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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일이(一張一弛)
한 번 팽팽히 당기고 한 번 느슨하게 한다는 뜻으로, 한 때 일을 시키면 한 때 쉬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一 : 한 일(一/0)
張 : 베풀 장(弓/8)
一 : 한 일(一/0)
弛 : 늦출 이(弓/3)
출전 : 예기(禮記) 잡기하(雜記下)
활시위를 죄었다 늦췄다 한다는 뜻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도 백성을 적당히 쉬게 하며 혹은 엄하게 하고 혹은 너그럽게 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예기(禮記) 잡기하(雜記下)에 나오는 공자(孔子)와 제자 자공(子貢)의 대화에서 나오는 말이다.
子貢觀於蠟, 孔子曰 : 賜也樂乎.
자공이 사제(蠟; 연말에 올리던 제사)를 보고 오자 공자가 말했다. "사(賜; 자공)야 즐거웠느냐?"
對曰 : 一國之人皆若狂, 賜未知其樂也.
자공이 대답했다. "온 나라 사람이 모두 미친듯 즐거운 것 같았으나, 저는 즐거운 것 인줄 일지 못하겠습니다."
子曰 : 百日之蠟, 一日之澤, 非爾所知也. 張而不弛, 文武弗能也; 弛而不張, 文武弗為也. 一張一弛, 文武之道也.
공자가 말했다. "백일 동안의 수고와 하루의 즐거움, 하루의 혜택에 대하여 너는 알지 못하는구나.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기만 하고 느슨하게 풀어주지 않는 방법이나, 반대로 활시위를 느슨하게 풀어주기만 하고 팽팽하게 당기지 않는 방법은 문왕과 무왕도 할 수 없다. 한 번 팽팽하게 당겼으면 한 번 느슨하게 풀어주는 방법이 바로 위대한 문왕과 무왕의 길이다."
일장일이(一張一弛 )
활 시위 당길 때와 풀어줄 때가 있듯이, 사람은 일과 휴식 균형 이루고 살아야 한다. 코로나19 기승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언젠가는 벗어나 행복 누리는 시절이 도래할 것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3차 대유행이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의 진정 국면이 다시 위기 국면으로 바뀌자 정부는 방역 단계를 올리는 대응을 내놓았다.
시민들은 코로나19의 1·2차 대유행을 겪은 터라 그 피로감이 훨씬 더 숨 가쁘게 느껴지고 소상공인은 영업 제한으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영국 정부는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긴급 승인하고 국민에게 접종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코로나19의 종식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지만 아직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더 "코로나19는 도대체 언제 종식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동아시아 고전에도 자연재해, 정치 혼란, 장기 전쟁 등으로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사람들은 현대보다 과학기술이 뒤떨어진 시대를 살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에 지지 않고 이겨내는 지혜를 찾았다. 고통이 아무리 심각해도 영원히 지속하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바뀌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정치 혼란은 일치일란(一治一亂), 즉 잘 다스려지는 시절이 있으면 아주 혼란스러운 시절이 있다고 봤다. 지금 세상이 혼란하더라도 결국 안정된 시절이 도래하리라 믿었다.
가뭄과 홍수는 일음일양(一陰一陽), 즉 음의 기운이 주도하는 시절이 있으면 양의 기운이 주도하는 시절이 있다고 믿었다. 홍수가 극성을 부려도 언젠가 끝이 있고 가뭄이 기승을 부려도 언젠가 끝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노동과 휴식도 일장일이(一張一弛), 즉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길 때도 있고 느슨하게 풀어줄 때도 있는 양상을 보인다.
'예기(禮記)' 잡기(雜記)에 보면 공자와 그의 제자 자공이 일장일이(一張一弛)와 관련해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동지가 지나고 묵은해와 새해가 만나는 즈음의 납일(臘日)이었다. 납(臘)은 두 해가 만난다는 접(接)의 뜻이다. 이즈음에 국가 차원에서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내며 고마움을 나타내고 민간 차원에서 새를 잡아먹는 등 꽤 떠들썩하게 시간을 보내며 한 해의 노고를 위로했다.
