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꽃을 피우던 나무
붉은 열매 주렁주렁 달고 있던 나무
제 몸보다 더 많은 무게를 지탱하던 나무
어린 것을 품은 여인의 몸처럼
둥글고 붉고 단물 가득 품던 나무
사과 나무가 조용히 눈을 맞고 있다
그 많은 것들 다 내어주고
하나도 받아안을 수 없는 몸
앙상한 뼈마디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 번져
히죽히죽 웃음이 목젖에 차오르는데
맨발이 공중에 둥둥 뜰 것 같은데
빈 가지에 바람 몇 점과
새 몇 마리 날아와
간신히 눌러 앉혀두는데
하얀 꽃을 받아들
빈손이 되는 나무
빈손만이 받아들 수 있는 꽃
사과 나무의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의 흰 손이 보인다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5.01.17. -
사과나무는 우리네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이른 봄, 어여쁜 꽃을 수줍게 피워올리던 사과나무는 여름이 되면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늦가을이 되면 “제 몸보다 더 많은 무게를 지탱”하며 힘들게 키워낸 열매를 떠나보내고 “단물” 다 빠진 몸이 됩니다.
“앙상한 뼈마디”만 남은 채 찬바람을 맞고 서 있는 사과나무, 그 “빈 가지” 위로 백발처럼 눈발이 날립니다. “누군가의 흰 손”이 사과나무의 수고로웠던 한 해를 위로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