 정신없이 지났고, 그렇게 추석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그제야 정옥이의 말이 떠올랐다.
달 걸이가 보름 이상 없으면 아이가 들어선 것이니 몸조심 하라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베틀에는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명주실이 보름 세(1200가닥의 실)로 얹어지고 명주를 짜는 동안에 번데기가 그렇게 맛있어서 밥보다 더 많이 먹었다.
그러는 연희를 보고 금선이
“동서 아무래도 수상한데, 언제 부터야.”
“잘은 모르겠는데요, 지난달 달거리가 없었어요.”
“아이고 애기 내 애기야.”
이야기를 전해들은 선민도 기뻐하였다.
그리고 명주 한필을 짜는데. 열흘이나 걸렸고. 가을걷이가 시작되어 두 번째 도투마리를 올리고는 한 달 동안은 조금씩 짬이 나는 동안에만 베틀에 앉을 수 있었으나 이마저도 가을걷이가 시작되자 바빠서 베틀에 올라갈 새가 없었다.
벼를 베어서 논에 깔아서 말리고 물이 있는 고래실논은 볏단을 밖으로 내다가 세워서 말리거나 볏단을 나무에 매달아 말렸다.
그리고 모두 마당으로 저다 쌓아야 하는데 이때에는 영린도 몇 칠 동안 볏단을 지개로 저 날랐다.
모두 돌아가면서 타작을 하는데, 새벽부터 아침준비를 해서 먼동이 트기 전에 일꾼들 아침을 마치고 먼동이 트면서 먼저 통나무에 다리를 붙여놓은 개상 또는 절구통을 옆으로 눕혀서 굴러가지 않게 나무 두 개를 묶어서 고이고, 2m쯤 되는 요즈음 줄넘기놀이에 쓰이는 것 같이 생긴 것을 삼으로 서너 겹 꼬아서 만든 것을 볏단에 두 번 둘러서 절구통에 태질을 하는데 절구통이 서너 개씩 놓고 태질을 해서주면 뒤에 있는 사람이 볏짚을 추리면서 덜 털린 것은 따로 옆으로 빼놓고 볏짚의 밑 부분의 곁때기를 발로 밟고 훑어내고 짚을 묶어서 새끼를 꼬거나 지붕을 이을 때 쓰고 나머지는 소의 여물로 쓰고 곁때기는 따로 묶어서 쌓아 놓았다가 소가 깔고 누워서 자는데 쓰기 위하여 쓴다.
그리고 덜 털린 것과 태질을 하면서 덜 털리고 나온 거친 것은 싸리비로 쓸어서 모아서 따로 두었다. 여느 농사일 보다 타작은 풍요로워서 그런지 이웃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음식을 만들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챙겨서 먹였다.
참은 열시에 그리고 틈틈이 술이 나갔고 점심은 열두시에 그리고 저녁참이 끝날 무렵 타작은 끝나고, 대여섯 명이 키를 들고 뺑 둘러서서 넉가래로 벼를 퍼 넘길 적마다 부쳐서 쭉정이나 답세기를 날려 보냈다,
그렇게 벼를 두 번을 뒤집고 나서 열 섬들이 부경에 넣고, 나머지 벼를 섬에다 담아서 다섯 섬을 묶어냈다.
이십 이전에 벼 한 섬을 지고 일어나면 장사라고 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벼를 한 섬씩 저서 나르려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더구나 대문 문지방을 넘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렇게 매일 일을 나가는 영준은 대단했다.
그날따라 연희는 입덧이 심해서 음식을 얼마 먹지 못했다.
이튿날 근호와 영린은 어제 덜 털린 복대기를 하루 종일 도리깨질을 해서 털어냈고. 선민과 금선이 키로 까불러서 한 가마니 반이나 되었다.
그리고 바로 밭에서 콩을 뽑아서 묶고 팥도 뽑아서 묶고 들깨를 잘라서 묶어서 세우고 수수는 이삭만 따로 잘라서 묶어서, 나무와 나무 사이에 기다란 나무를 걸쳐 놓고 언어서 이삭 째로 말렸다.
그러니 영린은 마냥 공부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
그리고 영준은 매일 보리밭 갈이 품앗이를 나가야 하니 남은 집안 식구들이 콩을 뺀 나머지를 하루에 한 가지씩 털어야 했다.
