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켓 소총 역사
2006/04/09 19:40
http://blog.naver.com/nasica88/70003188661
여기서 말하는 머스켓 소총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것입니다. 이때의 주종은 부싯돌을 이용하여 점화를 하는 방식이었고, 그래서 영어로는 flintlock이라고도 합니다. 이전의 방식은 주로 불붙인 화승(slow match)을 이용했었고, 왜군이 임진왜란때 쓰던 조총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것들은 matchlock이라고 합니다. Matchlock과 flintlock 사이의 방식으로는, 정교한 톱니바퀴의 마찰을 이용하는 방식이 있었습니다만, 제조 비용이나 내구성에 문제가 있어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이 flintlock이 미니에 탄약통(요즘 보는 식의, 금속제 탄피와 탄환으로 된 탄약통)이 발명되는 19세기 후반까지 널리 사용된, 머스켓 소총의 완성형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 역시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더 진보된 형태의 점화 방식이 나오기는 했습니다. 일종의 얇은 구리판을 강하게 내리칠 경우 약한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이용한 방식이 있었는데, 이 역시 비용에 문제가 있어서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C.S. Forester가 쓴 Hornblower 시리즈 중, "Commodore" 편에 보면, 주인공 Hornblower가 출항 전에 아내에게서 이런 점화방식의 라이플 강선이 있는 피스톨을 선물 받고 무척 기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탄약통(cartridge)은 "모히칸족의 최후"에 나오는 방식과는 달리, 탄환과 화약을 기름종이로 싸서 미리 만들어둔 것을 썼습니다. 이는 단순히 적정량의 화약을 기름종이로 싸고 그 끝부분에 둥근 머스켓 볼 (이때의 탄환은 bullet이라고 부르지 않고 ball이라고 불렀습니다. 라이플 탄환은 bullet이라고 부릅니다. Cannon ball과 shell이 다른 것처럼이요)을 포함시켜 종이를 싼 것입니다. 이것들은 병사들의 오른쪽 허리에 매단 탄약주머니에 약 60개씩 보관되었습니다.
장전을 하려면 대략 다음과 같은 방식을 따랐습니다.
1. 왼손으로 머스켓총을 잡고 오른손으로 탄약통을 하나 꺼내 입으로 머스켓볼을 뜯어냅니다. (이때 총알은 입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연히 화약도 조금 입에 들어가게 되는데, 결코 좋은 맛이 아니었고, 화약속의 염분 때문에 병사들은 심한 갈증에 시달렸습니다.)
2. 콕(격침, hammer)을 한단계 뒤로 당깁니다. 이를 half-cock 위치라고 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방아쇠를 당겨도 콕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3. Frizzen(덮개 ? 야후 영어사전에는 안나오네요, 그림 참조)을 총구 방향, 그러니까 앞으로 밀어서, priming pan(뇌관실 정도로 번역하면 됩니다. 요즘 소총의 약실과는 다른 것이고, 요즘 소총에는 없는 장치입니다. 이 pan 밑부분에는 진짜 약실, 그러니까 화약이 장전되는 곳으로 통하는 좁은 구멍이 있습니다.)을 노출시킵니다.
4. 아까 총알을 뜯어낸 탄약통에서 화약을 약간 여기에 부어넣고, frizzen을 다시 뒤로 당겨 priming pan을 닫습니다.
5. 왼손으로 머스켓 소총의 총구 부분을 잡고, 개머리판을 땅으로 내려 세웁니다.
6. 탄약통의 화약을 모두 총구에 들이붓고, 이어서 입에 물고 있던 총알을 총구에 뱉습니다. 이어서 빈 탄약통 껍질을 총구에 밀어넣습니다.
7. 총신 아래에 끼워져 있는 밀대(ramrod)를 꺼내어, 총구에 끼워진 빈 탄약통 껍질과 총알을 총신 끝의 약실까지 밀어넣습니다. (이렇게 빈 탄약통 껍질을 밀어넣어야 나중에 총알이 총신 밖으로 흘러나오는 일을 방지 할 수 있습니다.)
8. 다시 밀대를 총신 아래의 홈에 끼워 넣습니다.
9. 머스켓 소총을 다시 들어올리고, 콕을 한단계 더 뒤로 당깁니다. 이것이 full-cock 위치이고, 이제 격발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10. 조준을 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콕에 끼워진 부싯돌이 frizzen을 강하게 내리치면서 불꽃이 튀고, 이 불꽃이 priming pan에 담긴 약간의 화약을 점화합니다. 이 화염이 pan 밑부분의 좁은 구멍을 타고 약실에 번져서 약실의 화약을 폭발시키고 총알이 발사됩니다. 이때 pan의 불붙은 화약 중 일부는 튀어나와 사수의 뺨에 닿게 되어 따가움과 동시에 시커먼 검댕을 묻히게 되고, 또 총구에서 나오는 화약 연기는 사수의 시야를 거의 완벽하게 가려서 목표물에 명중을 했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게 됩니다.
