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사를 찾아서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았다. 어제 오후 아파트단지 전 세대로 내보낸 방송이 나왔다. 관리사무소가 아닌 행정복지센터에서 직원이 파견 나와 입주민들에게 전하는 공지 사항이었다. 내일이 광복절이니 태극기를 게양해주십사는 내용이었다. 그 방송이 나올 때 나는 움찔 마음 한구석 미안한 생각이 들면서 광복절뿐만 아니라 다른 국경일에도 우리 집은 태극기를 내걸 처지가 못 되었다.
이곳 아파트로 이사 와 사는지 30여 년 세월이 지난다. 재작년 퇴직 후 첫해 봄 낡은 아파트를 리모델링, 앞으로도 계속 눌러살 작정이다. 이사 왔던 초기는 태극기를 내걸었더랬는데, 어느 해 여름 태풍으로 베란다에 국기 꼽는 자리가 망가졌다. 그 이후부터 국경일에 국기를 걸지 못하고 태극기도 어디로 사라졌다. 연전 아파트를 수리하면서 국기를 거는 자리는 미처 생각 못했다.
광복절 태극기는 내걸지 못해도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열을 기리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내가 그간 다녀온 답삿길에서 우리 지역에서도 기미년 만세 운동 때 일제 총칼에 희생된 다수의 선열을 곳곳에서 만났다. 장유 용두산 추모비, 진동 팔의사 창의비와 애국지사 사당, 진전 미천리나 군북 사촌리를 지나다 삼일운동 때 희생된 분을 기리는 사당이나 빗돌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광복절 자연학교는 마산역 광장 농어촌 버스 출발지를 기점으로 삼았다. 이른 아침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도중에 내려 마산역으로 향했다. 주말 이틀 아침은 광장으로 오르는 노변에 노점이 열리는데 광복절도 휴무일이라 상인들이 제철 푸성귀를 펼쳐 팔았다. 일찍 따낸 사과가 보이고 열무를 비롯해 호박잎이나 고구마잎이 싱싱했지만 내가 사 줄 여건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 손길로 산기슭에서 힘들게 따왔을 제피열매도 보였다. 주로 산간 현지 마을에서 연로한 할머니가 산자락으로 올라 따는 제피 열매가 여물어 향기가 진해지면 여름에서 가을로 전환됨을 알 수 있다. 추어탕이나 햇김치 향신료로 쓰일 열매였다. 텃밭을 일구어 가꾸었는지 시장으로 내다 팔려 심는지 햇고구마와 땅콩도 보여 가을이 문턱에 왔음을 저자 풍경에서 알 수 있었다.
역광장 모퉁이 농어촌 버스 출발지에서 진북 의림사로 가는 74번 버스를 탔다. 어시장을 둘러 댓거리를 거쳐 밤밭고개를 넘었다. 동전터널을 거쳐 진동 환승장에서 진북으로 향해 요양병원을 지난 일주문 앞에 내렸다. 범어사 말사 의림사는 고찰이긴 하나 전란을 거쳐오며 사적기를 남기지 못했다. 임진왜란 승병 기지로 왜군에 맞선 스님이 숲을 이룬 절이라는 사찰명이 방증했다.
한국전쟁 때 미군이 북한군과 치열한 진동 전투를 겪으면서 의림사 당우는 대부분 불타 염불당 외 다른 전각들은 모두 근래 중창된 집이다. 법당 마당 총탄에 파편이 튄 석탑이나 석당간 지주에서 의림사가 고찰임을 알 수 있다. 염불당 앞은 여름 뙤약볕에도 한 그루 파초가 넓은 잎을 펼쳐 자랐다. 돌계단을 올라서니 머리 위로 보이는 종무소 추녀 끝 매달린 풍경에 눈길이 머물렀다.
절집 해우소에서 수리봉으로 가는 숲길로 들었다. 후손이 성묘를 다녀갈 무덤은 아직 벌초를 하지 않아 풀이 무성했다. 여항산에서 서북산을 거쳐 온 수리봉은 주종을 이룬 참나무가 우거진 숲이다. 산행객 발길이 닿지 않는 숲에서 참나무 고사목 그루터기 붙는 영지버섯을 찾아봤는데 눈에 쉽게 띄질 않았다. 겨우 몇 조각 찾아냈으나 벌레가 꾀어 갉아먹어 성과가 미흡한 편이었다.
해발고도를 높여 숲을 누비려고 산마루로 향하는데 휴대폰에서 착신음이 울려 받았다. 초등 친구로부터 온 전화였는데 말복이었던 어제 못 먹은 삼계탕을 같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나로서는 숲을 더 누볐으면 지쳤을 터인데 곧장 하산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차를 한 번 더 갈아타 도계동 삼계탕집으로 갔더니 먼저 온 두 친구가 맞아주었다. 하루 시차 복달임으로 여름을 보내주었다. 24.08.15
첫댓글 창원을 떠나온 것이 2009년이니 15년 가까이 된다.
거기 살 때는 경남지방을 샅샅이 누비며 지리산, 가지산, 통영, 남해 등등을 안방 드나 들듯이 누비며 가까운 주남저수지, 우포늪, 낙동강, 남강, 섬진강 뿐만 아니라 가까운 마산, 진해, 창원 곳곳을 다녔다.
요즘은 멀리 이사와 살면서 그곳 낮 익은 이웃들의 이야기에 반가움이 일렁인다.
특히 주시인이 퇴임 후 자연학교에 다니며 고향 친구들과 교류하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탐방의 진미를 만끽하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지일관 지켜야 할 가치와 관습, 전통문화를 추억과 더불어 풀어내는 주시인의 삶이 존경스럽다.
부디 건강과 행복이 항상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호명 선생님, 창원에 계실 적 지나신 그 길 저가 밟고 지납니다.
지난날을 회상하시는 선생님의 추억에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후반부 일부 내용은 과찬이시고 그저 무념무상 걸을 뿐입니다.
내내 건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