후자를 '납향(臘享)' 또는 '사제'라고 불렀다. 이는 오늘날 연말연시가 되면 사람들이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송년회나 신년회를 하면서 흥겹게 들뜬 시간을 보내는 풍습과 비슷하다.
자공이 사람들이 술과 음식을 먹으며 신나게 축제를 벌이는 납향을 구경한 모양이다. 공자는 그런 자공에게 납향의 구경이 즐거웠냐고 물었다. 자공은 온 나라 사람들이 너무 흥겹게 노는 나머지 미쳐 날뛰는 것처럼 보일 뿐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에 공자는 자공에게 활시위를 관리하는 방법으로 자공이 무엇을 잘못 생각하는지 깨우쳐줬다.
張而不弛, 文武弗能也.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기만 하고 느슨하게 풀어주지 않는 방법은 위대한 문왕과 무왕도 할 수 없고,
弛而不張, 文武弗爲也.
반대로 활시위를 느슨하게 풀어주기만 하고 팽팽하게 당기지 않는 방법도 위대한 문왕과 무왕도 할 수 없다.
一張一弛, 文武之道也.
한 번 팽팽하게 당겼으면 한 번 느슨하게 풀어주는 방법이 바로 위대한 문왕과 무왕의 길이다.
여기서 장(張)과 위(爲)는 활시위를 매기는 방식을 나타내면서 사람이 노동으로 긴장된 시간과 휴식으로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나타낸다. 즉 사람이 노동만으로 살 수 없고 납향과 같은 축일에는 맘껏 놀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공자는 이 논리로 납향의 즐거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 중독을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자공에게 한 수 가르침을 주고 있다.
사람이 한 해만 사는 것이 아니므로 일과 휴가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코로나19도 지금 당장 끝날 고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지속될 수도 없다. 인간은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해 코로나19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찾을 것이다.
일치일란(一治一亂)과 일장일이(一張一弛)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려서 고통을 겪는 시절이지만 언젠가 그로부터 벗어나 행복을 누리는 시절이 올 것이다.
일장일이(一張一弛)의 운영의 묘를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크고 작은 많은 집단에 소속되어 생활하게 된다. 신문 사회면을 펼치면 조직 내의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못하고 밖으로 분출되고 때로는 사회문제로 파장을 일으키는 경우를 보게 된다.
초년생일 때는 열심히 주어진 일을 처리하면 되겠지만 남의 윗자리에 앉아서 조직을 이끌어 가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음을 보게 된다.
채근담(菜根譚)에는 청능유용(淸能有容) 인능선단(仁能善斷), '청렴하면서 포용력이 있고 인자하면서도 결단력이 있는' 지도자의 덕목(德目)을 들고 있다.
조직을 너무 풀어놓으면 조직이 이완되고 나가서는 조직의 기강이 무너지고 너무 조이면 조직이 경직된다. 리더(reader)는 조직을 이끌어감에 앞서 모범을 보여야하고 비전(vision)을 보여 조직원에게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
논어(論語)에도 기신정 불령이행(其身正 不令而行), '몸가짐을 바로 하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하여진다'고 하여 모범을 보이기를 권하고 있다.
사기(史記)에는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고 했고, 당(唐)의 문장가인 한유(韓癒)는 일시동인(一視同仁)이라고 하여 '차별 없는 사랑'을 베풀라고 했다.
사람은 사기를 먹고 산다. 소속원을 한아름으로 끌어안아 소속감을 주고 소외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리더는 청탁현우(淸濁賢愚; 깨끗한 사람, 더러운 사람, 현명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를 가리지 않고 포용할 수 있는 바다와 같이 넓은 가슴이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 풀어놓으면 안 된다. '활시위를 죄었다 늦추었다 하듯 사람이나 물건을 적당히 부리고 적당히 쉬게 함'을 일장일이(一張一弛)라고 한다.
