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산 영지버섯
팔월 중순 주말을 맞았다. 삼복이 지나도 연일 낮은 폭염경보가 내려지고 밤은 열대야가 지속된다. 그나마 늦은 오후 달구어진 대지를 식혀주는 소나기가 연사흘 내려 잠을 깬 이른 새벽은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비가 오면 도서관으로 나갈 텐데 날씨가 맑게 갠 날이라 토요일 이른 아침 자연학교로 향했다. 원이대로로 나가 월영동을 첫차로 출발해 불모산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집을 나설 때와 버스 정류소에서 하늘에는 조각구름이 해가 뜨려는 조심이라 아침놀이 살짝 비치다 사라졌다. 시청 광장을 돌아간 버스는 대방동 뒷길로 올라 성주동 아파트단지에서 내렸다. 등산로 데크를 따라 오르니 삼정자동 마애불상 가는 길에는 한여름 뙤약볕에도 붉게 핀 칸나는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용제봉과 불모산동 숲길로 가는 등산로에는 동행 산행객이 몇몇 보였다.
올여름 들어 세 차례 드는 용제봉 숲길이다. 한 번은 산허리를 올랐다가 어디쯤에서 되돌아왔고, 두 번째 걸음에서는 상점을 넘어 장유계곡으로 내려갔더랬다. 나에게 봄과 여름은 산행 방향이 정해졌다. 봄날은 북면 일대 야산이나 여항산과 서북산을 누비는 산나물 채집으로 보냈다. 이러다 여름이 오면 불모산이나 용제봉 숲으로 방향을 바꾸어 영지버섯을 찾아내는 발품을 판다.
자연산 영지버섯은 활엽수림 가운데 참나무 고사목 그루터기에 붙는다. 식용보다 약용으로 쓰이는 영지는 여름에 자라나 그해 가을이면 절로 삭거나 벌레가 꾀어 사그라진다. 가을이 오기 전 채집해 잘 말려 약차를 달여 먹는 건재로 삼는다. 봄에도 적당량 비가 와주고 장마철에도 강수량이 넉넉해 어느 정도 수분을 함유한 고사목에서 영지 포자는 자루가 솟으면서 갓을 펼쳐 자랐다.
나는 창원 근교 산과 들의 식생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다. 봄날 어느 산으로 가면 무슨 산나물이 자라는지 잘 알아 길을 나서면 배낭 불룩 채워왔다. 여름이면 햇살이 뜨거워 낮에는 산행이 무리라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선다. 내가 사는 생활권에서 동쪽에 해당하는 용제봉과 불모산을 찾는다. 영지버섯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아 숲 바닥 부엽토를 거니는 삼림욕을 겸해 여유를 가졌다.
봄날 산나물을 이웃과 나누기 예사였듯, 영지버섯도 힘들게 따 와도 정작 내 몫은 처진 부스러기를 약차로 달여 먹고, 크거나 야무진 건재는 형제나 지기들에게 보내졌다. 남들에게 선물로는 하찮은 영지버섯을 보낼 수 없었다. ‘짚신 장수 헌신 신는다’는 속담과 같은 처지다. 그러함에도 나는 영지버섯을 찾느라고 숲은 누비며 자연산 땀을 흘리면서 건강을 다져 그만큼 성과는 있다.
용제봉 숲길로 들어 농바위와 평바위를 지나니 나뭇가지 사이 불모산 정상부 송신탑이 아스라이 바라보였다. 용제봉과 불모산 숲속 길로 나뉘는 이정표를 앞두고 등산로를 벗어나 개척 산행을 감행했다. 소나무가 빼곡한 숲을 지나 활엽수림에서 참나무 고사목을 찾느라 한참 두리번거렸다. 수원 백씨와 분성 배씨 선산을 지났다. 분성은 김해를 달리 이르는데 분산성을 줄인 말이다.
영지버섯은 좀체 귀한 실체를 드러내 주지 않다가 끝내 한 개를 만났는데 꽤 컸더랬다. 갓이 자그마한 프라이팬만 해서 올해 채집한 영지로서는 가장 컸다. 그렇게 무더운 날씨가 아니라 땀을 많이 흘리지 않았지만 이른 아침 숲을 누빈 보람으로 삼을 만했다. 이후 해발고도를 더 높이지 않고 산비탈을 내려섰는데 영지버섯은 더 찾아내지 못해도 앞서 채집한 대물 하나로 만족했다.
숲을 빠져나온 맞은편 등산로에는 아침 산행을 나선 이들이 더러 다가왔다. 일찍 집으로 돌아와 ‘자연산 영지’를 글감으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성주동 숲길 들어 등산로 경로 이탈 / 발품 판 보람으로 고사목 그루터기 / 둥글게 갓 펼쳐 자란 영지버섯 찾았다 // 그대로 붙여두면 삭거나 벌레 꾀나 / 자연인 손이 닿아 건재로 갈무리해 / 약차로 끓이고 달여 시시때때 마실래” 24.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