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값
박주병
아내와 허물없이 지내는 이웃의 한 노파가 있다. 그녀는 서예와 그림으로 국전은 아니지만 상을 많이 탔다고 자기 자랑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통장 노릇으로 주민에게 봉사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루는 그녀가 손자 이름을 다시 지어 달라고 나를 찾아왔다. 연전에도 백지 이름을 지어 달라 해 놓고선 쓰지도 않더니 이번에는 내가 지어 준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며 다시 지어 달라는 거였다.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웬 매화 그림이 이리도 많지.”라고 투덜거리듯 했다. 국전 심사위원의 작이라 했더니, 아니꼽다는 듯, “국전 심사위원 쌔발맀심더,”라고 톡 쏘며 냉소를 지었다. 옛날에 그녀가 아내에게 준 풍경화가 우리 집 어디에도 걸려 있지 않은 걸 보고 좀 서운했던 모양일까.
그녀는 손바닥만한 옥편을 자랑삼아 불쑥 내보이기에 나는 우선 이 여자의 기부터 꺾어 놔야 이름을 수월하게 짓겠다 싶어 『說文』 을 위시해서 일본 책 白川靜의 『字訓』 『字統』 『字通』 세 책과 열다섯 책으로 된 일본의 『大漢和辭典』과 역시 열다섯 책으로 된 우리의 『漢韓大辭典』 등 각종 공구류 서책으로 한 코너를 이루고 있는 서가를 가리켰더니 그녀는 용감하게도 놀랄 줄도 몰랐다.
그녀는 인터넷에서 돈 주고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사주에 물이 부족해서 물이 든 글자를 써야 한다는데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주에 물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걸 보니 그 사주쟁이 실력 알 만하다고 했더니 의아해 하는 눈치였다. “불꽃이 이글거리는 난로에 물이 없다고 해서 물 한 컵을 부으면 어찌 되겠소?”라고 말하려다가, 사주의 원리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한마디로 잘라 말하고는 내가 지은 명리서(命理書)를 보여줬더니 그녀는 무안하게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이름자로 쓰고 싶은 글자를 수두룩이 적어 왔다. 나는 깜짝 놀랐다. 붓글씨도 남의 앞에 내놓을 만한 것이 못되는 줄 내가 알고 있지만 한자 실력은 丞 자와 承 자도 분별할 줄 모르는 수준이었다. 그런 주제에 하도 까다롭게 굴기에 “식자우환이군요.”라고 했더니 기분이 나쁜지 누구한테 하는 말이냐고 조금 대드는 듯했다. 나는, “누구긴 누구! 당신 같은 자들에게 하는 말이지. 삼고초려(三顧草廬), 이교취리(圯橋取履), 정문입설(程門立雪) 같은 건 못할지언정 절에 온 색시요 하고 가만히 엎드려 있을 일이지.”라고 툭 쏘아붙였다. 나는 그녀의 기를 죽이려고 일부러 어려운 용어를 썼던 거다.
그녀의 태도는, 의사한테 진료를 받는 환자가 자기 병은 자기가 안다고 떠들어 대는 식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내치려다가 등 너머 아지매를 보나 다래 끝 누님을 보나 그럴 수는 없어 참느라고 애를 먹었다.
떠날 때 볼펜 다섯 자루, 둘레가 누렇게 바랜 복사용지 스무 장 가량, 작은 부채 두 개를 주기에 답례로 나의 수필집을 한 권 줄까 하고 말머리를 꺼내자마자 자기는 수필가는 잘 모르지만 시인 소설가를 많이 안다며 아무개 시인 아무개 소설가를 아느냐고 했다. 풍기는 분위기가, 은근슬쩍 수필을 깔보는 소린 줄 알아들으라는 말투였다. 대구문인협회에 가입했느냐고 물었다. 이 물음은 벌써 세 번째다. 문협에 가입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했더니 느닷없이 ‘○○○’을 아느냐고 했다. 모른다고 했더니 대구○○회장이 아니냐고 했다. 회장이고 나발이고 나는 감투 같은 건 개똥 보듯 하는 사람이라 했더니, 갑자기 억양을 높이며 “○○○이 최곱니더. 최고!”라고 톡 쏘며 엄지손가락을 내 코앞으로 쑥 내밀었다. 감투를 개똥 보듯 한다고 했지 생면부지의 ○○○이란 사람을 개똥 보듯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닌데 잔뜩 오해를 하고서는 꽁하고 가드라지다니 그 따위 소갈머리로 감히 내 앞에 엄지손가락을 내밀었것다. 그 손가락을 당장 부러뜨리고 싶었다. 며칠을 두고 속이 더부룩했다.
그녀가 다음에 또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작명쟁이 쌔발맀심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면 이렇게 빈정거릴 것이다.
“시인이나 소설가한테 부탁하이소.”
계속 염치없이 군다면 딱 부러지게 한마디 할 것이다.
“군차재 아차재”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면, ‘어험’하고 크게 기침을 한 번 한 뒤에 “君借財我借才”라고 종이에 써 보일 것이다. 여전히 고개가 빳빳하면 ‘借’ 자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 볼 것이다. ‘借’ 자가 ‘빌리다’라는 뜻인 줄이나 알까. 만에 하나 알 경우에는, 여기서는 ‘빌리다’라는 뜻이 아니라 ‘아끼다’라는 뜻이라고 힘주어 말할까 한다. 이쯤 되면 ○○○이 최고니 뭐니 하고 내 앞에 엄지손가락을 내밀지는 못할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군차재 아차재”의 뜻을 묻는다면 “당신이 재물을 아끼면 나는 재주를 아끼겠소.”라고 종이에 써 줄 것이다. 내가 이런다고 수필을 업신여기는 그녀가 달라질까? 어림없다.
사람을 내게 맞출 수는 없다. 꼴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에 맞출 수도 없다. 꼴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꼴값하고 살 뿐이다. 그래서 세상은 시끄럽다. 재미도 있다.