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일찍 눈이 떠져 버린 시후는 옆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감촉에 자신도 모르게 킥, 하고 웃어 버렸다.
비에 올딱 젖어 돌아온 자정이 넘은 시간, 일단 감기 걸리지 않게 몸을 씻었다. 슬쩍 손목을 쥐어봤지만 아직도 차가운 몸에, 울컥 걱정이 들어서..
시후는 자신의 방에서 잠시만 앉아 있으라고 해놓고 주방에 들어갔다. 물을 끓이고 한참을 뒤져서 겨우 코코아 가루를 찾아내 머그잔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코코아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을땐.
이미 화련은 자신의 침대에 새우잠 자듯 웅크린 자세로 잠이 들어있었다. 한쪽 손에는 그래도 놓치않은 책.
정말 미친듯이 웃었다. 곤히 자는것 같아서 깰까봐 숨죽이며 어깨를 들썩였고 한손에 머그컵안에 코코아가 웃어 제끼는 손에 떨려 허벅지에 튀겨 화들짝 놀라 잔을 던질뻔 했다.
대충 진정되자 흘린 코코아를 닦아 내고 화련의 손에 꼭 쥐인 책을 조심스럽게 뺐냈다. 침대 아래에서 웅크린듯 자고 있는 그녀를 들어올려 한침대 안에 들어갔다.
미친듯이 뛰는 심장에 간신히 잠에 들어도 옆에서 곤히자다가도 한번씩 뒤척있는 화련때문에 번번히 잠에서 깨기 마련이였다.
따로 떨어져서 자면 쉽게 해결될 문제였지만.. 평상시와는 확연하게 틀린 무방비한 모습으로, 마치 아기가 잠들든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놓기 싫었다.
설친잠에 피곤함을 느꼈지만 가슴 한구석엔 어느때도 느낄 수 없는 만족감이 따뜻하게 퍼져 나갔다.
커다란 쿠션을 등뒤에 받치고 반쯤 앉아 누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오른쪽 팔을 베개 삼아 베고
조금 커보이는 블라우스를 입은 채 옆구리에 딱 달라 붙어 자는.. 화련이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순간이였다.
눈만 뜨면 이런 모습은 거짓이라는듯 오만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돌아가지만.. 지금은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웃음을 자아낸다고 할까.. 그 증거로 지금도 부드러운 미소가 입가에 달려있었다.
"....으응..."
작은 뒤척임, 아니 뒤척이기 보다는 추운듯 체온이 느껴지는 자신에게 무의식적으로 파고 드는 화련의 몸에 시후의 몸이 잠시 움찔 거렸다.
긴 소매에 의해 손이 보이지 않는 팔을 연심 꿈지럭 거리다가 시후의 배위를 떡 하니 가로 지른다.
"...헉."
작은 몸짓에서 놀란듯 크게 반응했다. 시후는 숨을 급하게 들이마셨다. 혹시나 깰까봐 조심조심 시트를 끌어 올려 화련의 목언저리까지 덮어준다.
방금 전 작은 움직임에 긴 검은 머리가 흘러내려와 얼굴을 가려버린다. 그것이 불만인듯 시후가 작게 인상을 썼다.
무심코 왼쪽 어깨를 뻗었다 짜릿한 통증에 몸을 비틀며 신음을 토해냈다.
"...으윽,"
어제 씻느라 압박붕대를 풀어 내고는 감지 못했다. 왼쪽 어깨를 감싸고 싶어도 오른쪽 팔은 화련의 베개 역활을 하고 있었다.
급히 비틀었던 몸을 가만히 두고 아찔한 통증을 참아 냈다. 움직이면..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그녀가 깰지도 모른다.
조금은, 조금은 더 이 순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통증이 가라 앉자 시후는 조심스럽게 오른 손을 움직였다.
오랫동안 화련의 머리를 받치고 있어 짜릿짜릿 했지만 멈출줄은 몰랐다. 스윽, 머리를 쓸어 귀뒤로 넘겨 주었다.
걷어 드릴려던 손이 멈칫하고 잠시 시후의 시선이 빤히 화련을 바라본다. 새하얀 얼굴에 눈에 띄는 선명한 붉은색 입술에 무심코 손이 갔다.
입술의 곧은 주름들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태양빛을 받아 잘 익은 과일마냥 탐스러운것이 한번쯤 입에 넣어보고 싶었다.
화르륵, 순간적인 자신의 욕망적인 생각에 시후의 얼굴이 붉어졌다. 애써 생각을 떨추며 얼른 입술에 머무른 손을 옮겼다.
손끝을 따라 높게 솓은 코를 슬쩍 지나.. 눈을 땔 수 없는 푸른 불꽃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잔잔한 바다 같기도 한 아름다운.. 사파이어... 긴 눈썹이 드리워진 눈가를 어루만졌다.
"...!!!..."
눈가를 쓰다듬던 손이 지나간 자리에.. 사파이어가 빛나기 시작한다. 뜻 밖의 모습에 시후는 딱딱하게 굳었다.
뭐라고 이 상황과 행동을 변명해야 할지 앞길이 막막하다고 느끼는 시후와는 달리 화련은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눈을 떻는다 자신 옆에 외간 남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 였다.
