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베로니카죽기로결심하다
안녕!!!!!
삐에르 부르디외라는 학자가 말한
아비투스 라는 개념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서 왔어
여시들이 꼭 읽어줬으면 좋겠어
스스로 동안화장을 좋아하고, 노브라는 왠지 거북하며
청순하고 수수한 혹은 아이같은 스타일링을 이쁘다고 느끼는 여시들 많을거야.
혹은 모성에 대해 존경심을 품어왔거나.. 나도 그래
암튼 페미니스트들이 '불편'하다고 말하는거에 대해
'나는 그걸 좋아해서 하는건데 내가 여혐종자야?'
"내가 좋아해서 하는건데 왜 뭔 상관?"
라고 생각했던 여시들은 특히 꼭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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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교수의 논문에서 따옴.)
불평등한 사회질서는 이념적으로 도전을 받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를 비판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한 층위의 의식 속에서는 이를 비판하면서도
실천의 차원에서는 그에 따르며 살고 있다.
그들은 그러한 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지를 면밀히 계산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그들의 믿음은 일상적인 삶에 녹아들어 있어
특별히 의식적인 계산 없이 순응적 행동을 유발한다.
이처럼 사회성원들의 취향이나 느낌, 감각 속에 틀어박혀 그들의 행동을 촉발하고 규제하는
실천의 원리를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라고 부른다.
우리는 각자가 속한 집단의 오랜 삶 속에 축적된 사고방식과 습관,
즉 아비투스를 물려받고 그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주어진 질서를 재생산한다.
이는 사회학에서 사회화(socialization)라 부르는 과정의 한 측면이다.
사회화는 인간이 상징들을 매개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공통의 표상과 관념을
습득하고 자기에 대한 자리매김과 주어지는 역할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목적합리적 동기로 손익을 계산하는 인간 역시
사회화를 통해 자기의 선호(preference)를 가지게 되고 이를 추구하는 방식을 알게 되는 것이다.
즉, 목적합리적 행위자가 추구하는 목적과 그것에 대한 선호는 오랜 집단적 삶의 경험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아비투스의 소산이지 자연상태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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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아비투스 Habitus는 Habit 습관이랑 같은 어원에서 출발해
이해가 되지?
우리가 뭐가 예쁘고 좋아보이고
뭔가를 하고 싶다고 느껴지는 감각 자체가
절대 자연적인게 아니다. 사회화를 통해 습득된거지
생각을 해보자
가슴을 부끄러워하고 가슴을 가리는거? 노브라가 이상해보이는거?
어떤 국가에 가면 노브라 하고 다니는 사람들 아무렇지도 않아
남자인 친구들과 쉐어하우스하면서 대놓고 훌렁훌렁 브라자를 벗어서 예쁘게 개어놓기도 해
중급식인가 고급식떈가 배우는 한국소설 기억나?
여자들이 가슴은 대놓고 내놓고 다니는데,
주인공 여자애가 물동이를 이고 가다가 남주인공이 보이니까
배꼽을 가리려고 어맛! 하다가 물동이 떨어뜨린다.
같은 한국인데도 그 시대에는 가슴은 부끄럽지 않은 부위인데
배꼽을 보이는게 수치스러운 것이었음
그래도 난 내가 노브라가 싫어서 안하는건데,
난 내가 가슴이 부끄러워서 그러는데 그게 왜? 라고 답해야할까?
우리나라 화장이 요구하는 동안, 순한, 착한 얼굴이랑
외국 화장이 드러내는 섹시함, 개성, 성숙미를 비교하는 글에서도
"난 동안화장이 예뻐서 하는건데 그걸보고 왜그래?ㅠ"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그게 아니라 우리가 그걸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회이 산물이고
우린 자연스럽게 그걸 재생산해내는거야.
여기서 중요한건
아비투스의 소산으로서 우리는 피해자이면서도
끊임없이 구조를 재생산해내는 가해자일 수도 있다.
글쓴이인 나만 하더라도
청순한 원피스 한국식 화장 굉장히 선호하고 입고다녀. ㅋㅋㅋㅋ
그런데 중요한건
그럼으로써 우리가 구조를 재생산해내는 역할을 한다는걸
스스로 인지해야되지 않을까?
우리는 자라나면서 '잘' 사회화를 한 사람들로서
아비투스에 따라 선호를 느끼고 행위를 하는 것을 평생 벗어날 수는 없어.