관(寬)과 엄(嚴)의 균형을 유지하며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하는 운용의 묘(妙)가 필요하다. 기계도 잘 돌아가도록 기름을 칠해야하는데 생각하는 존재요, 피가 흐르는 감정의 동물인 인간이야 물어 무엇 하겠는가.
직원들은 상사(上司)의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칭찬에 너무 인색하다.
괴목장군은 전장으로 나갈 때 임금이 하사한 하사주룰 샘물에 풀어 졸병들까지 한 모금씩 같이해 우리는 하나라는 일체감속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였다.
소속원 모두가 '우리는 한솥밥을 먹는 한 식구(食口)'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 조직은 활성화되고 생산성(生産性)은 높아진다. 혁신을 운위(云謂)하기 전에 사기(士氣)를 고려한 조직 운영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최근에 중앙의 고위직, 지방자치단체, 새로 부임한 교장, 교감, 교사의 모습을 보며 고사성어와 선인들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참고하길 기대한다.
일장일이(一張一弛)
옛날부터 군자는 대로 행이라. 살짝 비켜가는 감미로운 일장일이(一張一弛) 문무지도(文武之道) 이 사람은 암적인 요물이기데 한없는 가능성을 가진 동시에 또한 지혜일묘의 보잘 것 없는 존재이기도 한다.
이장격단의 내용중 내 장점으로 남의 단점을 친다는 우화하는 것이기에 언제나 완벽한 것 같으면서도 따지고 보면 약점 투성이건데 역시 인간임에 틀림없다.
조선 세종대왕때 그 유명한 황희 정승이 민심을 살피기 위해서 암행차 강원도 어느 고을을 지나고 있었는데 두 무리의 황소가 논갈이 쟁기질을 하고 있었는데 "여보게 주인장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나?"하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였으나 농부는 아무 말 없이 지나다가 논기퉁에다 쟁기를 두고 논두렁밖으로 나오서 황희 재상 귀에다 작은 목소리로 왼쪽 소가 더 일을 잘한다고 귀뜸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사기저하로 일을 못한다는 이야기와 일장일이 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황희 재상이 하루는 한가롭게 글을 읽고 있는데 여자 종이 숨을 헐떡이면서 뛰어들어와 움음섞인 목소리로 하소연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여자 종과 싸움을 하였는데 자기는 전혀 잘못이 없고 오직 상대방이 자신을 못살게 굴어 싸웠으나 힘이 모자라 졌으니 이 심정을 이해하여 상대방을 좀 야단쳐 달라는 것이었다.
황희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하기를, "네 말이 옳으니 염려말고 나가서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 얼마 있으니 그 상대방의 종이 달려와서 눈물로 호소하기를, "사실은 제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먼저 들어왔던 종이 처음부터 질투하고 요령만 피워 남을 해치기에 자신이 나서서 싸움을 한 것인데 공께서는 내용을 모르시고 그 애 말만 옳다고 하시니 억울함니다"하고는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황희는 역시 돌아보지도 않고 "네 말이 옳으니 모두 사실임을 알고 있노라고 대답하면서 나가"라고 했다.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황희의 조카가 이번에는 화가 났다. 숙부님께서는 어쩌자고 두 아이에게 모두 옳다고 하십니까? 시비를 가려야 하실 어르신께서 그러시면 어떻게 질서유지를 하실 것입니까?"하고는 정색을 하고 따졌다.
황희는 역시 고개를 돌리면서도 "네 말도 또한 옳다"라고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얼핏 보기에는 우유부단한 황희 정승이 꾸짖을 줄 모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대인의 처세가 아니겠는가? 서로 싸운 두 여자종은 공의 이 대답에 아마 부끄러워 반성하였을 것이다. 물론 황희는 무턱대고 모든 문제에 이렇게 처리했다고 보면 큰 실수다.
