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이후로 펠이 무지하게 반항했다는 건 얘기해 두겠다.
중간중간 반말도 나오고… 후후후…
황성에 도착해서 하루를 보낸 뒤 나는 예현이를 궁으로 불렀다.
내가 가는 게 낫겠지만 황태자가 특정가문에 들락거리는 것은 외관상 보기가 좋지 않으니까.
예현이가 궁에 들어오는 건 표면상 우리는 약혼된 관계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볼 수 있고.
황태자궁에 마련된 응접실에서 쌉싸름한 티를 홀짝대면서 예현이를 기다렸다.
어그란트에서의 일은 아직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줄곧 생각하고 그리워했던 그녀가 바로 나의 약혼녀였을 줄이야.
생각해보면 이대로도 좋았을지 모른다.
육체는 다르지만 나는 나였고, 그녀는 그녀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이란 것은… 행복한 것일테지.
물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우린 표면상 ‘쌍둥이’남매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일은 불가능해질 것이고… 그렇지만, 내가 처음부터 이 감정을 가졌을 때 이뤄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제와서의 미련은 없다. 그저… 새로이 생긴 사람들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그들과 헤어지는 것뿐.
“전하, 미하엘 공녀오셨습니다”
“들어오세요”
시종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 예현이가 들어왔다.
그녀가 예현이라는 것을 알고 새삼 그녀를 볼때마다 정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원래 이쁜 얼굴이기는 했지만 하늘하늘한 드레스가 저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이리와 앉아”
내 반대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녀는 다소곳한 태도로 걸어오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풋하고 웃자, 뭔가 맘에 안든다는 듯이 눈을 치켜뜬다.
“뭐가 웃겨?”
“아니… 미하엘의 공녀께서 예현이로 돌아오기만 하면 태도가 너무 바뀌잖아. 큭큭…”
“여기 누가 더 있나. 너밖에 없잖아~”
“그래그래. 넌 결정했니?”
“결정하고 말게 어딨어. 당연히……. 돌아가야지”
“역시 그렇지? 바로 이동이 가능 한걸까?”
“아니라고 알고 있어. 차원이동에 필요한 마나를 모으는 기간이 꽤 걸린다고 하더라”
“그런가… 그럼 일단 이야기 해야겠지. 돌아가겠다고… 다른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었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이곳에 남는 방법이 있었다면, 나는 주저앉고 그 선택지를 골랐을 것이다.
원래 주인에게 몸을 돌려줘야 한다했어도 황태자의 자리같은 것,
소중한 사람들의 옆에 있는 것과는 너무도 보잘것없는 일이 아닌가.
“저기, 예현아”
“응?”
서로 생각할 일이 많아서 그런지 침묵이 이어졌지만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다.
조용히 차를 마시는 그녀를 부르자 조금 멍하게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 그사람을 만나고 싶어”
“……? 그사람?”
“에르… 라는 사람”
“뭐?!”
예현이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와 내가 접촉하면 죽어나가는건 예현이니…
“갑자기 왜?”
“그에게 이야기 할게 있어…”
“이야기?”
“응. 그는 황태자잖아. 그가 다시 자리를 되찾았을 때 나와 너무 다르면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나는 기억상실이란 명목으로 그런 혼란을 겪지 않았지만, 그는 아니니까.“
“그렇지… 너희는 몸이 바뀌었구나”
“으응…”
“알았어. 그는 아마 신룡과 함께 있을거야. 그를 만나면 이야기 해볼게, 신룡의 힘을 빌면 가능할지도”
“고마워”
“고맙긴…”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다시 차를 마신다.
신룡 크르노사엘이 얼마만큼의 능력을 가진 존재인지는 잘 모르지만 예현이의 시간의 역행을 막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저렇게 선뜻 수락하다니, 그 부탁을 할까말까 고민한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다.
#
“오늘 밤에, 궁 서쪽방향으로 공터가 있을 거야. 그곳으로 나와, 시각은 자정까지”
대뜸 공작을 따라 입궁했던 예현이가 내게 전해주고 간 말이었다.
그에 따라 나는 밤에 몰래 나갈 준비를 했고, 자정이 되기 전 황태자궁을 빠져나왔다.
