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去來辭
돌아가자. 전원에 장차 묵으려 하거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이미 스스로 마음으로써 몸에 사역(使役)하였으니, 어찌 근심하여 홀로 슬퍼할 것이 있으랴.
지난 일은 고칠 수 없음을 깨달아,장래에는 좇아서 틀리지 않을 것을 알았노라.
실로 길을 미(迷)하였으나 그리 멀지는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옳고, 어제까지는 글렀음을 알겠더라.
배는 흔들려 가볍게 드놓이고.바람은 옷자락을 날리누나.
나그네에게 앞길을 물어서 가니.새벽빛이 희미한 것이 한스러워라.
이에 처마를 쳐다보고,기쁜 마음으로 내 집으로 달려간다.
동복(童僕)은 기꺼이 맞이하고. 어린 아들은 문에서 기다린다.
삼경은 거칠어지고. 송국(松菊)은 아직도 남았구나.
어린 것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가니, 술이 통에 찼다.
단지와 술잔을 잡아당겨 스스로 잔질을 하고, 정원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얼굴에 기쁜 표정을 드러냈다.
남창(南窓)에 기대어 태연히 앉았으니, 무릎을 용납할 만한 작은 방이지만 평안키만 하더라.
정원은 날로 거칠어도 언제나 아취 있는 전망을 이루고 있고, 문을 달아 놓았지만 늘 닫긴 채 그대로다.
지팡이로 늙은 몸을 붙들어 아무 데서나 마음대로 쉬고, 때로 머리를 높이 들어 자유로이 근방을 둘러본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짝 굴속을 돌아나오고, 새는 날다가 지쳐서 다시 산으로 돌아올 줄 아는구나.
일광은 엷은 어둠에 가리면서 장차 서쪽으로 기울어 드는데,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그 주위를 맴돈다.
중국 진(晉)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41살 때 마지막 관직인 팽택현(彭澤縣)의 영(令)자리를 사직하
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의 심경을 위와 같이 노래했다 합니다
저 또한 40여년 서울 객지생활의 종착역인 태평로약국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오니 시원하기도 섭섭하기
도 기쁘기도 아쉽기도 우울하기도 불안하기도 합니다만 도연명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도연명이 41살 한참의 나이에 현령자리를 박차고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 것이“감독관의 순시를 의
관속대(衣冠束帶)하고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오두미(五斗米 : 적은 봉급)를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지만 제가 낙향하기로 결정하면서 겪은 마음 고
생을 곱앂어보니 하여튼 그 용기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제 나이 59세, 이제 저도 93세 노모님이 기다리시는 제 고향 대전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연명에 비하면 18년을 더 제 욕심을 차리느라 어머님을 힘들게 한 불효를 범했습니다.
(날씨가 풀리니 어머님은 토요일 마다 대문간을 서성이고 핸드폰은 시도 때도 없이 울립니다)
다행히 어머님의 건강이 이제껏 버텨주셨으니 이 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루가 다르게 사그러드는 어머님 건강에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길 것 같은 조바심에 더 미룰 수
가 없어 처자식을 서울에 두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어머님 턱밑에 재롱만 떨고 싶지만 어머님이 이를 바라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불편하다 하시니 조그만 약
국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3.23 서울약국을 정리하고 4.1 대전의 신도시 노은1지구(대전광역시 유성구 지족동 905-4 노은타
운 111호 다사랑 약국 042-476-0038)에 처방조제전문약국을 인수개업하였습니다. 매약위주의 서울약
국과 전혀 성격이 다른 약국이다 보니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아 이제사 한숨 돌리고 여러분께 보고드립
니다
어머님과 같이 자고 아침을 같이 먹고 어머님의 배웅을 뒤로하고 호남고속도로를 20여분 달려 약국으로
출근합니다
저녁에 돌아와 어머니 옆에 누워 오늘 보낸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어머님 안심하시라고 어머님 손에 내
손을 포개고 잠이 듭니다
창밖의 새소리에 잠을 깨고 철 따라 피는 꽃으로 세월을 가늠합니다
냇가에 고기잡다 검정 광목팬티, 검정고무신을 잃어버리고 나체로 밤을 도와 집으로 오던 그곳 내 고향
으로 이제 늙은 몸은 돌아왔지만 그때의 풋풋한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더욱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야 어머님께 응석을 부릴 수 있고 그래서 어머님이 더 기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17살 소년이 중학 졸업하고 고향 떠나 이제 59세, 비로소 깨닫고 어머님 곁으로 돌아
오니 그간 40여년 세월을 허공에 뿌리를 걸치고도 용케도 살아낸 셈입니다
이게 어찌 제 혼자 힘으로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40여년 객지의 저를 보듬어 주시고 지켜주시고 이제 온전하게 어머님 품안으로 돌려보내주시는 여러분
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대전을 지나시거나 머무르실 때 연락주세요
저희 약국은 호남고속도로 유성IC옆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5분거리로 열매마을아파트 816동 앞입니다
여러분 재회의 그날까지 건강하시고 사업 번창하세요
2006. 4.9 김 응일
첫댓글 선배님.. 가슴이 찡하네요. 사업 번창하시고 어머님 곁으로 돌아오셨으니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저도 오늘 아버님 산소 다녀왔는데 산소에 가서 성묘 할때마다 늘 후회뿐입니다. 어머니 건강히 오래오래사셔요..대전가면 연락한번 드리겠습니다.
