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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追跡者)-12
“이제부터는 알폰소에게서 조경순의 살해 동기를 밝혀내는 것이 가장 우선해야 할일입니다. 릭 경감님. 저는 에드에게로 가야 하니 중요한사실이 밝혀지면 알려주십시오.”
나는 문을 나서며 케롤 경찰에게 눈인사를 하며 말했다. 여성 경찰을 알아둔다는 것이 좋은 일 아닌가. 더구나 도움을 받을수 있다면.
“커피 감사합니다. 전화해도 괜찮겠습니까?”
릭 경감이 의미 있는 웃음을 띠며 문으로 왔다. 케롤은 경감을 피해 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업무에 관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경사입니다. 캐롤라인 경사입니다.”
지는 해는 붉게 타고 있었다. 바람은 한 점 없고 늦가을 날씨로는 온화하였다. 말리부의 문을 열며 릭 경감에게 물었다.
“릭 경감님. 케롤라인은 어떻습니까?”
그는 활짝 웃으며 빤히 쳐다보았다.
“어느 쪽으로? 내가 케롤을 믿고 있네. 4개월 전 순찰부서에서 내가 차출하여 함께 일하고 있네. 나처럼믿어도 되네. 다만, 딴 것은 내가 믿으라 말할 수 없네.”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손을 내밀었다. 이제는 제대로 된 악수를 해도 되었다.
레이크 쇼(lake shore)를 따라 호수를 우측에 끼고 달리는 길 주변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짙은 늦가을 날씨로 낙엽이 거의 떨어져 빈 가지들만 겨울채비를 하고 있는 스산한 풍경이었다. 며칠 안에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우중충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바람은없었다. 바람이 없는 날은 고즈넉 하고 포근하다. 이런 날, 밤늦게 돌아다니면 거의 불편한 일이나 사고를 당하기 쉽다. 길거리와 산책로에는 인적이 없다. 토론토가 안고 있는 양면성이다. 낭만적인 이 밤에 그 낭만을 즐기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에드의 집까지는 지금같이 70km/hour 로가면 15 분쯤 걸린다. 나는 그렇게 차지 않은 바람을, 열어둔 창문을 통해 느끼며 이 일을 정리하였다. 마미의 발견, 그 마미가 남긴 박인서라는 한글, 그 마미의 어머니, 그 여인의 종적, 엘리자벳의 상해, 조경순의 죽음, 그리고 YEKEJ 라는 단어등 사건들이 하나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핵심은 무엇인가? 이 하나로 연관된 사건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특히 샤르지에와 듀발리에 홀스 부자의 이 연관된 사건들에 대한 개입 여부? 그렇다. 이건 무엇인가 말하고 있다. 누가 무엇을 말하려 하고 있지만, 아직 그 누구인지 확실하게 밝혀내질 못하고 있다. 그 누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내 돌아가신 할머니까지 이 일에 관련되어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온몸에 소름 돋듯 불같은 사명감으로 투지가 용솟음쳤다. 어둠이 깔린 에드의 집 주변은 경찰이 접근 금지로 둘러쳐 둔 노란 포토 가이드 라인의 테이프가 잔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음산한 분위기 마저 감돌았다. 거실에 불이 밝혀져 있지 않았으면 주변의 불 켜진 집들 속에 동그마니 앉아있는 흉가일 것이다.
말리부를 집 앞에서 조금 벗어난 잔디 보도 옆에 세워두고 20948 의 집 문을 열었을 때 문은 잠겨져 있지 않았고 내가 들어가 옆에 서도 모르는 채, 에드는 혼자 거실에 망연자실하여 커피를 탁자에 두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를 위로할 어떤 말도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가 잠시 일어나 창가에 섰다 다시 소파에 앉자 그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는 상심으로 인하여 오 년이나 더 늙어 보였다.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일어나 지하로 내려가는 물을 열고 불을 켰다. 스위치는 손잡이 바로 위쪽 벽에 있었다. 이미 조경순의 시체는 경찰이 옮긴 후였다. 내가 지하실 바닥과 벽을 살피고 있는데 에드가 내려왔다.
