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추위많이탐.
1.조선총독부
..맘에 안드네...
펑-★
깨끗.
2.사형제도 마지막 집행
나 곧 물러남.
긍데 사형제도를 어케하지?
그래!!!
펑-★
정권 바뀌면 사실상 사형폐지가 유력해져 있던 상황..
하지만 김영삼 성격상 그냥 놔둘리 없었슴
97년 12월 30일 23명 동시에 예고없이 사형 집행
일말의 기대했던 연쇄살인마 등등의 사형수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듦
데헷~
3.하나회 숙청
이미 하나회를 없애겠다고 예전부터 말함.
그래.결심했어.
1993년 3월 4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대통령 연설.
(중략)
임무에 충실한 군인이 조국으로부터 받는 찬사는 그 어떤 훈장보다도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길을 걸어온 대다수 군인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영예가 상처를 입었던 불행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잘못된 것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실추된!!! 군!!!과 육군!!!의 명예를 바로잡고,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군의 명예와 영광을 되찾는 일에 앞장설 것을 여러분에게 다짐합니다.
→ 특히, 김영삼 대통령은 실추된, 군, 육군의 표현에서 강한 어조로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을 통해서 김영삼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생각해오던 하나회를 반드시 숙청시키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은 물론,
하나회 숙청의 뜻을 에둘러서 분명하게 표현했다.
1993년 3월 5일
불시기습은 현대전의 기본이야.
1993년 3월 8일.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답게 군내 사조직을 숙청하고자 후보시절부터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특히나 문민정부 김영삼 대통령의 최대 치적인 하나회 숙청과 금융실명제는 정말 김영삼 대통령만이 할 수 있었고,
김영삼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한 정책들이었다. 특히, 하나회를 숙청하기까지의 과정은 정말로 김영삼답다고 할까.
그러던 찰나,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권영해 국방부 장관(육사출신, 예비역 소장)에게
"국방장관께서 정확히 1993년 3월 8일 오전 7시 30분까지 청와대에 들어오도록 하세요."라며 호출한다.
국방부 장관 권영해를 독대한 상황.
3월 6일 오후 늦게 김영삼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 권영해(육사 15기, 소장 전역)를
3월 8일 오전 7시 30분까지 오라고 명합니다.
국방부 장관 권영해를 독대한 상황.
...왜 날?
김영삼 : 군인들은 그만둘 때 사표를 제출합니까?
권영해 : 사표없어도 명령에 복종합니다.
김영삼 : 아. 그래요. 그럼 됐구만? 내가 육참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오늘 바꾸겠습니다.
권영해 국방장관 : !!!(놀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함.)
김영삼 대통령 : 이제 군도 정리해야 하고 이참에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부터 새로 인사를 할 생각입니다.
그리 아시고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에게 지금 당장 예편 준비를 하라고 하세요.
새로운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은 오늘 바로 보임이 될 겁니다. 취임식도 준비하라고 하시구요.
해임-임명-통보-취임식-보임까지 걸린 시간이 3시간.
그리고 하나씩 척결시작.
펑펑펑펑!!!폭죽놀이!!!
이렇게 하나회 정리까지 걸린 시간이 15일이라고 합니다.
4.금융실명제
"앞으로 이 땅의 모든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하여 금융실명제를 단행합니다."
<1982년이후 두번씩이나 보류됐던 금융실명제가 1993년 8월 12일 전격 실시됐다.
금융실명제는 당초 1982년 말에 제정되었으나 전면시행은 보류되어 오다가
김영삼 대통령이 헌법 76조 1항에 의거, `금융실명제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
이날부터 전격 실시됐다.
금융실명제는 금융거래의 정상화와 합리적 과세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제도로써 은행예금이나 증권투자 등 금융거래를 할 때 실제명의로 해야하며 가명 및 차명 또는 무기명거래는 인정치 않고 있다.
이 제도는 사금융 등 음성적인 금융거래를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다.>
비장하게 발표함
이것도 지혼자 알았다고 함.
서프라이즈 징짜 좋아함.
이러면서 탈세가 어려워지고
전두환,노태우구속 ★
하지만 정책이 시행되고 나서....3년 뒤..
일빠 구속...
영삼쓰 썬...
폭파........
+
앤초비 프린스인 이유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음력 12월 4일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큰달섬에서 김홍조와 박부련의 3남 5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2명의 형제를 어릴 때 잃어 외아들로 자랐다. 김 전 대통령 집안은 조부가 거제도에서 일군 멸치 어장을 소유한 향토 부자였다.
그렇다.멸치부잣집 아들.
머슴이 업어서 학교를 데려다 줄 정도로 부자.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중학교 시절 일본 학생들과 자주 다툼을 벌였다. 일본 학생들이 거제도를 '거지도'라고 모욕했기 때문이다. 일본 학생과 다퉈 정학을 두 번 당했고, 일제의 강제적 식민통치에 반발하다 일본인 교장으로부터 혹독한 처벌을 받기도 했다.
동래중학교에 낙방한 1년 후 1943년 통영중학교에 들어간 김 전 대통령은 사천비행장 강제노동 시 한국인 학생을 멸시하던 일본인 반장을 때리고, 교장을 골탕먹인 사건으로로 정학처분을 받기도 했다.
한국 학생을 차별하던 일본인 교장의 이삿짐을 훼손했다가 무기정학을 당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배짱 있는 성격이었다.
일본 존나 싫엉
끝~
첫댓글 불꽃남자
사형제도 학습할때 빠지지않는 사람
삭제된 댓글 입니다.
2222 멸치한테 서해나 동해가서 잡히라 하지도 못한다거…
속이 쓰은하다
화끈 굿굿
진차 머싯음
나 이거 여시글 덕분에 한국사 문제 하나 거저로 맞췄음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화끈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