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칠비로자나불좌상은 삼베와 칠을 6∼8겹 정도 겹으로 올려 옻칠을 한 건칠상으로,
눈동자와 백호는 수정을 끼워 넣었다.손은 나무로 만들어 끼우고 철정으로 고정하였다.
건칠불상은 고려시대에서부터 조선 전기에 걸쳐 제작되고 유행하였던
불상의 재료로서 현재 약 20구 정도 남아 있다.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은 지권인의 수인을 한비로자나불상으로
무릎이 넓은 장대하면서도 균형감 있는 신체 비례와
앞으로 숙인 구부정한 자세와뚜렷한 이목구비가 특징이다.
손 모습이나 군의를 묶은 띠 매듭,대의 착의법 등은 고려 후기 특징인 반면
신체에 비해큰 얼굴과 상체가 긴 신체 비례, 도식적인 옷자락 표현 등에서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 건칠불상은 약 20점가량 남아 있다.
이 가운데 고려말∼조선초 여래상 작품은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을 비롯하여
경기도 안성 청원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보물 1795호),
전라남도 나주 심향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보물 1554호, 2008년 지정),
전라북도 남원 선국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보물 1517호, 2007년 지정),
전라남도 나주 죽림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전남 유형문화재 제298호),
경상북도 봉화 청량사 건칠여래좌상(보물 1919호),
경상남도 하동 쌍계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등이며 비로자나불상은 불회사 불상이 유일하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여말선초의 나주지역에서 제작된 건칠비로자나불좌상으로 건칠이라는 소재의 특수성과
여말선초 시기에 보기 드문 비로자나불 도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건칠불상은 칠이라는 값비싼 재료를 이용하여 제작하는 상으로
정교하게 조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값이 비싸고 공정이 까다로운 단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작품 수가 많지 않고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에만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불상의 재료이며
유난히 전남 나주, 남원지역에 많은 편이어서 불회사 불상의 자료적 가치는 높다.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은 여말선초기의 건칠불상과 비로자나불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자료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대웅전의 이 건물은 흔히 볼 수 있는 조선 후기 양식에 속한 건물로
천장 주위에 22개의 각종 불교와 관련된 벽화를 그려 대웅전으로서의 장엄미를 돋보이고 있다.
법당의 기둥 위에는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라창방과 평방이 놓이고 전·후면의 각 주 칸에는외3출목, 내4출목 포작을 2조씩,양측 면에는 1조씩 배치하였는데외부살미의 끝은 심하게 휘어져 올라가 있고내부에서는 화려한 연봉형으로 마감하였다.또한 정면 어칸에는 용머리 장식의 안초공을 사용하여용두는 외부로 힘차게 빠져나왔고그 꼬리는 내부로 힘차게 뻗었다.
건물의 양측 면 중앙에서는 건물 내부로 2개의 충량을 걸어
그 머리를 용두로 장식하여 대량에 걸치었는데
이러한 결구법은 조선 중기 이후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수법이다.
건물의 내부천장은 빗천장과 우물천장을 혼용하였는데
대량(기둥)에는 학과 기린등이 부조되어 있고
빗천장에는 물고기, 연화문 등을 매우 정교하게 조각하여 달았다.
건물 기둥 위 창방 위에 평방을 돌리고 그 위에 공포를 짜 올려
다포계(多包系)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른 것으로 보이나
가운데 칸의 양 기둥 사이로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한 점이 특이하다.
즉, 용두를 밖으로 나오게 하고 그 꼬리를 건물 안쪽 대들보 밑에 끼워 넣은 수법,
양쪽 대들보 사이로 상호 중앙을 향해 마주 보도록 또 다른 두 마리의 용을 목각으로 조각한 수법,
건물 내부에 연꽃봉오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보물) 등 변산반도를 중심으로한 사찰과
건축 수법에서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처럼 나주 불회사 대웅전은 조선 후기 건립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건물로
역사적 의의와 함께학술적 가치가 있다.<자료출처: 문화재청>
윤장대
신중탱
대웅전 앞 돌계단 양쪽에 괘불대가 조성되어 있다.
극락전
나한전과 삼성각 한 단 아래에 위치한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3에 주심포 겹처마 팔작지붕의 전각으로
2013년에 건립되었다. 협시불 없이 아미타불상만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