스윽, 화련이 시후의 탄탄한 근육이 균형있게 베인 가슴위를 가로질렀던 팔을 거둬드렸다. 화련의 팔이 놓이 부분만 싸늘해 지는 촉감에 시후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추렸다.
두 팔로 상체만 상체를 밭춰 일으킨 상태로 조금 흐르러진 모습으로 시후를 바라본다. 화련이 일어나면서 흘러내린 시트가 지금 상황을 대충 말해준다.
시후의 불필요한 살점 없이 적당하게 붙은 근육이 창가에 비치는 햇빛에 반짝인다.
다행히도(?) 벗은 위에완 달린 아래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다만.. 약간의 문제는 거론하자면.. 자크가 내려가 있다는 것을 염두해두는것이 좋을듯 싶다.
긴 흑발이 잠시 찰랑거린다. 목 언저리 단추 두어개는 풀러져 있자 블라우스가 꽤 큰지 화련의 한쪽 어깨가 고스란히 보인다.
더군다나!! 벌려진 블라우스 사이로 화련의 속옷이 햇살에 비춰 보인다. 시후가 얼굴을 확- 붉히며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씨....바...알..."
시후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더욱 붉어졌다. 다름이 아닌.. 그녀는 아래, 속옷 밖에 입지 않았다. 시트 안쪽으로 보이는 매끈한 다리에 시선을 때지 못했다.
긴 소매에 아빠 옷 입은 아이처럼 쭉 늘어진 블라우스 팔을 들어올린다. 그 손길에 허둥지둥 시선을 거둬드리고 다급하게 변명하기도 전에 시후는 입을 떡하고 벌리고 말았다.
"...허억!!"
어깨가 짜릿하게 울렸지만 아프기보다는 기분이 좋았다. 얇은 블라우스 하나만 두고 맨살에 전해저 오는 물컹한 느낌,
자신의 몸 위에 반은 올라간 자세에 화련이 시후의 목을 한손으로 끌어 안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가슴이 진정 되지 않는다. 쿵쾅! 쿵쾅!! 가슴을 뚤고 튀어나갈듯 강열하게 뛰기 시작한다.
"......으음.. 시끄러워..."
평상시라면 믿기지 않을듯한 풀어져버린 목소리로 말끝을 길게 끌며 화련이 시후의 가슴에 얼굴을 부빈다.
행복하면서도 또한 가슴한구석에서 불안함이 뒤엉켜 혼란스러움을 만들어 낸다. 시후의 켜졌던 눈이 제대로 돌아오며.. 슬그머니 자신의 가슴위에 있는 화련을 내려다 본다.
눈을 뜨고 있지만.. 어딘가 몽롱하다. 그 모습마저 몽환적인 매력을 자아내자 시후는 멀쩡한 오른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쪽팔리게.. 여자가 처음도 아니면서 별 아닌 행동에 사사로이 반응하는 자신이 웃겼지만.. 그래도...
손을 조심스럽게 내려.. 손등으로 부드럽게 화련의 볼을 쓸었다. 그저 가만히 그 손길을 받는 그 모습에 용기라도 얻었는지 시후가 손을 내려
가녀린 그녀의 허리를 힘주어 끌어 안았다. 평상시라면 정말 이런 복종적인 반응은 생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허리를 끌어 안은 손이.. 이성을 배반하기 시작했다. 은근슬적 내려가더니 v자로 갈라진 블라우스 끝에 우아한 각선미를 발하는 화련의 새하얀 다리를 쓸기 시작한다.
크윽, 시후가 단말의 비명을(?) 질렀다. 손에 닿는 부드러우면서도 기분좋게 만드는 아기 같은 피부에 심장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
꽈악, 목에 둘린 팔에 약한 힘이 실리며 화련이 꼼지락 거리며 시후의 어깨에 고개를 박았다.
"........"
순간 머리속이 새하해 지면서 헤벌레~ 웃어버린 시후의 귓가로 화련의 잠꼬대 같은 잠에 취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암... 유(有)우......."
손이 멈칫 하더니 황홀하게 젖은 시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지금 자신은 그녀를 품고 있는데 정작 화련은 자신을 누구와 착가하는 거지?
"... 이봐, 진화련.. 진화련!!"
버르장머리 없게(?) 화련의 다리의 각선미를 쓰다듬던 팔이 냉큼 올라와 그녀의 어깨를 쥐고 살짝 흔들었다.
조용히 잠에 취해 감기었던 눈이 조심스럽게 그 보석을 들어낸다.
"너 누구랑 착각하냐? 죽고 싶냐."
"......."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화련의 눈에는 더 이상 수마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몽롱하고 무방비했던 표정이 점차 무표정으로 돌아간다.
시후의 윗통만 벗은 몸 한번, 그리고 달랑 커다란 블라우스만 입은 자신을 바라본다. 싸늘하게 식었던 시후의 얼굴에 잠시 당황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자신을 화련의 입에 달고 달았던 '유'라는 사내와 착각하는 순간 가슴 한구석에서 분노가 폭발했지만 냉철한 눈으로 오해받을(?)만한 차림을 번갈어 보는 그녀에게 뭐라 변명해야 할까?
어제 가운만 입고 자길래.. 가운이 풀러져서(?) 할 수 없이 자신이 블라우스를 입혀 놨다? 그것도 달랑 위에만?!!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윗통만 벗고 있는 자신은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 건가?! 혼란에 혼란! 시후는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화련의 눈에 힐끗,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어쩐지 자포자기의 심정이 든다. 변명(?)을 해도 과연 믿어 줄지...
