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와 제 1 군단이 삼니움족과 싸운 무용담은 272년 여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탈리아 남부 대부분의 그리스 도시국가들에게 퍼졌다. 소문이란 원래 과장되기 마련이라 점점 로마 군은 아레스(마르스)의 가호를 받고 있으며, 그들 하나하나는 헬라 인 10명을 능히 상대할 수 있고 삼니움족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방적으로 도륙 당했다는 식으로 변질되어서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아도 시민병과 국가에 대한 의무에 대한 관점이 없고 오직 그들의 부를 이용해 모든 전쟁을 용병들로 대신 치르고 있던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하나 둘 동요하기 시작했다.
격려의 말을 마혈님밖에 안남기셨는데 =_=
로마 군이 다시 이탈리아 남부로 내려와 그 일대에서 가장 강대하던 에페이로스 인들이 있던 타렌툼을 쳤다. 이제 그 무용으로 이름높아진 로마 군이 자신들의 앞마당까지 오자 헬라 인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들이 에페이로스 인의 동맹국으로서 남아있느냐와 로마 군에게 복종을 맹세하고 그들에게 성문을 열어주어야 하는가가 각 도시국가들의 커다란 주제로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리했다. 곧 로마 군이 군수물자 및 식량을 조달하러 자신들의 도시로 올 텐데, 그 때 문을 열어주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가 그들의 운명을 거머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격려의 댓글이 작가에게는 엄청난 힘이 된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로마 군들이 도시국가들을 방문하며 군수물자를 요구하고 있었다. 몇몇 헬라 인들은 로마 군이 자신들의 성벽 아래 도착하자마자 기꺼이 문을 열어주고 로마 군이 요구하는 식량을 주었다. 어떤 도시들은 식량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었으나 이미 여름철 동안에 모든 식량이 수확된 것을 아는 로마 군은 그때마다 그 도시 앞에서 공성병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본 헬라 인들은 곧 자신들의 운명도 삼니움 족과 같이 되기 전에 문을 열어주고 목숨을 보전하자는 쪽으로 기울어져 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도시국가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고, 에페이로스 인들에게 군수물자를 대주지도 않으며 중립을 고수하였다.
그러니까 요점은
타렌툼의 공성준비도 무르익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없던 타렌툼의 군사들도 곧 모든 시민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한탄하며 혹여 로마 군을 무찌르고 이 곤경을 피할 수 있을까 하여 무기를 들 수 있는 대부분의 장정들이 방패와 투구와 창을 들고 에페이로스 인들과 합류했다. 이에 힘입어 에페이로스 인들의 병력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다음과 같은 현상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에게 더욱 더 중립을 지키도록 만들었다.
내공좀 나누어주세요 =3=
한편, 로마군에게도 그들이 헬라 도시국가들에게 요구한 바 있던 병사들이 도착하였다. 이피크라테스가 그리스 군인들의 장비를 대대적으로 개혁 한 바 있었기에 그들은 로마 병사들이 생각하듯 동그랗고 오목한 튼튼한 방패들 들고 있지 않고 오히려 투레오스(Thureos) 방패와 흡사한 것을 들고 있었다. 또한 정강이가리개가 아닌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들이 밀집방진을 짠 채로 창의 벽을 생성한다면 그 어떤 병사들도 그것보다 파괴적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로마 군의 아래에 소속되었다는 것과 같은 헬라 인과 싸운다는 요소에 의해 그들의 충성심은 확신되지 못하였다. 만약 그들을 가장 격렬한 곳으로 투입했다가 자칫 얼마 못 가서 등을 보이고 도주한다면 로마 군의 전투의욕을 낮출 수도 있었다.
게임 진행이 느려서 쓰는데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로마 군은 공성 준비를 하면서도 하나 둘 꾸준히 헬라 도시국가들을 로마의 편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 것은 로마 군의 군량 수급을 원활하게 하면서도 에페이로스 인들을 칼라브리아 지방에서 다른 동맹도시로부터 고립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직 중립을 지키는 도시국가들이 더 많았지만 로마로써는 그들이 에페이로스 인들에게 더 이상 협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였다. 아마 밖에서 도와줄 수 있는 자들조차 남지 않았다는 것에 에페이로스 인들이 희망을 잃고 회전에 응하던가 항복하리라는 것이 제 1 군단 수뇌부의 의견이었다. 로마 군은 이제 에페이로스 인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지켜보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니까 다시 요점으로 돌아가서
이 때 즈음, 로마 원로원은 타렌툼의 시민들이 에페이로스 인들에게 가담하여 그들의 병력이 두 배 이상 많아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피루스와 싸워 본 경험이 있고 또한 그에게 이긴 경험이 있는 프린켑스, 마니우스 덴타투스는 이 일이 새파란 16살 젊은이에게 맏겨두기에는 불안한 사항이라는 것을 알았다. 로마 군은 지금쯤 틀림없이 타렌툼에서 항복하기를 고대하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타렌툼은 항구도시로도 유명한 곳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 제 1 군단은 바다에서 도시를 포위하지 못하였다. 덴타투스는 아우렐리우스 코타에게 충고의 글을 보냈다.
내공좀 나누어주세요 =_=)/
실제로, 마니우스 덴타투스가 우려했던 것처럼, 타렌툼 바다쪽으로는 아직 협조적인 소수의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의해 식품과 군수물자들이 반입되고 있었다. 비록 로마군의 감시망이 있다지만, 밤중의 소수의 배들이 그쪽으로 들어가는 것은 들키지도 않았고 흔적도 없었다. 배가 지나간 자리는 곧 포세이돈이 파도를 일으켜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1 군단과 그 수뇌부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에페이로스 인들이 아직 항복문서를 보내지 않은것에 대해 약간 수상쩍어하기는 하였다.
그리고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원로원의 수장인 프린켑스이자 국민영웅인 마니우스 덴타투스의 충고글을 받자마자 조치를 취하였다. 일단 실제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선박이 드나들고 있는지와 그 선박들의 국적을 알아보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문양도 없고 한밤중의 칠흑속에서 몰래 다니는 선박들의 숫자와 국적을 알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타렌툼의 탈영병들에 의해 선박이 드나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더 이상 타렌툼에 대한 공격은 늦춰질 수 없었다.
댓글 안달고 가면 슬퍼할 거에요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및 군단장과 대대장들은 이튿날 뒤로 타렌툼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기로 하였다.
이탈리아 남부의 패권을 걸은 전투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너무 짧은 내용을 길게 불린거라서 스샷을 안찍었어요 ㅇ<-<(핑계)
첫댓글 스샷이 없어 아쉬운 人 1
넵..... 힘내서 열심히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