검은 망토로 몸을 최대한 숨긴 채로 성벽을 넘었다.
요즘 생각하는 거지만 인간의 몸으로 이런 게 가능하다니 정말 놀라울 다름이었다.
성을 빠져나와 빠르게 달려 공터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세명의 인영이 있었는데, 남자둘에 여자하나였다.
“예현?”
“아, 빨리와”
가까이 다가가니 한사람은 검은 후드로 얼굴까지 푹 눌러쓰고 있었고, 한 남자는 강렬한 붉은 머리칼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다는 건…
내가 생각을 채 다 하지 못했을 때 후드를 쓴 남자가 후드를 벗었다.
“…!”
“이상하군. 내 얼굴을 이렇게 마주본다는 게…”
“당신이…”
“그래. 내가 ‘에르’다.”
나와 똑같은 얼굴… 아니, 나의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나도 상당히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고 다녔는데, 이 남자는… 싸늘했다.
“아! 예현아, 괜찮아?”
“응. 카마엘님 어서…”
“그래”
붉은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주변이 정체모를 빛으로 둘러쌓였다.
잠깐 정신이 멀어진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텔레포트?”
“그래. 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붉은머리의 남자… 신룡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예현이를 한쪽으로 끌고갔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한 사람. 에르는 내 어깨를 툭치더니 어디론가 따라오라 했다.
그 공간은 전체적으로 금빛이 흐르는 반구형의 공동이었다.
여기저기 복잡한 수식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 이곳이 차원이동을 하기위한 장소인건가.
“우리가 대화를 하 는동안 란은 카마엘이 그녀에게만 시간이 정지되는 마법을 시전할거다.
지속시간은 얼마 되지 않으니… 이야기를 어서 끝내지“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마냥 서있는 것도 그래서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에르역시도 별말 하지 않고 나의 맞은편에 앉았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제가… 황태자로 살면서의 일들을 모두 알고 계십니까?”
“모두라… 외부에 퍼진 이야기들은 모두 알고 있지. 글쎄, 그 이외에 어떤 것을?”
“개인적인 친분이나… 그런 것 말입니다”
“그거야 당연히 모르지. 아아, 그런가. 오늘 그이야기를 하려고 보자고 한 것이군”
“예”
“그래, 누구말이지?”
“처음부터… 황태자의 보좌관이었던 페르니엘과 지난 전쟁중에 알게 된 존과 클라우드라는 젊은 귀족들입니다.”
“아아, 펠말인가. 존과 클라우드라… 신흥귀족인가?”
“예. 상당히 진취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젊은나이에 비상한머리를 가지고 있고, 전략과 전술에 능합니다.
신체적 능력은 잘 모르겠지만… 검술에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런데, 그저 황태자를 보필하는 정도의 친분이 아닌 것 같군. 내게 이렇게 부탁까지 할 정도라니…”
“친구들입니다.”
“친구?”
“예…”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가진 정보로는 전에 너도 대인관계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는데… 그런 정도라면 나도 깊게 사귀어 봐도 괜찮겠지”
“정보요?”
“응. 나는 네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거든”
“예?”
“이 몸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말이야”
“예에?!”
“왜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 내 몸으로 돌아가면 왠만한 기억은 다 잊혀지겠지.
이 기억들은 네 몸에 새겨진 것이지 내 영혼이 가진 기억이 아니니까.“
“그렇군요…”
“그나저나, 펠하고도 친한가보지?”
“예. 그는… 저를 알고 있습니다”
“……? 알고 있다?”
“제가 본래 황태자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고?!”
“예. 전에 이야기 해준 일이 있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그 정도로… 그와?”
“뭐… 이번에 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반발이 심하긴 했지만…”
“페르니엘 이자식… 나 없는 사이에…”
“전하도 아끼고 있습니다. 그저…”
“알고 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 그건 그렇고. 나도 부탁할게 있다”
“예?”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고개를 돌려 멀찍이 서있는 예현이를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돌려 긴 한숨을 쉬었다.
“그녀를… 잘 부탁한다.”
“아. 예현이 말인가요?”
