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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해가 가고 새해가 왔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기막힌 소식을 접하니 왜놈들이 대궐로 쳐들어와서 국모를 시해해서 일본도로 난도질을 치고 불 태웠다는 소문이 들렸다.
모두가 분해서 치를 떨고 있는데, 지평에서 괴은를 만났는데 토역소를 올린다고 하는 그 자리에서 안승우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괴은이
“이보게 하사 인사드리게, 이분은 단월에 계시는 지난 정해 년에 효자 정문을 받은 작은댁 둘째 되시는 분”
이라고 소개를 했고,
“처음 뵙겠습니다. 안승우라고 합니다. 본관은 순흥이고 자는 계현 입니다,”
했고 영린도
“선생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김영린이라고 합니다. 본관은 안동 자는 영유입니다. 학문이 높으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의암 유인석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토역소를 올리는데 동참하고 그리고 한 번 창주정사에 다녀오기를 권하여서 추수가 끝나는 대로 다녀오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추수가 끝난 초겨울 영린은 괴은과 함께 창주정사에 가서 유인석 선생을 뵈었다.
선생은 이춘영으로 부터 영린을 소개 받고 잘 오셨다고, 하면서
“효는 만행의 근본이 아닙니까?”
하면서 양 대에 걸쳐서 효자가 난 가문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효를 충으로 승화 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틀을 유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근호에게 제천 창주정사에서 유인석선생을 만난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중 그해 시월에 음력을 쓰지 않고 양력으로 역법이 바뀐다고 했고 이어서 성인 남자들은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이 내렸다.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양명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면발은 오랑캐나 하는 짓이라며 굳건하게 지켜 왔었고, 더구나 효를 내세우는 근호로서는 아들의 명분 앞에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어서 아들을 적극 돕기로 하고 의병에 나가는 것을 허락 했다.
그리고 쌀 두 섬을 내어 놓기로 하고 선민을 불러서 방아를 찧으라고 했는데, 몇 년 전에 만들어 놓은 물레방앗간에서 벼 네 섬을 하루 종일 두 동서와 질부 효진이 찧어 쌀 두 섬을 마련했다.
그리고 몇 년의 공부에도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올해에 과거가 없어져 내려온 친구 박계멱 진사의 설득으로 박진사의 집 행랑에 있던 장포수 와 몇 년 전 영린이 결혼하기 전 행랑에 살던 차포수가 같이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몇 사람이 더 같이 가기로 하고 박진사 의 아버지 길연은 소를 두 마리 내놓기로 하였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지평에 가서 괴은을 만나 출병 날을 알아보았다.
동짓달 스무 여드렛날 김백선이 동참하기로 했으니 스무 이렛날 신시에 지평으로 오라고 했다.
스무 엿샛날 밤 나란히 누운 영린과 연희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영린이 장부가 가는 길이라고 했지만 연희는 감내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세고 새벽 무렵에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큰집인 근호의 집에서 조반을 마치고 나니 박진사가 장포수와 차포수와 함께 소 두 마리에 길마를 얹어서 끌고 왔다.
근호는 영준을 불러서 소등에 쌀을 두가마니 씩 얹어서 묶었다.
그리고 영린은 근호 내외에게 큰절을 올리며 다녀올 동안에 만수무강 하시라고 했다.
아들 치수(현묵)에게도 다녀올 동안 어머니 잘 모시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몇 몇은 지개를 지고 소에게 먹일 여물을 지고 따라 나섰다.
이들을 보내는 아낙들은 누구하나 나와서 작별 인사조차 나눌 수 없었다.
연희는 아까부터 부엌 뒤 에 숨어서 울타리 사이로 근호를 비롯한 동내 사람들이 영린 일행을 보내는 것을 보고 있었다.
왼손으로 울타리 가지를 꺾으며 오른손은 행주치마 자락으로 연신 눈물을 찍어내고 있다가, 인사를 끝낸 영린이 손을 흔들며 마당가를 지나 길가로 접어들 무렵 연희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 했다.