"......지금.. 몇시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시후가 반사적으로 침대옆에 있는 사이드 테이블위에 있는 전자 시계를 힐끔거렸다.
"...6시 조금 넘었는데."
"아아- 그런가.. "
"........진화련."
"......."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말고... 졸립냐?"
"....아아-"
머쓱하게 운을 띄는 시후가 힐끔 화련을 바라보고는 말을 바꿨다. 왠지 평상시랑 다름이 없는 무표정이지만.. 뭐라고 할까..?
조금 졸린듯, 피곤해 보인다. 졸립냐?하고 물어보니 잠시 침묵을 가지 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그 모습이 왠지 귀여워 시후는 작게 미소를 단다.
"....졸린건가..."
"크큭, 뭐냐. 졸리면 졸린거지 아닌것 같다는 그 표정은."
"나도 잘 모르겠다."
"자라, 자. 아직 학교갈때까지 시간 남아 있으니깐."
"아아.. 그래야 겠다. 조금 더 자도 나쁠건 없겠지."
"그래..그ㄹ.....!!!!!...."
시후가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자신이 자라고 했지만.. 대충 상황파악(?)도 했겠다 이만 자신의 방으로 도도하게 돌아갈 줄 알았던 화련이 시후의 품에 아까처럼 자리잡은 것은 그가 놀랄만한 일이였다.
숨도 쉬지 못하고 놀람에 굳어 있는 시후의 뻣뻣한 몸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후의 팔을 베고 있던 화련이 시후의 턱을 톡톡쳐 시선을 부른다.
"여기서 좀 자겠다, 오래간만에 따뜻한데서 자니깐 기분이 좋다."
"...아, 으아?"
바보같은 소리를 내고 말았지만 시후는 그런것에 신경쓸 수 없었다. 맨정신으로 하는 소린가? 자신도 어면히 대한 민국 건아건만..
설마 남자로 보이지 않는 건가? 그 생각에 머리속이 싸늘하게 식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네가 남자라는것은 안다. 사람의 체온이 오랫만이라 기분좋게 잤기에 잠시 빌리겠다는 것이다."
"......."
시후의 생각을 정확히 간파한 화련이 한심하다는듯 중얼거렸다. '네가 남자라는 것은 안다.'그 한마디에 싸늘했던 가슴이 다시 묘한 박동수를 내며 뛰기 시작한다.
씨익, 하고 미소 지어 보인 시후가 기대었던 쿠션에 머리를 눞혔다. 어깨를 조심하며 그녀가 기대기 편하게 자세를 잡아 주자
화련이 그제서야 만족했다는듯 아무것도 입지 않은 시후의 상체에 팔을 떡하니 올려놓고는 눈을 감는다.
찢어진 입가가 다물어 질줄 모르는 시후는 그 모습 마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볼뿐이였다.
"..........유..."
화련이 작게 누군가를 부르며 일어난다. 그리움이 묻어 나는듯한 음성, 혼자서 자기에 커다란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자 아까까지만 해도 옆에 있던 그가 없다.
따뜻했던 체온이 없자 조금은 싸늘해진 느낌이 났다. 이상하게 반가운 꿈을 꾼다. 유(有) 그가 자신에게 다가와 꼭 껴안아 준다.
그의 품에서 느꼈던 체온이.. 조금은 그리워지는 바람에 평상시라면 체온을 빌리는 일따윈 하지 않을텐데 정시후의 체온을 빌려 다시 한번 꿈을 꾸길 청했다.
허나 일어났을때는 꿈에서 느끼던 체온도, 현실에서 느낀 낮선 심장소리와 따뜻한 체온도 없었다. 혼자 덩그라니 놓인 침대에서 내려왔다.
핑~ 하고 약간 시야가 흔들린다. 잠시 흔들린 시선에 인상을 썼지만 곧이어 시선은 바로 잡혔다. 몸도 좀 나른한것 같고 호흡이 조금 빠르다.
잠시 이상이 있는듯 했으나 곧 평상시와 다름없는 모습에 화련은 너무 잘자서 그러나 하고 단순히 생각을 접는다.
따뜻한 체온으로 데워져 있는 시트속에서 나오자 훵하게 비어버린 아무것도 입지 않은 하체가 추웠지만 그닷 신경쓰지 않았다.
침대옆 테이블에 자신의 교복과 가운, 안방 욕실에서 씻고 나오라는 쪽지를 보고는 화련은 조용히 욕실안으로 들어갈뿐이였다.
문을 열자 뜨거운 수증기가 화련이 덮쳐 온다.
".......쓸대 없는 짓을 했군."
아침부터 반신욕이라니.. 말은 그렇게 했어도 땀에 젖은 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참이였다.
*
"앉아, 차린것 없지만 빈속보다는 낳을 거야."
"......."
교복을 입은 채 자신의 방에서 나온 그녀를 한번 힐끗 바라보는것으로 대신한 시후가 대충 둘러대듯 이야기 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계란 후라이를 테이블에 놓자 마자 방에서 나온 화련, 방금 씻어서 그런지 하얀 볼에 분홍 홍조가 있는게 혈색이 돌아보이는 인형같았다.
"커피? 코코아?"
"블랙."