선배님의 글을 보니 제가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참으로 훌륭하십니다.존경합니다
90노모님을 위하여,모든것을 뒷전으로 미루어 놓으신 선배님 효성에 머리숙여짐니다. 북창동에서 히래한잔 못올이고 낙향하신 선배님께 죄송한 마음 금할길이 없습니다....다시 뵙옵는날 후배가 탁배기한자 진하게 올리겠습니다. 두루 선배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안녕하시길 바람니다.
매달 고향 친구모임이있어 자주 내려갑니다. 효심이 지극하신 선배님 얼굴 꼭 봐야겠습니다 어찌 생기셨는지^.^ 고향의봄 이란 노래가 입가에서 맴돕니다.
태평로 약국이 사무실에서 걸어서 5~6분 거리라서 시간날때 한번 찾아가 뵈어야겠다 하면서 차일 피일 미루어 왔었는데 ~~ 진작 서두르지 못함이 후회스럽네요
어머니를 생각하시는 선생님의 효심이 참으로 존경 받으실만 합니다.. 건강하세요...
선배님의 효심이 눈에보이는듯 합니다...선배님효심에 새로개업한 약국도 번창의길로 들어설듯~~~
의미깊은 선배님의 글을 읽고 다시금 인생살이를 되새겨 봅니다
존경스럽습니다....지나치다 찾아 봡겠습니ㅏㄷ.
반갑습니다~ 선배님... 든든한 견지고수님께서 낙향하셔서 가까이 계시니, 마음까지 든든해지네염..자주 인사올리겠습니다~ ^^*
저도 선배님을 본받도록 하겠습니다...항상 어머님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시간이 지나고 보면 효를 행하지 못하고 세월만 흐르는 것 같습니다...살아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야 하는데....
선배님을 뵙고 배울점들이 있다는 것이 항시 느껴집니다. 부디 사업도 번창하시리라 믿습니다.
늙은 어머니는 전원을 싫어 하시는데 혼자서 전원으로 이사 가서 의 전원의 향기에 흠뻑 빠져있는 나는 불효하는 맘으로 이 글을 읽습니다
와, 맘이 뭉클하지!!!!!
대전으로 다시 돌아오신것 축하드립니다.^^ 가슴이 찡해지네요..
비가 오니... 맘이 더욱.. 무거워지는 듯 합니다... 저의 어머니가 뵙고 싶네여....
한식날 아버님 산소도 못가본 저는 불효막심한 놈입니다...ㅜㅜ
선배님, 축하드립니다. 집 옆이니 자주 뵙겠습니다.
진실한 마음은 그 마음을 보는이도 진실해 지는것같습니다.
잠 훌륭하십니다. 요즘 아버님이 편찮으시니 그간 계속 모시고 산다고 오히려 소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님 모시고 오래동안 행복한 시간 가지시기 바랍니다.
유구무언입니다 (__)
선배님의 효성을 존경 합니다.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글이네여. 빠른시일 내 개털 선배님의 걸걸한 목소리가 다시 듣고 싶습니다. 건강하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