그리고 어느 샌가 금선이 다가와 연희를 감싸 안고 등을 어루만지며 토닥여 주면서 같이 눈물을 흘렸다.
길을 나선 영린 일행은 모두 10여명 무기를 지닌 자는 차포수 장포수 그리고 몇 몇이 칼과 활을 들었을 뿐 맨몸으로 따라 나선 사람이 대부분 있었다.
보룡골을 나선지 한나절도 안 되어 지평에 도착했다.
이춘영이 반갑게 맞았고, 김백선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벌써 해질 무렵이 되어 점심 겸 저녁밥을 먹고 각자 분산해서 인근 사랑방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인근에서 영린처럼 나라를 구한다는 의미를 둔 지평 인근의 서생들 그리고 그들이 데리고 나온 가솔들과 사냥을 업으로 하는 포수 이렇게 해서 모인수가 백여 명 정도가 되었다.
이춘영의 주선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가마솥에 밥을 짓고 소죽을 끓이고 해서 아침을 해먹인후 이춘영이 일장연설을 했고, 김백선이 관병 400명 인솔해서 선봉에 서서 제천창주정사로 향했다.
아침에 출발한 이들이 신선들이라는 곳에는 이춘영이 마련한 점심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로 일당산을 넘어서 수리봉을 끼고 한참을 걸어서 어두워질 무렵 의민공 사당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안승우가 와 있었고 저녁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다음날 사람은 나무다리로 소와 말을 수심이 얕고 얼어붙은 강을 조심스럽게 건너서 그날 저녁 기습적으로 원주관아를 쳐들어가서 점령하고 무기고를 접수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금대를 지나 고개를 넘어서 신림에서 점심을 먹고 어두워질 무렵 창주정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서상렬의 일장연설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의병동지 들을 맞이하고 보니 감개무량 합니다. 여러분 반드시 이 나라를 바로 세워서 국모의 원수를 갚고, 왜놈들을 몰아냅시다!”
박수가 터져 나왔고. 일장연설을 계속되었다.
모두가 힘들게 여기까지 따라온 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연설이 있었고. 모두 감격해 했다.
그리고 창주정사 부근에 모든 방이란 방은 모두 의병들로 가득 찼다.
당시에 의암은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이곳에 있지 않고 가경자에 여막을 짓고 머물러 있었다.
그곳에는 하루를 쉬고 다음날 제천으로 의병600여명이 제천으로 향 했다.
워낙 의병의 수가 많았고, 기습적으로 일이 이루어져 무혈입성과 같이 진격을 해 군수 김익진을 축출하였다.
그러고 보니 조금 다친 사람이 있을 뿐 양쪽 모두에 사망자는 없었다.
의병들의 사기는 높아졌다.
곧 이어서 서상렬, 이필희, 신지수, 이범직 등이 의병에 참가를 했다.
많은 인제들이 모이다 보니 각기 자기가 데리고 온 사람들의 대장이 되었다.
그렇게 되자 서상렬은 위계질서가 있어야 많은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 여러 사람 중 고르고 골라서 이순신 장군의 후예인 이필희를 의병대장으로 삼고 서상렬은 군사가 되었고, 그리고 각자를 쫒아온 의병의 수에 걸맞게 이춘영도 중군장이 되었다.
그리고 각 의병장이 2, 30명마다 한 명씩 소초장을 뽑아서 올리도록 했다.
자연적으로 영린도 의병소초장이 되었다. 그리고 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은 김백선을 따라온 관병을 적당히 배치해 가르치는데 영린을 따라온 차 포수와 장 포수는 조총을 다루는 법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신분이 다르니 상명하복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처음으로 접하는 조총을 열심히 배우는 사람도 있었다.
차 포수나 장 포수도 일자무식으로 있다가 누구를 가르치는 입장에 서니 처음엔 어색도 했지만, 마음속엔 누구를 가르치는 우쭐함도 있었다.