"어, 코코아."
"....블랙."
"머리에 피도 안마른게 커피 타령이냐? 잠말말고 쳐마셔."
"......."
코코아가 담긴 머그잔을 내려놓는 시후를 사납게 노려봤다. 불만스러운듯한 표정에서 시후는 묵묵히 토스트와 복숭아 잼이 담긴 병을 화련앞으로 내밀어 줄뿐이였다.
"...어째서, 너는 왜 커피지."
"내맘."
이것이 마음에 안들었나 보다, 화련이 지긋이 토스트 한 입을 베어먹는 시후와 커피잔을 노려봤다.
지긋이 노려보기도 잠시 화련이 조용히 코코아잔을 들어올려 입가에 기울였다. '월하'에 간부들이 봤다면 안구를 꺼내어 세척한뒤 다시 끼고 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보다, 어제는 멀쩡하던 말투가 갑자기 왜 또 애늙은이 같아졌냐?"
"...애늙..은..이..?"
빠직, 작은 마크였지만 화련의 이마에 분명 네거리가 생겼다. 애늙이니라는 말에, 눈치 채지 못했는지 시후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중얼거릴뿐이였다.
"애늙은이, 뭐 문장 마지막에 -냐, -다, -군, 애늙은이지 어제 잘만 말하던데.. 그냥 평범한 말투쓰지?"
"내 말투가 그리 이상한가."
이상하냐고 묻는 말에 시후가 손에 토스트를 든체 잠시 고민하는듯 하더니 한입 베어 물고 말을 잇는다.
"어, 당연한거 아니냐? 그런 이상한 말투따위 듣는 사람도 이상한 기분이 든다고."
"....그럼 너는 내가 평범한 말투를 쓰면 좋겠다고 생각, 아니 원하나?"
"........"
뜻밖에 질문이였는지 시후가 화련을 잠시 바라봤다. 무표정하고 잠잠한 사파이어는 도무지 그 속을, 깊이를 쉽사리 보여 주지 않는다.
피식, 시후가 웃으며 대답한다.
"해줄꺼냐?"
"......."
'원한다면.' 화련은 대답을 삼켰다. 보통 들어줄 마음따위야 들지도 않을 것이였다. 어제, 오늘 어쩐지 그에게 빚을 진 기분이였다.
원한다면 이런 사사로운 말투쯤이야 바꿔줄 수 있었다. 물론 이것으로 빚을 진 기분이 사라지지 않겠지만 말이다.
"오호~ 침묵의 긍정? 그 이상한 말투보다야 훨씬 낳겠지."
"......."
반응이 없는 화련이 재미 없었는지 시후가 '아무렴 어때.'라는 얼굴로 커피잔을 기울인채로 화련을 응시했다.
그가 따뜻한 커피를 목구멍으로 넘길쯤에 화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시후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차지 하지만 그녀의 고갯짓이 무엇을 의미한지 깨달자 눈이 커진다.
"푸우-!!!! 크, 콜록!! 콜록!!! 씨, 씨...바.. 쿨럭!쿨럭!!!"
목구멍으로 흘러가고 있던 커피가 입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마주편에 앉아 있는 화련에게로 날라갔지만 화련은 여유로이 식탁에 놓인 은빛 쟁반으로 막아 냈다.
커피가 흘러내리는 은빛 쟁반안쪽으로 화련과 코코아, 토스트가 발사된 이물질(?)에서 무사히 보호된것을 힐끔 눈으로 확인한 화련이 쟁반을 내려놓았다.
연신 기침을 하던 시후가 화련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무언가를 원하는 듯한 손짓에도 화련은 토스트를 베어 물고 기침을 하고 있는 시후를 바라볼뿐이였다.
'너때문인데 안 갔다 주냐?'하는듯한 질책의 눈빛에 화련이 눈썹을 꿈틀 거리곤 냉장고안에 생수병을 꺼내 시후에게 던저 주었다.
그것을 따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 마시는 시후, 병에서 입술을 땔때쯤 그는 간신히 호흡이 진정이 된듯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화련을 바라보았다.
"씨발, 귀가 이상하다. 뭐라 짓걸였냐?"
"아무말 안했어."
"...............씨발... 고개 끄덕인 의미 말이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말투에 시후는 자신도 모르게 '아, 그래?'하고 넘어갈뻔 했다. 간신히 휘청이는(?) 정신을 가다듬고 화련을 쏘아보았다.
".....이봐, 진화련."
"......."
"진화련."
"......."
"아놔, 대답 좀 해봐!"
".....하아-, 왜."
"......."
귀찮다는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빛에 시후는 머리속에 한순간 공황상태가 찾아왔다. 하하! 왜란다, 왜?
왜라는 단어가 저리도 가벼우면서 이리 충격적(?)인것인지 시후는 처음알았다. 간단한 대답인데 왜 그렇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거냐?"
"네가 그러길 바랬잖아."
"....내, 내가 언제!!"
갑자기 화끈 거리는 얼굴 탓에 시후가 고함을 빽 질렀다. 그런것은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의 화련이 왠지 얄미워 진다.
"내 이상한 말투보다야 낳다고 했잖아. 그래서 해준거다."
"......."
애매한 말투였다. 묘하게 예전과 지금 말투가 섞인 문장에 화련이 미세하게 인상을 썼다.
