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시어러
지난 92년 프리미어리그가 창설된 이후 10년이 넘도록
우승컵을 안은 팀은 단 3팀에 불과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대부분을 차지한 가운데 아스날이 두차례, 블랙번이 한차례
우승컵을 안았는데, 이 블랙번의 94~95시즌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수가 앨런 시어러와 크리스 서튼이다.
특히 시어러는 34골을 몰아치며 소속팀의 우승은 물론이고
득점왕에 등극, 최고의 한 시즌을 보낸 바 있다.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골(04년 3월 현재 287골),
3시즌 연속 프리미어쉽 30골 이상 기록(93~94, 94~95, 95~96),
3시즌 연속 득점왕(94~95, 95~96, 96~97), 1경기 개인 최다골 기록(5골) 등 프리미어리그의 골에 관한 거의 모든 기록은
앨런 시어러가 보유하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어러의 트레이드마크는 고감도의 캐넌 슈팅과
파워실린 헤딩을 꼽을 수 있다. 탁월한 스피드나 개인기를
지니지는 않았으나 효과적인 움직임으로 수비수들을 따돌리며
좋은 위치를 선점한다. 특히 패스를 받아 슛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는
가히 '으뜸'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남다름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시어러가 높게 평가받는 대목은 무엇보다도 침착성일 것이다.
잉글랜드대표팀의 선배 게리 리네커를 연상시킬 정도로 시어러는 어
떠한 경우에도 흔들림없이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해왔으며,
이로 인해 '전설'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87~88시즌 사우샘튼을 시작으로 프로선수의 길을 걸었으며,
블랙번을 거쳐 96~97시즌부터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고 있다.
대표팀에서의 활약 또한 발군. 92, 96, 2000 유럽선수권대회와
98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뛰었으며,
유로96에서는 6골을 기록하며 맹위를 떨치기도 했다.
키에론 다이어
주로 왼쪽에서의 스피드와 돌파력이 돋보이는 정상급 측면 미드필더다. 96~97시즌 입스위치 타운에서 데뷔했으며,
이듬해 리그와 컵대회를 포함해 총 41경기에 출전하며
주전자리를 확고히 했다. 3시즌동안 입스위치에서 활약하며 9골을 기록, 주목을 끌었던 다이어는 99~00시즌 '전통의 명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합류하면서 한단계 도약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얘기해서 다이어는 부상이라는
악재를 떨칠 수가 없었다. 뉴캐슬 입단 이후,
바비 롭슨 감독의 두터운 신임아래 주전자리를 꿰차기는 했으나
01~02시즌 첫 부상을 당한 이래 다이어는 컨디션 난조와
부상재발로 인해 선수생활을 전면 휴업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99년 9월 룩셈부르크와의 경기를 통해 잉글랜드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후 꾸준히 대표팀 명단에 오르내렸다.
유로2000 지역예선과 본선에 모두 참여하였고
지난 2002한일월드컵에서도 3경기를 소화한 바 있다.
크고 작은 부상으로 재활과 복귀를 반복했던 다이어가
후유증과 부상에 대한 공포만 극복한다면 차세대
잉글랜드 대표팀의 측면윙어로서 손색이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휴고 비아나
휴고 비아나는 포르투갈의 대선배인 루이 코스타(AC 밀란)와
비견될 정도로 소시적부터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기대주였다. 공
격의 시발점이 되는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자질과 왼쪽 미드필더로서의 재능을 겸비했다는 평가다.
지난 2002년 6월,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비아나의 이적료로 책정한 금액이 무려 850만 파운드. 이는 1년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 영입으로 깨지긴 했지만 당시까지 10대 프리미어리거 이적료중 최고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비아나가 19세에 불과한 미소년이었다 해도
포르투갈과 잉글랜드에서 거는 기대치가
어느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비아나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주전자리를 꿰차는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02~03시즌 11경기 선발출전했고,
03~04시즌 현재까지 19차례의 출전기회를 얻었다.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는 비아나라 해도 로랑 로베르, 키에론 다이어,
게리 스피드, 저메인 제너스 등이 버티는 뉴캐슬의
막강 미드필더들과의 경쟁이 만만치 않은 셈이다.
01~02시즌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데뷔했으며
21세 이하 유럽청소년선수권대회를 통해 유명세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