이 경우가 일이(一弛)에 해당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장(張)과 이(弛)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문제만이 영원히 남는다. 여기에서 인생 활로의 험하고도 어려운 고비를 실감하게 된다.
몇 년 전 한방, 약사업끼리 분쟁과 의약분업, 약사 극단 투쟁 엄벌로 치닫는다는 뉴스보도를 접하면서 슈바이쩌, 페스탈로찌, 허준을 생각하면서 전국민에게 약, 조제의술, 환자들 고통의 느낀 점을 문항을 제시하여 간단하게 적어보라고 의문의 시험문제를 주었다.
과연 의사 약사는 어떻게 진술할까? 자기 주장이 옳다고 한결같이 꿈과 낭만이 가득찬 줄 알았는데 분쟁의 불씨가 잠복한다는 것이다.
일장일이(一張一弛)와 이장격단(以長擊短)을 반복하는 동안 멋있는 인간의 행복생활을 영위하기 바라며 정말 알차고 선진복지 건설에 매진되길 바란다.
일장일이(一張一弛)
一張一弛, 文武之道.
한 번 당겼다가 한 번 푸는 것이 문왕과 무왕의 도이다.
21세기는 '지속가능성'의 시대다. 지속가능성은 1992년 유엔 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지속가능성한 발전'이 새로운 시대의 성장 패러다임으로서 제시되면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화두로서 부상했다.
이 '리우 선언(Rio Declaration)'이 생태계의 유지와 자연환경을 고려해서 경제발전과 환경보전을 조화시키는 아젠다였다면, 2012년에 열린 유엔지속가능발전회의(UNCSD)에서는 리우 선언을 사회적 차원의 보편적 가치까지 포괄하는 차원으로 확대시켰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경영 차원에서 경제적 신뢰성, 환경적 건전성, 사회적 책임성을 아우르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하는 '지속가능한 경영'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모든 활동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지속가능성은 어떤 패턴으로 구성되는가? '예기'는 '긴장(張)'과 '이완(弛)'의 병행과 반복을 지속가능한 삶의 지혜로 제시한다.
張而不弛, 文武弗能也.
弛而不張, 文武弗爲也.
一張一弛. 文武之道也.
당기기만 하고 풀지 않으면 문왕과 무왕도 어찌할 수 없으며, 풀기만 하고 당기지 않으면 문왕과 무왕도 어찌하지 않는다. 한 번 당겼다가 한 번 푸는 것이 문왕과 무왕의 도이다.
활시위는 평소 느슨하게 풀어서 보관하지만 활을 쏠 때에는 팽팽하게 당겨서 사용한다. 이완이 없이 긴장으로만 일관하면 활시위가 지나치게 팽팽해진 나머지 끊어져 버리고, 긴장이 없이 이완만 지속한다면 너무 느슨해져서 활로써 쓸모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가 느슨하게 풀어주는 것이 바로 활이 지속적으로 제 기능을 하기 위한 필요 조건인 것이다.
긴장과 이완은 모든 유기체의 지속가능한 생체 리듬이기도 하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듯이,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지혜가 필요하다.
개인도, 사회도, 정치도, 경제도 이완만 있고 긴장이 없으면 발전이 없지만, 긴장만 있고 이완이 없으면 그 발전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성과를 내기 위해 밤샘을 거듭하며 폭주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도, 자유로운 휴식만 추구하면서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만 가득한 세상도 지속가능한 모델은 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우리 사회 한 편에는 성과를 올리기 위해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하기만 하다가 과로사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회자되는 반면, 다른 한 편에는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지만 정작 일거리가 없어서 계속 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한숨이 가득하다.
높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 사람을 자르고 노동 강도를 높여서 비용을 줄이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되겠지만, 그런 긴장의 방식이 과연 지속가능할까?