뒤에 -야, -아 하고 붙이는것이 아직 익숙하지 못했는지 입에선 자연스럽게 -다 가 흘러나와버렸다.
자신의 눈앞에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는 눈치 채지 못한것 같지만 별 상관 없었다.
"....그, 그러니깐.. 내가.. 그렇게 말해서.. 해줬다고...?"
"......."
무슨 의도로 묻는 거지? 화련이 시후를 바라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표정, 어쩐지 조금 초조해 보이기도 하고 질문한 자신의 입을 후회하는듯 보이기도 한다.
조금 얼굴이 붉으스름한 이유를 알 수 없듯이 그가 그런 질문을 한 이유 또한 알 수 없었다.
화련은 작게 고갤르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으니깐. 그렇게 말해서 해준것이니깐.
손에 조금 남은 토스트 조각을 입에 넣었다. 작게 오물거리고 있자 머리위에서 느껴지는 낮선 체온에 온몸이 굳었다.
"...!!!..."
굳었다는 표현이 무색하게 들어올려진 고개, 사파이어 눈동자에 부드럽게 웃고 있는 그를 담고 있었다.
기쁜듯한 그의 표정을 이해 하지못 한채 온몸이 경직이라도 된듯 차갑게 얼어 버렸다.
따뜻하지만 보통 사람보다는 조금 낮은 체온, 분명.. 예전에도 이런 적이...?
"하하! 그거 진짜 기분 좋은 말인데?"
"......."
"하하하하! 뭘 그렇게 굳어 있냐? 학교 안가냐?"
".....아..!"
"크큭, 얼빵하기는 말투 바꾸지 말아. 지금이 훨씬 더 좋아 보이니깐."
부드러운 비단실같은 촉감에 때기 싫은 손을 억지로 때어 난뒤 조금 얼빵해진 화련의 하얀 이마에 살짝 손가락 튕겼다.
경악에 가까워지는 표정을 보니 어쩐지 즐거워 진다. 더 있다간 차가운 눈동자로 한심하다는듯 바라볼것 같아 시후는 냉큼 방으로 들어갔다.
달칵, 하고 닫힌 방안에서 시후의 통쾌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경악으로 커졌던 눈동자가 싸늘하게 식는다. 시후의 기척이 방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것을 감각들이 일깨워 주고 있었다.
화련을 조심히 손을 들어올려 시후가 쓰다듬어 흐트러진 곳에 조심히 손을 올려보았다.
"...익...숙하...잖아..."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났다. 이상하게 말이다. 보통 사람보다 조금 서늘한 손이... 뭔가 그리워졌다.
푸른빛 사파이어의 깊은 바다가 아련하게 젖어 온다. 조용히 뛰는 심장이..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
"가자!"
어느새 방에서 나왔는지 식탁에 앉아 있는 화련의 뒷모습에 시후가 소리쳤다.
그의 불음에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저녁과는 다르게.. 붉은 빛이 아닌,
하얗고 황금빛 햇살이 시후의 등뒤로 비춰 졌다. 너무나도 밝은 그 모습에.. 잠시 눈가를 찡그렸다.
"가자, 진화련."
자신을 향해 씩, 기분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시후에게로.. 한걸음 다가가 그가 건내는 가방을 받아 들었다.
조용히 뛰는 심장, 어쩐지 묘한 기대와 흥분에 차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어쩐지... 오늘 하루는 꽤나 기대 하도 될것 같다.
조금 늦게 도착한 감이 있는 시후와 화련이 바이크에서 몸을 내린다, 조금 넓다란 골목길에 시후의 바이크가 세워지고 그가 가방에서 체인을 꺼내 체운다.
그 사이에 화련은 바람에 휘날린 자신의 복장을 점검중이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무기의 위치가 삐뚤어 지지 않았는지 가장 빠른 방법으로 뺄 수 있도록 각도를 한번씩 만져준다.
"어이, 같이 가지?"
먼저 걸어가는 화련의 뒤에서 시후가 체인을 다 체웠는지 화련의 뒤를 따른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발걸음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 하고 있다.
마치 화련이 기다려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언제나 그랬듯이 조용한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뒤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골목에서 나오자 복작함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리지 않게 된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가 어느새 등교길로 접어 들자 조금 한가해진 대신 주변은 온통 같은옷을 입은 색색가지의 모습을 가진 학생들뿐이였다.
앞서 가는 화련이랑 뒤에서 일정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시후를 보고 가던 발걸음을 멈추도 자기네들끼리 속삭이며 까악 소리를 지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관심 없다는 태도다.
우뚝, 앞서 가던 화련의 멈췄다. 그와 동시에 시후의 발걸음이 멈춰지고 시선은 모인다. 화련이 뒤돌아 보며 한숨을 쉰다.
"...시끄러워."
"이젠 시비냐? 내가 뭘?"
시후의 고운 이마에 주름이 잡힌다. 화련은 잠시 자신의 단어 선택이 잘못 되었단는 것을 깨달았다. 다짜고짜 시끄럽다니.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고 이썼건만.
"암묵적으로 내게 항의 하고 있잖아. 그 발걸음으로."
"뭔 헛소리냐? 발걸음에 입이 달렸데냐? 아님 돌았냐."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화련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의 발걸음이 평상시와 달랐다. 보통사람보다 몇배나 발달한 신경이 놓치지 않고 그것을 잡아 냈다.