“제임스! 나는 이렇게 불행한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마미에 대한 추적을 한 것일세. 너무 후회스럽네. 어떻게 아내까지 잃어버릴 줄이야. 나는 이제 어떻게 하여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없네. 이것을 운명이라 친다 해도 너무 한 것 아닌가?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우리 가족에게 발생하였는지? 아니면 내가 자초하였는지? 모든 게 너무 후회스러워 견딜 수가 없네.”
그의 음성은 울음이 섞여 있었으며 눈에는 눈물로 가득하였다. 나도 그런 그와 함께 있는 것이
힘들었다. 누구라도 함께 해 주었으면하고 바랬다. 이럴 때 누군가 옆에 있어 주어야 하지 않은가. 그러나나는 냉정하여야 했다. 조경순의 사랑스럽게 웃는 모습이 떠오르고 금방이라도 윗층에서 커피마시라고 부를듯하였다. 그러나 나는 냉정하여야 했다. 왜? 조경순이 이곳에서 살해되었는가? 가해자들은 무엇을 얻기 위하여 살해까지하였는가? ‘너의 눈은 동쪽을 보고 있다’ 이것은 어디에서 동쪽을 보고 있다는 의미인가? 왜 동쪽을 보고 있어야 하는가? 넓은 잔디밭과 나무들 그리고 동쪽과남쪽은 호수이다. 너무 광범위하다. 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하나를 에드에게 건넸다. 담배를 깊이 빨고는 입으로 연기를지하방 천정에 토해내었다. 뭔가의 열쇠가 이 방에 있는 것은 아닌가?한정된 공간에서 동쪽을 보고 있다면…
이 집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이 집 어디엔가를 한정했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한정된 공간은… 이 방 지하실일 것이다.
조경순이 이곳에서 살해되었고, 살인자들은 이곳에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조경순에게서 그것을 알아내려 한 것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조경순이 뭔가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에드. 대답하기 어려운 입장일 줄알지만 몇 가지 물어보겠네. 괜찮겠나?”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제임스. 괜찮네. 힘들지 않은 물음이라면 내가 아는 것들 모두를 말하겠네.”
그는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힘들어 말했다.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 혹은 이사 후 이 지하실의 구조 변경이나 리노베이션을 위하여 공사를
한 적이 있는가? 당신이 아니라도 전 주인까지 포함해서.”
그는 아직 젖어 있는 눈을 들어 큰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집을 사기 위하여 계약 전에 아내와 함께 와서 집을 둘러보며 이 지하실도 보았네. 지하실을 보는 것은 당연히 하여야 할 절차이고 더구나 건축 설계사인 내가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전 주인은 올해 4 월에 이곳을 새로 수리하였다고 하였네. 벽과 바닥에 방수페인트를 칠하고 카펫을 다시 새것으로 갈았다고 하였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곳은 지대가 비교적 높고 바닥이 작은 바윗돌로 구성되어 있어서 습기나 습기에 의한 냄새등이 없고 벌레 등이 기생하지 않은 쾌적한 상태였는데 굳이 새롭게 하여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었네.”
“그럼 그때 바닥을 파거나 벽을 허물면서 리노베이션을 하였단 말은 없었나?”
“음, 그렇게는 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있네. 왜? 그것이 이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나? 나는 지금
비통하지만, 자네의 말을 들으며 궁금함이 많게 되네. 자네의 생각을 말해주겠나?”
나는 그의 비장해진 눈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의 눈은 복수심과 적개심으로 불타고 있는 듯하였다. 나는 말없이 이 자리를 피할 수 없음을 알았다.
“좋아.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말하겠네. 그러나 이 말을 들음으로 자네에게 또 다른 위험이 있을까 그것이 걱정되네.”
“이제 나는 죽을 각오도 할 수 있네. 아내를 잃은 상태에서 어떻게 비통해만 있을 수 있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할 것이네. 그러니 그런 점은 구애받지 말고 어서 말하게.”