사회적으로 겪는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사회를 등지고 자연으로 떠난다면 그 당사자는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이완의 방식으로 과연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까?
활시위에서 음과 양의 조화를 읽어낸 '예기'의 지혜처럼, 긴장과 이완의 적절한 조화가 그리운 시절이다.
▶️ 一(한 일)은 ❶지사문자로 한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젓가락 하나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하나를 뜻한다. 一(일), 二(이), 三(삼)을 弌(일), 弍(이), 弎(삼)으로도 썼으나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는 안표인 막대기이며 한 자루, 두 자루라 세는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一자는 '하나'나 '첫째', '오로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一자는 막대기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막대기 하나를 눕혀 숫자 '하나'라 했고 두 개는 '둘'이라는 식으로 표기를 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그래서 一자는 숫자 '하나'를 뜻하지만 하나만 있는 것은 유일한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오로지'나 '모든'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一자가 부수로 지정된 글자들은 숫자와는 관계없이 모양자만을 빌려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一(일)은 (1)하나 (2)한-의 뜻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나, 일 ②첫째, 첫번째 ③오로지 ④온, 전, 모든 ⑤하나의, 한결같은 ⑥다른, 또 하나의 ⑦잠시(暫時), 한번 ⑧좀, 약간(若干) ⑨만일(萬一) ⑩혹시(或時) ⑪어느 ⑫같다, 동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한가지 공(共), 한가지 동(同),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리 등(等)이다. 용례로는 전체의 한 부분을 일부(一部), 한 모양이나 같은 모양을 일반(一般), 한번이나 우선 또는 잠깐을 일단(一旦), 하나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음을 고정(一定), 어긋남이 없이 한결같게 서로 맞음을 일치(一致), 어느 지역의 전부를 일대(一帶), 한데 묶음이나 한데 아우르는 일을 일괄(一括), 모든 것 또는 온갖 것을 일체(一切), 한 종류나 어떤 종류를 일종(一種), 한집안이나 한가족을 일가(一家), 하나로 연계된 것을 일련(一連), 모조리 쓸어버림이나 죄다 없애 버림을 일소(一掃),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란 뜻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일장춘몽(一場春夢), 한 번 닿기만 하여도 곧 폭발한다는 뜻으로 조그만 자극에도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를 이르는 말을 일촉즉발(一觸卽發),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해서 두 가지 이익을 얻음을 이르는 말을 일석이조(一石二鳥), 한 번 들어 둘을 얻음 또는 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거양득(一擧兩得),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죄와 또는 한 사람을 벌줌으로써 여러 사람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킴을 일컫는 말을 일벌백계(一罰百戒),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란 뜻으로 한결같은 참된 정성과 변치 않는 참된 마음을 일컫는 말을 일편단심(一片丹心), 한 글자도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일자무식(一字無識), 한꺼번에 많은 돈을 얻는다는 뜻으로 노력함이 없이 벼락부자가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확천금(一攫千金), 한 번 돌아보고도 성을 기울게 한다는 뜻으로 요염한 여자 곧 절세의 미인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고경성(一顧傾城), 옷의 띠와 같은 물이라는 뜻으로 좁은 강이나 해협 또는 그와 같은 강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접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일의대수(一衣帶水), 밥 지을 동안의 꿈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취지몽(一炊之夢), 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 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취함을 이르는 말을 일전쌍조(一箭雙鵰), 한 오라기의 실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질서나 체계 따위가 잘 잡혀 있어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사불란(一絲不亂), 하루가 천 년 같다는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함을 이르는 말을 일일천추(一日千秋), 그물을 한번 쳐서 물고기를 모조리 잡는다는 뜻으로 한꺼번에 죄다 잡는다는 말을 일망타진(一網打盡), 생각과 성질과 처지 등이 어느 면에서 한 가지로 서로 통함이나 서로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일맥상통(一脈相通), 한 번 던져서 하늘이냐 땅이냐를 결정한다는 뜻으로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를 겨룸을 일컫는 말을 일척건곤(一擲乾坤), 강물이 쏟아져 단번에 천리를 간다는 뜻으로 조금도 거침없이 빨리 진행됨 또는 문장이나 글이 명쾌함을 일컫는 말을 일사천리(一瀉千里), 하나로써 그것을 꿰뚫었다는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음 또는 막힘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감을 일컫는 말을 일이관지(一以貫之), 기쁜 일과 슬픈 일이 번갈아 일어남이나 한편 기쁘고 한편 슬픔을 일컫는 말을 일희일비(一喜一悲),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는 뜻으로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함을 이르는 말을 일구이언(一口二言) 등에 쓰인다.
