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유(方孝孺)-한거감회(閑居感懷)(한가로울 때의 감회)
我非今世人(아비금세인) 나는 옛 학문을 배워 현대풍의 사람은 아니지만
空懷今世憂(공회금세우) 현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헛되이 근심하고 있다
所憂諒無他(소우양무타) 근심하는 것은 색다른 것이 아니라
慨想禹九州(개상우구주) 우가 연 이 국토를 어떻게 훌륭하게 할 것인가 하는 것 뿐이다
商君以爲秦(상군이위진) 진나라 상앙은 오로지 진나라를 위해 애썼고
周公以爲周(주공이위주) 주공은 나름대로 주나라의 터전을 닦았다
哀哉萬年後(애재만년후) 슬프도다 이제 만 년 뒤를 위해서
誰爲斯民謨(수위사민모) 누가 이 백성을 위해 일을 꾀하려는가
*방효유[方孝孺, 1357 ~ 1402, 호 손지(遜志), 별칭 방정학(方正學), 자 희직(希直) ·희고(希古)]는 명나라 초기의 학자로 송염(宋濂)의 문하에 들어가, 뛰어난 재주로 이름을 떨쳤고, 평소부터 왕도(王道)를 밝히고 태평(太平)을 이룩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 생각하고, 세속적인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혜제(惠帝)를 섬겨 시강학사(侍講學士)로서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402년 연왕(燕王: 뒤의 永樂帝)이 황위(皇位)를 찬탈한 뒤, 그에게 즉위의 조(詔)를 기초하도록 명하자 붓을 땅에 내던지며 죽음을 각오하고 거부하였고, 연왕은 노하여 그를 극형에 처하였으며, 일족과 친우 ·제자 등 847명이 연좌되어 죽었다고 한다.
*위 시는 문학비평가이신 김희보님의 “중국의 명시”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본 것인데, 명나라 일대의 의사義士인 작가가 한가로운 때를 맞아 우국지정을 토로한 작품이라 합니다.
*형식 : 오언율시(五言律詩)
*禹九州(우구주) : 중국, 옛날에 우가 홍수를 다스려 중국 전체를 아홉 주로 나눈 데서 나옴
商君(상군) : 진나라 상앙, 법의 이론가로서 진나라의 부강을 도모함
周公(주공) : 주공단(周公旦), 주나라 무왕의 아들 자성왕(子成王)을 보필하여 주나라 왕실의 터전을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