이 과정을 여러분은 1분간 몇번이나 반복할 수 있겠습니까 ? 그것도 나를 향해 총을 쏘고있는 적에게서 겨우 20m 떨어진 곳에서, 뻣뻣하게 선 자세로, 바로 옆의 동료가 총을 맞고 쓰러지며 비명을 지르는 상태에서 ? 당시 잘 훈련된 병사라면 1분에 2발을 이런 식으로 쏠 수 있었습니다. 원래 장전된 상태에서 쏘기 시작했다면 1분에 3발이겠지요.
가장 흔히 실수 하는 것은 대략 다음과 같았답니다.
1. 총알을 먼저 넣고 나중에 화약을 집어넣는 경우
2. 밀대를 빼내지 않고 총구에 꽂힌 상태에서 발사하는 경우
1의 경우는 그야말로 불발탄이 되었고, 이때 약실 깊숙히 박힌 총알을 빼내는 것은 무척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전투 상황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고, 이 경우 전투 종료시까지 이 총은 총검으로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2의 경우는 매우 흔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밀대는 총알과 함께 화살처럼 발사되어, 가까운 거리에 적이 있는 경우 적을 죽이기도 했답니다.
머스켓 소총을 사용하는데 일단 가장 큰 문제점은 불발 확률이었습니다.
보통 9발을 쏘면 그 중 한발은 불발이었다고 합니다. 요즘 소총이야 탄약 자체가 불발탄이거나, 탄약이 약실에 잘못 들어갔거나 하는 경우에 불발이 발생하고, 또 그럴 경우 불발탄을 빼내기만 하면 쉽게 다시 발사가 가능했지만 이때의 머스켓 소총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즉, 불발탄을 빼내기 위한 방법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탄약통 껍질까지 이용해서 약실 깊숙히 꾹꾹 밀어넣었던 총알과 화약을 총구를 통해 다시 빼내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렸고, 무척이나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즉, 전투 상황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즉, 통상적으로 머스켓 소총은 전투시에 8발 정도 쏘고 나면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버렸습니다.
불발이 발생하는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1. 부싯돌 불량 (양질의 부싯돌은 통상 30~50회 정도 격발이 가능했답니다만...)
2. Priming pan에 넣은 화약의 불량 (약간의 습기만 있어도... 원래 부싯돌로 불붙이는게 어렵죠)
3. 바람이나 격한 동작으로 priming pan에 넣었던 화약이 날라간 경우
4. hang-fire (priming pan의 화약이 느리게 타는 바람에 2~3초 후에 발사)
5. 사람의 실수 (총알을 먼저 넣고 화약을 넣는다든지 등등)
여러분 중에 부싯돌로 불붙여 보신 분 있으십니까 ? 일단 부싯돌이라는 것이 구하기 힘든 거라서, 아마 거의 없으실 겁니다. 좋은 부싯돌이라도 몇번 반복해서 쓰다보면 그 다음부터는 잘 불꽃이 튀지도 않고, 또 공기 중의 습기에 따라서 불꽃이 잘 안튀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비오는 날이면 머스켓 소총은 거의 막대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양질의 부싯돌은 프랑스의 Meusnes 지방에서 나왔습니다. 대혁명 이전에는 이 지방 주요 수출물은 핵심적인 군수품인 이 부싯돌이었다고 합니다. 또 부싯돌 깎는 기술도 핵심 군사 기술이었고, 프랑스 육군 포병대에서만도 이런 부싯돌공이 168명이나 있었답니다.
당연히, 부싯돌은 중요한 군사 자원으로서, 프랑스군 같은 경우 머스켓 소총 장전 연습을 할 경우 이 부싯돌은 빼두고 나무토막을 끼워놓고 연습을 했답니다. 참고로, 영국군이 다른 유럽국가의 보병에 비해서 무척 우수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사격연습 때 실탄으로 사격 연습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른 유럽국가에서는 대부분 머스켓 소총에 장전하고 격발하는 연습까지만 했던 거지요. (이야기가 옆으로 샙니다만, 미군이 가장 우수한 이유도, 각종 훈련에서 실탄을 비롯한 군수품을 아낌없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카투사 나온 분들은 이해하실 겁니다.)