▶️ 張(베풀 장)은 ❶형성문자로 张(장)은 약자(略字), 弡(장)은 고자(古字)이다. 張(장)은 뜻을 나타내는 활 궁(弓; 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長(장)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長(장)은 길다, 길게 하다의 뜻으로, 張(장)은 활에 화살을 대어 쏘는 것을 말하는데, 나중에 화살에 한하지 않고, 당기다, 펴다, 부풂을 뜻하였다. ❷회의문자로 張자는 '베풀다'나 '넓히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張자는 弓(활 궁)자와 長(길 장)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長자는 머리가 긴 노인을 그린 것으로 '길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길다'라는 뜻을 가진 長자에 弓자를 결합한 張자는 화살을 멀리 쏜다는 의미에서 '널리 퍼트리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張(장)은 (1)일정한 명사(名詞) 뒤에 붙어 얇고 넓적한 조각의 뜻을 나타냄. 매(枚) (2)장성(張星)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②어떤 일을 벌이다 ③기세(氣勢)가 오르다 ④세게 하다, 성(盛)하게 하다 ⑤넓히다, 크게 하다 ⑥크게 떠벌이다 ⑦내밀다, 드러내다 ⑧어그러지다, 어긋나다 ⑨속이다, 기만(欺瞞)하다 ⑩뽐내다, 교만(驕慢)을 부리다 ⑪부어오르다, 불룩해지다 ⑫휘장(揮帳: 피륙을 여러 폭으로 이어서 빙 둘러치는 장막), 장막(帳幕) ⑬별자리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펼 신(伸), 베풀 진(陳), 베풀 시(施), 베풀 설(設)이다. 용례로는 시위를 걸어 놓은 활을 장궁(張弓), 나쁜 일을 일으킨 주동자를 장본인(張本人), 팽팽하게 켕기는 것과 늦추는 것을 장이(張弛), 등불의 켜 놓음을 장등(張燈), 눈을 부릅뜸을 장목(張目), 번거롭고 긺이나 지루함을 장황(張皇), 베풀어서 갖춤을 장설(張設), 종잇장 따위의 수효를 장수(張數), 책장의 차례를 장차(張次), 자기 의견을 굳이 내세움을 주장(主張), 마음을 다잡아 정신을 바짝 차리거나 몸이 굳어질 정도로 켕기는 일 또는 그런 심리 상태를 긴장(緊張), 사실보다 지나치게 떠벌려 나타냄을 과장(誇張), 늘이어서 넓게 함을 확장(擴張), 물체나 세력이나 권리 따위를 늘이어 넓게 펴거나 뻗침을 신장(伸張), 직무를 띠고 임시로 다른 곳으로 나감을 출장(出張), 이름과 실상이 일치하지 못하는 것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장관이대(張冠李戴), 사람이 격분하거나 흥분하면 혈맥의 펼쳐 움직임은 강한 모습을 띄게 되지만 그 속은 마르게 된다는 말을 장맥분흥(張脈憤興), 장씨의 셋째 아들과 이씨의 넷째 아들이란 뜻으로 성명이나 신분이 뚜렷하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을 비유하는 말을 장삼이사(張三李四), 헛되이 목소리의 기세만 높인다는 뜻으로 실력이 없으면서도 허세로만 떠벌림을 일컫는 말을 허장성세(虛張聲勢), 얼굴에 쇠가죽을 발랐다는 뜻으로 몹시 뻔뻔스러움을 두고 하는 말을 면장우피(面張牛皮), 말을 길게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불필장황(不必張皇), 사물을 지나치게 떠벌린다는 말을 과대황장(過大皇張), 눈을 크게 뜨고 담력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곧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용기를 내어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명목장담(明目張膽), 집안에 살림을 주장할 만큼 장성한 남자가 없다는 말을 외무주장(外無主張), 이미 벌린 춤이란 뜻으로 이미 시작한 일이니 중간에 그만 둘 수 없다는 말을 기장지무(旣張之舞), 한 번 팽팽히 당기고 한 번 느슨하게 한다는 뜻으로 한 때 일을 시키면 한 때 쉬게 해야 한다는 말을 일장일이(一張一弛) 등에 쓰인다.