그러나 내 선호와 내 생각들이
구조적인 불평등을 그대로 가져와 재생산하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되묻고,
더 나아가 내 행동들에 책임을 스스로 지고 변화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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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티스토리에서 따왔어. 아비투스와 페미니즘을 같이 서술한 글
곧 아비투스는 ‘당연한 것으로 인정된 성향체계의 형태로서 사회구조가 체화된 것’을 의미한다.
문화 관습에 의한 ‘오인’임에 지나지 않는 현상을
자연스런 인지나 신체의 필연적 소산으로 생각하게 한다.
1950년대 강조된 아비투스, 모성
식민지로 황폐화된 상황에서 광복이 되었지만 다시금 전쟁이란 한계상황을 겪은 50년대 한국소설에 나타난 여성상은 모성이 강조된 형상을 띤다. 그것은 아비 부재의 전쟁 상황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는 존재로 어머니가 설정되곤 하기 때문이다.
http://economist21.tistory.com/13
모성애를 강조하고
어머니는 숭고해, 찬양한것도 마찬가지야.
좋은 어머니가 되고 싶다고? 그게 자연적일까 생각해봐야해
자궁이 있다고 좋은 어머니가 되고 싶은게 아니야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서 좋은 어머니가 되고 싶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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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우에노치즈코 머모님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중에서 따왔어
이걸 읽고 아비투스에 대해 배운이후로 머리가 정리된 느낌이 들었어,
'사람은 '여성'이 될 때 '여성'이라는 범주가 짊어진 역사적 여성 혐오의
모든 것을 일단 받아들인다. 그 범주가 부여하는 지정석에 안주하면 '여성'은 탄생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란 그 '지정석'에 위화감을 느끼는 자, 여성 혐오에 적응하지 않은 자들을 가리킨다.
때문에 여성 혐오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는 없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이 여성 혐오와의 갈등을 의미한다.
여성 혐오를 가지고 있지 않은 여성(그런 여성이 있다면)에게는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때떄로 "나는 내가 여자라고 하는 사실에 얽매여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고집하는 여자들이 있는데
그 말을 다른 말로 번역하면 '나는 여성 혐오와의 대결을 줄곧 피해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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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cafe.daum.net/subdued20club/ReHf/1359378?svc=cafeapp
만약 당신이 정조를 잃는 순간 목숨을 던지라면 던지시겠습니까? (feat. 최태성)
댓글에서 Insane 여시가 얘기해준 아비투스개념에 적절한 사례야!
예전 여성들은 정조를 잃는 순간 목숨을 던지라면 기꺼이 던지겠다고 얘기했어
주변에 총칼을 들고 있는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당연히 기꺼이 던지는게 옳다고
그 것이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생각했어! 그에 대해 최태성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셔
" 그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은 과연 이 여성 스스로의 생각일까요, 아니면 누구의 생각일까요? 어렵지 않죠? 이것은 그 시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만들어 낸 남성 이데올로기가 주입된 결과란 말이에요.
그 여성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생각이라고 이야기하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란 말이죠. 남성 중심의 사회가 만들어 낸 하나의 결과물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생각할 뿐이에요.
그렇다면 여러분들, 제가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여러분들의 생각은 과연 여러분들의 생각입니까?"
긴 글 읽어줘 고마워!!!
문제시 도미노피자 시켜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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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리하자면
나는 우리의 선호가 틀리다 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내 개인의 선호' '자연스러운 욕망' '내가 잘 결정내린 것'
이라고 착각하는 것들이 어떤 사회적인 불평등에서 온 것인지 생각할 수 있어야해.
그래서 무조건 하지말아야 한다! 가 아니라
적어도 내 선호가 어디에서 온 건지 비판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게 지적인 사람 아닐까?
그리고 만약 그 선호를 바꾸기가 힘들다면,
다른 방면으로라도 자신의 '재생산'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해!!!!! (이건 지극히 개인적 생각)
(나는 여전히 한국식 화장을하고 테니스스커트도 이뻐보여 그렇지만
재생산의 책임을 지기위해 여러방면으로 불평등한 것들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
아님 적어도 이 화장을 하고 옷을 입으면서도 주변인들에게 이것이
여성을 어리고, 순하게 만들려는 사회의 소산일 수도 있다고 말해)
22진짜..
@학점4.0 몸무게58 333
와 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