하루는 들깨를 하루는 팥을 하루는 검정콩을 하루는 논두렁에 심은 밤콩을 하루는 이삭을 잘라서 말린 차조를 하루는 수수를 터는데 수수는 도리깨로 털지 않고 커다란 함지를 엎어놓고 수수목을 한 움큼씩 쥐고 내리 처서 털어내야 수수 짚으로 빗자루를 맬 수가 있다.
그러는 사이에 보리와 밀을 심는 날이 다가왔다.
전날 근호는 똥 뒷간에서 재와 똥이 섞여져 일 년 동안 쌓인 재를 마당에 퍼다 놓고, 보리깜부기 나 밀깜부기 병이 생기지 말라고 오줌귀웅에서 오줌을 오줌동이에다 담아다 놓고, 보리를 넣고 저어서 소독을 한 다음 재하고 섞어서 조그만 산소 만하게 쌓아놓고, 밀도 똑같이 해서 한쪽에 그보다 조금 더 작게 만들어 놓았다.
보리를 심는 날 소 두 마리가 겨리로 밭을 가는데, 소 끄는 사람 쟁기질 하는 사람 보리씨가 섞인 재를 삼태기에 담아다 뿌리는 사람 그리고 괭이로 씨를 묻는 사람이 두 사람 재를 지개에 소쿠리를 얹어서 저서 밭에까지 나르는 일은 영린이 하였다.
무엇보다도 소가 매일 쟁기질을 해야 하니 제일 힘들어 해서 소가 하루를 하면 사람 둘로 품을 쳐주고 소는 이틀을 일하고 하루를 쉬는데 세 마리가 한조를 이루어 일을 했다.
그렇게 추경이 끝나고 나서야 서리가 하얗게 내릴 무렵에 콩을 터는데 하루 전 물푸레나무로 된 도리깨아들이 깨지지 말라고 물에 담가 두었다.
그리고 콩알이 멀리 달아나지 말라고 마당 옆에는 뺑 둘러서 짚단을 눕혀 놓고 삼부자가 도리깨질을 하고 쉬는 틈에 다 털린 콩 짚을 걷어서 묶어내고 콩깍지를 싸리비로 쓸어서 수수깡으로 만든 깍짓동에 넣고, 콩을 한쪽에 모아 놓고 다시 콩 단을 마당에 피고 도리깨질을 너 댓 번 하고 나니 저녁 무렵이 되었고, 수북이 모아놓은 콩을 마침 바람이 불어서 멍석을 깔고 싸리비를 멍석 끝에 고이고 키에 콩을 담아 흔들면서 뿌려서 검불이 날아가게 하였다.
그마저도 해가지니 바람이 자서 선민 금선 연희는 밤늦게 까지 까불렸지만 못다 까불려서 다음날 한나절을 더 까불러야 해서 홀몸도 아닌 연희는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그리고 이 늦가을에 나오지도 않는 복숭아가 먹고 싶었다.
그리고 몇 칠이 지나서 기름을 짜는데, 기름틀은 사다리 모양을 한 기둥을 세운 머릿골의 아랫세장 위에 팔자(八字)모양으로 벌어진 두툼한 나무 윗부분을 깎아서 만든 홉사 사람이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모양으로 가랑이 사이로 기름이 흐르기 좋게 홈을 파 놓아서 그 밑에 그릇을 넣고 기름을 받게 되어 있는데, 그 위에 들깨를 물에 씻어서 멍석에 펴서 말려서 가마솥에 넣고 나무주걱으로 저으면서 살짝 볶아서 절구에 찧어서 삼베 보자기에 싸서 시루에 넣고 약간 쪄서 보자기째 들고 와서 떡판을 올려놓고 그 위에 석가래 보다 실하고 굴은 나무 두 개를 윗세장에 끼우고 맷돌 두 개를 올려놓고 그 위에 돌을 더 얻었다.
가랑이 사이로 기름이 흘러서 커다란 놋 양푼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사이에 나물과 김치 고추장에 새로 짠 들기름을 넣고, 비빔밥을 차려내고, 금선과 연희는 이남박 비빔밥을 퍼가지고 마주 앉아서 먹었다.
셋이 먹다가 둘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었다.
그리고 또 한 말을 볶아서 찧고 쪄서 올리면서 보니 기름이 한 되가 조금 넘게 나왔다.
