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술 수제비
처서를 하루 앞둔 팔월 하순 수요일이다. 오키나와 근해에서 소형 태풍이 발생 우리나라 서해로 겨냥해 북상한다는 일기 예보를 접했다 “종다리 영향받아 강수가 있긴 해도 / 간밤도 열대야에 복사열 여전해서 / 얕은 잠 뒤척이다가 새날 아침 맞는다 // 베란다 창밖으로 정병산 걸친 운무 / 장마철 그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게 / 산허리 감싸고 돌아 모자란 비 오려나” '정병산 운무'.
새벽에 잠을 깨 베란다 창밖으로 보인 정병산 운무로 시조를 한 수 다듬어 사진과 함께 지기들에게 날려 보냈다, 내가 날씨 정보를 득하는 유튜버 소박사는 이번 태풍이 우리나라 더위를 식혀주지 않고 더 부채질할 수도 있을 거라면서 ‘효자 태풍일까. 불효 태풍일까를 두고 의문부호(?)를 달았는데 후자에 방점을 두었다. 태풍 크기가 소형이고 생성 후 짧을 기간 소멸해 그렇단다.
아침 식후 자연학교 등교 시각을 조금 늦추려다가 강수 기미가 소강상태를 보이는 틈을 타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서니 바람은 일지 않고 비가 흩뿌려 우산을 펼쳐 쓰고 정류소에서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가 원이대로로 진출해 소답동을 지날 때 내려 유등으로 가는 2번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났다.
버스가 주남저수지를 비켜 신등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 내리고 남은 승객은 대산 일반산업단지를 향해 나아갔다. 차도에서 지나온 들녘을 되돌아보며 운무가 먼 산자락을 가린 들녘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도로변에는 조경수로 자라는 배롱나무가 비를 맞고도 붉은 꽃송이를 달고 있었다. 시골 초등학교 부근 찻길에서 현지 주민도 아니면서 신등마을 골목길을 지나 들판으로 나갔다.
골목이 끝난 곳에서는 들녘 너머로는 숲을 이룬 진영 신도시 아파트가 드러났다. 내가 가려는 가술과는 방향이 멀어지는 곳이라 발길을 돌려 아까 버스에서 내렸던 찻길을 따라 상등마을로 나아갔다. 대산 일대 들녘에는 경작지보다 살짝 높아 보이는 언덕에 자연마을이 형성되어 농가들이 들어섰다. 그런 마을에는 어김없이 ’등‘ 자 항렬 이름을 붙였다. 신등, 상등, 장등, 송등, 용등 …
신등에서 건너간 장등마을에서도 아까처럼 골목길을 지나자 들녘이 나왔다. 이제는 면 소재지 가술이 가까워 근교에 공기업 엘에이치에서 지은 임대아파트단지가 보였다. 비는 예상보다 적게 내려 우산을 펼쳐 쓰고 걸은 아침 산책에서 바짓단이 젖을 정도는 아니었다. 저만치 바라보인 장등마을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고 싶었지만 약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그치지 않아 산책은 마쳤다.
가술 거리 일찍 문을 연 카페로 들어 냉방이 잘된 실내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침 산책에서 남긴 사진을 지기들에게 안부 삼아 보냈다. 봉사홛동 시작 시각까지 카페에서 머물다가 파출소로 이동해 안전지킴이 동료들은 만나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남은 자투리 시간은 마을도서관으로 가서 새로 구입해 비치해둔 신착 도서 코너에서 눈길이 가는 산문집을 한 권 뽑아 읽었다.
점심때가 되어 열람실을 나와 자주 가던 국숫집은 쉬는 날이라 다른 곳을 찾아가야 했다. 국도면 가술 거리에는 몇몇 식당이 성업 중인데 인근 강변 파크골프장으로 운동을 나온 이들이 지역 경제를 살려주었다. 주중 수요일은 골프장이 휴무일이라 가술 식당도 덩달아 쉬는 곳이 있었다. 한 끼 때울 식당이 마땅치 않아 아침에 지나왔던 엘에이치 아파트단지 근처 분식집으로 갔다.
자매간으로 여겨지는 젊은 두 아낙이 운영하는 식당 차림표에는 국수와 김밥 외 수제비도 팔았다, 찬으로 나온 햇김치도 맛이 있었다. “일상이 되다시피 도서관 머물면서 / 점심때 바깥 나와 국도변 식당 찾아 / 국수로 때우는 한 끼 기본 열량 채운다 // 어쩌다 차림 바꿔 한 대접 수제비로 / 감자를 썰어 넣고 맵싸한 땡초 들어 이마에 땀 흘려 가며 국물까지 비운다” ’가술 수제비’ 24.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