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2. 11. 12. 토요일.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귀에서 또 소리가 크게 울린다, 들린다.
몸이 피곤하면 머리가 멍하며, 귀에서는 이명소리가 윙윙거린다.
근육살이 빠지면서 자꾸만 등허리가 활처럼 굽혀진다.
등허리가 둥근 형태로 변형되면서 키가 자꾸만 줄어들고, 이제는 서 있는 것도, 걷는 것도 나날이 어려위진다.
특히나 무거운 물건을 쳐들려면 더욱 힘이 든다.
늙어가는 게 안타까운 것일까?
나한테는 서울생활이 무척이나 무기력하다. 서울 아파트 안에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없기에 날마다가 똑같은 나날이나 이어진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 나날이 반복되기에.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늘 시골로 내려가 있다.
텃밭에서 일하고 싶으니까.
삽으로 땅을 파고, 호미로 흙을 긁적거리고, 봄과 가을에 씨앗을 뿌리고, 키 작은 묘목을 구해서 심고 싶다.
키 큰 나무을 올려다보고, 키 작은 화초를 내려다보고 싶다.
그냥 키우는 재미로 일하고, 그냥 푸욱 쉬고 싶다. 식물과 말을 나누면서 생활하고 싶다.
1.
오래 전 시골에서의 내 삶을 잠깐 뒤돌아본다.
아흔 살을 훌쩍 넘긴 어머니는 자꾸만 치매환자로 변해갔고, 나는 그런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2014년 2월 초. 내가 대상포진을 앓는 바람에, 시골 종합병원에서는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가 없어서 다음날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급하게 올라왔다. 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받고....
서울에서 몇 달째 살던 어머니가 저녁밥을 자시다가는 위급상태가 발생하였고, 119소방차를 타고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실려갔고, 중환자실을 거쳐서,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며, 불가하다는 처방을 받고는 최종적으로는 충남 보령아산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을 벗어나지 못한 채, 치매상태로, 뇌사상태로 입원하셨다가는 다음해 2월 말에 저세상으로 떠나셨다.
그 뒤로는 홀로 남은 나는 시골생활을 접고는 처자식이 있는 서울로 되돌아왔다.
서울로 올라와서 사는 바람에 시골의 텃밭 세 자리는 많이도 변해버렸다.
수백 그루의 과일나무와 조경수의 묘목들 심었건만 이런저런 이유로 전정할 시기를 놓쳐서 묘목들이 어느새 훌쩍 커서, 제멋대로 웃자랐다. 또한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지었기에 식물병이 자주 들었고, 억센 잡초들이나 가득 찼다. 크면 나중에 옮겨 심겠다는 텃밭 속의 묘목들은 어느새 커서 밀집상태가 되면서 많이도 사라졌고, 잡목과 잡초들이나 가득 들어찬 땅으로 변질되었다.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늘 시골에 내려가 있기에 나는 어쩔 수 없는 시골사람이다..
서울에서 살자니 하도 답답해서 무엇이라도 꼼지락거리면서 일하고 싶다.
어제의 일이었다. 아파트단지 안을 가로 질러서 송파구 잠실에 있는 석촌호수 서호로 나가다가 아파트 쓰레기장에 내다버린 화분을 보았다. 많은 이삿짐들이 함께 버려졌고....
커다란 화분 속에는 순이 잘린 서양의 다육식물이 들어져 있었다. 곧 폐기물 쓰레기로 처리될 상황이다..
화분 상태를 살피보니 아직은 쓸만하다고 여겨졌기에 화분 안에 든 흙을 조금 덜어내고는 화분을 운반할 수 있는지를 알려고 위로 쳐들었다. 등허리가 하도 아파서 두 손으로 화분을 높이 쳐들지 못했다. 대신에 오른 손으로 화분 꼭지를 움켜쥐고는 운반하자니 무척이나 힘이 더 들어갔고, 한 손으로는 더 무거웠다. 조금씩 걷다가는 화분을 내려놓고는 쉬고, 다시 조금 걷다가는 또다시 쉬고를 숱하게 반복한 뒤에 내가 사는 아파트로 들어섰다.
단지 안 쓰레기 처리장에서 쑤세미로 화분 겉과 안을 닦은 뒤에 내가 사는 아파트 안으로 옯겼다.
줄기가 잘려서 엉성해 보이는 다육식물 뿌리를 가위로 잘라서 다듬었다.
화분 안에 흙을 붓고는 다육식물을 심은 뒤에 물을 부어주었으니 주워온 식물이 되살아났으면 싶다.
남이 버린 폐쓰레기를 주워서 내 아파트 안으로 가져온 나.
내다버리면 완전히 쓰레기이지만 이를 고치고 다듬어서 다른 용도로 재활용하면 생활용품이 된다.
생각을 바꾸면 다양한 사용방법이 떠오른다.
폐품을 재활용하려고 하는 노인인 나. 폐쓰레기가 내 처지인 듯 싶다.
정년퇴직한 지도 만 14년이 넘어서 15년째로 접어드는 세월에서 산다.
