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법계에 수없는 중생들이 있는데
그 중생의 은혜를,
은혜야말로 국왕의 은혜나 국가 민족의 은혜나
부모의 은혜나 신도단월의 은혜나 스승은혜,
그 다 ‘오종대은(五種大恩)’이라 그러지만
그 오종대은 보다도, 우리 눈으로도 잘 보이지 아니하고 그렇게 나타나지도 아니허지만 한량없는 중생의 은혜가 정말 참 한량이 없다고 허는 것을 우리는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제일 크고 큰 것이 허공인데
허공만큼
그 은혜가 큰 것이 바로 중생의 은혜라 이것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무량겁을 두고 오면서
그 한량없는 중생 속에 우리도 한 사람이지만
그 한량없는 중생으로 더불어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선망부모도 그 중생이요
부처님도 과거는 중생이었었고
모든 불보살과 우리의 선지식들도 전부가
한때는 우리와 같은 중생이었었고,
앞으로 무량겁을 두고
우리는 중생을 여의고 살 수가 없습니다.
중생을 위해서 있고,
중생과 더불어 있고,
중생 때문에 불법이 필요하고,
중생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불보살은 중생을 위해서 출현을 허는 것이고
불법도 바로 중생을 위해서 필요헌 것입니다.
우리가 도를 닦는 것도
결국은 중생, 중생을 위해서 도를 닦는 것입니다
불법,
불법승
삼보가 결국은 중생 때문에 나왔고
중생 때문에 있고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상구보리,
우리 자신을 위해서 지혜를 닦는 것은 상구보리요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바로 하화중생인데
그것이 바로 중생을 위하는 것입니다.
위에로 지혜를 구하는 것도 중생을 위함이요
법을 설해서 자비를 베푸는 것도
또한 이것이 중생을 위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중생이면서
중생 전... 위하는, 우리의 이 목숨이 필요헌 것은
중생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물 한 방울, 쌀 한 톨이
바로 그것이 그 속에 중생이 들어있고,
이 입고 있는 옷 ‧ 살고 있는 이 집이 바로 중생을...
중생이고,
걸음걸음이 밟고 댕인 것이 전부가 중생을 밟고
댕인 것입니다.
한 방울 물속에
구억충이 들었으니 구억(9억)의 중생을 우리는 마시고
있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은 그 발바닥 밑에는
수 없는 중생이 그 발바닥 밑에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쌀 한 톨을 농사를 짓는데
그 수없는 중생이 거기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의 목숨을 먹고 살고
중생의 목숨을 입고 살고
중생의 수없는 목숨을 우리는 밟고 살고 있었어.
그러니 우리가 중생을,
중생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승불교 대승불법이라 하는 것은
바로 중생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감사합니다.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고맙습니다._()()()_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