이번엔 화련이 인상을 쓴다, 그러길 잠시 화련이 이내 무표정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옆자리로 고개짓을 했다.
"기다리고 있으니 와."
"......."
"...그리 멍하게 있을거먼 먼저 간다."
"...큭, 말 하지 그랬냐? 잘나신 이몸이랑 같이 가고 싶었다고~"
금새 기분이 좋아 졌는지 시후가 입꼬리를 올려 화련의 옆에 성큼 다가서서는 화련의 머리를 헝크러 트렸다.
익숙치 못한 손길에 화련의 얼굴에 당황이 떠올랐다. '월하'에 있었다면 그 누가 감히 '묘월'의 머리에 손을 댓겠는가?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에 뻣뻣히 굳은 화련을 앞에 걸어가던 시후가 뒤돌며 굳어 있는 그녀를 향해 눈썹을 치켜 올린다.
"안와?"
"......."
그 목소리에 흠짓, 놀란 화련이 무의식적으로 시후가 손댄 자신의 머리에 손을 댄채로 또 다시 굳어 버렸다.
분명.. 따뜻한 촉감이였는데.. 낮선 손길이였는데, 그리운.. 느낌이 났다. 무척이나, 그리운 느낌이..
굳어 버린 그녀의 반응에 재미 있다는듯 싱글벙글한 웃음을 짓는 시후가 화련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어쩐지 주위가 더 시끄러워 진것 같다.
"크큭, 굳었어.."
".....시끄러워."
"너, 귀엽다고."
화련의 억양없는 목소리 조차 시후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는지 뜬금 없는 말을 내뺃자 화련이 물음표를 띄웠다.
대답없이 계속해서 낮게 웃자 화련이 시후에게 잡힌 손목을 잡아 당겼다. 대답하라는 의미였다.
시후가 다시 손목을 이끌며 즐거운듯 입을 연다.
"별거 없어. 그냥.. 너, 귀엽다고."
"...물어 본 내 잘못이다."
"어허~ 또 그 말투다."
"......."
원래대로 돌아온 말투에 이번에 확실하게 바꾸기로 마음이라도 먹었는지 시후가 장난스럽게 화가난 표정을 지으며 화련을 나무란다.
그 모습이 마음에 안든다는듯 화련이 획, 고개를 돌려버렸다. 낮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아침부터 조금 서늘한 손에 이끌려 여유있게 교문을 통과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별안간 화련이 손목을 비틀어 뺐다.
눈썹을 꿈틀거리며 뒤돌아 보는 시후에게 오만하게 보일법한 콧웃음을 쳐준뒤 그를 지나쳐 지나쳐 이제는 익숙해진 복도를 간다.
가늘게 뜬 눈으로 시후가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픽, 하고 웃었다.
손에 느껴지던 얼어붙은 그녀와는 다르게 따뜻한 체온을 그리워 하는듯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유독 새카만 긴 흑발이 창가를 넘어 드는 아침햇살에 빛을 받는 보석마냥 아름답게 반짝인다.
그녀가 복도를 지나갈때 마다 숨을 들이키고 얼굴을 붉히는 남여 불문 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속이 덥수룩한게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완벽한 여인상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가 갈때마다 빨개진 얼굴을 숨기지도 못하고 힐끔, 힐끔 쳐다보는 학생들 곁을 화련은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듯 지나간다.
"...히익!!!"
"헉!!"
"딸꾹!!"
뒤따라 가던 속이 불편함을 느낀 시후가 차갑게 굳은 얼굴로 그 학생들을 한번씩 매섭게 노려보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냉큼 고개를 돌리는 녀석들을 보자 조금 뒤틀린 속이 편해지는것 같기도 했다.
"......."
"....큭,"
가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살짝 뒤돌아 보는 화련을 향해 시후가 짓궂게 웃어 보인다.
그게 영 마음에 안들었는지 눈썹이 휘어지며 고개를 돌리자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은빛 초승달 귀걸이가 아름답게 흔들린다.
그 고고한 뒷모습에 시선을 때지 못하고 시후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어야 했다.
화련이 멈춰서 익숙한 푯말 아래 개성없는 갈색 문을 잡고 열쯤에야 시후는 정신을 차렸다. 이제 보니 교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멍때리고 있었다.
"......화련아아아아아아아아!!!"
"......."
문을 열자 마자 거대한(?) 물체가 와락! 하고 안겨 온다. 그 물체를 알고 있었다는듯 화련은 문을 여는 포즈로 거대한 물체에 안겨 있었다.
"어제 어디 있었어? 리온이가 막 찾아 다녔는데? 응응? 어디 있었어? 화련이가 전화 안받아서 리온이가 걱정했단 말이야.."
"......."
마치 어린아이가 어미를 찾는것 마냥 안겨 떨어질줄 몰랐다. 화련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렇게서 있다가 문을 잡고 있던 손을 때어 리온의 등을 토닥여 준다.
마치 걱정시켜서 미안해, 하지만 난 괜찮아. 아무일 없었어. 라고 말하듯 그렇게 등을 부드럽게 어미 마냥 두드려 준다.
그 손짓에 리온이 움찔 하더니 화련의 목덜미에 고개를 더욱 깊게 부벼 온다.
"...그래."
".....응응!!!!"