차포수가 영린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치는데.
“작은 서방님 우선 세총(洗銃) (총열 내부를 청소하는 단계)이라고 총을 씻어야 하구요.”
“하화약 (下火藥) 이라고 총구멍으로 신약(身藥)(발사용 화약)을 넣고요.”
“이삭장 송약실(以朔杖,送藥實)이라고 꽂을대로 신약을 안으로 밀어 넣은 다음에 하연자(下鉛子) 라고 총구멍 통해 납탄환(연자)을 넣은 다음에요.”
“이삭장 송연자(以朔杖,送鉛子)라고 꽂을대로 요 탄환을 안으로 밀어 넣은 다음에 하지(下紙) 라고 총구멍에 종이를 넣은 다음에 송지(送紙)라고 꽂을대로 종이를 안으로 밀어 넣고요.”
“다음에 개화문(開火門) 이라고(화문은 점화용 화약이 들어가는 약통, 일명 화약접시의 덮개 역할을 한다) 이 덮개를 연 다음 하선약(下線藥) 선약(線藥)(점화용 화약)을 넣은 다음에, 요화문 사문약 하합어신약(搖火門,使門藥,下合於身藥)이렇게 총을 흔들어 점화용 화약과 발사용 화약이 섞이게 한 다음에 잉폐화문(仍閉火門) 이라고 이 덮개를 닫고요.”
“용두안화승(龍頭安火繩) 용두에 화승을 부착한 다음에 청령 개화문(聽令,開火門) 하고 위에서 명령을 내리면 화문을 열고 준적인 거발(准賊人,擧發)하고 명을 내리면 요기 구멍을 통해서 총 끝에 나온 쇠 끝 하고 왜놈 몸뚱이를 겨누고 요.”
“방아쇠를 당기면 심지에 붙은 불이 요기에 닿자마자 총알이 나가요.”
“그리고 이걸 아셔야 서방님이 명령을 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영린은 한 나절을 외우며 연습을 했다.
1. 세총(洗銃) 2. 하화약 (下火藥) 3. 이삭장 송약실(以朔杖,送藥實) 4. 하연자(下鉛子)
5. 이삭장 송연자(以朔杖,送鉛子) 6. 하지(下紙) 7. 송지:(送紙) 8. 개화문(開火門)
9. 하선약(下線藥) 10. 요화문 사문약 하합어신약(搖火門,使門藥,下合於身藥)
11. 잉폐화문(仍閉火門)12. 용두안화승(龍頭安火繩) 13. 청령 개화문(聽令,開火門)
14. 준적인 거발(准賊人,擧發)를 손을 꼽아가며 외웠다.
그리고 훈련을 시키는데 그 때마다 꽂을대로 밀어 넣는 동작은 실제로 했지만 나머지는 아까워서 실제 훈련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이틀 후가 지난 아침에 신약(身藥)(발사용 화약) 납탄환(연자) 송지(送紙) 선약(線藥)(점화용 화약)을 지급 받아 가지고 단양으로 향했다.
매포를 점심 전에 접수를 하고 점심을 해먹고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적의 매복을 우려하여 군은 둘로 나누어 본대는 매포천을 끼고 가고 이춘영은 산을 넘어서 하괴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발걸음이 빠른 사람을 척후병으로 선발하여 앞에 적이 매복을 하고 있지나 않는지 보내면서 앞으로 나가서 도담삼봉이 보이는 곳에 배수진을 쳤다.
그리고 사방에 척후병을 보내서 알아보니 단양군수 권숙은 청풍으로 도망을 친 것이 확인되어 단양으로 무혈입성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본대를 금수산 가은산 말목산으로 둘러싸인 적성에 진은 쳤다.
이어 이필희는 단양을 드나드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장회협곡에 척후병을 내보냈다.
한나절이 안 되어 아무도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명령을 내렸다.
