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이후 백전백승의 장수 채명신 이야기 - 6·25전쟁에서 조국을 구하고 베트남전쟁에서는 한국군의 용맹을 세계에 떨친 불후의 명장 채명신. 이 책은 채명신 장군이 월남하기 전 삶에서부터 시작하여 8평 장군묘역 안장을 마다하고 베트남전쟁에서 함께 싸운 전우들과 1평 사병묘역에 같이 묻힐 때까지의 일대기이다.
채명신은 1926년 황해도 곡산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1946년 해방 후 평남 용강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1947년 월남하여 국방경비대에 육사 5기로 입교하여 1948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다. 임관 후 제주 4·3 사태 진압군에 참여하기도 하고 1949년 38선 송악산 전투에도 참여한다.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에 지연전, 영천지구 방어전투, 반격 후 북진 할 때는 대대장으로 승진한다.
1951년 1월에는 적 후방 침투 게릴라부대 결사 11연대를 편성하여 연대장으로 백골병단을 이끌고 적 후방에 침투하여 당시 대남 유격대 총사령관 길월팔 중장을 생포하기도 했다. 그는 틈틈이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하여 미군 장교들과 의사소통이 자유로울 정도다. 1951년 전선이 교착되자 미국 군사학교에 유학하여 새로운 전술을 익히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군의 월남 파병을 결정하자 게릴라 전투 경험이 있는 채명신 소장이 초대 사령관으로 발탁된다. 채명신은 미국과 치열한 신경전으로 독자적인 작전 지휘권을 확보하고 중대전술기지 개념을 도입하여 한편으로 베트콩의 침입을 저지하며 격퇴하고 한 편으로는 대민 지원으로 민심을 수습한다. 장병의 사기 진작을 위해 한국산 김치 도입을 강력하게 관철시키고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자 월남에서의 용역사업에 한국 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주선했다. 월남전 참전 후 전역 병사들에 게 한국과 외국의 용역업체에 취업시키기도 한다. 월남에서의 특수는 중동의 특수로 이어져 한국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그는 초대 사령관을 마치고 귀국하여 중장으로 계급정년까지 군 복무를 하다가 1989년 영면하면서 1평 사병묘역에 묻힌다.
저자는 채명신 장군의 부관으로 월남전에 참전한 바 있으며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여 소설가, 시인, 군사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다. 소설 형식으로 표현된 채명신의 실록이다. 매우 흥미 있게 읽었다. 강서도서관 소장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