화련의 작은 대답에 리온이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애정이 그리운 아이마냥 더더욱 안겨 온다.
"하하! 어제 결국엔 시후가 찾았던데 씻고 푹 쉬었어?"
"......."
"우왓!!! 우아아아아!! 준아!! 이거 놔!!!"
"...하하!"
품안에 있던 낮선 체온이 사라졌다. 강준이 리온의 뒷덜미를 잡아 화련과 강제로 때어놓은 것이다. 어미품 잃은 새끼가 어미한테 돌아갈려고 하듯
리온이 화련을 향해 팔을 벌리며 발버둥치지만 강준은 리온에게 눈짓을 한다. 화련의 뒤에서 음침하기 짝이 없는 무시시한 눈빛으로 싸늘하게 리온을 노려보는 시후에게.
"....딸꾹!"
언제 발버둥 거렸냐는듯 리온이 커다란 눈으로 시후를 바라보며 점점 발버둥 치는 몸을 제자리(?)를 찾아 가더니.. 베시시 웃는다.
"헤헤~"
"......."
"....이리온... 죽.고.싶.지."
"...씨, 씹!! 이리온!! 누구 뒤에 숨는 거야!! 당장 안꺼져?!!"
"아웅~ 강준아아아아~ 사랑해애애애애~"
"아악!! 꺼져!! 징그러운 새꺄!! 니같은 놈이 사랑준 대도 안받아!!"
"아웅우우우웅~ 강~ 쭈우우운아아아아아아~"
"꺼지라고!!!!"
베시시 웃고는 몸은 강준의 뒤로 향한다. 시후의 싸늘한 눈빛이 강준에게로 향하자 강준이 흠짓 몸을 굳히며 뒤에 달라붙은 리온을 때내기 바쁘다.
셋의 화목한(?) 투덕임을 보던 화련이 그들을 쌩지나쳐 자리에 가서 앉자 시후가 저 둘을 싸늘하게 노려본뒤 화련의 옆자리에 가서 털썩 주저 앉는다.
살았다는듯 한숨 돌리는 두 녀석, 괜히 같이 죽을 뻔 했다는듯 강준이 뒤에 숨어 있던 리온의 머리를 쥐어 박자 리온이 베베시 웃을 뿐이다.
"헤헤~ 화련아아~ 내일 우리 놀까아? 응?"
"아, 내일이 일요일이군, 왜이렇게 오랫만에 찾아오는 주말 같지? 시후 넌 뭐할꺼냐?"
"....아아, 글쎄."
아무일 없었다는듯 자연스럽게 화련과 시후의 주위에 자리를 잡으며 리온이 방긋 웃었다. 화련 앞자리 의자를 빼어 거꾸로 앉은 리온이 방긋 웃는다.
"....어디 가고 싶냐?"
뜬금 없이 시후가 화련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별로."
"진지하게 생각 좀 해보지?"
"없어."
전혀 망설임 없는 대답에 시후가 눈썹을 꿈틀거린다. 또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가 보다.
따닥, 따닥, 따닥, 남자치고는 가는 손으로 책상을 일정한 박자로 두드리는 손가락을 잠시 응시하다 이내 시선을 치워 창가 넘어를 응시한다.
획! 뒷머리가 붙잡혀 시후쪽으로 시선이 돌려진것은 한순간이였다.
"....생.각.좀.하.라.고. 마침 주말이라 특별히 데려가 준다잖아."
"......."
"아놔, 좀 고마워 하는 표정 좀 지어봐라, 앙?"
"....진지하게 생각해도 없는 건 없는 거야."
"...오호~ 계속 그따위 식으로 나오겠다, 이건가?"
"시끄러워."
단칼에 잘라버리는 화련의 말에 시후의 두개의 눈썹이 웨이브 친다.
"...저기 말입니다, 제가 지금 심히 귀가 잘못됬다고 생각하는건데 말입니다... 지금, 말투가아...?"
"뭐냐, 서강준 갑자기 어울리지 않는 그 존댓말은?"
"내 말투보다!! 갑자기 변해버린 진화련의 말투는 어떻고!!!!"
"....우와~ 화련이가 평범한 말투쓰니깐 기분이 야리야리해!"
"....야리야리..?"
"응응!! 아리아리해!!!"
"....하아- 그 아리아리가 뭔진 몰라도, 진짜 지금 기분이 그 아리아리해 같다."
강준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해 토해냈다. 화련이 방긋방긋 웃고 있는 리온을 향해 무심한 시선으로 쳐다 본다.
"......."
"응? 아니아니!! 이상하지 않아! 화련아!! 끄응, 그니깐.. 그니까아안.. 응!! 그래!! 좀 화련이가 부드러워 보여!!"
"....아아-."
화련의 눈빛을 보고 무엇을 읽었는지 리온이 깜짝 놀라며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화련이 피식, 바람빠진 소리를 내며 팔에 턱을 괴고는 반대쪽 손으로 리온의 머리를 두어번 톡톡 쳐준다.
또 다시 옆에서 화르르륵! 하고 검은 불꽃이 일어난다. 그덕에 당황한것은 강준이였다. 정작 그 두사람은 둘만의 화사한(?) 세계로 빠졌는데 말이다.
"....으득! 진...화...."
