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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스데반 황
세례 요한의 증언
요한복음 1:24-34
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본문을 보면,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공생애 직전의 상황을 세례 요한과 결부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세례 요한이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그를) 믿게 하려 함이라”(요 1:6—7).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요 1:15).
당시 세례 요한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와 함께 회개를 촉구하며 죄를 자백하는 자들에게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즉, 요한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와 구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도록 부름으로써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준비했습니다. 그의 물세례는 구약의 정결 예식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메시야의 속량을 통한 죄 사함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는 세례 요한이 메시야의 오심으로 임할 천국을 선포한 사실을 기록합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마 3:1-2).
그러자 수많은 군중들이 세례 요한을 따르며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세례 요한을 메시야로 여기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눅 3:15).
이렇게 사람들이 세례 요한 주변으로 많이 모여들면서 그를 그리스도로 오해하자 예루살렘 공회의 종교 지도자들이 세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의 정체를 알아오게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요 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보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그 당시 유대의 종교와 정치를 주관하던 산헤드린 공회의 사두개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귀족 층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유했고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70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평민들 및 노동자들을 대표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회당을 장악하고 종교 사상으로 대중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두개인들은 대중을 선동할 수 있는 바리새인들의 의견을 수렴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1장 24절은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고 말합니다. 즉, 1장 19절에서 사두개인들을 보낸 유대인들은 다름 아닌 그들을 대표하는 바리새인들이었던 것입니다. .
아무튼 산헤드린 공회에 의해 보냄을 받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세례 요한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요 1:20)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헬라어입니다. 그 단어는 히브리어 '메시야'를 번역한 것으로서 그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 또는 ‘기름을 붓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구약의 모든 예언을 완성하시고 새롭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실 분을 가리킵니다.
그러자 산헤드린에 의해 파송된 사두개인들이 두 번째로 묻습니다.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요 1:21)
이 질문은 당시 세례 요한이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막 1:6) 이스라엘을 향하여 회개를 선포하고, 헤롯 왕의 추악한 삶을 노골적으로 꾸짖는 행동들이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나온 질문이었습니다. 또한 산헤드린에서 보냄을 받은 자들이 말하는 ‘엘리야’는 랍비들이 해석한 엘리야로서 하늘로 승천했던 구약의 대 선지자인 실제 엘리야를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등장하기 전에 실제 엘리야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물론 세례 요한은 말라기에서 말한 엘리야의 심정을 가지고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나타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지만 실제 엘리야 선지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나는 엘리야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산헤드린에서 파송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또 묻습니다.
“그러면 네가 그 선지자냐”(요 1:21)
여기서 '그 선지자'는 모세가 예언한 '나와 같은 한 선지자'(신 18:15)를 가리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
따라서 유대인들은 그 선지자를 메시야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도 세례 요한은 당연히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합니다.
이제 그들은 답답하고 초조한 심정으로 직접 묻습니다.
“그러면 너는 누구냐!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요 1:22)
이에 세례 요한이 자신에 대해 증언합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 1:23).
세례 요한은 실제 엘리야가 와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는 유대교 랍비들의 엉터리 해석을 불식시키고, 자신의 정체와 사역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사야 40장 3을 인용합니다. 그는 자신은 여호와께서 사람이신 메시야로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세례 요한의 진정한 겸손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겸손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친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라고 하셨고, 또한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도다”(요 5:35)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높이며 인정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예수님의 자리를 넘보거나 빼앗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영광과 유익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냄을 받은 사명에 충성했습니다. 그의 사명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27절을 보면, 그는 “메시야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말합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신발끈을 푸는 것은 가장 천한 종이 맡은 일이었습니다. 유대 풍습에 의하면 주인은 초대한 손님이 방문하면 손님의 신발에 먼지가 잔뜩 묻어 있기 때문에 자기 집의 가장 천한 종을 시켜 손님의 신발끈을 풀고 발을 씻겨주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이 “메시야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말한 것은 자신은 그리스도 앞에서 가장 비천한 노예의 자격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사람들이 예수께 모이는 것을 보고 그 사실을 보고했을 때 그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신랑이 기뻐할 때 신랑 친구가 기뻐하는 것처럼 주님이 높여져야지만 자신은 기뻐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신자의 겸손입니다. 겸손은 그리스도를 높이고 내가 죽는 것이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내 영광을 구하지 않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또한 내 원대로 되기보다 그리스도의 원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처음에는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사촌 형제로 자라나면서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야로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31절을 보면, 요한이 분명하게 말합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요 1:31).