“알겠네. 자네의 심정을. 우선, 생각나는 것은 자네의 아내가 살해되기 전, 내가 이곳을 찾아
바닥과 벽을 살펴보고 있었네. 전문가인 자네 말대로 바닥은 부분적으로 바위 같은 천연 바닥으로 형성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고 벽 또한 건조한 흙과 돌로 이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네. 쉽게 말하면 건조한 흙과 돌로 이루어진 언덕을 파서 지하실을 만든 듯하다는 의미일세. 내가 그것을 더욱 확신하기 위하여 바닥을 구르고 있을 때 자네 아내가 내려왔네. 그래서 그 일을 중단하였네. 그리고 엘리자벳의 상해나 마미의 발견 자네 아내의 살해 등 일련의 사건들이 이 집을 근간으로 일어났네. 그리고 두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살인 용의자들.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OPP 수사관인 아크샤의 불필요한 개입 추가와 마미 어머니와 나의 관계 등은 이 집을 시작으로 이루어지고 있네.
그렇다면 이 집을 어떤 집단이 노리고 있으며 자네의 아내를 살해까지 하며 얻으려한 그 무엇. 그리고 그 살인 용의자들을 사주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그 집단이 노리는 그 무엇은 이 집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네. 엘리자벳이 알려 준, 마미의 어머니가 암시한 YEKEJ 또한 이 집에서 풀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그렇게 추정했을 때, 주인인 사르지에 홀스와 구 러시아 KGB 출신인 그의 아버지 두발리에 홀스를 추적하게 되고, KGB 출신인 그의 내력과 캐나다로 이민을 하게 된 이유 및 그 이후의 행적에 까지 추적을 하여야 할 것이네. 또한, 나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살해범이 저지른 행위는 그들 스스로의 작위에 의한 행위라고는 볼 수 없네. 그들은 강도도 절도도 하지 않고 자네 아내에게 고문을 하며 죽였네. 그것은 무얼 의미하겠는가? 그들의 수법은 전문가도 아니었네. 결국, 그들은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그들을 조종한 세력이 뒤에 있다는 추정이네.”
심각하게 듣고 있던 에드가 한 손으로 젖은 눈가를 닦으며 말하였다. 그는 뭔가 비장한 모습을 얼굴에 띄었으며 범인을 보면 당장에라도 죽일 것 같은 차가운 냉기를 뿜었다. 그런 그를 선뜻 걱정스러운 생각으로 바라보았다.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나는 자네 말을 다 인정하겠네. 그러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말해주게. 나는 온통 혼란스럽고 황당하여 마음을 추스릴 수가 없네. 내가 캐나다로 이민을 왔고 베리에서 잘 살다가 좀 더 편해보려고 이곳으로 이사 온 것 그리고 이곳에서 마미를 발견하고 아내가 살해당한 것이 모두가 내 개인적으로는 어떤 운명일 것이라 생각도 들었네.
그것이 여기까지 이네. 그럼 지금부터 어떤 운명을 만나고 내가 바르게 그 운명을 받아 들이자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나는 도대체 알 수가 없네. 이 사건들이 해결되어야 그 다음 내 거취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네. 자네가 이 일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은 내가 다 감당하겠네. 죽은 아내도 그렇게 자네에게 말하며 의뢰하지 않았는가.”
그는 어쩌면 내게 이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빨리 해결해 주길 강요하고있었다.
그도 이 일련의 사건들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이 사건은 내가 맡았고 그 의뢰인 중 한 명 즉 에드의 아내인 조경순이 살해되었다. 또한, 마미의 어머니일 것 같은 사람이 내 할머니의 조카 일 수도 있는것이다. 그리고 한국사람 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 살고있는데 어떻게 그 사건을 알고 개입한 이상 발을 뺄 수가 있단 말인가.
다만,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마미의 어머니가 누군가? 어디에 있는가? 왜 그렇게 아이를 마미로만들어 놓고 수수께끼를 풀어라! 하고 있는가? 를 밝혀내야한다.
에드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그는 계속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권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심신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견디어내지 못할 것이었다. 힘들어하는 그에게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불을 붙여 주고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소파에 기대어 창가의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그를 나는 당장 달랠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을 주지 못하고 조심할 수 있는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말해주고는 에드를 거실에 그대로 남겨두고 임시 거처인 뒷마당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