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
이상열 선생님의 팔순잔치를 순조롭게 잘 치루었습니다.
동기생 열일곱과 부인 여섯이 선생님 내외분을 즐겁게 해드렸을 뿐만 아니라 향리에 사는 주민들 50여 세대에게도 보람된 하루가 되도록 선물을 준비하는 배려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퇴직하신 후 14년간 2천여 평의 생가를 무릉도원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선생님의 사는 보람이며, 생활자체요, 건강관리의 비법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선고(先考)의 아호(雅號)를 딴 ‘海岡齋’ 울타리 안에는 기화요초와 온갖 동물들이 선생님의 보살핌을 받고 있으며 인근의 시내 돌을 모아 만든 담장과 축대는 선생님의 심미안을 만족시키기 위해 흘리신 땀의 결정체였습니다.
향리의 주민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물레방아 돌아가는 모습은 내년쯤 찾아드는 손님을 놀라게 하기위해 착착 진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품을 떠난 지 40년이 넘은 이순(耳順)의 제자들을 기다리시는 선생님께서 밤잠을 설치면서 준비하신 ‘떡메치기’는 팔순답지 않으신 순발력 있는 선생님의 깜짝 이벤트였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떡메를 쳐보는 남학생(?)과 여학생(?)들의 서투른 솜씨는 떡을 모아주는 익숙한 동네 아지매들의 가르침을 받아 곧 바로 호흡을 맞출 줄 아는 우수성을 발휘함으로서 선생님의 순발력에 화답하였습니다.
거위들의 낯선 손님들을 환영하는 요란스러운 환호소리, 화들짝 놀라는 꿩들의 경망스러운 날개 짓이며, 반가운 눈망울로 꼬리를 흔드는 어진 진도개, 왠 손님이 왔느냐며 꿀꿀거리는 묏돼지의 심술, 둥지가 좁아 꼬리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는 멋쟁이 신사 공작새, 왜소한 몸짓으로 종종걸음 치는 토종닭의 바지런함 등 함께 살아가는 식구가 수백은 넘는 것 같았습니다.
채전 밭에는 상치, 정구지, 우엉, 파, 머구를 비롯해 온갖 채소가 봄의 기운을 받아 싹을 틔우고 있으며, 둔덕 아래 양지바른 곳에는 매화가 활짝 피어 은은한 암향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매일 아침 축대를 쌓을 돌과 흥정을 한다고 하십니다.
「오늘은 너를 옮겨도 괜찮을까?」하고 물어봐서 괜찮다고 하면 옮겨놓으신다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돌을 힘센 제자 몇이 교대로 들어봐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으로 봐서는 대단치 않아 보이는 돌이지만 그 무게가 만만찮은 돌을 선생님은 매일 이 돌과 흥정을 하여 수천 개로 축대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돌과의 흥정에서 순리를 따르는 선생님의 건강 비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제자들은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상열 선생님 청춘만세!!’라는 프랑카드를 보신 선생님께서는 여기에 ‘산 문상’(죽어서 문상 오면 죽은 자가 누가 왔는지 알겠느냐? 살아 있을 때 봐야지)이 빠졌구나 하시면서 살아계실 때 찾아준 제자들에게 고마움을 나타내는 스스럼없는 죠크를 던지셨습니다.
입고 계시는 낡은 회색 두루마기는 선고로부터 물려받으신 것이랍니다. 선고에 대한 그리움을 떨치지 못하시는 선생님의 효심의 단면을 엿본 제자들은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퇴직 후 낙향을 준비하시다가 퇴직 1개월여 남겨두고 타개하신 사모님을 가슴에 품고 90노모를 당신 혼자서 조석을 끊이고 수발을 드신 모습에서도 우리들은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보았습니다.
칠십 노인이 구십 노모를 봉양하기가 힘들어 지금의 사모님을 맞아들여 여생을 즐기며 살아가시는 슬기를 보고 제자들은 흐뭇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을 모시고 만찬장으로 자리를 옮겨 큰 절로 인사를 드리고 참석한 제자들이 자기소개와 스승의 건강을 축원하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재학 당시 학생회장이었던 정수태 회장은 개회 인사를 통해
「전국에서 이렇게 많이 축하드리러 온 것은 평소에 선생님을 사모하고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에게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선생님은 저희들의 영원한 스승이십니다.」라고 하며 평소에 찾아뵙지 못한 회한을 털어놓았습니다.
조해녕 대구시장은 축하의 인사를 드리면서
「반듯하게 키워주셨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르쳐주셨기에 저희들이 사회에 진출해서도 바른 길을 걸어왔습니다.」라면서 은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정정길 울산대학교 총장은
「선생님은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겉으로는 행동을 자제하시는 분」이라고 회고하면서 선생님의 만수무강을 축수했습니다.
제자들을 맞이하시는 선생님의 기쁨을
「8.15 해방된 기쁨이 정말 눈물겨웠던 기쁨, 그것이 팔십 평생 최고의 기쁨이었는데, 오늘은 그 기쁨을 능가했다.」고 하시면서 우리들을 맞이하시는 기쁨을 진솔하게 표현하시고는
「우리가 죽을 때 어떻게 죽느냐?」는 화두를 던지시고는
「죽을 때는 평생의 온갖 상념들이 자기를 괴롭히는데, 그럴 때 평소에 남을 해치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은 편안하게 죽을 수 있다.」는 삶에 대한 철학을 말씀하시고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죄의식이 내 안에 있는 귀신으로 변하여 이 귀신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 괴로움은 나이가 많을수록 미련을 버리고 쉽게 죽을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오래 사는 희망이다.」 하시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계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젊을 때는 건강하여 죽음은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삶의 끝을 정리하는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의 깨우침을 제자들은 숙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제자들은 낙향하신 은사님의 건강하고 보람되게 살아가시는 삶의 모습에 감격하고, 스승은 외롭게 지내는 당신을 찾아준 제자들의 지극한 정성에 감사하는 하루였습니다. 동해의 푸른 물처럼 티 없이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노후를 살아가는 온유하신 모습을 제자들은 잊지 않고 가슴 깊이 새겨 갑니다.
오늘의 감격과 감사한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살아가겠습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어 제자들의 사표가 되어주시기를 간곡하게 기도드립니다.
첫댓글 참 청정한 샘물 같이 여생을 사시는 은사님이 우리 곁은 떠나셔도 제자들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십니다. 감명 깊은 장면입니다.
스승님과 제자분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에 감명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