올해는 가을에 날일기가 좋아서 들깨가 잘 여물었다.
그리고 다음날은 지난번 틈틈이 금선이 산을 오르내리며 따온 산초 한말이 조금 못되는 것을 절구에 찧어서 시루에 쪄서 짰는데. 여기서도 한 되가 조금 못되게 나왔고. 동백도(여기서 동백은 생강나무 열매) 서너 되 절구에 찧어서 짰는데 반 사발이 조금 넘게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까리기름이 서너 되 이렇게 이틀 동안 기름을 짰다.
그리고 보니 어느덧 시집 온지 일 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햇살이 따듯한 날 하루는 풀을 쑤어 모든 방문에 창호지를 뜯어내고 문풍지가 되게끔 크게 잘라서 붙이고 손잡이 부분은 국화 꽃잎과 잎으로 예쁘게 늘어놓고 창호지를 가로세로 한 뼘 정도 되게 오려서 붙였다.
건넌방과 안방은 치영이 돌아다니며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구멍을 내어서 많이 뚫어져 있었다.
그렇게 겨울준비가 되어가고, 연희는 베틀에 앉아서 자아 놓았던 명주를 짜고 선민은 시아를 돌려서 목화씨를 빼고 금선은 문래를 돌려서 무명실을 잣는 게 일과가 되었다.
그해 섣달에는 옷을 짓는데 치영이 조금 자라서 새로 연희가 지어주었다.
금선이가 한마디 했다.
“우리 치영이 작은엄마 덕에 호사하내.”
그리고 설날이 지나고 선민은 한숨을 내쉬며 올해도 못 오나 하긴 어린 영훈을 100여리가 넘는 길을 데리고 올 수 있겠는가 하며 위안을 삼았다.
하긴 선민은 영훈이 생각만 했지 금선은 친정을 잊고 산지가 얼마인지, 연희의 생각도 같았지만 감히 입도 벙긋하지를 못했다.
초닷샛날 밤 여덟 시 무렵 기호가 영훈이를 데리고 왔다.
영훈이 엄마를 부르며 선민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기호가 근호에게 인사를 올리면서, 설을 쇠러 탑거리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래 어머니는 강령하시고.”
“예, 아주 정정 하십니다.”
“형님 내외분은.”
“형님이 몸이 조금 안 좋은 모양입니다.”
“그래 걱정이로구나. 하긴 올해 쉰여섯 되셨으니.”
바로 영훈이가 근호에게 세배를 하면서
“아버지 세배 받으셔요.”
하다가 기호 눈치를 보면서
“큰아버지 세배 받으세요.”
하면서 세배를 했다.
선민에게도 “큰어머니 세배 받으세요.”
하면서 세배를 했다.
“그래 엄마 말 잘 듣고 복 만이 받고 건강해라.”
그리고 차례로 영준 부부와 영린의 부부가 기호에게 세배를 했고, 영훈이도 영준내외와 영린 내외에게 세배를 했다.
바로 저녁을 먹으며
“영훈이가 올해 열한 살이구나.”
“네.”
“그래 너도 탑거리에 갔다 왔냐.”
“아니요.”
“저만 갔다 왔어요. 여기에 오려면 영훈이가 힘들 것 같아서 못 데리고 갔어요.”
“어유, 그래 한양에서 하루 쉬고, 또 여기를 왔으니 엄청 힘들었겠다.”
“아니에요, 어제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 무렵 사기막 처갓집에 들려서 하룻밤 자고 오늘 아침 일찍 출발해서 왔어요.”
“그래 사장 어르신 내외분도 강건하시고.”
“예.”
그러고 보니 한우제를 넘고 소리산을 넘고 벼슬고개를 넘어서 100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왔으니 보통 정성이 아니고는 오지 못한다.
실로 오랜만에 모자 상봉이 이루어 졌다.
선민은 영훈을 옆에 누이고 꼭 끌어안으며
“엄마 보고 싶었지.”
영훈이 조그만 목소리로
“응”
하면서 선민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이튿날 아침을 먹기가 무섭게 영훈이는 밖으로 나가서 노느냐 정신이 없었다.
일 년 넘게 있다가 와보는 고향이라서 꽤 좋은 모양이다.