중장 이춘영과 안승우에게 200의 병력을 주면서 만약을 모르니 시차를 두고 강을 건너서 장회협곡이 내려다보이는 제비봉 산기슭에 진을 치되 병력을 감안하여 옥순봉 기슭과 구담봉기슭 그리고 얼음골 까지 병력을 나누어 배치하라고 이르면서 적들이 옥순봉을 통과하면 흰 기를 흔들어 새바위 쪽으로 신호를 보내고, 구담봉 상류쪽에 병력을 집중 배치해 적의 허리를 끊고 얼음골 까지 병력을 분산 배치해서 공격을 하되 내가 말목산 기슭에서 공격명령을 내릴 때 까지 공격을 하지 말며, 마지막으로 옥순봉에서는 퇴각해 나오는 적들을 공격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범직에게는 100명을 주면서 가늠산 넘어 동내에 진을 치고 척후병을 보내서 장회협곡이 아닌 다른 곳으로 적이 오는지 살피면서 새바위에 몇 사람을 보내서 옥순봉에서 신호가 오면 신호를 주고받아서 말목산 기슭에 있는 나에게 알리라고 해서 보냈다.
그리고 김백선이 말목산 아래에서 300명의 돌격대를 인솔하고 말목산에 있는 이필희의 명령이 떨어지면 돌격을 하라고 했다.
남은 병력은 가은산과 말목산 사이에서 협공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신지수 에게는 본진에서 기다리다 본진으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을 대비하게 했다.
영린은 이춘영의 지시에 의하여 옥순봉에서 도주해 오는 적을 섬멸하는 역할과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하라고 하면서 50명을 배정 받았다.
아흐렛날 권숙은 청풍에서 원군을 받아서 단양을 회복하기 위하여 일본 기마병을 앞세우고 장회협곡을 들어오고 있었다.
이들은 기병이 이어서 부처댕이를 넘는 길 보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길을 택하여 보무도 당당히 옥순봉아래를 지나서 선두가 말목산 아래를 지나고 있었고, 후미가 옥순봉을 다 지나간 것이 확인되자 영린이 건너편 새바위를 향하여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공격을 하라는 붉은 영자기가 올랐다.
조용하던 산하가 여기저기서 총성이 울렸다.
영린도 10명씩 셋으로 나누워 차례대로 준적인 거발 명하고 10명의 쏘고 나서 각자 숨어서 다음 총을 쏘기까지 준비를 했다.
그렇게 다음 10명 다시 10명이 쏠 준비를 하라고 지시를 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한 시간도 안 되어 도주하는 적들이 보였다.
“ 발사.”
영린의 명에 의하여 총알이 나가고, 그 총알에 의하여 사람이 쓰러져 죽었다. 영린은 순간 눈을 감았다 떴다.
처음은 어떻게 사람을 죽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막상 전투에 임하고 보니 적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기고 정신없이 다음 발사를 위하여 신약을 넣고 연자를 밀어 넣고 선약을 넣고 흔들어서 화약을 섞이게 하고 총을 쏘기까지 정신없이 하다 보니 앞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앞에서 적들이 몇이나 죽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반쪽만의 승리였다.
김백선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왜 옥순봉에 많은 병력을 배치해야지 엉둥한 계란재에 더 많은 병력을 배치해서 다 잡은 권숙을 놓치게 합니까?”
“김 장군은 지금 승리에 재를 뿌리는 겁니까?”
이필희의 생각은 적의 도주로는 협곡보다도 계란재 쪽으로 보았던 것이었다.
“제 생각에는 왜 옥순봉에 많은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느냐 말입니다.”
“쥐도 급하면 고양이를 무는 법입니다. 그만 합시다.”
괴은이 나서서 급히 말리고 나섰다.
결과가 그렇게 나오자 김백선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간신히 가라 앉혔다.
영린은 적들을 놓친 것에 대한 불똥이 튈 가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날 모두들 영린이 계멱에게서 받아온 소가 승리의 제물이 되어서 오랜만에 고깃국을 맛보았다.
첫댓글 소용돌이에 들어간 것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