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바람과 시민사회의 정치 도전이 이어지면서 보수 재편 논쟁이 한창이다. 보수는 해방 이후 혼란기에 한국 사회의 틀을 만들었다. 그러나 젊은 네티즌이 주도하는 인터넷 공간에선 보수가 ‘시대 착오’로 간주되는 분위기다. 경제 위기와 양극화로 흔들린 중산층마저 보수적 가치에 의문을 보인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복지 확대에 나서며 왼쪽으로 다가서고 있다. 보수의 위기는 도대체 어디서 출발했고 탈출구는 무엇일까. 국내외 보수 전문가 3명이 보수의 위기를 진단하고 향후를 고민했다.
복거일 “MB정부는 보수 아닌 포퓰리즘 정부”
복거일씨는 소설가이자 보수 논객이다. 최근 『보수는 무엇을 보수하는가』란 책을 펴냈다. ‘보수의 집권과 생존 전략’을 주제로 현재 한국 사회를 진단했다.
보수가 눈앞의 선거에 집착해 포퓰리즘을 고르는 것은 자신과 나라의 앞날을 어둡게 만든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2일 그를 만났다. 복씨는 “이명박 정부는 보수 정권이라기보다 포퓰리즘 정권”이라며 “우리는 지금 매일 매일 그리스를 닮아간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대한민국 보수는 위기인가.
“보수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위기다. 보수는 인기가 없을 뿐이다. 상대적 빈곤감에 빠져 세상이 뒤집혔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이 이유가 어쨌든 ‘싫다’면 대책이 없는 것이다. 포드 자동차에서 헨리 포드 3세가 아이아코카를 해고할 때도 이유가 없었다. “나는 네가 싫다”는 게 전부였다. 당시 아이아코카는 머스탱을 개발해서 포드사를 일으켰는데도 말이다. 내년 대선에선 야당 지도자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좌파가 집권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선 정권 재창출이 어려워 정권의 안정성은 계속 낮아질 거다.”
우물안 개구리만도 못한 아귀다툼에 정신줄 놔버린 닭대가리들의
-상대적 빈곤감이 커진 것은 이명박 정부 때문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이념 대신 실용이란 개념을 내걸었다. 이념적 바탕이 결여돼 있으니 자기 자신의 이익을 사회 이익으로 대치하는 현상이 깊어졌다. 명색은 보수 정권인데 대한민국의 체제와 이념을 지키는 데 소홀하고 좌파 정권 때보다 더 이념과 체제를 허무는 정책을 택했다. 대기업을 적대시하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념으로 여론을 이끄는 게 아니라 국민 여론에 뒤따라가다 보니 문제의 근원을 대기업과 가진 자에서 찾고 있다. 대기업과 가진 자를 옥죄고 포퓰리즘으로 접근한다. 결국 노동조합이든 동업조합이든 작은 집단마다 내 이익을 지키겠다고 악다구니 쓰게 됐다. 애초에 대통령직을 수행할 기본적 준비가 안 됐다.”
-현 정부가 포퓰리즘 정권이란 뜻인가.
“결과로 볼 때 그렇다. 이념에 대한 무지 속에 집권했고 이념적 무장을 안 했기 때문에 계속 흔들렸고 흔들리는 정권이다.”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정책이 MB노믹스다. 대기업을 옥죈 게 아니라 편들지 않았나.
“정권 초기엔 그랬다. 우리나라는 수출을 통해 성장하는 나라다. 당연히 대기업 위주다. 현 정부가 그런 상식적인 정책을 이어받아 가려 했지만 저항이 많고 어려움이 생기자 빠르게 정책을 바꿨다. 동반성장이란 이름 아래 이미 없어진 중소기업 품목 지정하는 대책까지 나왔다. 경제적 난센스다. 두부와 콩나물까지 대기업이 한다고 비판인데 시장에선 그게 효율적이라고 결론 났다. 그 전엔 어땠나. 석회 두부와 수은 콩나물까지 나왔다. 여러 가지 경제적 이유 때문에 대기업 지원이 어려워지자 느닷없이 대기업을 옥죄고 잘못된 것을 뒤집어 씌운 뒤 자기는 빠졌다. 동반성장위원회서 나온 정책 중 쓸모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돌팔이 짝퉁보수와 간교한 사이비 진보의 이전투구, 그끝은?
-그렇다면 보수 정당의 진로는 뭔가.
“정당은 드라마 제작자가 아니다. 신선감으로 인기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정책을 내야 한다. 그런데 정당의 정책은 검증에 시간이 걸린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정책을 내고 이를 통해 당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검증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의 가치란 게 뭔가.
“대한민국 이념은 자유 민주주의이고 그런 이념을 구현한 자본주의 체제다. 이를 지키려는 사람이 보수다. 그런 사람이 많아지고 열의가 강해야 건강한 사회다. 연세대 송복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20~25%가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를 부정한다고 한다. 점점 늘어나 과반을 차지할 때도 많다. 서구의 안정된 사회에선 대략 5~10% 정도다. 그러니 대한민국 사회는 항상 불안하다. 조금만 잘못돼도 체제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대한민국에 충성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쏠림이 있다.”
-안철수 바람은 기부와 같은 그의 선행에서 시작된 것 아닌가.
“안철수 현상이란 게 근본적으로 시민들의 비합리적 기대다. 사회가 성장하고 건전할 때는 합리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기대를 충족할 수 없다면 절망감이 생기고 구원을 찾는다. 나아질 가능성이 없어서다. 이미 알려진 정치 지도자나 후보에 대해선 바랄 수 없으니 미지수에 건다. 안철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다. 박근혜 전 대표도 그런 신비스러운 면이 있어 인기가 있다. 안철수가 서울시장 선거를 놓고 상식 대 비상식이라고 표현했다. 도대체 그 사람 상식이란 게 뭐냐. 그런 사람을 놓고 열망하는 게 우리 시민의 수준이어서 답답하다.”
| |||||||||||||||||||||||||||||||
|
-왜 그렇게 됐나.
“대한민국에 적대적인 세력이 지식계를 장악해서다. 문화·연예·교육 등 지식인 사회를 모두 좌파가 장악했다. 생각을 전파하는 게 문화다. 그 사람들이 전파한 아이디어를 사람들이 받아들인다. 대략 1970년대 후반부터 그랬다. 거기에 세뇌된 사람들이 지금 사회의 중추를 맡고 있다. 사법부를 사회 운동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도한다. 교육은 전교조가 장악했다.”
-우리 사회 기득권층은 기부와 헌신이 좀 부족하지 않나.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 미국은 개인의 재산권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기업엔 정부 간섭이 거의 없고, 돈 번 사람은 시기를 받지 않는다. ‘협박 없이 협찬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준조세로 사회가 많이 뜯어가는 구조다.”
최상연 기자 choisy@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