아까 머스켓 소총의 실제 전투에서 사용가능한 횟수가 약 8회 정도라고 했습니다만, 야전 지휘관들이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적은 없었습니다. 실제로 발포 가능한 숫자는 겨우 2회를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는 당시의 전술과 상관있었고, 또 당시의 전술은 머스켓 소총의 정확성과 무척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먼저, 당시 머스켓 소총의 사정거리가 문제인데, 뭐 당시 정확한 유효사거리는 측정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1814년, 영국군 대령인 Hanger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보면 대략 80야드 (1yard는 약 91cm), 즉 70m 정도를 유효사거리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머스켓 볼은 80야드 거리에서, 심지어 100야드 거리에서도 사람 모양을 맞출 수 있다. 그러나 150야드 정도에서 발사된 머스켓 볼에 맞은 병사는 정말 억세게 운이 없는 병사라고 할 수 있다. 200야드에서 쏜다면... 그건 달에다가 대고 쏜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대개 당시의 영국군은 전투 대형을 횡렬로 2줄로 늘어서서 공격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경우가 가장 많은 숫자의 병사들이 일제히 사격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3줄로 늘어설 경우, 세번째 줄의 병사는 첫번째 병사의 뒤통수를 맞출까 두려워 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에 비해, 프랑스군은, 특히 공격시에는, 횡대가 아닌 종대로 공격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는 병사들의 사기와 관련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앞뒤로 깊숙히 뭉쳐서 쳐들어가는 것이, 아군에게는 안도감을, 적군에게는 공포감을 주기 좋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양쪽 군대가 접근해서 전투를 전개할 때, 가장 핵심적인 결정 요소는 먼저 몇줄로 늘어서서 공격할 것인지였고, 그 다음에는 어느 거리까지 접근해서 발포를 할 것인지, 마지막으로는 다시 발포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총검 돌격으로 들어갈지였다고 합니다.
가장 골치아픈 것이 어느 거리까지 접근해서 발포를 할 것인지 였습니다. 고려할 사항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조금이라도 먼저 발포를 해서, 적병의 숫자를 조금이라도 줄여놓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러자면 먼거리에서라도 먼저 쏘는 것이 유리합니다.
2. 머스켓 소총의 사정거리가 사실상 70m를 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최대한 파괴력을 가진 일제 사격은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쏘는 것이 유리합니다.
위와 같은 사항들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전술이 많이 채택되었습니다.
1. 적이 사격을 하건 말건, 우리편이 총에 맞아 쓰러지건 말건 그냥 묵묵히 대오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전진합니다. 이때 대오를 칼같이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일단 대오가 흐트러지면 인간의 공포심 등으로 인해 대오를 재정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2. 약 60야드, 즉 55m 정도의 거리까지 접근하면 일단 정지한 후, "Make ready ! Present ! Fire !"를 외칩니다. 즉, 일제 사격을 퍼붓습니다.
3. 그 다음에는 "Charge !"를 외칩니다. 즉, 총검 돌격을 실시합니다.
즉, 대부분의 경우, 1발만을 발사하고 재장전없이 돌격하여 총검을 이용하여 끝장을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정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양쪽이 서로 멈춰서서 사격전을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40야드, 즉 37m 정도의 거리에서는 머스켓 소총도 거의 빗나가는 경우가 없었고, 또 이럴 경우 적군이 재장전할 시간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40야드까지 접근한 뒤에야 일제사격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일제사격을 하고 나면, 자욱한 화약연기로 인해 거의 연막탄을 터뜨린 상태가 되기 때문에 어차피 피아간에 조준 사격은 거의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때 장교들이나 하사관들이 대열의 병사들에게 외치는 소리는 어김없이 "Don't shoot high !" 였다고 합니다. 즉, 이때의 머스켓 소총의 반동은 생각보다 컸기 때문에, 저 정도의 거리에서는 상대방의 무릎을 겨누어야 상대방의 가슴에 맞을 확률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 상태라는 것이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달라서, (또 많은 경우 실탄 사격을 별로 해보지 않은 병사들도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무릎을 겨누라고 했는데도 상대방의 가슴을 겨누는 바람에 일제 사격이 적군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묵묵히 전진해오는 적군을 보고, 명령없이 발포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독립 전쟁 당시의 유명한 구호 중의 하나는 "Wait until you see the whites of their eyes !" 였답니다. 즉, 적병의 눈흰자위가 보일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지요. 거리가 30야드인지 50야드인지 구별하는 것이 사실 쉽지 않다는 것을 보면, 아주 좋은 구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중률은 매우 낮았답니다. 나폴레옹군과 영국군이 스페인에서 맞붙은 탈라베라 전투의 경우, 발사된 100발의 머스켓 볼 중 적에게 부상이라도 입힌 것은 겨우 3~4발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또 역시 치열한 전투였던 비토리아 전투에서는, 사용된 머스켓 볼은 3백6십만발이 넘었지만, 총탄에 의해 죽음이나 부상을 당한 전투원은 겨우 8000명으로서, 약 459발 당 1발이 명중을 한 것지요. 베트남전에서는 약 50만발당 1명이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때의 명중률이 높다고 해야 하나요 ?
