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류 / 이시영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이문구형과 함께 소독내인지
닭똥내인지가 진동하는 성동서 유치장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유신 시절 워커힐에서 열리고 있던 세계시인대회를 반대하러
갔다가 즉결에서 각각 구류 14일씩의 처분을 받고서 였다.
낮에는 이 사람 저 사람들의 면회에다 그리고 오후마다
한차례씩 불려올라간 정보과장실에서의 은은한 커피 타임과
담배 접대로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밤이 되면 스무명이
넘는 비좁은 방에서의 생활이 고역이 아닐 수 없었는데
어쩐 일인지 바로 옆 문구형님의 방에서는 왁자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연인즉 밤마다 문구형님이 그 검은
장비눈썹을 치켜올리며 이야기 보따리 한개씩을 푼다는
것이었다. 그 솜씨가 대단했던지 같이 사는 구류 동료들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경찰관들까지 합세하여 이야기를
숨죽여 듣다간 중간중간에 "아 이런! 아 저런!" 하며 짤막한
단상들을 내지르곤 하였는데 가관인 것은 아침에 구류 만기로
출소한 실업자 청년이 저녁에 파자마바람으로 다시 들어온
이유가 글쎄 그 소설가 선생에게 반해서였다는 것이다.
- 이시영 시집 <은빛 호각> 2003
[출처] 이시영 시인 16|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