▶️ 弛(늦출 이, 베풀 시, 떨어질 치)는 형성문자로 㢮는 동자이다. '이'의 본음(本音)은 '시'이다. 뜻을 나타내는 弓(활 궁; 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구불구불 '구불어지다'의 뜻을 가진 也(야, 이)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활줄이 축 '늘어지다'에서, 바뀌어 '풀리다'의 뜻이 있다. 그래서 弛(이, 시, 치)는 (1) '늦출 이'의 경우는 ①늦추다 ②느슨하다 ③느슨히 하다 ④활을 부리다(활의 시위를 벗기다) ⑤풀리다 ⑥폐하여 지다 ⑦게으르다 ⑧쉬다, 휴식하다(休息--) ⑨방종하다(放縱--) ⑩부서지다 ⑪부수다의 뜻이 있고, (2) '베풀 시'의 경우는 ⓐ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시행하다(施行--), 실시하다(實施--)의 뜻이 있고 (3) '떨어질 치'의 경우는 ㉠떨어지다 ㉡떨어뜨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유의어로는 緩(느릴 완) 등이다. 용례로는 느즈러짐 또는 풀려 늦추어짐을 이완(弛緩), 느즈러짐과 팽팽하게 켕김을 이장(弛張), 마음이 느슨하여 몹시 게으름을 이타(弛惰), 이완되고 황폐해짐을 이폐(弛廢), 금령을 늦추어 놓음을 이금(弛禁), 죄를 용서함을 이죄(弛罪), 활시위를 벗긴 활을 이궁(弛弓), 해이하고 태만함을 이만(弛慢), 마음의 긴장이나 규율 등이 풀리어 느즈러짐을 해이(解弛), 팽팽하게 켕기는 것과 늦추는 것 또는 성함과 쇠함을 장이(張弛), 구속됨이 없이 제멋대로 지내어 찬찬하지 못함 또는 방탕하여 규범을 따르지 않음을 탁이(跅弛), 게으로고 해이함 또는 기울어져 무너짐을 경이(傾弛), 무너져 풀어짐을 붕이(崩弛), 동요하는 모양을 궐이(厥弛), 문란하고 느즈러짐을 문이(紊弛), 무너지고 느즈러짐을 휴이(隳弛), 게으르고 느슨함을 타이(惰弛), 하루 종일 체온의 차가 섭씨 1도 이상 되는 열형을 이르는 말을 이장열(弛張熱), 올바른 도리의 기강이 무너지고 해이함을 일컫는 말을 강기퇴이(綱紀頹弛), 한 번 팽팽히 당기고 한 번 느슨하게 한다는 뜻으로 한 때 일을 시키면 한 때 쉬게 해야 한다를 이르는 말을 일장일이(一張一弛)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