선민은 영훈이 나갔다 오면 먹을 것을 챙겨 먹이는데, 하루 종일 매달려서 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엿새가 지나서 다시 영훈이 기호를 따라서 떠나기 전날 저녁 선민은 영훈의 머리를 따주며, 눈가에 고이는 눈물을 찍어냈고.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영훈은 잠이 들었다.
선민은 아주까리 등불 밑에서 잠든 영훈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잠 못 이루고 긴 밤을 지세고 새벽같이 밥을 지어서 먹이고 어슴푸레 동이 터올 무렵 기호를 따라서 영훈은 떠났다.
선민은 몇 칠 동안은 멍하니 있다가 금선이나 연희가 어머니 하고 두어 번 부르면 그제야 대답을 했다.
아직도 대문 소리가 나고 영훈이 놀다가 뛰어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정월이 가고 이월이 되자 어느덧 보리밭이랑 사이로 달래가 올라왔다.
금선이 종다리기를 허리에 차고 호미를 챙겨들고 두어 시간 만에 종다리기 에 두어 움큼의 달래를 캐서 저녁에 고추장을 넣은 달래찌개를 한 뚝배기 끓여 냈다.
그리고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연희는 무명을 짜고. 봄이 성큼 다가오자 금선은 틈틈이 산나물을 뜯어다 반찬을 만들고 고사리 취 수리취는 삶아서 말렸다.
그리고 연희는 태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베틀에 앉아있으면 엄마하고 같이 베를 짜는지 발로 찼다.
밤에는 영린이 연희의 배에 손을 대보며 신기한 듯 이 녀석이 아들일까 딸일까 하며 귀까지 대어 보았다.
그리고 보리타작을 하던 날 진통이 시작 되었다.
아침에 배가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점심준비를 하던 중 배가 너무 아파서 얼굴이 일그러지자 눈치를 첸 금선이 얼른 방에 들여보냈다.
그리고 누워서 조금 있으니 괜찮아 졌다.
아직 나올 때가 안됐나 싶어서 나가려고 일어났더니 다시 진통이 와서 누웠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해서 진통이 오는데, 한 시간 간격이던 진통은 아팠다 덜 아팠다 만 했지 계속 아팠다.
그렇게 사람의 진을 다 빼더니 이튿날 새벽 첫닭이 울 무렵 선민은 물을 데우게 하고 아이 받을 준비를 시켰다.
그리고 연희가 숨을 몰아쉬면서 배에 힘을 가하기 시작했고 선민이 연희의 잡고 힘을 주다가 안 되겠는지 어미야 기저귀에 쓸 소창을 가져오라고 했다.
금선이 소창을 가져다, 시렁에 걸어서 양손에 감아쥐고 힘을 주게 하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선민이
“이제 나온다, 나온다, 조금 더,”
그리고 연희가 남아있는 마지막 힘을 가 했을 때, 아이가 나왔다.
연희는 아 이제야 끝났구나 하며 길게 숨을 쉬었다.
잠시 후 아이의
“응아,”
하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아들이 구나 아들이야,”
하는 선민의 소리가 들렸다.
태의 양쪽을 실로 묶고, 끓는 물에 담가 두었던 가위를 금선이 가져오고 선민이 태를 잘랐다.
그리고 연희쪽에 있는 탯줄을 묶은 실을 연희의 엄지발가락에 묶어 놓고, 덥혀진 물로 아이 목욕을 시켜서 배냇저고리를 입혀서 연희의 옆에 눕혔다.
그리고 연희의 얼굴을 금선이 닦아주며 애썼네 했다.
그리고 연희는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아침이 되고 선민이 연희의 배를 문지르면서 탯줄을 잡고 조금 힘을 줘라 했다.
다시 끈을 잡고 힘을 주고 선민은 탯줄을 살살 잡아 당겼다.
그리고 이내 태반이 쏟아져 나왔다.
그제야 선민이
“이젠 다 됐다, 아가 애썼다,”
했다.
그리고 근호는 왼쪽으로 새끼줄을 꼬아서 솔가지 숯덩이 고추를 차례로 꽂아서 대문에 늘려 달아맸다.
첫국밥을 먹고 우는 아기에게 초유를 먹이고, 근호는 미리 지어 두었던 손자의 이름을 치수라고 하였다.
첫댓글 그 옛날 정월의 풍습을 떠올리게 하네요.
그때 처럼 색동 저고리에 널을 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