그러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언제 알게 되었습니까? 33절에 그 답변이 나옵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는데,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이를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참조, 요 1:32-33).
그리고 이 사건은 누가복음 3장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 3:21-22).
그러므로 이 사건 이후로 세례 요한은 나사렛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신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그는 물로 세례를 베풀며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나사렛 예수님께로 인도하였던 것입니다(참조, 요 1:31)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에서 속량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교회의 모퉁이 돌(cornerstone)과 머릿돌(capstone)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왕으로 모신 우리는 세례 요한의 겸손을 철저하게 배워야 합니다.
[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5-6)
예수께서 불변의 진리를 선언하셨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8:14).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0-11).
[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5 (바리새인들의) 모든 행위는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11 (그러나)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 23:1, 5-7, 11-12)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 공동체 내에서는 그리스도의 이 위대한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원칙에서 벗어난다면 그러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이름을 가진 가짜 교회이며 세상에 물든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배교를 향하거나 이미 배교에 물든 교회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은사와 지식과 기질과 성품에 있어서 서로 크게 다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겸손으로 옷을 입는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정치인들처럼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자 잔 머리를 굴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의 겸손을 본받아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고 주의 몸 된 교회가 참된 교회로 서도록 많은 사람을 위한 희생 제물이 되고자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만 높아질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낮아지고, 그리스도만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런 겸손이 더욱 성도로 그리스도를 닮게 하며 깊어지게 하는 믿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18, 20-21)
그러므로 항상 가정에서나 교회 공동체에서 권위 질서를 존중하며 자기 자신을 부인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이 높여질 수 있도록 우리의 주장과 권한을 내려 놓기 바랍니다.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례 요한의 겸손을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또 배웁시다. 구원의 시작과 바탕은 겸손입니다. 구원의 목표도 겸손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이 얼마나 무섭고 가증하고 간교한 죄인인줄을 안다면 자기 부인의 겸손이 없이 사는 것은 오직 죄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영광을 구하는 교만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남의 흉 자기 자랑을 하는 더러운 혀에 자갈을 물리고, 자기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는 교만과 거만한 자세를 버리고, 그 대신 나 자신은 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죄인이라는 의식 속에서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의이며 자랑이라고 고백하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바울은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고전 1:27-31)
이처럼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리스도만이 전부입니다.
오늘 2024년 마지막 주일에 우리 주 예수께서 주시는 최고로 중요한 교훈은 겸손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드러나시면서 성령의 역사로 인해 많은 영혼을 하나님 나라로 이끄실 수 있고 또한 각 성도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산헤드린에 의해 보냄을 받은 사두개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한 자들이며 여전히 어둠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빛을 보지 못하였고, 빛을 보았더라도 손사래를 치며 멀리 도망하였습니다. 이제 그들은 빛을 대적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할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세례 요한을 찾아온 종교 지도자들은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는 성경이 알려주는 메시야가 아니라 자기들이 바라며 지어낸 거짓 메시야였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언약을 소유한 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 안에 안주하며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눈먼 자들의 길잡이이며 어둠 속에 앉은 자들의 빛이라고 확신했습니다(롬 2:17-19).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완전한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사실 이미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는 서 계셨습니다.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요 1:26-27).