위의 경우를 종합해보면, 활과 창 등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군대와 머스켓 소총으로 무장한 부대가 맞붙어 싸워도, 심리적인 효과를 빼면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구식 군대가 별로 꿇릴 것이 없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글을 읽기 이전에는 머스켓소총으로만 전투하는줄 알았는데 정말신기하네요
결국 겁주는 무기??? 왜 머스켓을 썼을가요 보병이라도 칼들고 달려드는게
더 싸고 효휼적이지 않을가요 머스켓 로망이 확깨지네요;;
양쪽 모두 머스켓을 쓰기 때문에 생겨난 전술 같은데요, 만일 한쪽이 냉병기만 들고 있다면 가능한한 먼거리에서 발포했을테고...화승총 계열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맞붙어보면 대부분 총을 가진 쪽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장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총이 활을 밀어내고 전장을 지배하게 된이유는 좀 지나치게 축약하자면 [싼값을 들이고 상대가 누구던 -징집농노건 완전무장 소드맛스타던- 평균적인 살상력을 발휘할수 있게해주는 '대량살상'에 적합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전쟁의 역사를 통틀어 이런 대량살상무기에 목말라했다는건 씁쓸하지만 어쫄수 없는 사실이지요-ㅅ-
네 결국은 총이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누구나 평균이상의 전투력을 가지게 해준다는 장점에 끌렸겠죠. 그래서 점점 총력전 양상으로 흘러간 것이고요. 이 자료를 보니 당시 왜 일렬로 마주서서 사격을 할수 밖에 없었는지 알것 같네요 ^^ 흔히 영화를 보면 단발로 나가는 현대의 총정도로 생각하기에 쉽게 이해를 하지 못하죠.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혼블로워의 라이플식 권총. 높은 신뢰도와 우천시에도 발포할수 있었죠.
그당시 가장 큰 문제는 화약에 따라 머스킷의 성능이 엄청 달라지니까여
양쪽 모두 머스켓을 쓰기 때문에 생겨난 전술 같은데요, 만일 한쪽이 냉병기만 들고 있다면 가능한한 먼거리에서 발포했을테고...화승총 계열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맞붙어보면 대부분 총을 가진 쪽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장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심리적 요소가 진짜 압박입니다-100명도 아니고 무슨 몇천명이 늘어서서 콰광콰광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통상적인 마인드로는 못버텨냅니다 이쪽도 화기가 있어야하죠~
활과 맞붙으면 꽥살 나겠네 머스켓이 장전하는 속도와 명줄률을 보면 활이 더 유리할 것 같은뎀 아닌가?(영화에서 보면 그냥 픽픽 쓰러지더니,,, 사기?) 우리나라에서 제일 사거리가 약한 목궁이 50m를 날아간다는데 그럼 제일 센 활로 쏘면 머스켓보병대는 전멸...인가?
문제는 궁수부대는 그 숫자가 소수이지만... 머스키티어는 총만 쥐어주고 짧은 기간의 훈련만 거치면 된다는 점이 강점이죠. 궁수부대를 10만명 단위로 동원할 수 는 없으니까요.
총이 활을 밀어내고 전장을 지배하게 된이유는 좀 지나치게 축약하자면 [싼값을 들이고 상대가 누구던 -징집농노건 완전무장 소드맛스타던- 평균적인 살상력을 발휘할수 있게해주는 '대량살상'에 적합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전쟁의 역사를 통틀어 이런 대량살상무기에 목말라했다는건 씁쓸하지만 어쫄수 없는 사실이지요-ㅅ-
네 결국은 총이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누구나 평균이상의 전투력을 가지게 해준다는 장점에 끌렸겠죠. 그래서 점점 총력전 양상으로 흘러간 것이고요. 이 자료를 보니 당시 왜 일렬로 마주서서 사격을 할수 밖에 없었는지 알것 같네요 ^^ 흔히 영화를 보면 단발로 나가는 현대의 총정도로 생각하기에 쉽게 이해를 하지 못하죠.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뭐 조선과 같이 활에 대한 인프라가 잘 갖춰진 국가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는 역시 총이죠 아니 활에 대한 인프라 잘 갖춰진 조선도 조총수 비율이 덜덜덜 하더군요 ㅡ.ㅡ;;;
좋은 자료네요.... -_- 이걸 느끼기 위해선 게임 코삭2를 하는게 원츄입니다. ㅎㅎ
lathander님 말씀에 동감... 코삭 하다보면 초반 머스킷 총병 뎀지가 20~30 인가. 하지만 알제리아 궁수들은 150ㅡㅡ 정말 처음했을때는 알제리아 사기 게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멀티플레이어 할때 유럽분들이 꼭 알제리 하지말라고 하더군요,,,
코삭에서 알제리 궁수 뎀지는 150이지만 밀집대형에 사격해도 잘 안죽던데요...명중률 제로...17c아쿼버스한테 개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