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죽음으로 둘러싸인 섬이다
장례비용
자린고비로 소문난 구두쇠가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죽음을 지키기 위해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큰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묘지까지 모시고 갈 영구차를 빌려야 할텐데,……”
막내 아들이 선뜻 말했다.
“아버지는 항상 롤스로이스를 가지는 게 꿈이었어요,
아버님 생전에 그 차를 한 번도 타시지 못했으니
적어도 돌아가실 때만큼은 롤스로이스로 모시는 게 좋겠어요.
물론 편도죠, 무덤까지만,……”
그러자 큰 아들이 말했다.
“너는 너무 철이 없구나. 죽은 사람에게는 타고 가는 차가
어떤 차이든 상관없단 말이야. 그러니 적당히 큰 차가 좋을 것 같다. ”
둘째 아들이 말했다.
“형은 어찌 그렇게 사치스럽소,
어쨌던 시신만 옮기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트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으니
그게 아마도 훨씬 편하고 싸게 먹힐 거예요.”
셋째 아들이 말했다.
“도대체 롤스로이스니, 트럭이니 하고 떠들 필요가 어디있어요.
아니 아버지가 결혼이라도 하신다는 겁니까?
아버지는 지금 묘지로 가시는 거예요.
그러니 아버지를 대문 밖 쓰레기통 옆에 놓으면
쓰레기를 치우는 트럭이
아버지를 알아서 데려갈 거예요.
그리고 그건 비용도 전혀 들지 않는단 말입니다.”
이때 노인이 눈을 뜨고 말했다.
“내 구두가 어디 있느냐?”
아들 형제들이 동시에 말했다.
“구두를 가지고 무얼 시시려구요? 아버지는 그냥 쉬세요.”
그러나 구두쇠 노인이 우겼다.
“글세, 내 구두를 내놓으라니까."
큰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고집은 못 말려. 얘들아, 아버지께서
구두을 신고 돌아가시고 싶은 모양이다. 구두를 내드려라."
구두쇠 노인이 구두를 신으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장례비용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게는 아직 목숨이 조금 남아있으니 무덤까지 걸어가
그 옆에서 죽겠다.
얘들아 거기에서 만나자.
다만 너희들이 너무 사치스럽다는 게 나를 괴롭히는구나.
나는 생전에 롤스로이스나 다른 아름다운 차에 대해
오직 꿈만 꾸었을 뿐이다.
꿈꾸는 것에는 돈이 하나도 들지 않지. 꿈은 공짜야,
그리고 너희들도 무엇이나 꿈을 꿀 수 있어.“
결국 구두쇠 노인은 무덤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아들 형제들과 친척들이 걸어서 따라갔다.
그리고 그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무덤 옆에서 죽었다.
노인은 죽음으로 둘러싸인 섬이다.
Old age is an island surrounded by death. <후안 몬탈보(1832~1889)> -0222
출처> 도서<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짧은 이야기] 박지현 엮음
-이야기 백 둘- 장례비용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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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유성 박한곤
인생에 공짜인 꿈이나 희망마저 없었다면?
삭막한 '인생행로'였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자로 살려면 구두쇠 같은 명칭을
얻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구두쇠'라는 상품도 없어져
박물관에나 있을 법하다.
부모 마음, 자식 마음이 다른 것에서.
시대가 변해도 근본에는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사랑은 베풂으로 끝난다는 것을
예상하지 않은 것이 어리석음이다.
에콰도르 작자 '몬탈보'의 당부에서
노인을 죽음으로 둘러싸인 섬?이라 하였어도
과학의 발달로 경계를 초월하는 전파매체에 기댄다면
죽음의 순간까지 절대 외롭지 않다.
또한 수평을 고수固守한 바다는 더 많은 사연을 안고
파도로 말하는 도도 滔滔하고 근엄한 침묵이 있기에
귀(지성의 메아리)만 잘 열면
외로움 모를 한 수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후안 몬탈보-Juan Montalvo 에콰도르의 작가<1832년 04월 13일 ~ 1889년 01월 17일>
후안 몬탈보는 1832년에 암바토에서 마르코스 몬탈보와 요제파 피알로스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키토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한 후1857년부터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외교관직을 맡아서 활동했습니다.정치적으로 자유주의자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반 성직주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당시 에콰도르를 지배하고 있던 카우디요에게 증오심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르시아 모레노의 독재 정치 방식을 부정적이게 생각하고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해 격렬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결국, 콜롬비아로 7년 동안 유배되었고 70년대 후반에는 프랑스로 두 번 유배되어 파리에서 오랜 세월을 지냈습니다. 후안 몬탈보의 작품들은 에콰도르에서 큰 인기가 있었으나 빈터밀라 의해서 금지되었었고, 미겔 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속편을 썼습니다.
후안 몬탈보는 강렬한 개성을 가지고 있던 낭만적인 개인주의자이고 자유를 갈구하던 남미의 선구적 작가였습니다.
[출처] 아메리카 화페 속 위인 후안 몬탈보 / 작성자 코버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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