그런데 그들은 그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구약 4천년 동안 약속되어온 여자의 그 후손이며 아브라함의 그 씨이고, 심지어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잇는 그 왕이시고 다니엘이 예언한 인자이신 그 메시야가 이미 와 계심에도 그들은 그분을 알지도 못하였고, 보지도 못했고, 영접하지도 않았으며, 믿지도 않았습니다. 생명의 빛이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유대인들 가운데 서 계셨지만”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그분을 알지 못했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마침내 그들의 주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극도의 배교에 빠졌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이 땅에 와 계셔서 복음으로 자신을 나타내시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여전히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들어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썩어질 세상의 자랑과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라는 공동체마저도 대다수가 그리스도에 대해 알리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인격을 의식하는 자들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며 자신들의 야욕과 영광과 명예와 재력과 권력을 구하는 일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몸 담은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는 어떠합니까? 예수님의 움직임과 충만함이 느껴지십니까? 오, 바울의 엄중한 경고를 가슴 깊이 새기기 바랍니다.
[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 13:11-14)
인생은 안개와 같이 짧고 번개처럼 빠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모시고 주와 동행하는 사람은 순간마다 영원한 보람을 쌓고 있습니다. 쌓여진 영원한 보람은 그가 죽은 이후에 영원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불신자들은 이 땅의 것을 위해서만 살며, 오늘 먹고 오늘 마시자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을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불신자들에게 끌려 다녀서도 안 됩니다.
[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고전 15:32-34)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 예수님의 재림도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지난 후, 또는 예수님 재림 직후 곧바로 하나님의 자비의 문은 영원히 닫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죽음을 지날 때까지, 또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가룟 유다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훨씬 좋았을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
7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살후 1:7-9)
이제 산헤드린에서 보냄을 받은 사두개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마지막 질문을 합니다.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요 1:25).
지금 사두개인들의 이 말은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세례를 베풀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베푸실 세례는 어떤 세례이며 그런 예언은 어디에 있습니까? 에스겔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 등의 예언에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겔 36:24-25).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슥 13:1).
이때 세례 요한이 대답합니다.
“나는 내 뒤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물로 세례를 베푸노라”(요 1:26).
마태는 세례 요한의 이 말씀을 더욱 뚜렷하게 알려줍니다.
[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 3:11-12; 참조, 눅 3:16-17)
여기서 우리는 옛언약의 마지막 대표인 세례 요한에게 하나님께서 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세례 요한의 세례는 회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물세례였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의 물 세례는 어떤 의미입니까? 먼저 세례 요한의 물 세례는 회개하는 자에게 죄를 씻어주는 세례였습니다. 이는 구약 시대에 죽음과 관련한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하는 규정과 연결됩니다. 정결 법에 의해 부정이 상징하는 죄를 씻기 위해서는 물을 뿌리는 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이때 정결법에서 쓰는 물은 특이했습니다. 민수기 19장을 보면, 시체에 접촉함으로 부정해진 자들을 위한 정결 규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이 정결 예법은 죽음이 죄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한편, 피 뿌림이 없이는 죄가 정결케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흠이나 결점이 없고 아직 멍에를 메어 보지 않은 붉은 암송아지 한 마리를 진영 밖으로 끌고 가서 제사장 앞에서 잡아 죽입니다. 그 후 그 암송아지의 가죽과 고기와 피와 내장을 포함하여 고스란히 불사르게 합니다. 그때 그것이 불 속에서 타고 있을 때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가져다가 불 속에 던집니다. 그 다음, 불에 타서 남은 그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가져다가 그릇에 담고 거기에 샘물을 부은 다음 의식상 깨끗한 사람이 우슬초를 가지고 그 물을 찍어 부정한 사람에게 뿌립니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부정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공동체로 들어오지 못하고 백성 가운데서 제거됩니다. 이는 그가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않았으므로 그의 부정이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정결 규정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모세의 옛 언약에 속한 이러한 정결 예식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설명합니다.
[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히 9:18-23)
그러므로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의 세례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하면서 아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속량을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사실을 가리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 시대의 사람들이 십자가 속량을 예표하는 정결 예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얻었던 것처럼 세례 요한의 물 세례 역시 보혈을 상징하면서 죄 사함의 효력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마 3:5-6)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막 1:4-5).
이처럼 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새언약 시대의 성령 세례와 대조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표이고 다른 하나는 실체입니다.
