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은 더위 속에
광복절이 지난 팔월 중순 금요일이다. 새벽에 잠을 깨 전날 다녀온 의림사 수리봉 산행 후기를 쓰면서 ‘의림사 염불당’ 시조를 곁들여 남겼다. “수리봉 푸른 솔이 둘러친 산기슭 터 / 큰 법당 비켜 앉은 염불당 팔작 당우 / 스님은 자리를 비워 정적만이 감돈다 // 돌계단 디뎌 오른 추녀 끝 걸린 풍경 / 바람이 그쳤으니 쇳소리 날 리 없고 / 떠 가는 구름 한 조각 연화세계 살핀다”
자연학교 등굣길은 날이 밝아오기 이전 도서관부터 찾았다. 주말에 강수가 예보되면 도서관에 나갈 참이었으나 맑게 갠 날씨가 예상되어 산행이나 산책으로 보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창원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은 김형석 교수 ‘백 년의 지혜’ 외 3권의 책이 대출 기한이 되어 반납해야 했다. 어둠 속에 길을 나서 교육단지에 이르니 날이 밝아왔는데 무인 도서 반납함에 투입했다.
새벽길에 도서관을 둘러 인적 없는 교육단지 보도를 걸어 충혼탑 사거리로 향했다. 시내버스는 불모산동 기점을 첫차로 출발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포 강가로 가는 31번 버스를 타고 창원대로로 나갔다가 명곡 교차로로 되돌아 와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거쳐 용강고개 넘도록 승객은 한 명만 태워 이른 아침임을 실감했다. 버스는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났다.
주남삼거리에서 화목과 동전을 지날 무렵 저지대 가꾸는 연들은 꽃을 피워 장관이었다. 창밖으로 바라보인 주남저수지 갯버들은 무성한 밀림을 보는 듯했는데 저수지 수위는 낮아져 갯벌처럼 바닥이 드러나려 했다. 장마 이후 강수량이 적었을뿐더러 출수기를 앞둔 벼 논에서는 많은 농업용수를 내보내서였다. 가뭄이 심하면 낙동강 강물도 퍼 올려 채운다는데 거기까지는 아니었다.
봉강으로 간 버스는 예각을 틀어 용산에서 산남을 거쳐 죽동에서 메타스퀘이어 가로수길을 지났다. 윗대방과 대방을 거친 대산 일반산업단지부터는 자주 이용한 1번 마을버스 노선과 겹쳤다. 가술과 모산을 지난 제1 수산교에서 내리려니 기사는 의아해 여겼다. 인가가 없는 버스 정류소였기에 평소 승객이 타고 내리지 않아 기사는 내릴 의사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차를 세워주었다.
강둑에서 수산교 들머리로 향해 옅은 안개가 걷혀가는 강 건너 수산 일대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아침 해가 뜨면서 역광으로 비친 강변과 수산교는 저녁 일몰 모습과도 같아 보였다. 다리목에서 정원이 잘 가꾸어진 요양원을 지나 들녘으로 나갔다. 죽염을 생수와 같이 먹었다. 한낮은 폭염경보가 내려져도 이른 아침이라 올여름에 들녘을 거쳐 가는 산책을 몇 차례 다녔던 곳이다.
모산 들녘 들머리 비닐하우스단지는 가을 이후 따낼 풋고추가 싱그럽게 자랐다. 예전 수박 농사를 대신해 가꾸는 멜론은 추석을 앞두고 출하하려고 키웠는데 잘 영글어갔다. 지표 바닥으로 뻗는 넝쿨은 지주를 세워 직립시켜 열매를 맺게 하는 새로운 농법이었다. 비닐하우스 안에 자라는 멜론은 노랗거나 개구리 무늬가 아닌, 외피가 그물 모양의 머스크멜론으로 덩이가 제법 컸다.
농장에는 베트남인 남녀 셋이 주인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려 했다. 그들은 힘든 농사일도 기꺼이 받아들여 밝은 모습이 특징이었다. 며칠 전에는 벼 논에서 피와 잡초를 뽑는 청년 네댓 명을 만나기도 했다. 일이 험한 공장도 그렇지만 농사도 베트남 인력이 아니고는 지을 수 없는 처지였다. 가술까지 걸어 안전지킴이 동료를 뵈어 그들과 함께 아침나절 동선을 같이 했다.
임무 수행 후 자투리 시간은 마을도서관에서 보냈다. 오전은 어르신 문해반 교육 강좌에 참여한 할머니 세 분과 같은 열람실을 썼다. 할머니들은 짧은 방학을 마치고 지난 월요일 개학했는데 배움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점심때가 되어 국숫집에서 콩국수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도서관으로 되돌아와 오전 펼쳐 읽던 박경리 선생이 남기고 간 산문집 ‘생명의 아픔’을 마저 읽었다. 24.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