“그래…”
그러고보니 예현이가 티를 잘 안내서 그렇지, 두사람 사랑하는 사이라고 했었다.
물론 나 역시도 예현이를 좋아하지만… 그다지 질투라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저 마지막까지 할수 없는 두 사람에 대해 안타까웠을뿐…
“너도 그녀를 좋아하지?”
“……. 그런것까지 알고계십니까”
“이게 괜히 네 몸이겠냐”
약간 웃음기를 띄며 말한 그는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함께해주지 못하는 만큼 곁에 있어줘라”
“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불행하게 해서는 안된다”
“물론이죠”
나의 단호한 대답이 맘에 들었는지 그는 한쪽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손을 맞잡았다.
“감사합니다”
“고맙다”
이야기가 끝나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현이 쪽으로 다가갔다.
“할말은 다했나?”
“예”
“그럼 돌아가도록 하지.”
동시에 아까와 같은 밝은 빛이 주변을 감싸고 곧 성 주변의 공터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마 이대로 헤어지면, 차원이동을 하는 그날 다시 만날 것이다.
“너희들. 후회는 없지?”
“무슨…”
“돌아가는 것.”
“예, 후회는 없습니다. 그저… 모두와 헤어지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알았다. 일주일의 시간을 주마. 마나를 모으는데 드는 시간은 약 5일. 그 시간동안의 유예를 주겠다.
그동안… 모두 정리하고 오너라.“
“……예”
신룡 크르노사엘이 준 시간은 일주일.
그 시간동안… 난 무엇을 해야 할까.
모두가 돌아가고, 나 역시 다시 궁으로 돌아가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그것뿐이었다.
일주일간의 유예.
모두와… 여행을 가는 것도 좋겠군.
다음편은 예현이의 시점에서 이어지겠네요.
이제 약 네다섯편에 걸쳐서 두사람의 마지막 여행이야기가 있을거랍니다.
생각보다 많이 길어질것 같은 불길함에 두려운 율이랍니다;
오늘이 벌써 27일이니...
시간이 없어요!!!!!!!!!!111
생각보다 연재가 늦어질경우 3월까지 질질끌가능성이...
요즘에 공부는 안하고 소설을 읽고있습니다.
사람들이 꽤 많이 추천하는걸로 보고 있는데, 생각없이 읽기 재밌더군요.
역시 작품성 있는 글들은 찾기가 힘듭니다.
아, 얼마전에 룬의아이들 데모닉이 완결이 났지요!
빨리 봐야되는데 친구꺼를 뺏어봐야겠네요, 후아아아
그나저나 전편에 꼬리에서 리트님이 sixsix 를 보고 66편인줄 '알았다가'
아니란걸 알았다는것을보고............
저.... 66편 맞는데요<
........
아하하하... 무튼, 오늘도 이만 물러갑니다.
카페 게시글
로맨스판타지소설
[판타지]
엇갈린 운명[Mischief of destiny] ㅡSix·Seven
율、
추천 0
조회 126
07.02.27 16:19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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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지막여행이라‥ 이럴순 없어요 ! <
에에, 마지막여행할때도 됐잖아요< [응?]
꺄아, 끝나가는 무렵 도현이시점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 무슨 짓인지 참.. 드디어 예현이가,!!!
헛, 제가 시점을 좀 빨리 마치긴 했지만................... 어허, 예현이 시점에 이제 적응하실땝니다<
어머 66편........1화부터 봐야할거 같네요 'ㅂ' 1편부터 보러 슝
어머, 베르아님 안녕하세요< 어억, 1편부터라니; 힘겨우실텐데;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ㄷㄷ 마지막.. 그리고 드디어!!!! 아악, 정말 아쉬어요. 저는 소설을 1편부터 작가님과 함께 계속 리플달아주며 지켜보다가 완결나는 것 까지 함께 볼때가 가장 슬프고 기쁘더라구요ㅜ 저는 제 소설을 완결낼 수 있을지.
가능합니다! 린아님은 저보다 팬층도 많으니 아마 힘이 되실거에요< 저도 린아님이 많이 도움되었답니다
마지막여행.. 이라니ㅜㅜ 조금은 슬픈데요?
저도 슬프답니다............. 어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