자꾸만 늙어가는 나도 그럴 게다. 쓸모가 없어진 폐품, 쓰레기이가 되어서.
하지만 아직은 더 사용되었으면 싶다.
꼼지락거리면서 일하고 싶다.
주워온 화분들이 베란다 위에서 자꾸만 늘어간다.
키 작은 식물을 키우면서, 숱하게 죽이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화분 숫자가 더욱 늘어난다.
서울 고층아파트안에서도 무엇인가를 꼼지락거리면서 일하고 싶은 나.
아내가 쌀 씻은 뜨물을 수채구멍에 쏟아부어서 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화분 흙에 조금씩 부어준다.
식물한테는 소중한 물이 되기에.
퇴직한 지가 오래된 나.
퇴직한 뒤의 나는 페품인생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용도로도 더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1.
나는 ....
지금은 서울에서만 빈둥거린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수도 하지 않는 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컴을 작동했다.
문학카페에 오른 시를 다시 보았다.
어제 읽었던 시이며, 어제 내가 댓글 달았던 댓글도 다시 읽었다.
얼마 뒤에는 댓글이 자동으로 지워지이기에, 퍼서 여기에 옮겨서 오래 보관하고 싶다.
나한테는 소중한 글감이 되기에.
아래는 내 댓글.
낯선 길 하늘 바람
지붕위 황금 호박은
위 문구에서....
낯선 길 하늘 바람 → .... 하늘바람 → .....하늬바람
* 하늘 바람은 2개의 낱말
'하늘바람으로 붙여서 쓰면 1개의 낱말
하늬바람은 표준어이며, 하늘바람은 지방방언
하늬바람은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 붙여서 써야 하는지, 아니면 떼어서 써야 하는지....
뜻은 사뭇 달라질 터.
지붕위 황금 호박은 → 지붕 위 .....로 띄어서 써야 할 듯.
시 좋군요.
저는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늘 시골에 내려가 있지요.
퇴직한 뒤에서야 시골로 내려가서 아흔 살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요.
꿈만 같은 시골생활이었지요. 친환경 농사를 지었던 건달농사꾼...이제는 지나간 시간들이 꿈만 같습니다.
우리 옛말 사전으로 검색한다.
하늬바람 : 서쪽에서 부는 바람. 순수한 우리 옛말이다.
서쪽은 '하늬', 동쪽은 '새', 남쪽은 '마' , 북쪽은 '노'
가수알바람, 갈바람도 서풍을 가리킨다.
북풍은 높바람, 된바람
남풍은 마파람.
남풍은 앞바람, 북풍은 뒷바람, 동풍은 아랫바람, 서풍은 윗바람
이하 생략.
우리말에는 바람을 표현하는 말이 엄청나게 많았다.
아쉽게도... 많이도 사라졌다. 한자병에 걸린 자들이 한자용어를 많이 쓴 탓일 게다.
나이가 자꾸만 많아지는 나한테 무슨 신나는 일은 없을까?
'신바람'이 나서 흥겹게 떠들고 놀고 싶으니까.
수십년 전 내 시골집에서는 벼농사를 지으려면 많은 일꾼들이 들판에서 일했다.
때로는몇몇 일꾼들은 풍물잡이가 되어서 장구와 깽까리, 징, 북을 치면서 흥을 돋궜다.
신바람이 나면 일을 더 열심히 더 많이 했으니까.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 들판은 깡그리 사라졌다. 일반산업단지로 변해버렸고, 그 많은 동네사람들도 대부분 사라졌다.
이제는 인구소멸지역으로 변해버렸다.
나중에 보탠다.
2022. 11. 12. 토요일.
첫댓글 최 선생님의 무료한 일상을 이야기로 듣습니다.
버려지는 화분의 다육이도 살려내는 재활용의 지혜도 배웁니다.
저 역시도 우리집 생활 가구 등에도
아파트 사는 분들이 이사 가면서 버리는 걸 주워다가 쓰는 게
몇 가지나 됩니다.
고급 가구, 값 비싼 물건들을 쓴다고 행복까지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내다버린 것을 주워서 다른 곳으로 내보내는 박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생활쓰레기를 아무 데나 내던지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지요.
저는 아직은 용기가 없어서.... 길거리의 쓰레기를 직접 거둬서 푸대에 담아서 처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박 선생님은 늘 도심의 거리를 깨끗이 청소하시대요.
제가 사는 서울 송파구 잠실아파트 단지.
이사 가고, 이사 오는 짐에는 왜그리 내다버리는 폐품이 많은지.
제가 주워오는 물품을 두 종류. 작은 책꽂이와 화분.
저는 책을 좋아하기에 책꽂이는 늘 필요로 하고, 식물을 좋아하기에 화분이 필요하지요.
지금은 비좁은 제 아파트 실내라고 더 이상의 책꽂이와 화분을 추가로 들여놓을 만한 공간이 별로 없지요.
물건을 아껴 쓰고, 나눔을 했으면 합니다.
저한테는 별것이 다 글감이 되었군요.
박 선생님 댓글 정말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