"어머? 화련아아! 괜찮은거야?!! 무사해?!! 어디 다친덴 없고?! 어제 그렇게 가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
어디서.. 나온걸까? 방금 등교 했는지 가방도 내려 놓지 않은 채 둘러쌓여 있는 무리를 간단히 헤치고 리온의 머리를 토닥이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인다.
귀찮다. 화련의 눈썹이 또 다시 꿈틀거리더니 매정할만큼 차갑게 손을 쳐낸다.
"...아, 역시 뜨거운가..?"
보통은 상대방이 싫어한다는것을 알만 하지만 반장이라는 이 소녀는 도대체 어떻게 된 모양인지 보통 사람보다 조금 뜨거운 손을 보며 고개를 갸웃 할뿐이였다.
"...으윽, 씨...씨바... 안꺼져?!!!!"
"...어머? 정시후 너 뭐하냐?"
"씨...ㅂ... 괴물같은 기지배!! 힘만 드럽게 쎄!!!"
"아구구구! 리온이 아파!!!"
"누가 괴물이라는 거야!!!"
반장이라 불린 여학생이 버럭! 목소리를 높혔다. 화련을 발견하자 마자 다가오며 앞을 막고 있었던 두녀석(강준과 리온)을 간신히(?) 밀어 버리는 바람에
리온은 의자와 함께 몸이 기우뚱 하다가 화련의 책상 모서리에 관자 놀이 부분을 찌어버리고 강준은 옆구리에 발꿈치로 맞았는지 움켜 잡고 있었다.
책상위에 팔을 올려 놓고 턱을 괴고 있던 시후는 여학생이 다가오며 무지막지한 다리힘으로 책상을 쳐버리자 덜컹! 이며 팔을 헛딛어 결국 이마를 책생과 잠시 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세명다 가지각색의 인상을 쓰고 여학생을 노려보지만 여학생은 콧웃음을 치며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표정으로 화련에게 시선을 돌릴뿐이다.
"어디 다친데는 없고? 응? 어제.. 그렇게 가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
화련이 인상을 썼다. 귀찮아 하는 표정임을 시후는 꽤뚤어 볼 수 있었다.
"씨파, 갑자기 이거 무슨 행패야?"
"시끄러워! 어제 화련이가 너희 딸아가서 얼마나 걱정한 줄알아?! 너희들이 싸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것 아니야?!!"
"큭, 지랄하네. 그래서 얘가 다쳤냐?"
"안 다쳐야 하는게 정상이야!!!"
"당연하지, 내가 지킬꺼니깐."
시후가 크큭, 웃으며 반장에게 보란듯 대답했다. 순간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 반장, 화련의 시선이 별안간 시후에게로 향했다 다시 창가 넘어를 응시한다.
"...됐어,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냐."
"오호~? 지금 상당히 기분 나쁜데?"
"흥, 당연하지. 무시 당했는데 기분이 좋을리 있어? 너는?"
"....빠득!"
여학생의 당돌한 말에 시후의 이마에 네거리가 생겼다. 또 다시 열뻗힐려는 시후를 옆에서 말리는 강준과 옆에서 더 부채질 하는 여학생.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리온이 아프다는듯 책상 모서리에 부딪힌 머리를 부여잡고 낑낑 거리고 있었다.
"괜찮아..?"
"..응, 으응!! 리, 리온이... 괘, 괜찮아!!! 쪼금.. 아니!! 아주.. 쪼그으으음!! 아프지만 괜찮아!!"
"...아아-, 그래.."
"으응!!"
리온이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는듯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이 시뻘개 져서 버벅 댔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투닥거리던 세명이서 리온과 화련을 주시했다. 차갑게 식어 가는 시후의 얼굴이 언듯 비쳤다.
마음에 안들다는듯 불만 가득한 눈동자를 하고 있는 그를 잠시 빤히 보다가 손을 들어올려 볼을 두어번 톡톡, 쳐줬다.
그 행동에 어디선가 헛바람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시후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마치 '요게,'하는 표정을 짓는다.
화련은 그 표정에 가소롭다는듯 피식, 한번 웃고는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뒤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화련의 검은 눈동자는 높디 높은 하늘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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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죄송해요...ㅜ
그동안 슬럼프였어요... 이 28편도..
1주일만에 쓴거예요...ㅜ
하루에 열줄도 안써져서... 미치는 줄알았어요...
으아아아아아앙~
응원 좀 해주세요오오오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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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로맨스소설
[ 장편 ]
「月의 사랑찾아 삼만리」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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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꺅!! 올만이에용!!
역시 점점 잼서져영 !!
정말 오랜만이에요...자주 봐요....
잼있어 담편이 기대되
화아하 이잇팅하
드디어 나왔네요!!! 기다리고있었어요ㅋㅋ
화이팅화이팅 하세요!!>_< 저도 슬럼프가 자주와서.....하하하....과거의 일이 갑자기 생각나네요....제가 연중한 소설만해도...........아무튼! 힘내시구요!>_< 이번편 완전 좋았어요♥
담편 빨리 보고 싶어요 >_<
꺄욱~~어서와요오~~~기다렸어요오~~~ㅋㅋ담편 기대할께요오~~~
수학여행갔다 지금 왔어요오오~~~~~담편...원츄!!
유는 언제 오는거예요오오오오-ㅋㅋㅋ
담편이 보고싶어
재밌어요 ~ 유는 언제와요 ..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