물론 세례 요한의 세례는 모세의 율법이 담고 있는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인 회개를 알려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
그리고 죄를 깨달은 자들에게 십자가의 보혈을 예표하는 물로 씻어주는 세례 행위를 함으로 그들이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고 그들의 유일한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물 세례는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명을 요약한 행위이며 이는 결국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그 나라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할 수 있도록 의도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역은 구약이 예표하는 모든 옛 언약이 성취와 함께 새 언약의 시대를 열어준 것입니다. 바로 복음과 성령 세례의 시대입니다.
이로서 복음은 십자가 속량을 치르시고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는 성령과 가장 밀접합니다. 이에 세례 요한의 물 세례와 대조적으로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는 구약과 신약의 대조이며,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대조되는 것입니다. 하나는 초등 교사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는 그림자인 반면, 다른 하나는 그 그림자의 실체입니다. 하나는 약속이고 다른 하나는 약속의 완전한 성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언약 시대에 속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량 및 부활로 인해 우리에게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를 더욱 깊게 이해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즉, 지금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우리의 삶 속에서 맘껏 사용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한량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차고 넘치도록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차고 넘치도록)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5-6).
[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육신으로말미암아연약하여할수없는그것을하나님은하시나니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1-4)
[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롬 14:17-18)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는도다”(롬 15:13).
이제 29절부터 34절까지 보면, 세례 요한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사람들 앞에서 크게 외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그리고 또 다시 증거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라”(요 1:34).
여기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헬라 원어로 (오 암노스 투 쎄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읽은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도 나옵니다.
“(그가)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행 8:32).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양”! 즉, 하나님의 어린양은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고난 당하시는 어린양(암노스)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이 단어를 그리스도의 대속을 말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그 양은 모리아 산에서 이삭 대신에 번제로 드려진 양으로서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신 어린 양이었습니다(창 22:7).
그 양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매일마다 아침저녁으로 번제로 드려지는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얻을 때 그들을 대신하여 죽은 유월절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창세부터 정하신 이 세상의 죄를 짊어질 새언약의 속죄 양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로 죄 사함과 의롭다 함을 얻은 우리는 그분의 보혈을 더욱 귀하게 여기며 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보좌 앞에 있는 회중처럼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어린양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십자가 보혈을 한없이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감사 찬양해야 합니다.
[
6 내가또보니보좌와네생물과장로들사이에한어린양이서있는데일찍이죽임을당한것같더라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8 그두루마리를취하시매네생물과이십사장로들이그어린양앞에엎드려
9 …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계 5:6-11)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훈 및 그분의 수많은 업적을 노래해야 하지만 그 중 그분의 십자가에 한없는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이는 우리를 위해 죽임 당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가 교회의 머릿돌과 모퉁이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주십니다. 그분은 정치가나 철학자, 또는 도덕 교사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이 결코 스스로 할 수 없는 일, 즉 돈과 권력과 세상 지혜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인 “세상 죄를 없애는 일”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마침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참조, 벧전 2:24).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죄는 마치 전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리 믿는 자들의 죄를 깨끗하게 제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는 영원한 구주로서 죄를 없애고 계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그분은 하늘에서 영원히 살아계신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끊임없이 우리와 세상 죄를 씻겨주는 일을 하십니다. 이처럼 그분은 언제나 죄를 없애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의 재림과 함께 최종 심판을 통해 세상 죄를 영원히 사라지게 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3절을 보니,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해 특이한 언급을 합니다. 그분은 다름 아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때 어둠 속에 있던 자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안에서 성삼위 하나님께 속하게 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의 부으심으로 죄와 세상과 마귀를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되고 삶과 고백으로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전도인이 됩니다.
지금 참 교회가 베푸는 물세례는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푸는 세례로서 성령으로 거듭난 참된 신자에게 베푸는 세례입니다.
[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너희에게분부한모든것을가르쳐지키게하라볼지어다내가세상끝날까지너희와항상함께있으리라
](마 28:19-20)
이 시간 여러분은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그래서 참으로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믿음으로 연합한 상태인지 확인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당장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영접하고 주와 믿음으로 연합하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속량하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신 그리스도와의 연합만이 우리가 새생명을 얻고 또한 늘 새롭게 복음의 능력을 발휘하며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비결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축복이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주를 의지하는 모든 자들에게 성령을 통해 차고 넘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