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으로 우연히
그 유명한 전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 선생을
관심 있게 들여다 보았지비다. 그런데...... 참 그런데~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崔承喜)는 1911년 11월 24일에 홍천에서 태어나 1969년 8월 8일 평양에서 사망하였다.
숙명여고 졸업후 일본에서 3년 동안 춤 공부를 하고 귀국하여 경성(서울)에서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한 것이
1929년이었으니 불과 18세 때였다. 선구자였고 천재였다.
1934년 9월 일본 청년회관에서 그녀의 첫 무용발표회가 열렸는데
이때 발표한 〈거친 들판에 가다〉·〈칼춤〉·〈승무〉 등은 조선의 정취를 담았다는 찬사를 받았다.
1937년 12월 미국을 거쳐 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네덜란드 등을 순회공연했다.
해외공연 후 많은 평론가들은 동양의 무희라고 극찬했고, 벨기에에서는 제2회 국제무용 콩쿠르 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불꽃처럼 바람처럼, 무희 최승희’
출생 :1911년 11월 24일 , 홍천군 금물산면(남면) 제곡리
사망 :1969년 8월 8일 (향년 57세) 평양
1936년 야외무용.
▲1934년 8월, 카마쿠라 유이가하마에서 열린 '최승희 촬영회'에 등장한 최승희.
수천 대의 카메라 앞에서도 생생한 아름다운 모습을 한껏 드러냈다.
이 사진은 쇼와시대 사진가 쿠와바라 키네오(桑原甲子雄, 1913-2007)의 2등 수상작이다.
* 1등 수상작은 숨어 있을 것...
▲<도쿄니치니치신문>이 독자들에게 사은품으로 제작한 1936년 달력에서는 5월의 사진 모델로 최승희가 선정됐다.
최승희의 단단하면서 아름다운 다리가 한껏 드러나 있다.
해방 후, 일제치하 일본군 위문 공연이 친일경력으로 평가되어 활동이 여의치 않은 데다
남편 안막이 먼저 월북하자 그녀도 1946년 7월 월북했다.
1946년 평양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무용연구소를 설립한다.
그러나 1958년 남편 안막이 숙청되고 나서 그녀의 삶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1967년 최승희 역시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시스] 2003년 북한의 국립묘지인 애국열사릉에 조성된 최승희(崔承喜)의 묘비. (사진=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06.07. photo@newsis.com
2003년 최승희의 묘가 국립묘지인 애국열사릉으로 이장되면서 완전히 복권됐다.
‘최승희 탄생 100주년’인 2011년에는 평양과 서울에서 최승희를 재조명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타👧 #주머니갤러리 #예술 #예술가 #최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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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승희 무용가는 남 북이 다 탐내는
사람였고 너무나 유명한 무용가 였죠.
북으로 가는 바람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 못하며
지내다 북에서 사망한 게 참으로
예술가로서 아쉬운 생각이 드네요.
남한에 있었으면 세계적으로 벌써
유명세를 탔을텐데요.
남한에서도 무용가들이 ( 연세 드신무용가 중)
최승희 제자가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최승희 무용가는 역사적으로 이미
알고 있었답니다. ㅎㅎ
별고을님 ! 발췌해 올리시느라
수고 많으셨네요. 잘 읽었네요. ㅎ
남에서는 친일파로
북에서는 사상이 어떻다고...
민족 역사의 비극이 ㅂ니다.
세심히 그 분의 인생사를 들여다 보니
안타까운 재주 맘껏 펼치지 못하고
어이 생을 마감했는지도 모르게
세상을 일찍 떠나버리니....
마음 아프답니다.
관심 있게 논평해 주시어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